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봄   山:門 PEOPLE

인터뷰 | 거문고 연주자 김준영

허윤희
발행일2022.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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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돈화문국악당 시민국악강좌 프로그램 디렉터를 맡은 거문고 연주자 김준영

 
 

전통은 무엇이며 오늘날 어떤 의미를 갖는가. 거문고 연주자 김준영은 끊임없이 이런 질문을 던져온 음악인이다.
그가 귀 기울이는 건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지금의 이야기. 시인 김수영의 시에서 같은 고민을 발견해 음악으로 발전시키고,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시인 T.S.엘리엇의 <황무지>와 거문고를 연결한 것도 시대에 대한 고민과 날 선 비판을 거문고 여섯 줄에 담아내려는 시도로 읽힌다.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단원이자 거인아트랩 대표로 활동하며 연주와 작곡·편곡을 병행하고, 국립발레단의 <허난설헌-수월경화> 음악감독을 맡는 등 타 장르와의 협업도 거침없이 진행 중이다.

 

김수영의 시 <거대한 뿌리>를 모티브로 전통의 의미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연주자로서 늘 던지던 질문인데 김수영의 시에서 같은 질문을 발견했다. 전통에 대한 시인의 자각을 읽으면서 묘한 동질감과 부러움을 동시에 느꼈다. 시인의 강렬한 언어를 거문고의 언어로 옮기고 싶었다. 전통이라는 게 거창한 게 아니라 우리 생활의 아주 소소한 부분과 맞닿아있다는 얘기를 전달하고 싶었다.”

 
문학 작품을 모티브로 음악을 만드는 작업을 많이 해왔다. 2016년 선보인 <시음악T.S. Eliot의 황무지>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얘기하고 싶은 것이 많았다. 엘리엇의 <황무지> 첫 구절을 읽고 바로 느낌이 왔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당시 한국 사회를 연상케 하지 않나.”

 
세월호 참사를 담은 독주곡 <수장>에는 애국가 선율도 나온다.
“국가란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라는 생각을 하며 넣었다. 술대를 쓰지 않고 양손을 쓰는 곡이다. 오른손은 바쁘게 현을 퉁기고, 왼손은 가곡 <태평가>의 선율을 여유 있게 연주한다. 혼란스러운 사회가 아래에서 들끓고 있는데, 그 위에서 태평하게 흘러가는 현실, 혹은 내가 몸담고 있는 국악계의 무관심을 비판하고자 했다.”
 
 

사회를 향해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것 같다.

“‘국악의 대중화’라는 화두를 흔히 얘기하는데 사회와 동떨어진 채 무슨 대중화를 할 수 있을까.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대중을 상정해놓고 대중화를 말할 게 아니라, 우리가 살고있는 지금 이 사회를 말하고 소통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말로제() 김준영류 거문고 반조도 만들었다.
“재즈 보컬리스트 말로의 스캣(가사 없이 즉흥적으로 노래하는 것)을 산조에 녹여 넣었다. 산조는 원래 대중음악이고 결코 무거운 음악이 아니라는 걸 주장하고 싶었달까. 산조의 계면조 스케일과 블루스 스케일이 겹치는 음이 많으니 시도해봤다. 산조 대신 반조(扳調)라고 이름 붙인 건 ‘끌어당길 반(扳)’자를 써서 지금 이 시대의 음악인 블루스를 끌어와 산조를 만들었다는 뜻이다. 가야금·해금 등도 다른 대중음악을 끌어와서 반조가 하나의 장르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고.”
 

국립국악고등학교와 서울대에서 거문고를 전공한 그는 전문연주자로서 경력을 성실하게 쌓아왔다. <김준영 거문고 풍류 가즌회상>이나 <김준영 거문고 산조>(한갑득류) 등 전통음악 중심의 음반뿐 아니라 작곡가 이성천의 거문고 독주곡을 담은 <큰 나무의 이야기>, 자신의 거문고 창작곡을 담은 <잇다> 등의 음반들을 선보였다. 전국국악경연대회 대상(2004), KBS국악대상 현악 연주상(2016), 문화체육관광부 오늘의 젊은예술가상(2018) 등 수상 이력도 화려하다.

서른넷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 입학해 연출을 공부한 경험도 있다. 그는 “음악극을 좀 더 체계적으로 만들어보고 싶어서 도전했는데, 공연 연출뿐 아니라 무대를 대하는 기본자세까지 배우게 됐다”며 “악보에 적힌 악상기호만 완벽하게 연습할 게 아니라 왜 이 부분에서 이 기호가 나왔는지, 작곡가가 뭘 말하려고 하는지, 고민하고, 무대를 통해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보여줄지 깊이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입담이 좋아 ‘강의 잘하는 연주자’로도 소문났다. 김준영이 프로그램 디렉터로 참여하는 서울돈화문국악당 시민국악강좌 중 <악기는 내 친구>는 4월 30일부터 이틀간 4차례에 걸쳐 열린다. 국악기의 연주법, 역사와 장르를 실제 연주와 함께 들려주는 일종의 렉처콘서트다. 그는 “추임새는 언제 넣는지, 왜 가야금은 ‘뜯는다’고 하고 거문고는 ‘탄다’고 하는지, 국악의 역사와 함께 악기에 관한 세세한 이야기들을 전문 연주자로서 재밌게 풀어낼 예정”이라고 한다.

 
허윤희
조선일보 기자. 문화부에서 문화재와 국악, 공연, 미술을 두루 담당했고 지금은 주말뉴스부에서 호흡이 긴 인터뷰와 기획 기사를 쓰고 있다. 오래된 이야기를 낡지 않게 쓰려고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