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예술을 이용한 작업들을 중심으로 본인 소개 부탁합니다.
추다혜|서도민요 소리꾼이자 그룹 추다혜차지스의 보컬입니다. 평안도‧황해도‧제주도의 소리를 엮어 음반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2020)를 발매했고, 현재 새 음반 준비 중입니다.
정원기|최근에 그룹 펑크데이즈의 1집 음반 <현혹하지 마세요>를 발매했고, 작곡과 프로듀서로 활동 중입니다. 제주도에서 굿을 보며 ‘제주 4‧3’을 알게 되어 <더 필드, 밝히지 않은 유산>(2022) 처럼 사회문제를 다룬 공연도 선보였습니다.
이지영|가야금 연주자로 굿음악을 가야금 독주곡으로 만드는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진도씻김굿의 여러 대목을 독주곡으로 만들어 음반 <진도씻김굿>(2023)도 발매하고 공연도 했습니다. 같은 해에 <가야금 동해안별신굿-문굿, 골매기굿> 공연도 선보였고요.
정연락|동해안별신굿 전승교육사로 굿 현장을 지키고 있습니다. 자매인 무녀 김영희‧김동연‧김동언와 함께 공연 <세 자매 이야기>(2021)를 기획했고, 동해안별신굿-남해안별신굿-진도세습무 단체가 속한 삼도세습무연합회 사무국장도 맡고 있습니다. 무구(무속도구)의 하나인 지화 제작자로도 활동 중이고요.
굿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종교적 ‘오해’가 담겨 있음과 동시에, 예술가들에게는 문화와 예술을 풍부하게 해주는 ‘이해’의 시선도 녹아 들어가 있습니다. 굿이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정연락|동해안별신굿은 극장이라는 무대가 따로 없었어요. 그저 공터에 천막 치고 탁자 놓고 바닥 깔면 극장이자 무대가 되는 거죠. 모인 사람들이 함께 놀며, 굿은 시작됩니다. 많은 굿과 그 문화가 사라졌는데, 그래도 굿의 명맥이 유지되는 이유는 마음의 만족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굿을 함으로써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고, 스트레스를 풀고, 묵은 감정을 끄집어내는, 한마디로 ‘욕망의 해우소’ 같은 느낌이죠.
정원기|굿은 풍부한 음악적 자원입니다. 그런데 그 예술성을 ‘선율’이나 ‘장단’ 같은 것으로만 분류하여 본다면, 피상적인 접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아요. 고정된 시선으로만 보는 것일뿐, 숨겨진 원리를 모르는 것이죠. 요새는 이런 부분들을 어떻게 담론화할지 고민도 하고 있어요. 더불어 굿에 담긴 문화 공동체로서의 가능성과 경험을 예술가로서 독창적으로 표현하고 싶기도 하고요. 그래서인지 공연장에서 행하는 굿은 이러한 현장성을 잃어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분명한 목적과 기획 의도로 인해 어느 단면만 포착하게 되는 것이죠.
이지영|굿은 한국의 문화와 음악이 담긴 기층문화인 것 같아요. 동시에 베일에 싸인 예술이자, 오랫동안 접근하지 못한 원시림 같은 음악으로 예술가들에게도 많은 아이디어를 주는 원천이기도 합니다.
정원기|일반적으로 굿은 개인이나 공동체에게 당면한 현재 문제를 풀어내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제주도에서는 일상생활에서 쉽게 굿을 볼 수 있어요. 굿이라는 전통적인 방식에 지금 이 순간의 현재적 이슈가 반영되는 방식으로 굿 문화가 생동하고 있습니다.
이지영|그러한 삶으로서의 굿도 있지만, 한편으로 공연으로서의 굿이 많이 연행된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있기도 해요. 무슨 말이냐면 공연으로서의 굿은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기보다는 변형된 것들이 많다는 것이죠. ‘진짜 현장’에서, 그 지역민들을 위해 행해질 때 굿으로서의 진정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저는 극장 연행으로서의 굿도 좋지만, 더이상 훼손이나 변질되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추다혜 | 사실 전통음악을 공부할 때도 굿을 직접 보거나 접한 적은 없었어요. 그렇다보니 굿에 대한 정보는 취약하고, 매체에서 다루는 굿이나 무당의 이미지가 그대로 수용했던 것 같아요. 저도 민요 중 소수에 해당하는 서도민요를 전공했는데, 굿은 더욱 소수의 예술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굿은 저에게 영감과 창작의 원천입니다. 굿을 통해 전통음악과 공연예술의 기원을 깨닫고, 노래와 연기를 할 때도, 무가를 부르고 만들 때도 무당의 퍼포먼스에 큰 매력을 느꼈어요. 저는 굿을 공연의 기원이자, 무당 자체가 아티스트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굿과 만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정원기┃대학에서 국악 작곡을 전공했어요. 졸업 후에 여러 현장에서 활동하면서도 “한국음악씬에서 있어서 ‘작곡하기’란 무엇일까”라는 물음이 계속되었어요. 그러던 중 제주도로 갔어요. 사실, 학교 수업이나 공연장에서 본 굿은 별로 재미가 없었는데, 현장에 가서 직접 보니 공동체 문화 확 와닿더군요. 굿할 때 ‘노래하기’는 신화도 있고, 일상적인 이야기도 있잖아요? 그렇게 8년 동안 현장을 다니고 있습니다.
추다혜┃처음으로 보았던 굿은 2017년에 약식화된 강신무(신병이라 불리는 종교체험을 거쳐 입무한 무당)의 굿현장이었어요. 재미있고 신선했고, 종일 진행된다는 점에 놀랐고, 무당이 작두 타는 모습도 충격이었죠. 현장에서의 굿은 극장을 위해 정제된 공연과 차이가 있어요. 더불어 그런 현장을 지키며 무당으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인생도 많이 살펴보는 것 같아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무당의 퍼포먼스나 인생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작업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지영┃굿 음악을 처음 접한 것은 음반을 통해서였어요. 음반수집이 취미였는데, 이를 통해 진도씻김굿, 동해안별신굿 등의 음악들을 들어보았어요. 그러던 중 제주칠머리당굿의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그때 전문연주자로 활동하던 삼십 대였는데, 그때까지 공부한 전통음악들과 전혀 다른 경험이었어요. 음계와 구조 모두 이상하면서도 새로워 충격을 받았어요.
굿으로부터 받은 영감과 소재를 바탕으로 여러 작업을 남기고 있는데요. 대표작(공연이나 음반)을 꼽아주시고, 기획 및 제작 과정을 이야기해주세요.
추다혜┃음반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 발매 후 공연을 통해 많은 관객과 만났어요. 음반명을 정할 때는 수록곡들을 모아 스토리텔링을 고민했어요. 예전에 굿이 당산나무 아래에서 이루어졌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이 음반도 원형의 굿을 관객들에게 당산나무 아래서 듣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로맨틱한 감정을 주고자 ‘오늘밤’이라는 말을 붙여 음반명을 만들었고요. 그렇다보니 수록곡들이 굿과 평안‧황해‧제주의 무가의 영향을 받았어요. 사실 이 과정이 쉽진 않았어요. 작업에 필요한 굿들을 현장에서 직접 보는 것도 어렵고, 조사‧연구하는 과정에서의 어려움도 많았거든요.
정연락┃저는 공연 <세자매 이야기>(2021)를 꼽고 싶습니다. ‘세 자매’라 불리는 (국가무형유산 동해안별신굿 보유자 고 김석출과 변난호 무녀 사이에서 태어난) 김영희‧김동연‧김동언 선생들이 함께 무대에 오른 공연입니다. 그들에게 태교 음악이 굿음악이었고 뛰어놀던 곳이 굿판이었습니다. 그런 굿의 현장에는 아버지와 어머니는 물론 삼촌, 큰오빠, 조카가 있었고요. 모두 직계가족으로 세습무 가문입니다. 그만큼 세 자매에게 굿의 현장은 삶의 일부였는데, 그들의 이야기를 공연으로 한번 풀어보고자 했습니다. 이를 통해 동해안별신굿 무당의 삶과 이야기가 무엇인지 관객들도 감동을 받았었죠.
정원기┃ <더 필드, 밝히지 않은 유산>(2022) 공연입니다. 제주도 굿의 특징은 ‘영게울림’이라고 해서 심방이 ‘영가’의 말을 하는 대화체 거리가 있어요. 사가집에서 하는 굿을 보면 제주 4‧3 이야기가 나와요. 70여년이 넘도록 말하지 못한 침묵이죠. 제주도 전역에서 3만명 이상이 학살되었으니, 각 집안마다 4.3에 죽은 영가의 사연을 쉽게 들을 수 있는거죠. 그래서 4.3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해방정국의 역사를 이해하면서 한반도 분단사에 따른 우리 음악의 역사적 변화를 체감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제주4‧3과 분단사의 트라우마를 영게울림을 토대로 음악적 구조를 쌓아가며 공연을 구성했어요. 기본 텍스트는 자이니치 정병춘 할머니의 굿을 토대로 제주 동복리에서 한 날 한 시에 학살당한 136명의 영가를 해원하는 방식으로 아직 정명되지 않은 제주4.3 학살을 주목했고, 저의 할머니와 큰이모를 인터뷰하며 알게 된 한국전쟁에 관한 가족사를 이해하며 창작한 작품입니다. ‘굿’은 제가 예술가로서 보지 못했던 기억되지 못한 존재를 인식하게 하고 삶에 관한 질문을 견줄 수 있는 현장인 것 같습니다.
이지영┃<가야금 동해안별신굿-문굿, 골매기굿> 공연(2023)을 준비하면서 동해안별신굿을 깊이 연구해 봤어요. 가야금이 안 들어가 있는 굿으로 가야금이 함께 할 수 있게 가락을 짜서 넣어 보았는데, 처음에는 장단의 첫 박을 잡는 것부터 너무 어려웠어요. 기존의 산조나 민속음악의 장단 체계와는 너무나도 다른 거였죠.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묘한 순환이라고 해야 할까요. 어떻게 보면 굿음악을 잘 몰랐던 제가 굿음악에 매료되는 순간이기도 했어요. 음반 <진도씻김굿>(2023)을 준비하고 공부할 때는 굿과 함께 가야금이 어우러지도록 어떤 소리를 내야하고, 연결시켜야 하는지 연구를 많이 했어요. 굿과 굿음악은 각각이 지닌 세계와 성격이 강해요. 인류에 비하면 진도씻김굿의 예술가들과 동해안별신굿의 예술가들이 각각 다른 인종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굿에는 지역의 문화와 방언은 물론 오늘날의 시선으로 이해될 수 없는 문화가 많이 녹아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을 토대로 작품을 만들 때 어려움은 없었나요?
추다혜┃특히 무가를 재해석할 때 어려웠어요. 예를 들어 제주도 방언을 모르니 “천왕새 도리저 인왕새 도리저” 같은 표현을 이해하는 것도 힘들었고, 무가를 부르는 무당들도 무가에 담긴 가사의 뜻을 다 알진 못 해요. 그 가사들을 해석하고 의미를 찾는 과정에서 혼자 공부를 많이 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러한 음악들을 추다혜차지스의 음악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은 재밌기도 했지만, 고민도 많았어요. 보컬‧드럼‧ 기타‧베이스로 구성된 밴드음악으로 풀어가면서 펑키‧재즈 등 여러 스타일과 어떻게 접목하게 할까 등의 고민이었죠.
정연락┃공연장 무대에는 여러 단이 놓이며 단차가 발생합니다. 무대 디자인을 위한 것이지만, 사실 굿의 현장을 옮겨올 때는 무대와 객석의 구분은 물론 이러한 단차도 없어야 해요. 수평적인 공간은 굿 현장의 일차 조건입니다. 이러한 변화부터 중요하다고 봅니다.
굿을 이용한 작품들을 대하는 관객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추다혜┃요즘 <파묘> 같은 영화가 무당에 대한 기존 이미지를 탈피하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봐요. 그래서 젊은 세대가 이러한 무속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정말 소수라 볼 수 있죠. 굿의 음악을 사용하되 관객이 이질감 없이 들을 수 있는 음악들을 만들고 싶어요. 게다가 어려운 방언이라도 제주도 말이나 고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싶기도 하고요. 그 말 안에 힘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이러한 걱정 속에서 음반을 제작하고, 또한 관객들이 이 언어(무가=가사)를 이해할 수 있을지 고민도 했는데, 우리의 편견이었던 것 같더군요. 오히려 관객들이 예상 외로 더 즐기는 모습을 보며 자신감을 얻었죠. 그들에게는 이 어려운 음악이 ‘힙’하게 다가가는 것이었죠. 관객들의 이러한 반응을 보면서 우리만의 색깔을 고집해도 되겠구나 싶더군요.
정연락┃말레이시아의 어느 음악 페스티벌에서 굿을 선보였는데요. 6천여 명에 달하는 관객들에게 가사와 의미를 알려주니 그들이 함께 따라 불렀던 기억이 납니다. 의미만 잘 전달된다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예술이라는 것을 느꼈죠. 이러한 경험을 통해 앞으로의 공연에서 굿에 담긴 의미를 잘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방향도 이러한 것이고요.
추다혜┃어느 미술관에서 무당의 방울이나 징 등의 무구(무속에 사용되는 도구)를 이용한 퍼포먼스를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미술관 관계자가 종교적인 이유로 저의 퍼포먼스에 수정을 요청했어요. 그 경험을 통해 무녀들이 지나온 시간과 삶을 이해하게 되더군요. 그 일을 계기로 무녀나 무당의 삶에 더 많이 감화되었고, 보다 많은 이들이 종교적 편견 없이 즐길 수 있는 굿 음악을 원용한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끝으로 굿을 이용한 앞으로의 작품 제작 계획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추다혜┃2022년에 <광-경계의 시선> 공연을 선보였는데, 무녀와 무당의 삶을 조명한 이야기를 녹여 넣었어요. 남을 위로하며 사는 무당이나 무녀를 오히려 제가 위로해 드리고 싶은 마음을 담아 준비한 공연이었습니다. 공연을 진행하면서 신과 인간 사이에 무당이 있다면, 나는 무당과 인간 사이를 매개하는 존재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그들의 인생을 조명한 작품을 또 만들 계획이고, 굿의 문화와 예술을 보다 더 조명하여 많은 이들과 함께 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