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좌담을 시작하기 전, 각자 진행해 온 배리어프리 작업을 소개해 주세요.
최민호 | 아쉽게도 서울남산국악당은 배리어프리에서의 큰 실적이 없어요. 작년에 천하제일탈공작소가 서울남산국악당에 올린 <열하일기>가 배리어프리 공연으로 진행됐습니다. 이외 아직까지 이뤄낸 성과는 없지만 앞으로 방향을 잘 잡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서 이번 좌담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송경근 | 저는 월드뮤직그룹 공명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12년에 한 선배가 장애인사물놀이 '땀띠'의 10주년 공연을 도와달라고 부탁했어요. 당시에는 '배리어프리'라는 단어도 잘 몰랐죠. 그저 10주년에 초점을 맞춰서 공연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땀띠는 사물놀이만 하던 단체인데요. 공명의 월드뮤직 성향을 더해 관객과 소통하는 형식의 공연을 올렸어요. 땀띠 연주자들의 개인기를 보여줄 독주 장면을 넣었는데요. 관객들이 조금 불편해하더라고요. 그때부터 땀띠에 대한 연구를 본격 시작했고, 땀띠와 더 좋은 공연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 땀띠와 두 장의 앨범을 발매했고, 창작공연을 지속적으로 선보이고 있죠. 또한 ‘공간서리서리’라는 단체를 만들어 <미스틱 밤부>(MYSTIC BAMBOO)라는 배리어프리 전시를 기획해 선보였어요.
오세형 |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은 2014년에 창립되었습니다. 본격적인 사업은 3~4년 전부터 시작한 것 같아요. 그전에는 이음센터 시설 운영을 주로 했고요. 최근에는 장애인 전용 공연장 설립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장애인에게 전용 공연장은 버겁다며 반대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아마 올해 말에는 개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무장애''배리어프리''접근성' 같은 용어들이 자주 쓰이잖아요. 장애인에게 자연스러운 공간을 제공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영묵 | 사단법인 '빛소리친구들'은 대한민국장애인국제무용제를 운영하고 있어요. 장애인 무용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서울과 인천에서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고요. 이 스튜디오에는 총 100명 정도의 장애인 예술가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세계 공연계에서 배리어프리 이야기가 나온 지는 50년 정도 됐는데, 한국은 이미 50년 늦었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대한민국장애인국제무용제는 7회를 맞았습니다. 이 무용제에는 유럽, 미국, 동남아 등 다양한 나라의 예술가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쪽 단체만 참여하면 올림픽이라는 얘기가 들리니 작게나마 뿌듯합니다.
박용휘 | 천하제일탈공작소는 지속적으로 배리어프리 공연을 해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연할 때 '배리어프리'라는 단어를 쓰지는 않아요. 이 단어가 우리에게 맞는지 안 맞는지 여전히 고민하고 있어요. 2020년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오셀로와 이아고>를 준비하던 중 갑작스럽게 코로나가 닥쳐왔어요. 온라인 생중계로 전환하면서 문자해설과 화면해설, 수어통역이 함께하는 배리어프리 공연으로 진행했습니다. 탈춤은 신분의 높고 낮음, 남자와 여자, 남녀노소,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가 함께 즐기는 판을 추구합니다. 예산이 들더라도 배리어프리를 포함하여 제작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2021년에 서울남산국악당에서 선보인 <열하일기>에서는 수어통역사가 함께 하여 탈춤꾼과 동선을 같이하는 방식으로 작품의 의미를 더 정확하게 전달하려고 했습니다. 올해 고양문화재단과 함께한 <아가멤논>도 배리어프리 공연으로 진행했습니다. 현재 고민하는 지점은 배리어프리를 서비스로 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걸 넘어설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중장기사업 지원금을 받아서 장애 창작자와 함께하는 작품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어떤 계기로 배리어프리 감수성에 눈을 떴는지 궁금합니다.
송경근 | 두 가지 계기가 있었는데요. 땀띠 10주년 공연 때 많은 관객이 불편함을 얘기했는데, 왜 불편해하는지 이해가 안 됐어요. 그때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높은 벽을 체감했죠. 아버지가 최근에 장애가 생기셨는데, 저는 만약 아버지가 불편한 몸으로 공연에 오르면 자랑스러울 것 같거든요. 장애와의 연결고리가 없으면 분명 경계가 생기는 것 같아요. 두 번째 계기는 땀띠와의 연습 현장에서 발생했어요. 당시 연습실이 천호동 지하에 있었거든요. 뇌병변장애를 갖고 있는 연주자의 어머니가 연주자를 업고 위층 화장실에 올라가다가 무게를 못 견디고 계단에서 떨어진 거예요. 배리어프리 작품을 만들면서, 우리 안에 배리어프리를 생각 안 했다는 걸 깨달았죠. 이후 휠체어가 편하게 올 수 있는 공간을 찾아다니며 연습했습니다.
최영묵 |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되던 무렵부터 문화예술 파트에 대한 관심이 있었어요. 문화예술에서의 벽이 무너지면 장애인 차별이 사라진다는 신념이 있었죠. 대한민국장애인국제무용제를 준비할 때 한 교수가 “왜 장애인이 이 극장을 쓰냐”고 하더군요. 작품으로 검증된 부분이 있어서 올린 건데도 말이죠. 특히 무용 장르에서 장애 무용수가 드물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후 용인대 특수체육교육과 이인경 교수가 장애인 휠체어 무용에 관한 논문을 쓰고 있다는 얘기를 들어서 그와 많은 도움을 주고받기도 했습니다. 몇 년 뒤에서는 같이 협업하자고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어요.
오세형 | 예전에 만난 한 연출가가 떠올라요. 연출가 한 분이 장애예술만의 고유 감수성을 발견했다고 했어요. 그것이 창작 요구에 불을 댕긴 거죠. 이처럼 특정 장르가 형성될 때 여러 매개자들이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아까 최영묵 대표가 “세계 공연계에서 배리어프리 이야기가 나온 지는 50년 정도 됐는데, 한국은 이미 50년 늦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하셨죠. 해외에서 열린 배리어프리에서 큰 영감을 받으신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오세형 | 2018년에 영국에서 개최되는 장애인 예술 프로젝트 ‘언리미티드 페스티벌’에 참여했는데요. 이 축제는 모든 것이 자연스럽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문화 다양성을 예술로 받아들이고, 사회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인상을 받았죠. 한국에서 ‘배리어프리’는 늘 특별한 콘셉트였잖아요. ‘언리미티드 페스티벌’을 보면서 국내에서도 이러한 프로그램이 적극적으로 펼쳐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 관련 사업도 만들고, 온라인 웹진을 통해 리서치를 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송경근 | 홍콩에서 열린 배리어프리 페스티벌이 인상 깊어요. 역사는 얼마 안 된 페스티벌인데요. 인상 깊었던 점은 관객이 페스티벌까지 걸어오는 모든 과정에 배리어프리가 있는 거예요. 우리나라에서는 장애인들이 극장에 왔을 때 수어나 점자를 제공하여 공연을 보도록 하는 것에 초점을 두지만, 실제로 장애인 관객이 인터미션 때 공연장 밖에서 휴식을 취하기가 어렵고, 공연장까지 오는 과정부터 여러 힘든 점이 있으니까요.
각자 장애예술가와 어떠한 협업을 이루어나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아울러 관객은 이러한 작품의 메시지를 어떻게 받아들이나요?
박용휘 | 천하제일탈공작소는 배리어프리 서비스를 제공하다가 내부적으로 고민이 생겼어요. 전통탈춤 대표 레퍼토리를 보면 장애인을 표현하는 춤이 많아요. 이 춤에 대한 내부적인 질문들이 나오기 시작한 거죠.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표현하는 춤을 춰도 될지에 관해서요. 불편함을 느끼는 관객을 만나며 이 춤을 추는 이유에 대해 진심으로 생각해 보고, 언젠가 멈춰야 한다는 인식도 생겼어요. 오는 7월에는 장애인 창작자와 이에 대한 고민을 나누는 공연을 토론회 형식으로 진행해 보고자 해요.
최영묵 | 장애인 당사자도 헷갈리는 문제이긴 합니다. 예컨대 장애인을 다루는 영화에 장애인이 출연한다고 해요. 다른 역할은 다 제외하고 장애인 역이니까 장애인에게 맡기는 것에도 사실 물음표가 생깁니다.
송경근 | 최근에 연극을 만들었는데요. 음악 반주로 땀띠가 참여했어요. 보통 장애인 공연은 홍보 때부터 '장애인이 참여한다'는 걸 밝히잖아요. 이 작품은 굳이 장애인과 함께한다는 걸 노출하진 않았죠. 그런데 막상 작품이 시작되고 관객이 장애인 예술가를 보며 수군거리더라고요. 그러다가 공연 중에 땀띠 멤버에 관하여, 이들이 어떤 이들인지 내용을 전달해요. 그러면 그제야 관객이 공연을 잘 이해하더라고요. 평론가들도 전형적인 틀을 벗어나서 좋았다는 평을 주었고요. 땀띠를 배려하며 공연을 준비했는데, 막상 제가 땀띠의 도움을 받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요즘 생각하는 건 '몰라주는 배리어프리'입니다. 배리어프리를 강요하기보다는 당연히 있어야 하는 걸로 인식되기를 바랍니다. 장애예술가들에게 던지는 말 중 여러 말실수가 있어요. 예컨대 '장애인이지만 잘 한다'는 표현이 그러하죠. 공연을 잘 끝내도 생각 없이 뱉는 말들 때문에 오히려 상처가 되기도 하니까 늘 조심해야 합니다.
최영묵 | 한 번은 진주에 장애인 무용수들을 데리고 진주검무를 배우러 갔어요. 그런데 휠체어를 타고 검무를 배우는 사람들에게도 자신들이 사사한 그대로 전수하려고 하는 거예요. 어려운 부분은 창의적으로 바꿀 수도 있을 텐데 말이죠. '전통'이라는 이유로 못 바꾸게 아니까 답답했어요. 넓은 생각을 가지면 좋겠어요.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는 장애예술을 위한 전용 극장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서울남산국악당도 배리어프리 시설에 관한 고민이 깊어 보이고요. '접근성'에 관한 다양한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오세형 | 배리어프리와 장애예술은 분리가 되어야 할 것 같아요. 배리어프리는 접근의 한 방법이고요. 장애인 예술은 이제 다른 범주로 넘어가는 중이죠. 영국은 정책적으로 일반성이 뚜렷해요. 장애인 예술을 목표로 성과를 냈고 다른 나라의 모범 사례가 되기도 했죠. 당연히 배리어프리 서비스도 전적으로 제공하고요. 국내에서도 환경과 여건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장애인 예술가 전용 공연장 건립을 추진한 거예요. 신축은 아니지만 다행히 서울 구세군 빌딩(충정로)을 임대해 리모델링하고 있어요. 무대와 분장실, 샤워실 모두 다 일렬로 배치해 이동 제한이 없는 환경을 만들 거예요.
최민호 | 이제 시설은 이야기할 단계를 넘었다고 하지만, 서울남산국악당은 극장 시설 개선부터 시도해보려 합니다.
오세형 | 해외에서 느낀 건데 오래된 학교를 배리어프리 공연장으로 개조한 경우를 봤어요. 그 극장으로 오는 분들이 놀라면서 입장하더군요. 남산골한옥마을 안에 위치한 서울남산국악당도 장애인이 잘 들어올 수 있도록 개조하면 공간이 주는 감동이 더 커질 거예요.
최영묵 | 공간을 새롭게 만들기도 하지만, 기구를 사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죠. 우리나라의 둘레길에는 트래킹 기구가 되게 많은데요. 이처럼 극장을 무조건 리모델링한다는 극단적 접근보다는, 유형별 장애를 파악하여 적합한 기구를 설치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간과하는 것 중 하나가 장애 유형이 다양하고 많다는 점이에요. 예를 들어 바닥에 시각장애인 점자가 있으면 뇌성마비장애인이 그것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거든요. 각 극장마다 장애 유형을 파악해 선택과 집중을 하면 어떨까요.
시설도 시설이지만, 아직 국내에서는 배리어프리 서비스에 관한 좋은 모범 사례가 부족하여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오세형 | 배리어프리 '서비스'는 하면 되는 거고, 이러한 서비스는 앞으로 계속 확충될 겁니다. 국공립극장에서도 배리어프리 감수성을 반영하고 있는 기관이 많아요. 최근에는 국립극단이 배리어프리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고요. 새롭게 지어지는 장애예술 전용홀에는 일명 '접근성 매니저'를 둘 예정이고요. 접근성 매니저는 장애인이 홈페이지나 전화로 문의를 하면 어떤 장애인지 체크하여 공연장을 떠날 때까지 전적으로 케어하는 거예요. 아직 많이 활성화되지 않은 발달장애를 위한 공연도 기획하고 있죠. 이러한 움직임은 분명 다른 극장으로도 확산될 거예요. 배리어프리가 기본적인 시민 서비스로 자리 잡을 수 있을 때까지 서포트 할 생각입니다. 사실 배리어프리 서비스는 아직까지는 수도권에 맞춰져 있는데요. 앞으로는 지역 공연장과 전시장에서도 배리어프리가 실천될 수 있도록 모색하고자 해요.
박용휘 | 공연을 해보면 결국 장애인들이 공연장 오기까지의 서비스도 필요하거든요. 하우스 팀에서도 할 수 있는 방식을 새롭게 정의할 필요가 있죠.
최영묵 | 하우스 매니저들이 휠체어가 오면 케어해주긴 하지만, 사실 휠체어를 위한 객석 자체가 몇 개 업는 게 현실이죠. 이러한 문제 제기를 통해 아르코예술극장은 휠체어석을 구비하게 되었습니다.
박용휘 | 천하제일탈공작소도 배리어프리 공연에 관한 홍보를 해야 했는데, 배리어프리가 여러 사람들에게도 새롭게 접근할 수 있는 요소가 될 것 같아서 전면 홍보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점점 그런 용어를 잘 안 쓰게 되었어요. 한예로 <열하일기> 작품을 할 때 시각장애인분들이 탈을 만져볼 수 있게끔 전시하려고 했는데, 오히려 이러한 배려와 안내가 그들을 차별하는 요소가 될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솔직히 비장애인으로 세상을 살아와서 그런 부분이 상처가 되는 줄 몰랐어요.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면 분명 고민해야 하는 것 같아요. 상처 주는 홍보는 바람직하지 않죠.
최영묵 | 이런 점들은 결국 잘하려다가 생기는 문제이잖아요. 진정성이 있으면 겁내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미래의 배리어프리 환경은 어떠해야 할까요? 전통예술에 필요한 배리어프리의 지원제도도 구축되면 좋겠습니다.
최영묵 | 각 극장마다 장애인 지원에 관한 인센티브가 있으면 어떨까요. 인센티브가 있어야지 더 자발적으로 하게 될 것 같아요.
오세형 | 쿼터제를 법안으로 준비 중인데요. 어느 정도까지 수정될지 모르겠지만, 장애인 배려 부분이 확실히 확충될 것 같아요. 배리어프리 서비스는 목표가 아니라 환경을 만드는 거예요. 성소수자나 북한이주민 같은 사회 소수자로 인해 같이 사는 모두에 대한 사회 통합의 메시지가 있잖아요. 장애인도 그런 의미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관점이 변화하는 중이라고 생각해요. 그 스펙트럼이 장애인의 목소리를 다양하게 적용하는 걸로 진정되면 더 좋겠고요.
최영묵 | 비장애인 한 명이 극장에 온다면, 장애인은 두세 명이 함께 와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혼자 이동하기가 어려울 때가 많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장애인의 가족들도 수용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을 거예요. 여러 수상제도 같은 것을 제정하여 가족들에게도 격려하면 어떨까 싶네요.
최민호 | 서울남산국악당은 현재 배리어프리 현상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찾아서 접근하다 보니까 결국 문화 다양성 부분까지 고민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걸 어떻게 구현하면 좋을지 이제 실행의 문제에 도달했는데, 이 부분에 대하여 깊게 생각하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