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0일, 20대 국회의 마지막 임시 개원에서 극적으로 통과된 법안 중 하나가 예술인 고용보험과 관련된 법안이다. 전 국민 고용보험이라는 정부 방침의 첫 수혜자가 예술인이 된 것이다. 절대 다수가 프리랜서로 규정된 예술가들이 그 누군가에게 고용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노동과 근로의 가치를 인정받아 일거리가 없는 일종의 휴지기 기간에 일정 정도의 비용을 지급 받게 된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이 법은 2020년 6월 9일 정확한 명칭으로는 ‘예술인인 피보험자에 대한 고용보험 특례’로 고용보험 72조에 포함되어, 이후 6개월 간 시행령을 만들어 12월 10일부터 시행된다.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일명 ‘예술인 고용보험’이 시작되고 수급 조건인 24개월 중 9개월 이상 가입 조건이 충족되는 2022년 12월 이후, 그러니까 빠르면 2023년 첫 수혜자가 나오는 법안이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법안은 예술가들이 처한 열악한 환경에서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 안에 귀착시키고, 예술 창작 작업의 사회적 가치와 의미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합의의 결과이기도 하다. 이에 더하여 더욱 포괄적으로는 전 국민 4대 보험 가입이라는 선진적 제도의 안착이라는 목적도 함께 포함된다. 하지만 다양한 장르가 모여 있고 각 장르마다 특색과 성격이 다채로운 문화예술계에서, 어떻게 노동 시간과 수입을 산출하고 이것들을 정량화하여 제도에 귀속시키느냐는 매우 어려운 난제이다. 장르마다 다양한 고용형태를 보이고 있고, 속된 말로 일한 시간의 산정과 수입 구조와 액수 책정, 이에 따른 차별적 보험료 납부와 지급의 문제 등이 다른 일반고용 업종과는 비교할 수 없는 복잡하고도 난해한 업종이 바로 예술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런 차원에서 가입 조건과 수급 조건은 가장 첨예한 쟁점 사안이고, 그 기준에 대한 논쟁은 언제나 가장 주요한 사안으로 대두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상업적 목적의 예술이 아닌 순수예술의 경우에는 어떻게 고용보험, 즉 제도가 요구하는 최소한의 노동 조건으로 정량화되고 환원되는지 현재 시행 예정인 고용보험의 기준을 통해 논의해보고자 한다.춤추고 노래하는 것은 누구나 한다. 악기를 연주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흥겨워서, 나도 모르게, 아무 곳에서나 춤출 수 있고 노래할 수 있다. 그런데 누가 하면 예술이고 누가 하면 예술이 아닌 취미생활인가? 그리고 전문 예술가는 누구인가? 그리고 어떤 예술가가 예술인 고용보험의 적용 대상인가? 대답은 의외로 쉽다. 예술인 등록을 하거나 예술인으로 독립된 사업 수주 계약을 맺은 계약서가 있으면 된다. 예술인 등록은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 상시적으로 신청하면 소정의 심사를 거친 후 등록이 가능하다.
그런데 문제는 예술인 고용보험이 의무가입이라는 점이다. 예술인 등록을 하거나 예술인 고용보험을 가입하고 싶으면 매달 요구되는 소정의 고용보험료를 스스로 부담해서 납부해야 한다. 따라서 내가 예술가인가, 혹은 생활 속 예술인인가를 먼저 스스로 자가 점검하고 가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보험료를 납부했지만 충족 조건이 안 되어, 즉 보험료만 내고 수급 조건이 되지 않아 실업수당인 보혐료를 못 받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렇게 보자면 예술가인가 아닌가의 구분은 쉬워진다. 즉, 예술인 고용보험을 가입했는가, 혹은 아닌가로 판별된다. 예술가라고 해서 의당 예술인 고용보험에 가입하려면, 자기 검증, 즉 내가 전업 예술가인지를 심사숙고해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며, 그렇게 해서 예술인 등록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무형의 가치인 창작 활동을 노동 시간으로 정량화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고 주관적인 문제이다. 창의적 작업을 주로 하는 예술가들은 단순히 연습시간은 물론, 리서치의 시간, 자신의 작업에 대해 고민하고 상상하는 시간까지 모두 고스란히 예술적 인고의 시간으로 보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측하고 측량하기 힘든 노동의 시간을 제도가 요구할 때, 매우 현실적이고도 물리적으로 측정이 가능한 수치로 그것을 증명해야 한다.
예술인 고용보험은 이를 계약서에 근거해 측정하기로 했다. 계약서에 명시된 작업의 기간을 실질적인 노동의 시간으로 여기고 이를 토대로 수급 조건의 기준으로 설정했다. 구체적으로는 24개월 중 9개월로 예술인 고용보험은 명시했지만, 이는 문체부가 2년마다 조사하는 예술인 실태조사를 근거로 결정했다. 예술인 실태조사에 의하면, 1년 중 실질적인 예술창작 기간, 혹은 일한 시간이 1년 중 4.7개월로 조사되었고, 그러므로 2년 중 9개월이라는 수치를 기준으로 제시한 것이다. 문제는 공연예술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기간이 중복되는 계약의 경우에는 예술창작 작업에 국한하여 합산을 허용하기도 했다.
결국 자신이 예술가임을 증명하는 것에서부터, 얼마나 일하고 얼마나 벌었는지 하는 노동의 가치를 측정하는 기준은 창작 작업에 관한 계약을 토대로 규정된다. 따라서 2020년부터는 모든 국고나 정부 재원 지원사업에 계약서가 필수로 지참된다. 사실 계약서는 계약 관계에서 ‘을(乙)’을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방편이자 근거라는 차원에서 예술 현장에서 관행화되어야 한다. 계약서는 단순히 자신의 노동 여부를 증명하는 것은 물론이고, 고질적인 임금체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또한 예술창작을 위해 채용되고 노력과 열정을 정당하게 평가받고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이기도 하다.
예술가에게 창작 작업에 소요된 실질적인 시간을 측정하고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무형의 노력과 가치를 측정해야 하고 개별적인 각각의 소득을 파악해야 하며, 장르별, 개인별로 편차가 있는 연습시간 또한 가치를 매기기 어려운 난제들이다. 그런 차원에서 명문화되어 있는 실질적인 계약서를 토대로 정량화하고 이를 제도에 편입시켜 정당한 대가를 치른다는 차원에서, 차후 계약서가 얼마나 예술창작 현장에서 일상적으로 통용되는가라는 문제가 남아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문체부는 2020년인 올해부터 공공기관과 공적 자금이 투여되는 모든 사업에 표준계약서가 의무화되고 있다.1) 예술창작 작업에 임하는 모든 인력에 계약서가 필수로 작성되어야 하고 이를 어길 시 과태료가 부과된다. 문제는 고령의 예술가가 많이 포진되어 있는 전통예술의 경우, 고용보험 가입 연령이 65세 이하인 관계로 많은 이들이 제외될 수 있다. 가입 연령을 그 이상으로 올리는 것은 단순히 전통예술인만을 예외로 할 수 없고(고용보험 가입 연령을 전 국민 대상으로 확대해야 한다) 프랑스의 공연예술 비정규직 실업급여제도인 앵테르미탕(Intermittent)의 가입 연령이 55세 이하인 점을 감안하면 마냥 비판만 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이외에도 풀어나가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예술가인 동시에 자영업자로 구분되는 프리랜서 대부분이 ‘갑(甲)’이기에, 이들이 분담해야 하는 고용보험 가입비의 문제가 있다는 점이 대표적인 예이다.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자신이 사업을 주관하는 사업자인 관계로 자신이 고용하는 스태프들의 고용보험 사용자 부담금을 대납해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문체부와 고용노동부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특정 인원 이하의 영세 사업장에 대한 사용자 부담금을 대납해주거나 제외 규정을 마련하고 있다.
여기에서 문제는 문체부가 행정 명령을 관할하기 어려운 분야, 예를 들면 전통예술 분야에서 흔한 기업행사나 개인적인 행사의 출장 공연 같은 경우, 주최 측이 자발적으로 계약서를 작성해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불공정 계약 내용이 있다면 분쟁 해결을 고용노동부가 주관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지만, 과연 예술가들이 이를 얼마나 인지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순수예술 무대보다는 상업적 목적의 찬조출연, 반주 활동 등 역시 모두 계약 체결을 기본으로 진행해야만 불공정한 계약에서 보호될 수 있고 안전한 예술 활동2)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무용수는 나이가 들면 시장에서 찾지 않고 쉽게 잊혀지는 존재이다. 조세핀 베이커도 예외는 아니었고, 춤추고 노래하는 재주만 있었던 그녀는 화려한 예술 업적과 사회적 평판과는 별개로 가난한 최후를 맞이했다. 이 비참한 죽음과 상황에 프랑스 국민들은 애도했지만, 결국 그녀는 프랑스가 아닌 모나코에 묻히게 되었다. 그녀의 오랜 지인이었던 영화배우이자 모나코의 왕비 그레이스 켈리가 장지를 마련해준 덕분이었다. 관련 제도가 마련되지 않아 개인적 인연으로 비극적 사태를 수습한 셈이다.
예술가들의 노년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일반인들보다 더 가난하거나 쓸쓸하다. 오늘날 조세핀 베이커와 같은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프랑스 정부는 앵테르미탕 제도를 마련하였고, 이외에도 다양한 복지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예술가들을 국가라면 의당 보호해야 하는 국민으로 간주하는 동시에 그들의 창의적인 작업을 공적 자산으로 보았기에 가능한 처사이다. 그런 차원에서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꿈꾸는 한국 사회도 이제는 예술가들에 대한 인권과 복지를 필수적인 사안으로 인식하고, 또한 그들을 보호하고 육성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더욱 포괄적인 복지 정책으로 확대해야 할 것이다. 그들의 작업은 당장의 성과는 예측할 수 없지만 결국 국가의 공적 자산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