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서울소리:잡가雜歌> 공연(11.25~26) 리뷰를 끝맺음하며 썼던 문장을 다시 꺼내보았다.
“<서울소리:잡가雜歌>와 같은 서울 소리 중심의 공연이 일회성 기획이 아닌, 다양한 경기 소리꾼을 만날 수 있는 하나의 레퍼토리로 지속되기를 바란다.”
그 바람대로 올해 더욱 다채로워진 두 번째 <서울소리:잡가雜歌>가 오는 11월 2일부터 10일까지 총 4회에 걸쳐 서울돈화문국악당에서 펼쳐진다.
전통성악의 한 갈래인 잡가(雜歌)는 19세기와 20세기 초반에 서울·경기와 서도 지방을 중심으로 유행했던 소리로 긴 가사체의 사설에 선율을 얹어 부르는 노래다. 일반인들에 의해 구전으로 불려 온 민요와 달리 스승으로부터 전승 교육과정을 거친 전문가창자들에 의해 불리었다.
비교적 젊은 여성 소리꾼들이 주를 이루었던 첫 해였다면, 올해는 다양한 세대와 성별의 소리꾼들이 선보이는 서울 소리가 국악로에 울려 퍼질 예정이다. 2일에는 권정희‧고금성‧김보연이 소리(장구 박영식)를 맡아 ‘19세기 서울소리의 재현’을 선보이며, 3일에는 이채현이 소리와 음악구성을 담당하고 안재현‧김주현(소리)를 비롯해 임정완(가야금), 이민형(장구)이 ‘선율에 얹어진 서울소리’를 제목으로 무대에 오른다. 9일에는 ‘도심 속 서울소리의 울림’이라는 제목으로 하지아‧전영랑‧왕희림이 소리를 펼쳐낸다. 이재하가 거문고와 음악구성을 담당하며, 임재인(양금), 윤재영(장구)이 함께 한다. 마지막인 10일은 ‘여울져 흐르는 서울소리’다. 이은혜‧이현채‧정유정이 소리를 하며, 이재하(거문고‧음악구성), 박영식(장구)이 함께 한다.
장구 하나만을 두고 소리하는 옛 방식을 ‘재현(再現)’하고 잡가에 악기 선율을 얹어 소리하는 ‘현재(現在)’의 방식까지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오늘날 잡가가 무척이나 기대된다.
잡가는 지역적 특성에 따라 경기잡가, 서도잡가, 남도잡가로 분류되며 이번 <서울소리:잡가雜歌>에서는 서울 경기 지방에서 불렸던 잡가들을 모두 만나볼 수 있다.
성경린 전 국립국악원장은 “판소리는 느린 중머리의 처량한 성조이나 잡가는 슬퍼도 아픈 데 이르지 않는 단정한 맵시가 아름답다”고 평하였다 (정범태, 『경서도 명인명창』) 이처럼 잡가는 가창을 위한 문학이긴 하나 그 안에 담긴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방식이 절제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소리다.
잡가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12잡가’는 열두 곡으로 구성된 노래로, 느리고 긴 사설이 특징이다. 조선 말기 서울을 중심으로 하여 공장인·상인 출신의 소리꾼들에 의해서 성장한 12잡가는 보다 전문적인 창법과 가창을 구사해야 하기에 발음, 발성과 호흡에 관한 모든 부분에 있어 전문성을 요구한다. 긴 시간 기교적이고 복잡한 형식을 소리하기에 애호가가 아닌 일반인에게는 듣기에 어려움이 따른다.
하지만 경기 소리꾼에게 12잡가는 기본 중 기본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의 소리를 견고하고 오롯이 하고자 잡가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연마한다. 그만큼 경기잡가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12잡가를 이번 <서울소리:잡가雜歌>의 4회 공연에 걸쳐 만나볼 수 있다. 유산가, 적벽가, 소춘향가, 집장가, 출인가, 선유가, 방물가, 십장가, 달거리 총 9곡의 긴 잡가가 오르는 순간이다. 소리꾼의 소리에 장구 가락만 얹어 부르는 옛 연행 형태의 잡가부터 다양한 현악기의 음색이 얹어져 다채로운 색을 내는 잡가까지 그들의 목소리로 경기소리의 진수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조선판 랩‘ 휘모리잡가’부터 소외된 ‘잡잡가’까지
휘모리잡가는 해학적이고 형용어가 많은 긴 사설을, 말을 주워섬기듯이 빠른 속도로 엮어나가다가 끝을 시조 창법으로 여미는 소리이다. 흔히 조선판 랩이라고 설명하는데 우스꽝스러운 익살과 곁말투성이의 가사를 가지고 있는 것 또한 랩 음악과 닮아있다. 래퍼들이 자신의 이야기, 혹은 사회상을 음악으로 담아낸 것처럼 휘모리잡가를 통해 소리꾼들이 표현하고자 했던 옛 서민들의 삶은 어떠하였는지 살펴보는 감상의 재미가 있을 것이다.
휘모리잡가 또한 본래 반주에 선율악기를 사용하지 않고 오롯이 장구 반주만을 사용하였지만, 현대에 이르러 휘모리잡가의 일정한 선율에 악기를 얹어 음악을 풍부하게 하는 시도들이 행해지고 있다. 이번 공연에서는 <만학천봉> <병정타령> <육칠월흐린날에> <맹꽁이타령> <한잔부어라>가 연주되며 이 곡들이 어떠한 악기와 만나 이야기가 될지 기대가 된다.
잡잡가는 12잡가나 휘모리잡가 중 어느 갈래에도 속하지 않는 별도의 악곡이다. 12잡가나 휘모리잡가에 들지 않으면서 통속민요에도 속하지 않는 전문 예술인들의 노래를 모두 잡잡가라 부른다.
다른 잡가에 비해 사설이 조잡하고 선율이 단순하다는 이유로 그동안 배척되고 소외되어 전문 소리꾼들의 무대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것이 사실이었으나, 이번 공연에서는 <풍등가> <국문뒤풀이> <금강산타령> <장기타령> 네 곡의 잡잡가를 무대에서 만나볼 수 있다.
<서울소리:잡가雜歌>에서는 경기잡가로 분류되는 소리 외에 다양한 소리를 즐길 수 있는 것이 또 다른 재미이다.
<선소리산타령>은 서울의 민간에서 발생하여 향유되던 성악곡으로 본래 야외에서 서서 부르던 소리이다. 선소리산타령은 경기입창으로 따로 분리하기도 하고 경기잡가에 넣기도 하지만 그 발달 과정으로 보아서 잡가 계통에 든다고 할 수 있다. 이번 공연에서는 경기 선소리산타령에 해당하는 놀량, 앞산타령, 뒷산타령, 잦은산타령을 만나볼 수 있다.
이 밖에도 조선말 고종(1864~1907) 때 궁중에 드나들던 무당들이 시조(時調)의 곡조에 맞추어 부르던 소리가 구전된 <노랫가락>(민요)과 한식날 죽은 남편을 찾아가서 제를 올리고 자기 신세를 자탄하며 저승으로 떠난 임을 그리는 <제전>(서도 좌창)을 만나볼 수 있다.
옛 사계축(서울 만리재 청파동 일대) 소리꾼들은 주로 긴 잡가로 시작하여 휘모리잡가, 선소리산타령, 민요 순으로 소리를 행하였다고 한다. 노랫가락의 경우 휘모리잡가 <바위타령>과 잡잡가 <금강산타령>에서 그 선율을 찾아볼 수 있으며 제전 또한 좌창의 범주에 포함되어 경기소리와 표현하는 양상이나 창법이 굉장히 밀접하기에 서울 잡가와 함께 행하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서울소리:잡가雜歌>를 ‘잡가’라는 틀에 가두어 보기보다는 잡가라는 큰 주제를 두고 다양한 소리를 품고자 한다면 그들이 표현하고자 한 서울 소리를 더욱 가까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옛 선조들은 농한기에 사계축에 산재했던 공청(公廳: 소리꾼들의 공연장이자 동시에 연습장 겸 전수장)에 한데 모여 풍류를 즐기었다. 이 공청은 농산물을 저장하던 움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고, 움집 내부를 화려하게 꾸미고 이를 ‘깊은 사랑(舍廊)’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오는 겨울, 잡가는 지루하다는 편견을 떨치고 추운 겨울날 옹기종기 모여 앉아 우직하고 담담한 소리를 감상한 우리 선조들과 같이 정 있고 따뜻한 <서울소리:잡가雜歌>를 깊은 사랑으로 감상하여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