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겨울

리뷰 | 서울돈화문국악당 [월드뮤직그룹 공명 ‘길, Tea, Pleasure’]

박종현
사진제공서울돈화문국악당
발행일2023.11.30

선한 의도와 공연,
그 고민의 틈 사이

서울돈화문국악당 [공연장상주단체육성지원사업 선정 프로젝트] 11월 11일
 
선(善)한 공연이었다. 공연장상주단체 육성지원사업 선정 프로젝트(서울문화재단)를 통해 서울돈화문국악당과 베테랑 앙상블 월드뮤직그룹 공명이 서로 짝을 맺었다. 공공선의 측면에서 화두가 된 지 오래인 ‘환경’이라는 테마를 중심으로 하여 두 주체가 함께 기획한 공연을 시민들에게 무료로 선보였다. 자연 속에서 만들어진, 혹은 자연보호라는 주제와 연관되어 창작한 공명의 기존 발표곡들이 연주되었고, 그에 대한 설명이 멤버들과 사회자(정은혜)에 의해 친절히 곁들여졌다. 중간마다 관련 문제를 오래 고민해온 김은희(시민환경연구소 부소장)와 최지원(기후변화센터 팀장)이 무대에 올라 때로는 음악가들과, 때로는 시민들과 함께 일상 속 환경친화적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회자의 말대로 ‘심각한 주제지만 무겁지 않게’ 풀어보려는 기획적 노력이 순서에서도, 음악에서도 내내 엿보였다. 꽤 많았던 어린이 관객들조차도 어렵지 않게 내용과 흐름을 이해하고 즐기며 이 공연이 주려던 교훈도 얻어갔을 것이라 생각된다. 첫 문장을 반복하자면, 그러한 의미에서 <길, Tea, Pleasure>은 선한 공(共)연이었다.
월드뮤직그룹 공명

‘선함을 표방한 공연하지만 아쉬움은

선함은 좋음이다. 예를 들면 착한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고 한다. 그러나 예술 연행에 있어 ‘선한 공연’이 곧 ‘좋은 공연’이라 할 수 있을까? 소재와 관객의 고려는 좋은 연행의 요소가 될 수 있겠지만, 공연에 올라오는 예술적 작업과 그 형식들이 그와 연계된 의도에 조응하거나, 그 의도를 극대화시켜 중심 테마로 뭉쳐질 때 연행 혹은 행사의 ‘좋음’이 완성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적어도 평자에게는, 행사의 기본이자 중심인 공명의 연주 행위 및 음악을 통하여서는 이 공연의 ‘좋음’이 설득되지 않았다. 이십 년 넘게 고민 속에서 음악적 미학을 선보인 팀으로서의 공명의 행보와 음악을 알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였다.
첫 곡인 <바위손>에서부터 <구상나무> <천여화> <길 위에서 별을 만지다> 그리고 <워커바웃>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지난 2015년에 나온 <고원> 앨범의 수록곡들이 연주되었다. 대부분 평창 동계올림픽과 관련된 환경 이슈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음반이기에 적절한 선곡이라 할 수도 있겠다. <처음바람>과 같은 곡을 비롯한 몇몇 곡들에서는 PVC 파이프로 만든 관악기, 병뚜껑을 가지고 만든 셰이커, 코팅이 벗겨진 밥통 타악기, 버려진 전선을 휘둘러 만든 사운드 등이 활용되었다.
월드뮤직그룹 공명 <길, Tea, Pleasure> ⓒ서울돈화문국악당
월드뮤직그룹 공명 <길, Tea, Pleasure> ⓒ서울돈화문국악당
월드뮤직그룹 공명 <길, Tea, Pleasure> ⓒ서울돈화문국악당
하지만 평자의 입장에서는 공연이 진행될수록, 기획과 음악의 주체가 말하는 ‘환경’이 무엇이고 어떤 물음을 음악과 말을 통해 던지려는지 모호하고 광범위하게 들렸다. 남는 것은 거대하면서도 확실하게 잡히지 않는 추상적인 계몽의 메시지였다. 실험적이라 여겨지는 악기들의 적극적인 사용과 그에 대한 언설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앰비언스가 포함된 에스닉 팝, 아이리쉬 풍의 사운드로 ‘잘 마감되어 듣기 좋은’ 음악의 향연을 들을수록, ‘콘서트’임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로부터 음악이 ‘겉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좋은 주제. 하지만 구체성은 미흡

테마의 구체성, 그리고 테마에 맞는 음악적 시도의 구체성에 대한 고민 둘 모두에서 아쉬움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예컨대, 기획 의도 그리고 활동가들의 언설에서 나오는 플라스틱, 에너지 남용 등의 환경 문제를 인식하고 개선하려는 태도에 대한 논의와, 음악 자체를 비롯하여 작곡에 대한 코멘터리 및 음악 사이사이의 영상, 나아가 차를 함께 마시는 행사의 일부 꼭지들에서 표현·강조된 ‘자연 곁의 삶’ ‘자연 속의 인생’ ‘자연에서 길어온 음악’이라는 낭만적 태도는 사실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인데도 계속 같은 주제인 것처럼 병치되어, 아쉽게도 설득력이 부족했다.
전자와 관련되어 언급되는 ‘환경 문제’들의 범위 자체도, 이 콘서트를 하나의 작품으로 본다는 ‘공연 예술’의 측면에서는 넓고 산만하다. 보다 단단한 구심점이 필요한 연극, 영화, 소리극과 같은 장르는 아니더라도 에너지 남용과, 온난화와, 해양 플라스틱과, 식물의 멸종과, 올림픽과, 고원과, 그 별빛의 아름다움을 한꺼번에 내러티브적 설득 장치 없이 이야기한다면 ‘하나의 연행’으로서 미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구체적인 것들을 전달할 수 있을까?
월드뮤직그룹 공명 <길, Tea, Pleasure> ⓒ서울돈화문국악당
월드뮤직그룹 공명 <길, Tea, Pleasure> ⓒ서울돈화문국악당
월드뮤직그룹 공명 <길, Tea, Pleasure> ⓒ서울돈화문국악당
월드뮤직그룹 공명 <길, Tea, Pleasure> ⓒ서울돈화문국악당

그래도,
우리 사회를 위한 관심과 응원은 필요하다

앨범 <고원>에 깃들어있는 이슈를 직접적으로 꺼내어 서사가 있는, 여전히 유효한 평창의 문제를 다루는 토크-콘서트의 형태로 재연하거나, 아니면 기획 의도에 적힌 ‘플라스틱’과 같은 특정한 이슈를 잡고 그에 맞는 곡을 위촉·작곡·편곡·연주하거나 하면서 문제를 풀어내는 ‘덜 낭만적이고’ ‘더 구심점 있는’ 주제 풀이의 방식으로 시민을 위한 행사가 준비된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더하여, 꼭 서울돈화문국악당과 공명이 좁은 의미의 ‘국악’에 갇힐 필요는 전혀 없다고는 생각하지만, 비애호가와 어린이 관객 등 일반 시민을 위한 행사 속에서 전통음악적 요소가 장소의 특성에 맞게 어느 정도는 선곡 안에서 반영된다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여 본다. 공연예술이라는 시각에서 보았기에 아쉬움의 말이 이 글의 대부분을 차지하기는 했지만, 무엇보다 이러한 기획과 시도를 통해 더 많은 의미를 찾았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서울의 한가운데, 음악을 매개로 시민과 소통하는 이러한 ‘착한’, 그리하여 감상하고 또 생각하기 ‘좋은’ 공적 행사가 앞으로도 많이 서울돈화문국악당과 공명을 통하여 세상 속으로 끊임없이 내밀어지기를 응원한다.
박종현
인류학 연구자이자 팝 음악가이다. 제11회 국립국악원 학술상 우수평론상을 수상했으며, 국민대와 단국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사진제공 서울돈화문국악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