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겨울

리뷰|서울남산국악당 [젊은국악 단장] 무용_김기범 <올려다본 내려다본>

김혜라
사진제공서울남산국악당
발행일2023.11.27

널뛰기 놀이에 투영된
현대인의 초상과 춤풍경

서울남산국악당 젊은국악 단장(무용)_김기범 <올려다본 내려다본> 10월 21일
 
젊은 세대에게 전통에 대한 탐구를 독려하는 '젊은국악 단장'의 방향성은 긍정적이다. 작년에는 추천제로 다수에게 지원하던 방식에서 올해는 공모를 통해 무용, 연희, 음악 장르에서 한 팀을 집중 지원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춤분야에서는 한국춤을 전공하고 10여 년간 안은미 컴퍼니에서 현대춤 작업을 해온 김기범의 <올려다본 내려다본>이 선정되었다. 예술의 본원적인 기능인 ‘놀이성’ 특히 전통 놀이의 소재가 춤작품으로 재맥락화되는 기획이었기에 주목할 만했다(안무‧출연 김기범, 출연 박시한‧하지혜‧김승해, 거문고 방민영, 음악감독  DJ 바가지 바이팩스써틴, 무대디자인 신승렬, 영상 이진원).
김기범 ⓒ 주현우

추상적 모티프를 포착한 참신한 시선

<올려다본 내려다본>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널 판 위에서의 시선이다. 상승과 하강이란 널뛰기 운동의 궤적과 힘의 균형을 인간관계의 긴장감으로 투영하려는 의도이다.
무대 위 중앙 널 판에 도시인들의 분주한 발걸음이 영상으로 투사되며 널뛰기가 놀이적 기능 이상의 관계로 조망될 것임을 내비친다. 널판과 짚단이 무대에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춤꾼 4인의 동선은 널 주변에서 서성이거나 걷다가 자연스럽게 리듬을 타며 춤사위로 변주되는 양상으로 진행된다. 거문고의 연주에 이어 노동요 같은 구성진 소리에 춤꾼들은 굽이굽이 산을 넘듯 널판과 동행한다.
소리의 결에 부응하며 오르락내리락 묵직하게 딛기도 하고 경쾌한 속도로 춤사위를 펼치는 장면들이 희로애락 인생사를 은유하는 것 같다. 흥미로운 점으로 김기범은 널판을 이용한 춤 구성에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널뛰기의 놀이 요소를 의도적으로 배제한다. 반면 널뛰기의 도약과 하강 행위에서 ‘균형감’이란 요소에 초점을 맞춘다. 이는 국내외 창작의 한 트렌드인 스포츠나 아크로바틱에 내재한 극한의 운동성과 휴머니즘으로 표현의 맥락을 확장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널뛰기의 역학적인 힘쓰기에서 추상적인 모티브를 포착한 김기범의 시선은 참신하다.
 

정서적 쾌감은 아쉬움으로

전통 놀이에서 추출할 풍부한 재료인 놀이성과 자율성이란 고유 기능을 전환한 작품 자체는 흥미로운 테마이다. 그러나 시종일관 널판을 중심으로 상대와의 관계만을 주시할 뿐 다른 복선이나 서사로 확장하지 않는다. 따라서 널 위에서 중심을 잡는 행위 위주의 견제나 대치에 비해, 널뛰기의 신나는 경관을 잊을 만큼 다른 정서적 쾌감을 일으키지 못한 것이 맹점이다.
김기범 <올려다본 내려다본> 공연사진 ⓒ최태연
김기범 <올려다본 내려다본> 공연사진 ⓒ최태연
김기범 <올려다본 내려다본> 공연사진 ⓒ최태연
광의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풍부한 전통 놀이가 심리적인 초점으로만 맞춰져 널뛰기의 놀이성, 역동성, 해방성이란 측면이 배제된 이유가 궁금해졌다. 일반적으로 한 판 신나게 널을 뛸 거라는 예상을 뒤집을 만큼 작품을 이끄는 설득력이 있어야 안무자의 의도에 동참할 수 있다. 오랜 세월 전승된 전통(놀이)은 무의식적으로 우리 몸에 각인되어 기억하고 향유되는 방식이 있기에 이를 재해석할 때는 상당한 파격 내지는 탄탄한 토대가 있어야 공감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필자는 공연 내내 널은 언제 뛸지 기다리게 되었다.
 

널뛰기에서 협동과 배려를 보다

널뛰기의 놀이성은 생각보다 단조롭지 않다. 이를테면 짧은 순간이더라도 널을 뛰며 맛보는 저마다의 경험이 있을 것이다. 널을 뛰며 우리가 마주하는 즐거움은 누구에겐 비상하는 새 같은 상상으로, 누구에겐 고단한 일상의 탈출을 견인하는 해방구의 역할도 한다.
널을 뛰며 자연스럽게 뒤따르는 팔다리의 몸짓과 반동이 쌓여갈수록 우리의 흥과 신(신명)은 고조된다. 내려오는 하강의 행위는 더욱 기운을 모아 상대를 높이 올리려는 발돋움으로 전력을 다한다. 더욱 높이 상승하기 위해 우주의 기운을 만끽하기 위한 협동과 배려의 놀이인 것이다. 널뛰기는 물리적인 힘겨루기보다는 미세하게 조율해야 더 높이 뛸 수 있는 ‘몸적 타협’에 가깝다. 따라서 직접 참여하지 않더라도 다른 이의 행위를 보는 것만으로도 놀이의 내적 체험이 공유된다.
김기범 <올려다본 내려다본> 공연사진 ⓒ최태연
전통의 형식과 내용을 재해석할 때는 여러 측면에서 고민이 필요하다. 서구의 전통인 오페라와 발레도 현대적으로 연출하는 작업이 끊임없이 시도되나 원작이 뒤바뀔 때는 분명한 비전과 담론이 제시돼야 성공적이라 평가한다.
김기범은 전환적인 시선으로 널뛰기 행위 발생의 기제에 주목했으나 예리한 의도를 점철시킬 만한 맥락의 연계성이 조밀하지 않다. 초반의 영상 이미지와 다변적인 디딤의 변주, 널판 오브제에 대한 공간 배치 정도에 머물러 전통 놀이가 담지하고 있는 여러 가능성이 협소하게 조명되어 있다. 대상과 행위가 균형감이 맞아야 작품에서 생성되는 서사에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널이란 소재에 투영한 단일한 정서만으론 널뛰기를 잊을 만큼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지 못했다. 전통문화(놀이)의 재해석이 그래서 쉽지 않은 이유이다.
 

일상의 무게를 견뎌내는
현대인의 모습이 보이다

기다리던 작품 말미에 널뛰는 행위가 수행된다. 객석에서는 추임새와 박수로 호응하며 널 뛰는 행위에 즐겁게 화답한다. 김기범은 일관성 있게 마지막 널뛰기도 놀이 보다는 더욱 긴장된 상대와의 대치로 실행한다. 예술가의 일관성 있는 선택이나 도약과 하강의 몸짓이 추상적인 관계성으로 치환되는 것만으로 여전히 머물고 만다. 움직임 동력의 범위도 널판에서 펼칠 수 있는 수평성의 미학으로, 오르고 내리는 수직성의 미학으로 대상화할 수 있으나 이 또한 제한적으로만 구현되었다.
김기범의 접근 방식과 유사한 프랑스 안무가 요안 부르주아의 안무작 <기울어진 사람들>도 빠른 속도로 회전하는 불안전한 판자에서 위태롭게 버텨내는 퍼포머들의 행위가 집약된 작품이다. 치열한 몸부림에서 상대를 믿고 존중하는 행위가 삶의 이야기로 연계되며 반향과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올려다본 내려다본>에도 현대인의 불안한 초상이 투영되어 있다. 널에서 일상의 무게를 견뎌내는 우리들의 모습이 보였다. 다만 널뛰기란 강력한 놀이성을 전환한 도전적인 시도가 인간 본연인 놀이의 욕망을 덮진 못했다.
김혜라
춤웹진 편집위원. 춤미학과 비평을 전공하였고 2012년 한국춤비평가협회를 통해 비평가로 등단했다. <춤웹진>과 <더프리뷰>에 정기적으로 평문을 기고하고 있으며, 중앙대에 출강 중이다.
사진제공 서울남산국악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