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돈화문국악당 음악극축제(5.7~29)
1922년 방정환 선생은 새싹처럼 푸르른 아이들이 순수하고 맑게 성장하라고 새싹이 돋아나는 5월에 어린이날을 만들었다. 올해는 그로부터 꼭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서울돈화문국악당은 그동안 공동기획 사업으로 운영해오던 ‘음악극축제’를 올해는 자체 기획공연으로 프로그램을 강화하여 4편의 작품을 선보였다. 자연음향에 가까운 소리를 추구하는 서울돈화문국악당답게 네 편의 작품 모두 국악기를 비롯한 라이브 연주와 노래가 곁들여진 작품들로 구성되었다.
극단 동화의 <나무의 아이>(5.7~8)는 전통 설화 ‘목도령과 대홍수’를 각색하였고, 판소리공장 바닥소리의 <제비씨의 크리스마스>(5.14~15)는 흥보가 중 ‘제비노정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였다. 광대생각의 <만보와 별별머리>(5.21~22)는 탈춤을 근간으로 우화적인 아동극을 창작하였으며, 마지막 작품 타루의 <말하는 원숭이>(5.28~29)는 옛이야기를 판소리 형식으로 풀어냈다. 네 작품 모두 전통연희를 근간으로 하면서도 지금의 아이들이 즐길 수 있도록 친근하게 전통음악을 결합하였다. 내용적으로도 지금 어린 관객들이 정서적으로 교감할 수 있도록 현대적으로 각색하였다.
필자는 음악극 축제 네 작품 중 <제비씨의 크리스마스>와 <만보와 별별머리>를 관람하였다.
<제비씨의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은 착한 흥보 가족에게 금은보화가 잔뜩 든 박씨를 물어다 준 은혜 갚은 제비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흥보가'의 내용대로 구렁이의 공격으로 제비집에서 떨어져 다리를 다친 제비는 흥보의 지극정성 간호로 다리가 낫게 된다. 하늘을 나는데 두려움이 생긴 제비는 상처가 나은 이후로도 날지를 못한다. 이 지점부터 <제비씨의 크리스마스>의 창의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작품은 바람처럼 쌩쌩 날아야 하는 제비들 사이에서 날지 못하는 막내 제비 반비를 통해 다름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결국 제비 가족은 호박잎에 반비를 싣고 제비 왕국으로 돌아간다. 그곳에서 각 나라에 다녀온 제비 친구들을 만나게 되는데 각 나라에서 돌아온 담당 제비들은 날지 못하고, 그들과 상극인 까마귀 말을 하는 한국에서 온 막내 제비 반비를 구박하고 놀린다. 시간이 흘러 다시 각 나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고 제비대왕은 반비에게 흥보의 은혜를 갚을 박씨를 가져다주라고 명한다. 날기가 두려운 반비는 걸어서 흥보에게 가기로 한다.
날지 못하는 반비는 날아갔더라면 보지도 만나지도 못했을 친구들을 여행길에서 만난다. 연인 견우를 만나지 못해 슬퍼하는 직녀 언니를 만나서는 까마귀들의 도움으로 견우에게 갈 다리를 놓아주고, 움직이지 않으려는 소와 소를 모는 피리 부는 사람을 만나 소가 안가려고 하는 이유를 알려줘 잃어버린 피리를 찾아준다. 이름 없는 누에고치를 만나 이름을 지어주고, 추위에 떠는 어린 양을 위해 누에에게 비단옷을 만들어주게 한다. 반비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면서 선의를 베푸는데 가만 보면 그것이 반비의 직접적인 도움이 아니다. 직녀에게 까마귀의 도움을, 양에게는 누에의 도움을 이끌어낸 것처럼 반비는 상대방의 도움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한다. 각 동물의 장점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지혜롭게 연결시켜 문제를 해결한다. 반비는 날지는 못했지만 다른 동물들에게 편견 없이 다가가고 그러한 태도로 다른 동물의 언어를 배워 그들을 친구로 만들 수 있었다.
반비를 놀렸던 제비 친구들이 구렁이에게 잡히는 위험에 빠지자 그들을 돕기 위해 두려움을 이겨내고 극복하고 비행에 성공한다. 흥보에게 가는 과정에서 선의를 쌓은 반비는 용기와 지혜를 인정받아 산타 제비가 된다. 막내 제비 반비의 이름은 '반드시 반, 날 비' 그래서 '반비'이다. 제비는 일반적으로 잘 나는 것을 본성으로 한다. 반비는 특정 경험으로 날아야 하는 본성을 잃게 된다.
하지만 그에게는 다른 제비들이 갖지 못한 능력, 타인에 대한 관심과 배려 그리고 소통 능력으로 날지 않고도 훌륭한 여정을 완성한다. 흥보의 '제비노정기'에서 모티브를 취하여 다리가 부러진 제비를 주인공으로 한 <제비씨의 크리스마스>는 반비를 통해 다름의 가치에 대해 역설한다. 날지 못해도 얻을 수 있는 것, 자신만이 가진 능력을 찾게 되면 훌륭한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교훈을 전한다.
작품에서는 음악이 굉장히 적극적으로 사용된다. "걸어가다 날아가고, 날아가다 걸어간다"라고 시작하는 노래는 반비의 캐릭터를 함축적으로 담아낸 가사에 후크성이 강한 멜로디로 여러 번 반복되며 반비의 여정의 동무가 되어준다. 장구와 피리 등 국악기와 건반 등 현대악기로 구성된 음악은 전통음악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현대적인 멜로디가 친숙하게 다가온다. 간간이 전통 판소리 자락을 적절히 배치하여 아이들에게 낯설 수 있는 판소리를 극적 상황 속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했다.
아이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한 장면들도 눈에 띄었다. 나는 데 공포감을 느끼는 반비가 구렁이의 위험에 빠진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날아야 하는 장면에서 미리 연습시킨 율동을 아이들과 함께하며 반비가 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등 아이들이 극에 더 긴밀하게 참여한다는 느낌을 받게 했다.
극단 광대생각의 <만보와 별별머리>는 탈춤을 기반으로 한 창작 음악극이다. 태어날 때부터 머리가 없이 태어난 만보는 자신의 머리를 찾기 위해 떠난 길에서 신발장수를 만난다. 뭐든지 다 판다는 신발장수는 만보의 머리를 찾기 위해 함께 길을 나서는데, 제일 먼저 원숭이와 사슴 머리를 만난다.
서로가 자신의 다리라고 다투다가 사슴이 만보를 차지하지만 날렵한 사슴과 묵직한 만보의 다리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이후 작은 새 역시 만보의 다리를 얻지만 너무 무거워 날지 못한다. 다음으로 만보는 깊게 뿌리 내린 나무의 다리가 되는데 땅속에 뿌리박혀 지내는 것이 답답해 박차고 나온다. 그러다 악귀의 다리가 되기도 하지만, 결국 자신과 딱 들어맞은 사자머리를 만나 잡귀를 물리치고 사자춤을 춘다.
이야기는 만보와 신발장수가 만보의 머리를 찾기 위한 여정으로 기존의 전통연희처럼 분절된 이야기들로 이루어졌다. 신발장수의 재담과 머리를 찾는다는 만보의 이야기가 공통적으로 이어지면 각각의 에피소드가 전개된다. 자기에게 어울리는 머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어린 관객들에게 플라톤의 <향연>에서 자신의 운명적 반쪽을 찾아가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질지, 아니면 자신에게 어울리는 직업이나 친구를 찾는 은유로 받아들여질지 궁금하다. 어떠한 방식으로 받아들여지든 작품은 우리가 삶에서 마주하게 될 중요한 선택에 대해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진다.
각 에피소드의 서사가 특별하기보다는 그것을 커다란 탈 등을 비롯한 다양한 인형들로 풀어내는 방식이나, 신발장수가 중간자 역할을 하며 관객들과 인터렉티브하게 소통하는 연희성이 강조된 작품이다. 사슴과 원숭이의 다툼 장면에서는 커다란 머리 탈을 이용하고, 악귀가 등장할 때는 큰 머리에 검은 천으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가오나시를 연상시키는 악귀를 만들어낸다. 만보는 노란 숱이 많은 의상으로 하체만 있는 존재로 표현하였고 역동적이고 묵직한 움직임은 만보의 머리를 상상하게 했다. 신발장수는 잇속을 밝히는 인물로 작품에서는 극의 분위기를 이끄는 코믹릴리프로 역할한다. 관중들에게 신발을 팔기 위해 즉흥극을 벌이고, 만보의 머리를 찾기 위해 객석을 누비는 등 관중들이 마음을 열고 극에 동참하게 만드는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한다. 신발장수의 재담과 능청맞은 연기로 관객들은 좀 더 친근하게 극에 몰입할 수 있었다.
장구, 피리, 징, 거문고, 북, 해금 등 국악기를 기반으로 한 음악은 전통적인 선율과 멜로디로 우리 음악의 흥겨움을 전해주었다. 극적 상황에서는 긴장감과 재미를 더할 수 있도록 적절한 음향을 제공해 극을 이끌어갔다. 국악기가 만들어내는 다양한 소리들은 익숙하면서도 극적인 드라마를 효과적으로 진행시켰다. 어린 관객들에게는 낯선 국악기를 직접 선보이고 연주하는 것만으로도 아동 관객의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마지막 사자머리와 만보가 어우러져 신명나게 즐기는 사자춤은 극의 하이라이트였다. 극의 마무리에 전통연희의 한 장면을 제대로 즐길 수 있게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