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에서 위안부라는 소재는 멀게는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에서부터 영화 <귀향>을 거쳐 <허스토리>에 이르기까지 폭력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라는 또 다른 질문을 야기시켰다. <여명의 눈동자>는 위안부 피해자가 강간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해 조선 군인과의 이성애 로맨스를 서사의 주요 요소로 다루었고 <귀향>은 이성애 로맨스 요소를 탈각한 반면 피해자의 신체성과 강간을 시각적 볼거리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았다. <귀향> 이후 만들어진 <눈길>이나 <아이 캔 스피크>, <허스토리> 등에서는 폭력의 재현 방식에 대한 보다 심도 있는 성찰은 물론 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이 폭력을 당하고 무기력하게 주저앉은 피해자가 아니라 폭력을 스스로 증언할 수 있게 된 생존자로 재조명하는 시각의 변화를 드러내고 있다.
정세연은 김학순이 위안소를 탈출해 한국에 돌아온 뒤 전쟁을 겪으며 남편과 자식들을 먼저 보낸 고통을 짧게 언급하고 90년 6월 일본정부가 ‘일본군은 위안부 문제에 관여하지 않았다’라고 발표하던 순간으로 곧장 이동한다. 뉴스를 보던 김학순은 “내가 위안부다! 내 몸뚱이가 증거다!”라고 외치며 공개 증언을 결심한다. 정세연은 김학순의 의분에 찬 목소리에 이어 그와 함께 증언한 240명의 피해 생존자를 호명하기 시작한다. 강일출, 김군자, 김순덕, 김복동, 길원옥, 심달연, 최선순, 황금주, 이옥선, 이용수……. 이름들이 불릴 때마다 코러스 출연자들이 ‘왔소’ ‘여깄소’하며 화답한다.
호명이 끝나고 나서 공연은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는 발화와 이 통한의 역사가 우리 딸들에게 되풀이되어선 안 된다는 메시지로 이어지며 ‘엄마야 누나야’를 노래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러나 김학순의 이름을 붙여 그의 생애와 발언에 대해 이야기하는 공연은 후반부 강일출부터 이용수에 이르는 운동가들의 이름들을 부르는 것으로 완성되기에 호명 이후의 장면들은 사실 에필로그나 다름없다. 정세연은 공연의 주요 대목마다 소리와 함께 의자를 사용한 퍼포먼스를 펼치는데, 공연 말미에서 그가 의자에 앉아 소녀상이 되는 모습은 작품의 의미가 시각적으로 압축된 매우 중요한 장면이다.
공연 속 에필로그가 끝나면 공연 밖 진짜 에필로그가 이어진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모색 측에서는 노란 나비 모양의 카드를 준비해 관객들로부터 위안부 활동가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받았고, 정세연은 공연을 마친 후 카드를 모아 관객들 앞에서 읽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이 공연을 올릴 데가 많지 않은 현실에 대한 아쉬움을 표하며 울먹거리기도 했는데, 그렇다면 이 공연의 노래가 널리 울려퍼질 수 있는 무대를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까. 이는 정세연 혼자만이 아니라 위안부 운동가들의 증언을 들은 우리 모두가 고민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