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여름

프리뷰 | 서울남산국악당 [남산소리극축제]

최용석
사진제공서울남산국악당
발행일2024.05.02

부조리한 세상과 싸울 때, 그녀는 빛났다

 
서울남산국악당 [여설뎐: 싸우는 여자들의 소리] 5월 8일~18일
 
작년부터 시작된 남산소리극축제의 첫해 축제에는 20여 년간 우리 소리를 기반으로 소리극을 이끌어 온 대표적 민간 단체의 작품들을 초청하여 남산소리극 축제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이제 두 번 해를 맞이한 2024년 남산소리극 축제의 이름은 <여설뎐>입니다. 한자로 ‘女說傳’으로 표기합니다. 여자 여(女), 말씀 설(說), 전할 전(傳). 여기에 부제가 <싸우는 여자들의 소리>입니다.
2024 남산소리극축제 메인 포스터 <여설뎐>
최근 몇 년간 무대에 오르는 우리 소리를 기반으로 한 음악극, 소리극을 살펴보니 여성이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작품들이 여럿 눈에 띄었습니다. 부당한 세상에서 차별당하고 소외당한 사람들의 울음과 저항의 외침은 소리와 노래와 몸짓이 되어 무대에 오르고 있었습니다. 이렇듯 비뚤어지고 기운 세상에 맞서 싸우는 여성들이 주인공이 되는 소리극 네 편과 창작 판소리 두 편을 ‘2024 남산소리극 축제’에서 만나보려고 합니다.(※ 공연은 서울남산국악당 크라운해태홀과 야외마당에서 진행).
 

희망의 씨앗을 안고 싸운 그녀들

일제의 차별에 맞서 싸운 청소년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1929년 11월 3일 광주의 학생들이 일제의 차별에 항거해 떨쳐 일어나 만세운동을 벌였고, 이 만세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었으니, 이 운동이 바로 ‘광주학생항일운동’입니다. 그 학생 중에서도 노비 출신의 여자고등보통학교(여고보) 학생 솔의 판소리 사랑과, 솔과 솔의 친구들이 전개한 일제에 맞선 투쟁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 그룹 ‘이화SORI’가 선보일 작품 <솔의 기억>(5월 8일/크라운해태홀)입니다. 이화여대에서 다양한 전통 성악을 전공하는 청년예술가들이 생동감 있게 독립운동 당시의 학생들을 소리 할 겁니다.
이화SORI <솔의 기억> (5월8일/크라운해태홀)
이화SORI <솔의 기억> (5월8일/크라운해태홀)
이화SORI <솔의 기억> (5월8일/크라운해태홀)
인간들이 어지럽힌 바다에 더 이상 생명의 씨앗을 뿌리지 않는 바다의 수호신 영등 할망은 서울에서 제주에 놀러 온 소녀 청비의 마음에 희망의 씨앗을 뿌려줍니다. 제주 바다와 환경을 살리기 위해 서울 소녀 청비와 고양이 세 마리가 펼치는 모험을 그린 그룹 ‘사부작당’의 어린이를 위한 환경 소리극 <청비와 쓰담 특공대>(5월 15일/크라운해태홀)입니다. 많은 사랑을 받았던 <향기장수 이야기>에 이어 ‘사부작당’이 세상에 내놓는 두 번째 소리극 <청비와 쓰담 특공대>가 어린이와 가족 모두에게 우리 소리극의 즐거움을 선사할 것입니다.
사부작당 <청비와 쓰담특공대> (5월15일/크라운해태홀)
사부작당 <청비와 쓰담특공대> (5월15일/크라운해태홀)
사부작당 <청비와 쓰담특공대> (5월15일/크라운해태홀)

세상을 바꾸고자 노력한 그녀들

송나라 태종 시절, 억울하게 부모님을 여의고 울분 속에 휩싸인 여성 정수정, 남자 옷을 입고 변장해 몰래 무과에 급제하여 군관이 된 후, 전쟁에 나가 큰 공을 세운 정수정, 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에 적극적으로 맞서 자신만의 주체적 삶을 살아낸 여장부 정수정의 이야기를 다룬 조선 후기 소설 <정수정전>(5월 11일/크라운해태홀)을 그룹 ‘창작하는 타루’에서 소리극으로 만들었습니다. 20여 년간 소리극계를 가장 앞자리에서 이끌며 활동해 온 ‘창작하는 타루’의 <정수정전>은 오늘 우리들의 소리극의 빛나는 표상을 보여줄 겁니다.
창작하는 타루 <정수정전> (5월11일/크라운해태홀)
창작하는 타루 <정수정전> (5월11일/크라운해태홀)
창작하는 타루 <정수정전> (5월11일/크라운해태홀)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서 중국음식점 배달원을 하던 배달순, 그는 광주 유일의 여성 배달원이자, 최고의 배달 실력을 자랑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광주항쟁의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배달순이 광주시민들과 함께 목숨을 걸고 나선 숭고하고도 치열했던 짜장면 배달 투쟁의 순간을 1인 판소리극으로 그린 ‘방탄철가방’이 선보일 <방탄철가방-배달의 신이 된 여자, 배달순>(5월 18일/크라운해태홀)이 다시 찾아옵니다. 2014년 초연 후 꾸준히 공연되었던 <방탄철가방-배달의 신이 된 사나이>가 10년이 지난 올해 주인공을 여성으로 바꾸고, 여성 소리꾼의 1인극으로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소리와 연기에 있어 자타가 공인하는 실력 있는 소리꾼 정상희가 배달순 역으로 나섭니다.
소리꾼 정상희
방탄철가방 <방탄철가방-배달의 신이 된 사나이>

‘열사가 되어 역사에 남은 그녀들

20세기에 들어서며 <최병두 타령> <열사가> 같은 창작판소리가 만들어지면서 판소리 창작의 시대가 열립니다. 이 중 <열사가>는 항일운동의 상징적 영웅인 이준·안중근·윤봉길·유관순의 이야기를 박동실(1897~1968) 명창이 만든 창작판소리입니다. 이번 축제에는 3‧1운동에 참여하고 고향에 내려가 만세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다가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목숨을 건 저항 끝에 생을 마감한 유관순의 이야기를 다룬 창작판소리를 공연합니다. 창작판소리 <유관순 열사가>(5월 9일/야외마당)를 이 소리를 올곧게 이어온 김수미 명창이 소리합니다. 또한 공연을 마친 후 판소리 연구자인 안나 예이츠 교수가 모더레이터로 참여해 김수미 명창과 작품의 의미를 톺아보는 소중한 시간을 갖습니다.
<유관순 열사가>의 김수미 (5월9일/야외마당)
<별에서 온편지_김학순歌>의 정세연 (5월16일/야외마당)
일본군 위안부를 세상에 최초로 증언한 인권 운동가 김학순 할머니. 그의 숭고한 삶과 증언 후 여러 할머니께서 용기를 내어 일본군의 무자비한 폭력을 증언하게 되고,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며 역사를 바로 세우길 요구하게 됩니다. 이렇게 세상의 불의한 억압을 이기면서 정의로운 역사를 새로 쓰고 여성인권 운동가로 다시 삶을 살아낸 김학순 할머니의 이야기를 그려낸 작품, 그룹 ‘우리소리 모색’의 소리꾼 정세연의 <별에서 온 편지_김학순歌>(5월 16일/야외마당)까지.
 
이렇게 2024년 남산소리극축제는 좀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삶을 산 ‘싸우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소리극 네 작품과 창작판소리 두 편을 모아봤습니다. 이제부터 불의에 맞서 싸운 여자들의 ‘썰舌’을 풉니다. 어서들, 이 뜻있는 판에 구경 오세요.
최용석
진솔한 삶의 이야기가 판소리와 소리극으로 퍼져 나가길 바라는 소리꾼이다. 판소리공장 바닥소리의 대표(2002~2018)로 창작판소리와 소리극을 만들었다. 현재는 소설가 김탁환과 창작집단 싸목싸목을 결성해 창작·연출 활동 중이다.
사진제공 서울남산국악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