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은 이예린의 <노끈>으로 문을 열었다.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시골마을 고데르빌에 장이 열리는 날이다. 오슈코른 영감은 노끈 하나가 떨어져 있는 걸 발견하는데, 이는 그의 인생을 뒤바꾼 커다란 오해의 시작이었다. 오슈코른이 주운 것은 작고 가느다란 노끈 한 오라기였지만 이는 곧 목격자인 말랑댕에 의해 500프랑과 중요한 문서가 든 가죽지갑으로 와전된다.
말 옮기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한마디씩 입을 보태는 동안 사건은 오슈코른이 얼마나 몰염치하고 뻔뻔하며 반성할 줄 모르고 자기변명에만 골몰하는 인간인지에 대한 여론재판으로 전개된다. 오슈코른이 누명을 벗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그날의 일에 대해 최대한 소상히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가 설득력을 얻을수록 이 잘 짜여 있는 각본 같은 이야기에 대한 의심은 커져갈 뿐이다. 애초에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었다.
전통 판소리 무대였다면 오슈코른이 억울함을 토로하는 눈대목이 무대의 하이라이트를 이루었을 것이지만 이예린의 노래는 문장을 다 맺지 못한 채 “그저 작은 노끈 하나~”를 한탄하듯 되뇌이며 끝난다. 원작에서 정신착란을 일으킨 오슈코른이 숨이 다해가는 순간에도 노끈을 중얼거리던 마지막 장면처럼.
박인혜는 연출에서 세 소리꾼의 개성을 최대로 출력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는데, 작품을 소리꾼의 개성에 맞게 안배한 데에서부터 각별한 애정과 안목이 읽힌다. 이 소설을 판소리 무대로 옮기면서, 여린 듯하면서도 휘어지며 이어지는 이예린의 목소리 외에 다른 선택지를 상상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또한 감칠맛 나는 노래의 묘미가 담뿍 살아 있다. 판소리 무대의 중심은 ‘소리’에 있고 이 ‘소리’는 이야기를 실어 나르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지만, 이예린의 무대는 판소리가 ‘이야기’이자 ‘소리’인 동시에 ‘노래’이기도 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