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적 뿌리’ 별신굿. 그 위로 피어난 ‘요즘 굿’
‘우연’은 한 사람의 삶을 전혀 다른 세계로 끌어들인다. 황민왕이 ‘전통음악’에 첫발을 디딘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한산도에서 자라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통영으로 ‘유학’ 온 그는 고교 시절 난데없이 탈춤 동아리에 들었다.
“동아리에서 모집을 하러 왔는데 아무도 가입하지 않더라고요. 어쩐지 좀 안돼 보여 들어갔는데 함께 간 친구들이 말도 안 하고 모조리 빠져서 저만 남게 됐어요. 책임감 때문에 동아리 활동을 계속 이어왔어요.”
탈춤을 배우던 소년의 눈에 들어온 것은 사물놀이였다. 사물놀이를 해야겠다는 결심으로 대학 진학을 염두에 두었다. 마땅히 배울 수 있는 곳이 없었다고 한다. “그 시절 통영에서 뭔가 할 수 있는 데는 ‘남해안 별신굿 보존회’ 뿐이었어요.” 운명적 만남의 시작이었다. “장구 치는 사람이 노래하는 걸 그때 처음 봤는데, 너무 멋있었어요.”
별신굿을 배우며, 한국예술종합학교 연희과에 입학했다. 학교에선 농악, 무속, 탈춤을 모두 섭렵했다. “돌이켜보면 무속음악이나 무속 제의가 옆에 없던 적은 없어요. 그 사이에 주로 어떤 일을 하느냐의 차이였죠.”
2016년 그의 ‘뿌리 찾기’가 시작됐다. 황민왕이 해온 중요한 작업 중 하나인 ‘이음굿 프로젝트’가 출발한 해다. 무속과 닿아있는 소재를 찾아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갔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하게 된 시기였다. “전통음악을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배운 것도 무속음악이었고, 학교를 다니면서도 주위의 인식도 그렇고, 제가 잘하고 싶은 것도 무속음악이더라고요.” 2016년 ‘컴컴한 숲의 방랑자’를 시작으로 <소대수 어른굿>(2017), <윤두리굿>(2020)으로 이음굿 프로젝트는 이어진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그는 “새로운 굿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요즘 사람들이 굿판에 가서 굿을 들으면 그것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몰라요. 말이 통하지 않으면 사라지지 않을까, 그럼 말이 통하는 굿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이러한 ‘새 굿’을 만들기 위한 동기는 ‘보존에 대한 책임감’이었다. 그 안엔 “고전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자리한다. 그는 “판소리든, 소크라테스든, 단테의 ‘신곡’이든, 그 이야기들이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좋은 작품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좋은 작품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동시대성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에요. 옛날 작품인데 동시대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과거와 오늘을 관통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는 거예요. 그런 이야기를 가져와 굿의 어법에 맞게 바꾸는 공연을 만들고자 했어요.”
전통음악의 여러 갈래 중에서도 굿에서 불리는 무가(巫歌)는 더욱이 낯설다. 한국인이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언어가 꽉 채워져 다가서려 해도 멀어지기 일쑤다. 황민왕의 ‘새 굿’은 친절하다. 굿이라는 크고 단단한 그릇 안에 ‘요즘 감성’과 ‘세계관’을 넣었다.
“제가 진행하는 국악방송 라디오 프로그램인 <노래가 좋다>(매일 오후 4시~5시 55분)에선 전통음악만 틀고 있어요. 그런데 가끔 엉뚱한 신청곡을 보내주시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그럼 그 곡을 소개하며 다른 전통음악으로 보내드려요.” 청취자의 신청곡 이미자의 <봄날은 간다>는 그의 라디오에선 ‘흥타령’으로 나온다. “아깝다 내 청춘/ 언제 다시 올거나/ 철 따라 봄은 가고/ 봄 따라 청춘 가니/ 오는 백발 어찌 할거나”라는 ‘흥타령’의 가사가 ‘봄날은 간다’와 맞닿았다.
“제가 하는 건 이런 방식이에요. 말이 어려워 지금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한다고 빼는 것이 아니라, 요즘 식으로 바꾸면 어떻게 될까 시도하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