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겨울

리뷰 | 서울돈화문국악당 [서울소리:잡가雜歌]

김주연
사진제공서울돈화문국악당
발행일2023.12.11

서울에는 ‘서울소리가 있다

서울돈화문국악당 기획공연 [서울소리:잡가雜歌] 11월 25일~26일
 
겨울의 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11월의 어느 날, 서울돈화문국악당 기획공연 <서울소리:잡가雜歌>를 통해 사계축에 산재했던 공청(公廳:소리꾼들의 공연장이자 동시에 연습장 겸 전수장)에 모여 풍류를 즐기던 19세기를 되돌아볼 수 있었다.
경기 잡가는 서울을 중심으로 한 경기지방에서 부르던 잡가이자, 지금의 서울 청파동 일대의 사계축 소리꾼들 사이에서 널리 불린 전통 성악 장르의 한 갈래다. 이번 공연을 기획하고 올린 서울돈화문국악당 일대는 지리적으로 사계축 지역에 포함되지는 않지만, 인근 지역으로서 국악의 발전과 역사가 서려 있는 곳이다. 인근에 고궁이 있고 국립국악원의 전신인 이왕직아악부와 조선성악연구소가 있었던 곳이기에 그 어디보다 내로라하는 소리꾼들의 장이었을 것이다.
그곳에서 재현될 21세기의 서울소리가 무척이나 기대됐다. 그 기대에 보답하듯 각기 다른 색을 지닌 세 명의 젊은 여성 경기소리꾼(최주연‧성슬기‧최수안), 전통에 기반한 현대적인 서울소리의 대표주자인 예술감독 강효주, 그리고 적재적소에서 시너지를 발휘한 이민형(장구)과 이재하(거문고) 연주자까지, 삼박자가 조화를 이루며 전통과 현대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무대였다.

21세기에 만나는 19세기 사랑방 음악

성슬기 특유의 방울목과 함께, 시조와 잡가를 섞어 부르는 수잡가 ‘푸른 산중하에’가 <서울소리:잡가雜歌>의 문을 열었다. 오롯이 거문고와 소리로 무대를 채우며 관객은 마치 소리에 홀린 듯 이 공연의 홀(hole)로 입장하였다. 사실 수잡가를 이번 공연에 넣은 이유가 궁금했었다. 수잡가는 경기잡가에 포함되지는 않으나, 표현하는 양상과 창법이 경기소리와 굉장히 밀접하기에, 여러 장르를 구사하는 사계축 소리꾼의 현대판 재림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 아니었을까. 어쨌든 관객으로서는 다양한 레퍼토리를 감상할 수 있었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서울소리:잡가雜歌> 공연사진
<서울소리:잡가雜歌> 공연사진
‘푸른 산중하에’의 분위기는 메탈로폰의 청아한 공명으로 시작한 최수안의 ‘소춘향가’로 자연스레 이어졌다. 몽환적인 분위기의 소춘향가를 한껏 감상하고 나니, 온갖 새들이 뛰노는 곳으로 이끄는 듯한 최주연의 ‘제비가’가 들려왔다. 산림 속 자연의 리듬들과 꿋꿋한 소리가 공연장을 가득 채우며 아늑한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는 순간이었다.
필자 또한 소리를 하는 사람으로서 관객과 거리가 비교적 가까운 공연장의 소리를 그리 선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관객 입장에서는 소리꾼의 떨림을 느낄 수 있는 공간에서의 감상이 얼마나 귀한 자리인가. 그들의 떨림 또한 하나의 매력이기에, 그것이 옛 선조들이 즐겼던 사랑방 음악의 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오늘날의 잡가

민요는 민중의 음악으로 백성들의 삶을 노래하며 오랜 시간 사랑받아 왔다. 그러한 민요의 한 갈래로서 잡가 또한 포용되어 왔다. 잡가는 전문 소리꾼들에 의해 가창되는 소리로 맥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여전히 전문 소리꾼들이 가창하는 소리의 하나이며, 옛 문학을 토대로 한다. 그렇기에 현대의 감성과는 조금은 뒤떨어진 것이 사실이다.
반주하는 악기도 장구뿐이다. 그렇기에 다른 곡들에 비할 때 단조롭고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경기민요가 대변하는 ‘화려’하고 ‘경쾌한 분위기’를 생각하고 이 공연을 보았다면 ‘내가 알던 경기소리가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무대가 거듭될수록 경기소리의 또 다른 면모가 느껴졌던 게 <서울소리:잡가雜歌>의 매력이기도 했다. 화려하고 경쾌함 속에서 우직하고 견고히 다져진 세 소리꾼의 소리는 오랜 세월 경기소리가 주는 단단함과 굳건함을 느끼게 했다.

‘적벽가’에서 최주연‧성슬기‧최수안은 노래 중간마다 한자어들을 풀어가는 아니리로 그들만의 소리를 풀어갔다. 가창을 위한 ‘문학’이기도 한 잡가를 듣는 이로 하여금 더욱 편안하게 했기에 이러한 해석이 낯설지 않았다. 12잡가 중 ‘적벽가’는 필자가 개인적으로 가장 애정하는 노래이자 이날 함께 한 거문고(이재하)의 중후함과 가장 잘 어울리는 소리라고 생각한다. 거문고와 소리가 함께 하는 ‘적벽가’는 <서울소리:잡가雜歌>의 예술감독을 맡은 강효주의 ‘경기 12잡가 음반’(악당이반, 2009)에 수록되었고, 그 외 다른 소리꾼(필자 포함)에 의해서 연주되고 불리고 있다. 이번 공연에서도 거문고와 소리로 구성된 버전을 생각했는데, 예상과는 달리 타악기와 함께 하며 그 역할이 든든하여 입체적이고 풍성한 무대를 선사했다.
<서울소리:잡가雜歌> 공연사진
<서울소리:잡가雜歌> 공연사진
<서울소리:잡가雜歌> 공연사진

더 많은 서울소리가 울려 퍼지길 기원하며

이번 공연은 옛 소리를 행했던 순서에 수잡가, 경기 12잡가, 잡잡가, 휘몰이잡가, 그리고 경기민요까지 다채로운 무대들을 들려주며 오순도순 관객과 나누던 사랑방 음악을 오늘날 서울돈화문국악당에서 만난 시간이었다.
“순 서울소리인 잡가가 서울에서 귀한 소리가 되어버렸다”라는 강효주 예술감독의 말을 들으면서, 대한민국에서 ‘서울소리’가 ‘귀한 소리’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전라도를 가면 남도제 소리가 주를 이루고 어디서나 쉽게 접할 수 있다고도 할 것이다. 남도제 소리가 그만큼 지역민들에게 사랑받고 견고한 역사를 품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기에 전국, 나아가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모이는 이곳에서 서울만의 색을 가진 ‘서울소리’가 더욱더 울려 퍼지기를 기원해 본다. <서울소리:잡가雜歌>와 같은 서울소리 중심의 공연이 일회성 기획이 아닌, 다양한 경기소리꾼을 만날 수 있는 하나의 레퍼토리로 지속되기를 바란다.
김주연
이화여자대학교 한국음악과 졸업 후 현재 동대학원 석사 과정에 수학 중인 경기소리꾼이다. 전통을 기반으로 동시대의 작업을 추구하는 소리꾼으로, 국악뿐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공연 관람에 관심을 두고 있다.
사진제공 서울돈화문국악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