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0일, 국내 첫 코로나19 감염자 발생 후 공연장과 예술단체들은 공연 여부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내한을 앞둔 해외 예술단체들도 갑작스러운 취소 소식을 전하며 이 사태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 문제라는 것을 암시했다. 언론은 올해 주목해야 할 공연 소식보다 취소 소식을 앞다투어 전했다. 공연장과 예술단체들은 진행될 공연 대부분을 ‘취소’와 ‘연기’로 내걸었다.
정부가 감염병 위기 단계를 ‘심각’으로 격상한 2월 23일을 기점으로 사회의 양상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학교의 입학·졸업식과 수업이 온라인으로 대체되는가 하면, 회사에서는 재택근무와 화상회의가 이어졌다.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의 일환이었다.
사태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공연계는 얼어붙기 시작했다. 남산골한옥마을과 남산국악당은 2월 25일부터 별도 공지 시까지 임시 휴관에 들어갔다. 대문은 굳게 잠겼다. 문에 붙은 ‘立春大吉(입춘대길)’ 종이가 무색하게 느껴졌다.
공연장과 예술단체들은 이 사태를 헤쳐나가기 위한 쇄빙선을 온라인 공간으로 띄었다. 이른바 ‘무관중 생중계’였다. 전례 없는 공연 방식이었다. 공영방송이나 국악방송(FM99.1)을 통해 중계되던 국악은 무관중 생중계를 통해 관객과 만나기 시작했다. 남산골한옥마을과 서울시에 동거하는 서울돈화문국악당은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시리즈(2월 29일)를 온라인으로 생중계하며 국악계에 첫 쇄빙선을 띄웠다. 난민이 된 예술가들은 온라인 속 세상을 망명지로 택했다. 남산국악당을 비롯한 공연장들은 자체 온라인 플랫폼을 재정비했다.
남산국악당이 위치한 남산골한옥마을은 ‘공연’ 뿐 아니라 ‘공간’ 자체도 콘텐츠인 시공간이다. 하지만 대문은 굳게 잠겼다. 4월의 기획공연으로 관람객의 존재와 수요를 확인한 남산골한옥마을은 ‘남산골 전통체험–감각놀이터(Sensory Playground)’를 ‘온-라인 남산골전통체험’으로 전환하기도 했다.
노력이 묻어나긴 했지만 초기의 콘텐츠들은 완성도가 그리 높지 않았다. 공연 현장과 공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입체성과 촉각성이 송출의 최종 지점인 평면화된 화면에 모두 담길 순 없었다. 다만 현대인들이 영상 언어에 익숙하다는 ‘현재’, 문화·예술의 향유를 온라인으로 시도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으로 진행됐다. 무엇보다 대문은 굳게 닫혔지만 온라인의 남산골한옥마을과 남산국악당은 언제든지 열려있음을 표방함으로써 ‘잃어버린 관객’들이 온라인에 정주하게 하는 기능이 더 컸다.
6월 2일부터 발행한 남산골한옥마을의 ‘WIBZINE: 온’도 그 일환이었다. 격월간 소식지로 남산골한옥마을의 주요 행사와 공연 소식을 담아 전했다. 코로나 시대에 문화와 예술이, 한국의 전통예술이 나아갈 길을 담론화했고, 사태가 진정되면 다시 펼쳐질 판에 관한 소식을 전했다.
안정적인 자본으로 운영되는 국립·시립기관은 온라인 콘텐츠로 전화하며 쇄빙선을 움직일 수 있었다. 하지만 민간의 수많은 예술단체는 길을 잃었다. 영상 테크놀로지라는 쇄빙선을 움직이게 하는 데에는 많은 자본과 기술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영상 업체들은 뜻 아닌 호황을 누리게 되었고, 쇄빙선에 오르지 못한 민간단체들은 막막해했다.
기획과 초청으로 공연장 살림을 꾸리던 국립·시립 공연장들은 운영 자금을 풀어 민간단체들과 협업을 도모했다. ‘쇄빙선’이 일종의 ‘구조선’이 된 셈이다. 하지만 이에 오르지 못한 단체와 선주(船主)의 갈등은 심해졌다.
이러한 가운데 서울시가 두 달 가까이 휴관한 문화시설 66곳을 6월 22일부터 다시 연다고 밝혔다. 남산국악당을 비롯하여 공연장들은 이른바 ‘객석 띄워 앉기’를 적용하는 조건으로 문을 열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의 위협은 곳곳에서 속출했다.
해마다 청년 예술가들을 선발해온 남산국악당의 ‘젊은국악 단장’ 시리즈도 온라인을 통해 접할 수밖에 없었다. 탈춤을 응용한 이동빈의 <언박싱>(7월 11일), 판소리를 기반으로 한 <부동산>(18일), 가야금 연주자 박선주의 <NEW MUSIC>(8월 1일)을 네이버TV 서울남산국악당 채널에서 실황으로 생중계됐다. 비대면 공연을 처음 실시한 4월의 기획공연에 비해 카메라 구도와 무대의 호흡을 담아내는 기법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처음에는 ‘손으로 들어온 공연장’이 신기하여 공연을 보던 사람들(관객)도 자기만의 기준을 갖고 영상물들을 접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영상 업체의 기술력도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다. 촬영 파트너의 선정과 기술력도 무대 연출력만큼 중요한 시간이 되었다.
9월 10일에 시작한 ‘남산골 국악마실 한양나들이’가 11월까지 이어졌다. 시작됐다. 서울시국악활성화사업의 일환으로 남산골한옥마을 일대에서 전통공연예술을 만나는 프로그램이다. 한옥마을 내 전통가옥마당, 피금정, 천년타임캡슐, 망북루, 천우각을 배경으로, 연희집단 The광대가 고성오광대, 버나놀이, 봉산탈춤, 줄타기, 판굿 등의 전통연희를 선보였다. 코로나와 거리 두기로 인해 사전예약제를 통해 매회 20명의 한정된 인원만 관람이 가능했다. 문진표 작성과 마스크 착용은 필수 절차였다.
입장 전 발열 체크와 문진표 작성을 통해 익명의 관객들이 기록·관리되고, 거리 두기를 객석에 적용하면서 한옥마을과 국악당이 조금씩 활기를 되찾았다. ‘슬기로운 집콕 생활’ 속에서도 문화 갈증을 느낀 시민들이 밤 10시까지 개장하는 남산골야시장(10월 17-31일)을 찾기도 했다. 야시장의 개장과 함께 일종의 한옥음악회인 ‘춘영 콘서트’ 시리즈를 9월과 10월에 이어졌다. 한옥마을 내에 자리 잡은 김춘영 가옥의 야외마당을 공연장화한 한옥 콘서트였다. 그동안 남산국악당의 공연기획팀은 한옥마을 내에 숨겨진 명소인 한옥 콘서트장으로 변화시키는 연출력과 노하우를 쌓아왔다. 코로나가 비말 속의 유령을 통해 전승되기에, 지붕을 공연장 격인 김영춘 가옥은 정취 외 안전성의 느낌을 주기도 했다.
김춘영 가옥에서 진행된 ‘춘영콘서트’의 일부는 유튜브와 네이버TV를 통해 녹화 중계되기도 했다. 현장의 ‘일회성’이 아우라였던 공연예술은 온라인 공간에서 ‘영원성’을 획득하게 됐다. 대신 코로나 사태가 진행되면서 그 현장으로의 접근에는 여러 ‘한계’와 ‘절차’가 필수가 됐다. 한정된 수의 관객들만 수용하고, 코로나 유행의 부침(浮沈)에 따라 코앞에서의 ‘공연 취소’는 그리 화날 일이 아니게 된 것이다. 매년 국악계 루키의 새 얼굴을 만날 수 있는 ‘젊은국악 단장’의 쇼케이스(11월 21일)도 이러한 상황 속에서 진행되었다. 세 주인공 박현미(한국춤), 박현지(연희·연극), 백다솜(대금)은 2020년의 이러한 상황을 잊지 못할 것이다.
무엇보다 ‘온라인 공연’의 활성화와 더불어 기존 공연은 ‘오프라인 공연’이라는 호칭을 갖게 됐다. 관객은 물론 공연과 콘텐츠의 기획도 온라인/오프라인의 여정을 동시에 챙기는 시대가 됐다.
관객의 표현도 달라졌다. 오프라인 공연에서 그들의 표현은 박수와 환호성이라는 추상의 언어였다. 하지만 녹화중계와 생중계에 달리는 댓글들은 무엇이 좋고 나쁜지 구체적인 언어로 되어 있다. 특히 생중계라면 사후적으로 진행될 비평과 평론 행위가 공연과 동시에 진행된다. 그런 점에서 ‘댓글의 비평’도 이제 적극적으로 살펴보고, 차후 기획에 반영해야 하는 중요한 변수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