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모작 가운데 우선 천하제일탈공작소의 <열하일기>와 공동기획공연 <동시상연2 : 얼굴 없음 No Face>에 대한 두 편의 리뷰는 박미라 님이 보내주셨다. 단편들이지만 탈춤의 리듬이 느껴지는 것 같은, 공연을 체화한 것 같은 경지마저 내비친다. 평소 탈춤이나 공연을 즐기는 태도나 감각이 배어나온다고 생각되는데, 좀 더 긴 호흡의 글을 시도해보아도 좋을 것이라 생각된다. <열하일기>에 관한 글은 세 출연자들이 만들어내는 탈춤의 여정은 물론, 생사 여부를 걸고 아홉 번 강을 건너는 에피소드의 긴박감과 그 해소의 과정이 짧지만 길게 여운을 남기는 문장들로 마무리되고 있다. 또한 천하제일탈공작소와 음악그룹 나무의 두 번째 공동기획공연의 경우, 공연의 제목 자체가 ‘얼굴 없음’의 의미, 얼굴을 가린 탈의 의미를 재차 생각해보게 하는 측면이 있는데, 그 효과는 이 글에서처럼, 공연 안에서 탈꾼들의 ‘몸’을 새롭게 발견하는 시선으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한 관점의 힘이 느껴지면서 문둥이, 꼽추, 이매의 춤을 궁금하게 하고 보고 싶게 만드는 글이었다.
‘2021 젊은국악 도시樂’에 대한 박장원 님의 글은 기획 전체를 아우르고자 하는 노력이 엿보여 반가운 글이었다. 공연들 자체에 대한 꼼꼼한 감상 기록은 물론 보는 과정에서의 소회나 현장의 모습을 다채롭게 담아내면서, 기획을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 한 점이 눈길을 끌었다. 무엇보다도 코로나19로 인해 공연이 많지 않은 상황 가운데 다른 아티스트들의 무대를 챙겨 보면서, 언제가 될지 모르는 자신의 무대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아티스트로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소중했다. 현실이 무겁기도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자신만의 모색을 해나가고 있는 박장원 님께 응원을 보낸다.
그 외에 정성스럽게 글을 보내주셨지만, 리뷰 대상이 아닌 공연에 대한 리뷰인 탓에 소개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아래에 실린 글들을 통해 ‘웹진 온’ 독자 여러분의 사려 깊고도 다양한 시선을 느껴보실 수 있으며, 글의 순서는 선정되신 분들의 성함(가나다순)과 공연 시기를 고려하여 배치한 것임을 언급해둔다.
박지원의 <열하일기>와 만난 탈춤판, 웃음과 역설의 사유는 어떻게 춤이 되었을까. 세 탈꾼의 몸을 통과한 연암은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중간함을 가로질러, 이것이면서 저것일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넘나들고, 서로 존중하며 섞이다 새 길이 되는 창조적 시공간, ‘사이’. 그 경계에 서서 탈춤의 길을 묻고 찾고 있는 듯했다.
그 여정을 가는 세 탈꾼은 서로 다른 세 꼭짓점에서 순환하고 확장된다. 더불어 어울리다 얽히고설키며 떠돈다. 뾰족이 돋보이면서 둥글게 수렴되고, 흐르다 스미고 도망친다. 어지러운 춤 사이사이 길이 열리고 있었다.
“오직 갈 뿐!”
오직 모르는 그 길을 가겠다는 춤꾼들의 거뜬한 몸짓에 새로운 힘이 솟았다. ‘일야구도하기’를 통해 삶과 죽음이 넘나드는 물의 시간, 밤을 겪었다. 애타게 뻗은 생의 의지는 매몰찬 죽음에 가닿고야 말았다. 밀도를 채워가는 죽음의 부피가 되려 살아있음을 일깨우며 출렁이고 있었다. 그 일렁임에 올려진 소리는 ‘어야디야 어기여차’ 뱃노래였다.
“날 선 인식의 감촉 휘감아 노를 저어라.
눈감고 마음 띄워라. 뱃놀이 가잔다.”
흐르는 소리와 휘젓는 장삼춤의 절묘한 하모니에 마음이 온통 일렁였다.
오직 모를 뿐, 오직 갈 뿐!
천하제일탈공작소×음악그룹 나무 공동기획
<동시상연2 : 얼굴 없음 No Face>, 6.24-25, 서울남산국악당 야외마당
'노 페이스(No Face), 얼굴 없음'의 의미가 탈과 탈꾼, 탈춤에 어떻게 담겼을까 무척 궁금했다. 무대 곁에서 흔들리고 있는 불투명하고 일그러진 탈을 보며 얼굴이란 것은 희뿌연 허상 속에 갇힌 얼빠진 꼴이란 생각을 했다. 공연 전 조원석 작가의 강의를 들으면서 저 거친 표면에 갑갑한 얼굴은 결핍에서 피어난 타자의 욕망에 갇힌 존엄한 꼴이 아닐까 생각했다.
문둥이, 꼽추, 이매는 자신을 드러내며 몸으로 이야기했다.
나는 상품이 아니라 생명이라고.
나는 언제든 대체 가능한 다량의 동일체가 아니라, 단 한 순간도 같았던 적이 없는 오롯한 생명이라고.
자신의 세계 속에서 셀 수 없는 차이를 만들어내는, 알 수 없어 아름다운 생명이라고.
영원히 모를 것 같고, 규정할 수 없어 더욱 아름다운 문둥이, 이매, 꼽추와 새롭게 만나는 신비로운 순간이었다. 묵직한 깨달음이 올려진 신명 난 춤판을 만나서 벅차고 행복했다.
지루한 이야기지만 5월, 코로나가 연주자에게 여러모로 고민스러운 시간을 주고 있었다. 나는 괜찮을까, 잘 해온 걸까, 잘 해나갈 수 있을까. 예정된 공연이 다 없던 일이 되어 멍하니 있는데 인스타그램에 서울남산국악당 공연소식이 보였다. 젊은국악 도시樂.
첫 무대는 월드뮤직밴드 도시. 마침 무대를 보고 싶은 팀이었다. 연잎에 둘러싸인 어느 한옥에서 연주한 영상에 반했었는데. 동시대를 사는 음악가들은 어떤 음악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시간이 많아진 김에 많이 보고 공부하자. 이왕이면 전 회차를 다 보는 쪽으로. 이 때 아니면 언제 많은 팀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을까 싶어 반은 소풍 가는 기분으로 나섰다. 오늘은 연주자 마롱이 아닌 관객으로. 항상 비파를 메던 어깨가 가벼워 묘했다.
날이 조금 더운 감이 있었지만 적당히 따뜻했다. 정오에 열리는 공연의 매력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충무로에 들를 때마다 조금 답답하다 생각했는데, 남산골한옥마을 정문을 지나니 공기가 달랐다. 고요하기도 하고, 여유롭기도 한. 드디어 입장 시작. 안마당에서 버스킹으로 즐기는 공연이라 독특한 천막 아래 의자들이 줄지어 있었다. 천막 사이로 내리쬐는 햇빛은 아무래도 좋으니 중앙 맨 앞자리에 앉았다.
거문고에 드럼, 기타, 생황, 대금, 그리고 보컬까지 어우러져 에너지 넘치는 시간이었다.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양손 들고 방방 뛰었을 거다. 도시의 곡 중에 <매풍>을 좋아하는데 마침 그날 공연목록에 있어 감사히 들었다. 기계한테도 더운 날씨였는지, 중간에 장비에 이상이 생겨 대기시간이 길어졌는데 대금과 생황주자님 진행이 빛을 발했다. 공연은 음악만으로 끌어가는 게 아니구나. 배워둬야지. 다음 공연은 어떤 음악을 듣게 될까, 앞으로의 기대감을 올려주는 공연이었다. 나오길 잘했다 싶은 하루.
국악듀오 두은의 무대. 생황과 해금, 피아노로 편하고 친숙한 음악을 듣는 자리였다. 오월의 중순을 넘어 푹 찌는 공기에 숨이 막혔지만, <이꽃 저꽃, 피고 지고> 이 노래가 살랑거리는 꽃향기 같아 더위를 달랬다. 꽃 사시오 꽃 사. 꽃 사시오 꽃을 사.
아마 관람했던 ‘도시樂’ 공연 중에 제일 관객이 많지 않았을까 싶은데, 사진으로는 천막 아래만 관객이 보이지만 해가 들지 않는 그늘을 따라 빼곡했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한옥마을에 방문객이 밀려들었고, 담장 너머로 들리는 신기한 소리에 공연 중에도 기웃거리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 건물 안에서 시작한 공연은 막바지로 다다르며 야외 퍼포먼스로 이어졌고, 몸을 울리는 북소리에 몰입감이 절정이었다.
FROM310. 일찍 비가 내려 취소될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공연 전에 날이 맑게 개었다. 주로 자연에서 영감 받은 작업을 한다고 소개해주셨는데, 루프스테이션과 패드를 사용해 효과를 주고, 해금이 가이드처럼 이끌며 숲을 거니는 느낌을 받은 시간이었다. 드러머님이 공연 내내 행복한 얼굴로 연주하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달음과 첼로가야금 팀은 정말 보고 싶었는데, 일이 생겨버려 놓쳤다. 모던가곡. 이 순서는 꼭 보고말리라 마음먹고 남산국악당으로 향했다. 정가를 부르는 목소리는 저렇게 청아한 거구나. 아쟁과 피리, 양금의 조화에 노래마다 공감 가는 가사가 가득했다. 춘면곡 <오후에 커피>, 권주가 <한 잔 해>, 평롱 <김모씨의 하루>. 앞으로도 다시 듣고 싶을 곡들. 모던한 지금을 사는 내게 노래 한 자락을 건네는.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최고인 팀이었다.
이렇게 오뉴월을 보내고 벌써 한여름을 달리고 있다. 다시 초여름이 돌아올 때, 이런 기획을 또 만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