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가을   山:門 PEOPLE

프리뷰│서울돈화문국악당 [월드뮤직그룹 공명 'With Sea']

김학선
발행일2023.06.29

두드림의 울림 따라, 
바다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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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0월 7일, 연세대학교 노천극장에서 공명의 공연을 처음 봤다. 음악을 들은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낯선 이름, 한낮의 야외 무대. 객석을 집중시키기엔 조금 어수선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공명이 무대에 서고, 객석의 청중이 그동안 들어온 음악과는 다른 소리를 들려주자 어수선함은 곧 호기심으로 바뀌었고. 호기심은 이내 집중과 환호로 이어졌다. 대부분 사람이 나처럼 공명을 그날 처음 만났을 것이다. 공명은 그 처음을 특별하게 만들 줄 알았다.
 
더 특별했던 건 공명이 이날 선 무대였다. 그 무대는 의류 기업 쌈지에서 주최한 쌈지사운드페스티벌이었다. 음악 팬들 사이에선 ‘쌈싸페’라 불리던 그 음악 축제는 지금은 명맥이 끊어졌지만, 대형 음악 페스티벌의 원형을 제시하고 야외 음악 축제의 즐거움이 어떤 건지를 경험하게 해준 귀중한 행사였다. 쌈지사운드페스티벌 무대에 서는 음악인들은 대부분 대중음악을 하는 예술가들이었다.
공명이 출연했던 1999년 쌈지사운드페스티벌

‘창작타악그룹’에서 
‘월드뮤직그룹’으로

그런 대중음악 축제에서 공명의 무대는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공명의 공연에는 ‘특별한 처음’이란 제목이 붙었다. 그 특별했던 처음을 보여준 공명은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이후로도 쌈지사운드페스티벌 무대에 몇 차례 더 섰다.
 
대중음악 사이에서 생소한 타악기와 국악기를 가지고 객석의 반응을 끌어낸 건 공명의 음악이 현장에서 장르의 구분 없이 공명(共鳴)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단단한 소리의 합으로 분위기를 에너지 넘치게 바꾸었고, 때로는 서정적으로 무드를 만들어냈다. 이는 1997년 데뷔해 올해로 활동 26년째를 맞는 공명이 지속해 이루어 온 성취였다. 처음 등장할 때 타악 전문 그룹으로 자신들을 소개했던 공명은 ‘쳐서 울린다(攻鳴)’와 ‘함께 울린다(共鳴)’는 중의적인 의미로 이름을 풀이했다. 여기에 ‘함께 밝아진다(共明)’는 뜻을 추가하며 그룹의 음악적인 지향을 확실하게 드러냈다.
 
공명이 좀 더 특별했던 건 비록 전통음악의 범주 안에 있었지만 꾸준하게 창작 활동을 해왔다는 것이다. 2001년 발표한 앨범 <통해야>를 시작으로, <어느 날 목이 긴 기린의 꿈을 꾸다>(2004), <Deep Sea>(2007), <고원>(2014) 등의 앨범을 발표했다. 그러면서도 꾸준히 음악적 변화 혹은 발전을 꾀했다.
월드뮤직그룹 공명
월드뮤직그룹 공명
월드뮤직그룹 공명
월드뮤직그룹 공명
공명은 처음 등장할 때 자신들을 ‘창작타악그룹’이라 칭했다. 하지만 지금은 공명 이름 앞에 ‘월드뮤직그룹’이란 수식어를 붙인다. 타악그룹이라는 한정된 수식어 대신 월드뮤직이란 더 넓은 표현을 붙인 것이다. 이는 곧 전통음악 그룹이라는 범주 혹은 선입견을 벗어나겠단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분명 그들의 음악은 전통음악이라는 틀에만 두기엔 더 넓었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전통음악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음악적 실험을 공명은 26년 전부터 고민하고 실행해왔다.
 
<Deep Sea>는 그 근거로 내세울 수 있는 좋은 앨범이었다. 그리고 그간의 역사와 변화가 담겨 있는 앨범이기도 했다. 초창기 타악기와 대금 정도에 머물렀던 음악은 이제 훨씬 더 다양한 악기를 통해 폭이 넓어졌다. 선율이 있었고, 에너지가 있었고, 무드가 있었다. 말하자면 좋은 감상용 앨범이기도 한 것이다. 단순히 현장의 에너지만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장의 디스크 안에 자신들의 세계를 담아낸 것은 공명의 특별함이었다. 이는 앞서 말한, ‘최근 유행하고 있는 전통음악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음악적 실험을’ 하는 팀들이 모두 고민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렇게 공명은 좋은 앨범을 갖고 있으면서 현장의 에너지까지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 팀이 되었다. ‘쌈싸페’ 때 공명이 객석의 호응을 끌어낸 데는 음악의 매력도 있었지만, 그들이 무대 위에서 연출한 퍼포먼스도 있었다. 이 무대 위에서의 힘은 수많은 해외 페스티벌과 아트 마켓의 프로그래머들을 매료시켰다. 더없이 집중케 하는 힘이 있었고, 모두를 즐겁게 하는 유쾌함이 있었다. 무대 위에서도 그들은 변화하고 발전해왔다. 90분간의 쇼를 그들은 완전하게 책임질 수 있게 되었다.
 

서울 돈화문 앞에
공명의 바다가 펼쳐지다

서울돈화문국악당에서 선보이는 <With Sea> 공연은 이미 몇 차례 선보인 공명의 대표 레퍼토리다. 음반 <Deep Sea>로 들려줬던 것처럼 공명은 바다를 비롯한 자연에 대한 이야기를 음악으로 많이 표현해왔다. 이는 지구와 인류에 대한 이야기로 점점 더 확장해간다. <With Sea>는 1995년 유조선이 암초에 부딪혀 침몰하면서 원유 유출 피해를 본 전라남도 여수 소리도를 배경으로 창작한 공연이다. 공연에는 기름 유출의 아픔도 있고, 바다의 아름다움도 있고, 큰 파도가 주는 위압감도 있고, 알 수 없는 바다 깊은 곳 저 심연의 세계도 있다.
전자장구를 활용한 공명의‘심해’
공연은 마치 하나의 주제로 펼쳐지는 한 장의 콘셉트 앨범 같다. 국악기를 비롯해 다양한 나라의 악기가 함께 앙상블을 이루는 사운드는 마치 과거 아트 록 밴드들이 들려줬단 진보적인 형식과 유사해 보인다. 생각해보면 세월의 차이가 있을 뿐, 1970~80년대 아트 록 밴드들이 들려줬던 음악에는 그 나라의 전통 악기를 기반으로 한 사운드도 자주 등장했다. 특이한 건 잠시 시선을 끌 순 있다. 하지만 오래 그 시선을 붙잡아 두진 못한다. 또 한 번 전통음악 기반이 팀들이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공명은 오랜 시간 그 고민을 해결하려 큰 노력을 해왔다. 앨범 <Deep Sea>가 그랬고, 공연 <With Sea>가 그랬다. 공통으로 바다를 이야기한다. 누구나 연상할 수 있는 ‘바다’의 이미지를 가지고 ‘함께 울’ 수 있는 음악을 만들어왔다. 내가 공명을 처음 본 23년 전부터, 공명이 처음 활동을 시작한 26년 전부터, 그들은 그래왔다.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EBS <스페이스 공감> 기획위원, 멜론 <트랙제로> 전문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밖에도 여러 매체에서 글 쓰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