2022 겨울   山:門 PEOPLE

프리뷰 │ 남산국악당 2022 남산초이스 [방지원-동해 UNIVERSE]

하윤아
발행일2022.12.10

이제, 방지원의 굿을 만날 때

 
시간이라는 바람에 휩쓸려 2022년 한 해 마무리가 마냥 바쁘다. 시간이 되면 눈을 뜨고, 시간이 되면 잠이 들고, 시간이 되면 일을 하고, 시간이 되면 밥을 먹는 게 일상인 요즘, 연이은 공연 준비로 시간이 녹록지 않은 아티스트를 만났다. 시간에 떠밀려 잠자는 일은 사치라고 느껴질 정도로 바쁘고 바쁜 ‘MZ세대의 대표 화랭이 방지원’을 2022 남산초이스 <방지원-동해 UNIVERSE>(2022.12.9~10)를 앞두고 만나볼 수 있었다.
 
그에게 말을 건네는 순간
방지원에게 말을 건네는 순간, 그 순간부터 우리는 한 명의 소설가를 만나게 된다. 굿으로 이야기를 하고, 예술을 하고, 일상을 보내고, 굿으로 세계를 그리는 ‘소설가’ 방지원이다. 일부러 웃는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 같지 않은데,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웃음이 멈추지 않는다. 몸에 장착된 사투리와 함께 거스름 없는 이야기 전개가 압권이다. 재미진다. 24시간 옆에 앉아서 ‘굿’ 이야기만 들어도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새로운 이야기를 계속 기대하게 될 것만 같다.
방지원. 동해안별신굿 이수자, 동해안 화랭이, 타악주자, 악기 개발에도 관심이 있고, 퍼포먼스에도 욕심이 있다. 뭔가를 계속 만들고, 연주하고, 연구하고, 연습하고 그 과정을 글 쓰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꾼 방지원, 그는 소설가이다.
그의 이야기가 시작되면 주변의 모든 일은 자연스럽게 멈춰진다. 그의 연주가 시작되면 그가 이야기하고 공연하는 동해안별신굿에 대한 관심이 생성되고, 그가 꿈꾸는 <방지원-동해 UNIVERSE>가 궁금해진다. 덧붙여 저런 입담은 도대체 어떻게 생성되는 것인가라는 궁금증과 인간적인 호기심까지 곁들여진다.
집안에 국악 연주자는 없었단다. 일명 자생적 딴따라인 셈이다. 5살 때 사물놀이 공연을 보고 전통에 반했다. 전통공연 연주자가 될 운명이었는지, 화랭이가 될 운명이었는지… 우연히 동해안별신굿을 보게 된 후, 고등학교 때 ‘굿’의 세계에 입문했다.
사람의 인생이 녹아 있고, 지역의 인생살이가 녹아 있는 판이 굿판이다. 인간의 ‘숭고함’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판이 굿판이다. 손자를 위해, 부모를 위해, 내 옆의 누군가를 위해, 세계를 위해, 이 지구의 생명체의 평화와 안식을 위해 기도하고 기원하는 그 모습을 그는 음악으로, 공연으로 풀어내고 싶었다.
 
왜 굿이냐고, 왜 굿이 좋으냐고
그에게 많이들 묻는다. 왜 굿이냐고. 왜 굿이 좋으냐고. 현실과 영적 세계가 공존하는 굿판. 손으로 빌면서 기원을 하고, 무당이 신을 불러들이고, 화랭이들은 장단을 치는 이 모든 행위들은 인간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이 모든 마음들은 영적 세계로까지 맞닿아 있다. 그 맞닿는 지점, 그 맞닿는 공간에 들어가는 순간 방지원은 압도되고, 심취되고, 큰 에너지들을 느낀다. 향을 피우고, 장단을 치고, 소리를 하고, 지화를 장식하고, 호갱등을 달고. 시각‧후각‧청각 이 모든 감각을 열어야 느낄 수 있는 그 세계, 모든 예술의 장르가 내재된 복합예술이 이뤄지는 그 시공간의 매력이 담긴 굿판이 그를 흥분시킨다.
그가 입버릇처럼 하는 이야기가 있다. “굿을 잘하려면 무엇보다 그 지역을 잘 알아야 해요.” 굿의 언어와 지역을 잘 알아야 굿을 잘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지역의 사투리, 지역의 유머 코드, 지역 특산품, 지역 주민들의 소소한 일상 이야기, 동네 주민들의 안부를 묻고 들으며 지역 일상에 빠져들면 굿은 잘된다. 경상도에서 태어난 덕분에 경상도 사투리에 능한 그는 언어적 감각이 탁월하다. 90대 할아버지, 50대 어부, 30대 국악인, 20대 대학생까지 모든 세대의 역할과 감정을 이입하면서 좌중을 들었다 놓았다 한다.
공감 능력도 뛰어나다. 인간뿐 아니라 지구의 생명체(가령 물고기를 들 수 있겠다)에게도 그 능력은 발휘된다.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동해안별신굿은 어촌의 풍어와 안녕을 기원하며, 풍어제의 성격을 주로 띤다. 고기를 많이 잡아들이면 어민들은 풍족하고 좋지만, 물고기 입장에서 ‘풍어제’는 공포(?)스럽다. 그 맥락에서 방지원은 “그물에 잡힌 고기의 운명을 함께 슬퍼하며, 위로하는 굿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동해안 오구굿 형식을 딴 물고기 굿(동해물오구굿)을 통해 인간-환경-생명의 공존에 대한 질문을 대중에게 던진다.
 
(). 고유한 모습으로 흐른다.
동해안 무속 예술세계를 공부하고 연구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스승이 있다. 동해안별신굿 보유자이자 국내는 물론 국외 아티스트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고, 현재에도 주고 있는 김석출(1922~2005) 명인이다.
김석출 할아버지에게 묻고 싶은 게 많았단다. 가락과 연주법부터 예술관에 이르기까지,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이 세상에 계시지 않으니 할 수 있는 것은 관련 자료를 찾고 연습하고 공부하는 것뿐이었다. 존경과 동경 속에서, 김석출 할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라가게 되고, 흉내 내며 연습하다 보니 어느새 김석출 명인의 호적 산조를 오마주하는 ‘방지원류 호적산조’를 연주하는 방지원을 만나게 된다. 방지원류호적산조는 ‘류’에 갇히지 않고 ‘류’를 확장한다. 류(流)는 흐르다, 흐르게 하다, 전하다, 번져 퍼지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자신의 가장 ‘고유한 모습’으로 흐르고 있는 이 연못의 흐름을 류(流)라고 부른다”라는 니체의 말이 떠오르기도 한다.
방지원은 수준 높은 동해안 무속 예술세계를 재조명하고 발굴해 ‘전통적 상상력’과 ‘동해안 어법’을 기반으로 새로운 작품을 창작하고자 한다. 그 음악 작업의 중심에는 “전통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면 그것이 결코 소멸될 수 없도록 만들어진 복잡하고 탄탄한 뼈대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그의 철학이 내재되어 있다. 그는 그렇게 가장 고유한 모습으로 흐르고 있다.
동해안 굿판에서 경험했던 잊을 수 없는 광경, 현장성을 바탕으로, 그는 자신만의 문체로, 자신만의 흐름으로, 자신의 가장 고유한 모습으로 흐르고 있다. 그러한 방지원을 온전히 만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2022 남산초이스 <방지원-동해 UNIVERSE>를 찾아가야겠다.
 
하윤아
국립무형유산원 공연 PD로 ‘21세기 무형유산 너나들이’ ‘K-무형유산페스티벌’ 등을 기획했다. 방송작가로도 활약했으며 월간 <인물과 사상>에 ‘재미있는 국악이야기’ 등을 연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