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봄   山:門 PEOPLE

인터뷰 | 퉁소 연주자 김동근

윤중강
발행일2022.03.31

전봉준의 웃음’, 전갑섬의 믿음

<산조대전> 퉁소산조를 선보일 김동근
1980년 3월 15일생, 그는 국립국악고등학교를 거쳐서 한국예술학교 전통예술원에 입학했다. 이때까지 김동근은 수많은 대금전공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일찍 입대한 그는 군복무를 하면서, 뭔가 다른 삶을 늘 생각했다. 그러다가 퉁소를 알게 되었다. 복학해서도 악기에만 전념한 것이 아니라, 연극활동을 병행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를 기반으로 극단 돌곶이의 대표작 <우리나라 우투리>에서 음악감독을 맡은 사람이 김동근이다. 그는 이런 활동과 함께 서서히 ‘퉁소의 일인자’로 부각되었다.
2018년 8월, 김동근은 <박종기 연주 대금산조 진양의 분박 분석>이란 석사논문이 통과되어 있다. 박종기는 대금산조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김동근이 이 산조의 음원을 받았을 때, 의문이 들었다. 산조의 진양조는 3분박으로 알려져 있는데, 실제 이 산조를 듣고 또 들어보니 2분박이 더 많이 특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의 주장은 분명했다. 이제까지 “진양조는 삼분박”이란 등식이 존재했는데, 김동근은 이건 대금산조의 진양조를 왜곡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지도교수가 달라지고, 학위논문의 작성과 통과가 늦어졌다.
이번 <산조대전>에서 퉁소산조의 초연을 앞두고, 김동근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이번 <산조대전>에서 선보일 퉁소산조의 진양조는 2분박입니다. 2분박 진양조 들어보세요. 대금산조의 원래의 모습이 느껴지실 겁니다.”
2022년 4월 2일 서울돈화문국악당에는 김동근에 의해 <김동근류 퉁소산조>가 초연된다. 진양조·굿거리·자진모리로 이어지는 퉁소산조는 김동근에 의해서 만들어진 산조다. 앞서 얘기했듯 진양조가 2분박으로 구성된 산조다. 또한 과거에는 꽤 존재했던 장단이나, 전라도풍의 산조가 고정되면서 사라진 굿거리 장단의 퉁소가락도 만날 수 있다.
퉁소산조(퉁애산조)가 지난 세기에 단 한 번 연주된 적이 있다. 대금산조를 비롯해서 해금산조를 만든 한범수 명인 (1911~1984)에 의해서 퉁소산조가 연주되었다. 한범수명인은 악기의 훌륭한 연주가이기도 하지만, 또한 악기의 제작이기도 했다. 그는 대금과 해금을 모두 자신이 만들어 연주했다. 그가 퉁소산조를 만든 배후에는 ‘그의 성실성’과 ‘그의 음악성’이 존재하지만, 퉁소라는 악기도 만들어서 널리 보급하고 싶은 ‘악기상으로서의 기대감’도 숨길 수 없겠다.
김동근의 퉁소산조는 어떤 산조일까? ‘퉁소의, 퉁소에 의한, 퉁소를 위한 산조’임에 틀림이 없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퉁소’를 들고 무대에 오른 경험이 가장 많은 인물이 김동근이다. 그는 퉁소라는 악기의 생리와 매력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데, 그가 만든 ‘퉁소산조’에는 이런 것들이 잘 반영되었을 것이기에 기대된다.
 

<산조대전>에서 퉁소 산조를 선보일 김동근을 읽는 코드

#미소 #희생 #리더십 #화합 #건강한 삶
 
#미소 | 녹두장군이 웃는다면?
20년쯤 전, 퉁소연주가 김동근을 처음 보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의 ‘대금전공’이었다. 당시 대금은 잘 부는 사람이 많았음에도, 김동근을 뚜렷하게 기억한다. 그에게서 ‘전봉준의 웃음’이 보였기에 그렇다.
20년 전이나,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예나 이제나, 김동근은 ‘시대 불문’에 ‘나이 불문’의 모습이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그였기에, 대학생 특유의 파릇파릇함이라곤 일절 없었다. 어쩌면 그때가 더 늙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마치 예전 사람이 환생한 것 같은 모습으로 강의실에 앉아있었다.
어느 날, 김동근이 활짝 웃었다. 왜 웃었는지는 모른다. ‘전봉준의 웃음’이었다. 난 오래전부터 전봉준의 웃음이 궁금했다. 김동근이 어느 순간 그런 웃음, 그런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희생 | 공연 중 멘트요?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에요
<풍류대장>에 출연한 그룹 고래야의 리더 김동근를 떠올렸다. 풍류대장>에 나온 김동근은, 내 눈엔 불편해 보였다. 십여 년 전 같은 팀으로 시작했던 멤버가 다른 팀으로 참여를 했다. 실제 그들은 가끔 전화도 하는 사이. ‘미운 정 고운 정’을 넘어서서 이제 각자의 음악으로 승화되었는데, 서로 격려해주는 사이가 되었다. 그런데 방송녹화에서 만나게 되니, 방송 종사자들은 그걸 놓치지 않고, 뭔가 갈등이 아직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교차 편집을 했다. 방송이란 속성이 그렇듯이, 이 프로그램에서 ‘고래야’는 적당히 부각 되었고, 또 적당할 때 안녕을 고했다.
내가 오버해서, 김동근을 본 것일까? 내 앞에 있는 김동근에게서 ‘전봉준의 웃음’은 보이지 않았다. ‘고래야 리더’인 ‘김동근의 걱정’이 보였다. 내가 불쑥 그에게 말을 던졌다. “고래야 콘서트 본 지 오래됐네. 요즘도 콘서트에서 멘트를 하시나? 그거 별로야. 김동근 씨는 퉁소를 불 때, 대금을 불 때, 제일 멋진 것 같아. 멘트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김동근은 말했다. “하고 싶어서 하는 건 아니에요”
 
#리더십 | 고래야의 김동근
김동근을 자세히 알면 알수록, 그에게 어울리는 말이 자인타관(自吝他寬)이 아닌가 싶다. 자신에게는 인색하고 남에게 관대한 것이 몸에 밴 사람이다. 고래야 리더로서의 김동근은 거기서 ‘하고 싶어서 하고’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것보다’, 때론 희생양이 되어서 자신보다는 ‘고래야’를 위했던 거다. 팀을 오래 끌어온 사람으로서의 연륜이 그의 얼굴에 새겨져 있었다. ‘김동근은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늘상 저런 모습이었지.’
2012년 8월, TOP 밴드(시즌2)에서 고래야는 참 대단했다. 대한민국 일반인들이 ‘국악 퓨전밴드’라는 명칭을 알게 된 건, 전적으로 ‘고래야’를 통해서였다. 그들이 있었기에 <조선판스타>나 <풍류대장> 같은 국악크로스오버 오디션 프로그램이 가능했는지 모른다.
2011년 12월 고래야는 싱글 앨범 <물속으로>를 냈다. 김동근(대금·퉁소)을 비롯해서, 권아신(보컬), 정하리(거문고), 김초롱(국악타악), 옴브레(기타), 경이(퍼커션)가 6인조 밴드로 출발했다. 이런 음악을 ‘코리안 포크(Korean Folklore)’라고도 했다. <물속으로>를 내놓았을 때, 이들의 감격스런 얼굴을 상상해본다. ‘전봉준의 웃음’ 이상의 웃음을 띠면서, 깔깔거리면서 좋아했을 고래야 멤버들을 상상해본다.
 
#화합 | ‘떼바람소리얘기도 들어가는 거죠
“‘떼바람소리’ 얘기도 들어가는 거죠? 꼭 잘 써주세요.” 김동근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떼바람소리는 김동근(퉁소), 최민(퉁소), 윤석만(대금), 이아람(대금), 김철진(대금), 이명훈(대금, 소금) 6명의 연주자가 의기투합해 결성했다. 대금, 소금, 퉁소, 단소 등 대나무로 만들어진 전통 관악기가 각각의 특성을 드러내면서, 함께 화합하는 음악을 지향한다. 이들의 대표 레퍼토리가 ‘봉덕이 찾기’(2016). 사라져 가는 퉁소를 재조명했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건강한 삶 | 전갑섬의 남자
“양촌전촌에 전갑섬이 해안전촌에 말이났소/나는 좋아요 나는 좋아 해안퉁소가 나는 좋소/에헤야 에헤야 에헤야 에헤야” 함경도 민요 <전갑섬 타령>이다. 퉁소와 함께 부르는 노래다.
양천에 사는 전갑섬이란 처녀가 있었다. 나이가 들어 여기저기 혼처가 들어오는데 싫다고 마다한다. 그러다가 함경남도 해안에 사는 퉁소쟁이가 오는데, 금새 ‘나는 좋아, 해안 퉁소가 나는 종소’라면서 시집가겠다고 말한다(프로이트에 의하면 길고 기다랗게 생긴 것은 ‘남성’을 상징한다. 한국의 악기 중 강인한 남성성과 연관되는 대표적인 악기는 퉁소이다). 물난리가 나는 해안지방에 사는 이 남자는 생활력이 강할 뿐만 아니라, 풍류(퉁소)를 아는 남자다. 개미적 속성과 베짱이적 속성이 있는 남자가 남편으로서 가장 안성맞춤이라는 것이 전갑선의 생각이었다. 요즘 말로 하면 ‘워라밸’이다.
김동근은 일찍이 ‘투잡’의 사나이였다. 아침 일찍부터 오후 한 시까지 ‘떡집 아저씨’가 된다. 어머니와 형이 하는 떡집에서 신나게 일한다. 떡집 아재와 퉁소 장인을 오가는 김동근이야말로 가장 모범적인 ‘워라밸’ 아티스트가 아닐까? 이런 남자의 퉁소산조는 어떨까?
 
윤중강
평론가이자 연출가이다. 30여 년 넘게 현장을 지키며 15권 이상의 국악 평론집과 서적을 발간했다. 만요컴퍼니 예술감독으로도 활동하며 전통예술과 오늘의 접점 찾기를 늘 고민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