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서울돈화문국악당 기획으로 시작된 <실내악축제>가 올해 8월 23일부터 9월 1일까지 열린다. 국악기로 가능한 다양한 편성의 실내악을 경험할 수 있는 이 축제에는, 올해 특별히 여러 창작 국악 작품들이 무대에 오른다. 국악 작곡가이자 가야금 명장인 故 황병기의 작품부터, 현재 활발히 활동 중인 작곡가들, 더불어 신진 작곡가들을 위한 위촉 작품까지 초연한다. 실내악을 통해 과거가 된 창작 국악을 되짚어보고, 현재의 위치를 고찰하며, 앞으로의 음악적 발전 방향성을 살펴보는 장이다.
창작 국악을 통해 새롭게 발견되고 있는 ‘국악 실내악’의 매력은 무엇일까. 축제에 참여하는 선배 및 신진 작곡가, 연주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미리 살펴보았다.
8월 25일 15:00 | 가야금앙상블 사계 | 가야금 4중주를 위한 ‘상주모심기 주제에 의한 변주곡’
“실내악은 음악가들이 대화하며 만들어가는 음악입니다. 때로는 누군가를 이끌기도 하고, 때로는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들어주어야 하기도 하죠. 가장 즐겁고도 어려운 장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 전통 음악은 실내악 전통을 풍부히 가지고 있습니다. 모두 한 길을 가는 것 같지만 악기마다 제 나름의 고유한 목소리를 내는 ‘풍류악’이나 정해진 울타리 안에서 서로 밀고 당기며 각자의 기량을 선보이며 흥을 돋우어가는 ‘시나위’ 등이 있죠. 실내악의 이상을 잘 반영한 곡들입니다. 이 전통을 잘 이어받아 지금도 젊은 음악가들이 좋은 곡들을 많이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축제도, 이 에너지를 잘 반영하고 있는 것 같아 무척 기대됩니다. ‘상주모심기 주제에 의한 변주곡’은 원래 피아노곡으로 만들었던 것이에요. 가야금 4중주 편곡을 해주신 신동일 선생이 훌륭한 작곡가시니, 멋진 앙상블이 만들어지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8월 25일 15:00 | 가야금앙상블 사계 | 가야금 4중주를 위한 ‘상주모심기 주제에 의한 변주곡’
“동서양을 막론하고 실내악 규모의 앙상블은 언제나 음악 활동의 중심이었습니다. 가볍고 대중적인 음악 장르일 때도, 가장 전문가들의 음악 장르일 때도 있었죠. 우리 음악에서 기악의 정체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악기 편성은 실내악입니다. ‘시나위’나 ‘ 영산회상’을 생각하면, 실내악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죠. 소수의 단잽이들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앙상블이야말로 우리 음악의 정수를 느끼게 해줄 수 있는 형태입니다. 연주자에겐 많은 집중력을 요구하는 형태이기에 음악의 본질을 추구하는 것이 됩니다.
‘상주모심기 주제에 의한 변주곡’은 가야금 앙상블 ‘사계’의 요청으로 편곡했던 작품입니다. 25현 가야금 앙상블이 연주할 수 있는 형태로 조심스럽게 편곡하면서, 25현 가야금에서 흔히 보기 어려운 오묘한 변화음들을 적용하고자 깊이 고민했습니다.”
8월 25일 15:00 | 가야금앙상블 사계 | ‘Colorblind’
“현대인들에게는 전자적인 음향이 익숙합니다. 국악 공연도 큰 공연장에서 열릴 경우 전기 장치 등을 사용해 음량을 증폭하여 들을 때가 있죠. 하지만 국악기는 본래 사랑방 크기의 환경에 맞게 진화해 왔다고 생각해요. 실내악 연주를 통해 국악기가 지닌 자연적인 소리의 아름다움을 경험하고, 전자 음향이 익숙한 관객들이 ‘귀 청소’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어요.
이번 축제에서 연주될 ‘Colorblind’는 사전적으로는 ‘색맹’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역설적으로 시각적 색채를 잘 구분하지 못하는 작곡가가, 다양한 종류의 화성을 사용하여 다채로운 음악적 색채를 느끼도록 의도한 것입니다. 이 색채감과 더불어, 네 명의 연주자가 마치 한 명이서 연주하는 듯한 일체감을 느껴보시길 바라요!”
8월 28일 19:30 | 페스티벌 앙상블 Ⅰ | 생황을 위한 민요 환상곡
“‘풍류 음악’ ‘가곡’ ‘산조’ ‘시나위’ 등은 국악기가 실내악에 적합한 악기임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악기의 구조상, 큰 공연장보다는 풍류방 같은 작은 공간에서 연주하는 것에 최적화되어 있죠. 실내악 공연은 국악이 관객의 수요를 충족시키는 콘텐츠로서의 경쟁력을 갖는 데에도 힘이 됩니다. 하우스나 갤러리 콘서트 등에서 열리는 공연이 이제는 하나의 공연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예술가와의 친밀감이나 세심한 음향, 공간의 특별함을 원하는 관객들은 이런 공연을 찾게 됩니다. 이러한 현시대의 흐름과 앞서 말씀드린 국악기의 구조적 특성이 잘 만난다면, 국악인들이 원하는 대중화에도 한 걸음 가까워질 수 있겠죠.
생황을 위한 민요 환상곡 1번은 추후 협주곡 편곡을 염두에 둔 곡입니다. 생황 연주자는 악보 너머에 있는 자신만의 기량을 찾아서, 피아노 연주자는 마치 관현악 지휘자가 된 것처럼 음악적 흐름을 만들어갈 수 있는 작품이죠.”
9월 1일 15:00 | 페스티벌 앙상블 Ⅱ | 후이늠을 만나다(위촉초연)
“창작 국악 실내악을 위한 무대가 있어야, 작곡가들도 좋은 작품을 쓰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연주자들이 많아지면서 더 많은 실내악단이 생기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작곡가들도 많이 양성되고 있고, 앞으로도 다양하게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은 음악 장르라고 느껴요. 요즘에는 기본 국악기뿐 아니라 개량 악기까지 사용한 실험적인 작품들이 나오기 때문에 새로운 국악기 조합의 소리를 듣는 것이 무척 흥미로워요. 축제를 통해 실내악 작품이 많이 작곡되고 연주되는 것은, 이러한 발전을 돕는 중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이번에 초연될 ‘후이늠을 만나다’에서 ‘후이늠’은 소설 ‘걸리버 여행기’ 마지막에 등장하는 나라입니다. 전혀 다른 두 생명체 후이늠과 걸리버가 함께 지내며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이 영감을 주었어요. 관악기인 대금, 현악기인 거문고, 그리고 타악기까지 총 세 종류의 서로 다른 악기들이 대화하는 이 작품에서, 타인을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느끼실 수 있길 바랍니다.”
9월 1일 15:00 | 페스티벌 앙상블 Ⅱ | Opposites Attract(위촉초연)
“실내악 작품을 위해서 작곡가는 악기마다 다양한 역할을 부여하고, 비중을 서로 다르게 하여 작곡합니다. 그로 인해 작곡가가 좋아하는 악기가 무엇인지, 그리고 악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느낄 수도 있고, 악기의 화합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냈는지를 모두 관찰할 수 있죠. 실내악은 작곡가의 의도를 여러 방면에서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매력적인 장르예요.
초연되는 ‘Opposites Attract’는 ‘정반대되는 것들은 반드시 서로에게 끌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두 대의 가야금이 대비되는 선율을 시작으로 서로를 끌어당기고, 끌려가는데, 서로에게 매료되던 두 악기는 마지막에 완벽한 화합을 이뤄냅니다. 작곡 의도가 관객에게 잘 전달되었으면 합니다.”
8월 23일 19:30 | 여성국악실내악단 다스름 | ‘낙양의 봄’(편곡초연) 외
“다스름이 창단되던 1990년대에는 여성 연주자들이 직업 연주자의 지위를 갖기 쉽지 않았고, 관 주도의 단체가 대부분으로 민간 실내악 단체가 일반화되지 않은 시절이었습니다. ‘국악의 대중화, 생활화, 현대화’를 목표로 찾아가는 음악회, 학생들을 위한 활동들을 적극적으로 해왔죠. 지금은 국악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관객도 늘어났고, 실내악단도 많아지면서 다스름 또한 그간의 활동을 바탕으로 더 개성 강한 음악 만들기에 집중하는 때입니다. 실내악은 기본적으로 악기 연주자들이 수준급 이상의 실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야 합니다. 기량은 최대치로 구사하되, 다른 악기와의 교감을 위해서는 내공이 필요하죠. 악보에 표기된 것으로 작곡가의 의도를 알아내는 분석 능력도 필수입니다. 특히 창작 국악의 경우, 지루하게 느껴지는 경우도 많은데, 실력이 뛰어난 연주 단체일수록 실내악을 통해 관객에게 음악 본질의 감동과 재미를 동시에 선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8월 25일 15:00 | 가야금앙상블 사계 | 새타령 외
“가야금앙상블 사계는 12현‧18현‧25현‧베이스 22현 가야금을 사용하여 다양한 음역과 음색을 만들어냅니다. 빛이 들어오는 방향과 원통을 돌리면, 거울의 반사에 따라 다양한 기하학적 모양을 만들어내는 ‘만화경’처럼, 네 명의 연주자가 만들어내는 소리는 때로는 단조롭게, 때로는 화려하게 서로에게 빛과 거울이 되어 조화롭고 창의적인 소리를 만듭니다. 실내악은 연주자 간의 긴밀한 협력과 공동체 의식이 강조됩니다. 협력과 소통의 과정은, 현대 사회에서 공동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소중한 미덕이기도 하죠. 오랜 기간 함께해온 멤버들은 이 전통성과 독창성을 바탕으로 전 세계 현대 작곡가들과 협업하는 동시대의 음악을 만들어 나가고자 합니다. 청중과 연주자가 교감을 나누기에 가장 이상적인 공연장인, 서울돈화문국악당에서 국악 실내악이 선사할 수 있는 다층적인 음악적 경험을 청중에게 선사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