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봄

리뷰 | 서울남산국악당 [국악가족극]

최용석
사진제공서울남산국악당
발행일2024.03.20

‘똥’이 준 지혜, ‘똥’이 피운 꽃

 
1월에 접어들어 남산자락 기슭, 사람들이 찬 공기를 가르며 길을 걷다가 따스한 햇살에 얼굴 맞대며 벤치에 앉는 그때, 흰둥개 한 마리가 ‘킁킁’ 길모퉁이를 ‘킁킁’ 코를 대고 가다가 굵고 탐스러운 똥을 세상에 내놓았다. 냄새가 슬슬 퍼져나간다.
똥은 더럽고, 냄새가 심하고, 모두가 미간을 찌푸릴 정도로 싫어해서 감추고 싶은 것이 아닌가. 그런데 남산자락 서울남산국악당에 강아지똥 냄새가 나더니 순간, 똥벼락이 우두두두둑 우박처럼 쏟아진다. 바로 ‘국악가족극’ 시리즈로, 극단 ‘민들레’의 <똥벼락>, 극단 ‘모시는사람들’의 <아하! 강아지똥>을 무대에 올렸다.
이 시리즈에 초대된 두 극단과 작품은 이름도, 작품도, 여러 해 동안 전통예술과 연극, 좋은 이야기에 천착하며 관객을 ‘모셔 온’, ‘민들레’와도 같은 존재들이다.
국악가족극 <똥벼락>, <아하! 강아지똥> 포스터

<똥벼락>
_ 우리는 ‘똥’으로부터 삶을 배운다

서울남산국악당에 내린 똥 벼락이 바로 극단 민들레의 창작연희극 <똥벼락>이다. 단출한 대소도구들이 무대 위에 놓였고, 김부자와 악사를 넘나드는 장항석 배우와 머슴 역할과 연출을 맡은 송인현 배우가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또한 연희 전문 배우의 연기를 보조하며 타악기를 연주하는 연주자 두 사람이 신명 가득 무대를 채우며 넉넉하고 구수한 ‘똥벼락’ 이야기를 펼친다.
이 이야기는 성실하고 착한 김부자댁 머슴과 김부자 사이에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김부자댁 머슴은 김부자의 포악질 속에서도 30년 넘는 세월을 성실하게 일했다. 김부자는 이런 농부에게 삯으로 약속했던 땅을 주겠다지만, 어디에 쓸 수도 없는 돌밭을 준다. 하는 수 없는 김부자의 머슴은 묵묵히 돌밭을 갈아 개간하여 옥토를 만든다.
농부는 어려움을 이기고 논농사 밭농사를 지어 풍년 세상을 맞이한다. 김부자는 머슴이 농사를 지으며 자기 집의 변소에서 똥을 가져다 거름으로 썼으니, 머슴에게 똥을 갚으라 하고 추수한 곡식을 달라고 한다. 그때 도깨비는 이런 욕심 많은 김부자에게 똥벼락을 내려 벌을 준다.
극단 민들레 <똥벼락>
극단 모시는사람들 <아하!강아지똥>

공연 내내 땅과 똥, 밭농사, 논농사를 짓는 농부의 농사일이 관객에게 진실되게 전달된다. 품앗이, 아니 자원봉사로 나선 관객들은 무대에 펼쳐진 옥토의 논에 들어가 함께 모내기하고 폭풍우에 쓰러진 논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도 한다. 그 장면을 보며 문득 처음으로 논에 들어갔을 때 발을 간지럽히며 부드럽게 발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던 논 속 진흙의 느낌이 생각났고, 무대에 올라 모내기하는 아이들에게도 무대 위에서의 경험이 따뜻한 기억으로 남길 바랐다.

창작연희극 <똥벼락>은 타악기 연주자와 연희 전문 배우 2명으로 민요와 탈춤의 몸짓, 농사짓는 일, 입담과 연기를 풍성하게 풀어 놓는다. 공연을 보러온 어린이 관객들은 어느새 우리 농촌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를 통해 농사를 체험하고, 우리 몸짓과 소리를 가까이하게 되고, 찐모‧모내기‧천수답‧용두레‧쇠죽‧품앗이‧피 같은 농촌의 말들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공연 종반에는 어른들이며 아이들이 함께 “똥이야, 똥이야, 똥벼락이 내린다”를 불렀다. 관객들은 전통풍의 노래를 부르며 남몰래 감춰뒀던 나만의 똥을 꺼내 세상의 거름으로 만드는 상상을 하는 듯 함박웃음을 지었다.

극단 민들레 <똥벼락>
극단 모시는사람들 <아하!강아지똥>
이쯤 되니 남산 자락길 어느 모퉁이에 슬쩍 똥을 누고 길을 떠난 흰둥이가 떠오른다. 아! 강아지똥.

<아하! 강아지똥>
_ 꽃을 피운, 똥의 아름다운 마음

극단 모시는 사람들의 <아하! 강아지똥>은 권정생 작가의 베스트셀러 동화 <강아지똥>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공연이 시작되면 책의 삽화로부터 영향을 받은 무대미술과 등장인물들의 의상과 탈이 무대에 등장한다. 공들여 만든 무대와 의상은 마치 동화책 <강아지똥>을 무대에 옮겨 놓은 듯 귀엽고 자연스러우면서, 동시에 뭔지 모를 슬픔이 묻어나기도 한다. 공연 전반에 흐르는 해금 선율은 때로는 일상의 평화로움을 느끼게 했고, 또 어떨 때는 강아지똥의 외로움과 깊은 고민을 담아 쓸쓸한 분위기를 내기도 했다.
극단 모시는사람들 <아하!강아지똥>
초반에 흰둥이가 나온다. 똥이 마려워 여기저기 똥 누울 자리를 찾는 흰둥이는 쥐에게도 참새에게도 닭에게도 배척당한다. 흰둥이는 떠돌다가 겨우 똥을 눈다. 강아지똥이 무대 한편에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제 막 세상에 나온 강아지똥은 친구를 찾아다니지만, 참새도 닭도 쥐도 모두 강아지똥이 더럽고 쓸모없는 존재라면서 싫어하고 멀리하며 떠나간다.
그때 만난 흙덩이는 강아지똥과 우정을 나누게 된다. 그러던 흙도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고 혼자 남은 강아지똥은 세상에 태어나서 계속했던 생각을 한다. ‘내가 더럽다고? 아무짝에 쓸데없다고? 나는 어떻게 착하게 살 수 있을까?’사실 무대 위 강아지똥의 질문은 우리가 가슴에 품은 질문이었다. 결국 민들레 홀씨를 품은 강아지똥은 자기 몸을 고스란히 녹여서 민들레꽃을 피운다.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는 없다고, 세상의 모든 존재는 가치 있다고 온몸으로 보여주며 강아지똥은 무대 한가운데에 예쁜 민들레꽃이 되어 피어있었고, 공연을 본 우리 모두의 마음에 봄이 찾아오고 있었다.
극단 모시는사람들 <아하!강아지똥>
극단 모시는사람들 <아하!강아지똥>
이 모든 따뜻한 이야기가 무대 위에 펼쳐진다. 배우들은 강아지 탈을 쓰고, 똥 탈을 쓰고, 낙엽 탈을 쓰고, 흙덩이 탈을 쓰고, 쥐와 닭, 병아리 탈을 쓰고 있다. 누가 봐도 탈을 쓴 사람이지만, 배우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진정 강아지가 되어, 흙이 되어, 낙엽이 되어,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존재를 진심을 담아 연기하고 노래한다. 마치 극단의 이름처럼 관객을 ‘모시고’ 공연한다. 그래서 따뜻한 동화책 <강아지똥>은 무대에서 살아 꿈틀대며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똥벼락>이나 <아하! 강아지똥>은 전통예술계에도 은근한 자극을 주면서, 분명한 공동체적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달하고 있다. 또한 작품에 담긴 전통예술의 아름다움이 자연스레 어린이 관객들에게 스미게 되어 그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으리라고 생각하니 더욱 기분이 좋았다. 서울남산국악당 마당 한편에는 흰둥이의 ‘강아지똥’과, 땅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똥벼락’의 냄새가 가득하니, 그 똥이 거름 되어 이젠 사람들의 마음 밭에 민들레꽃 한 송이가 예쁘게 피기를 기원해 본다.
최용석
진솔한 삶의 이야기가 판소리와 소리극으로 퍼져 나가길 바라는 소리꾼이다. 판소리공장 바닥소리의 대표(2002~2018)로 창작판소리와 소리극을 만들었다. 현재는 소설가 김탁환과 창작집단 싸목싸목을 결성해 창작·연출 활동 중이다.
사진제공 서울남산국악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