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가을

특별좌담│한옥, 전통예술을 위한 새로운 극장으로

진행·책임편집 송현민 (음악평론가) 정리 이지혜
좌담 김지욱, 김동환, 김진이, 이재원
발행일2023.09.18

한옥,
전통예술을 위한 새로운 극장으로

 

8월 17~19일에 서울남산국악당 일대에서
‘기담야행-망혼일 축제’가 있었다.
‘밤마실 투어형 공연’을 표방한 이번 야행(夜行)은
걷기-듣기-보기가 결합된 공연 콘텐츠로,
한옥과 공연장의 ‘어둠’이 전통 공연예술을
새롭게 ‘빛’ 나게 하고,
관객들에게 색다른 체험을 제공했다.

남산골한옥마을은 2017년부터 한옥마을 내 공간과 국악당을 활용한 밤마실 콘텐츠를 선보여오고 있다. 2017년에는 120년 전의 남산골로 안내했고, 2018년 개화기 청춘남녀들의 시각으로 셰익스피어를 재해석했는가 하면, 2019년에는 연암 박지원을 찾아가는 여정을 국악·산책·연극이 어우러지도록 했다. 
코로나로 인한 휴지기를 끝내고 다시 고개를 든 ‘밤마실’을 살펴보며, 전통 ‘공간’과 전통 ‘공연’이 상생할 수 있는 문화 지도를 그려보았다. 좌담에는 이번 밤마실의 기획자부터 참가 예술가, 관람자가 함께했다.     
 
김지욱┃서울남산국악당과 서울돈화문국악당을 총괄하는 (주)인사이트모션 사업부문 대표이다. 
김동환┃연희집단 연희점추리 대표이자 세한대(전통연희학과/탈춤) 출강 중이다. 
김진이┃2022‧2023년 ‘남산골 밤마실’을 기획했으며, 서울변방연극제 예술감독이다. 
이재원┃궁중문화축전 예술감독을 역임했고, 현재 정선아리랑제 총감독을 맡고 있다.     


‘기담야행
-망혼일 축제’(2023)를 돌아보며

남산골 밤마실 투어형 공연인 기담야행-망혼일 축제는 어떤 과정과 목표로 기획진행되었나요
김진이┃밤마실 기획을 제안받고 남산골한옥마을과 서울남산국악당과 인근을 둘러보면서 공간의 특색을 활용한 공연과 콘셉트를 자연스레 상상하게 되더군요. 예전의 밤마실은 공연단체가 제시하는 스토리와 여정을 따라가는 형식이라면, 작년(2022)과 올해(2023)는 국악당과 그 일대를 중심으로 다양한 국악 공연을 관객이 만날 수 있도록 했습니다(작가 정은영‧연출 송정안). 특히 작년에는 국악당 내 5개 장소를 정하고, 특색에 맞는 예술가들을 섭외했고, 10월이라서 ‘조선의 핼러윈’(남산골에 깃든 귀신 이야기)이라는 콘셉트로 잡아 보았죠. 
 
밤마실은 꾸준히 진화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기존 밤마실과의 차별점이나 올해(2023)만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김지욱┃기존 밤마실과 달리 올해는 동선을 바꿔보기 위해 국악당과 그 일대를 중심으로 잡았습니다. 작년에는 관객들의 참여 방법이 ‘관람’ 중심이었다면, 올해는 프로그램에 직접 ‘참여’하는 방향이었는데, 관객 반응은 올해가 더 좋았습니다. 
김진이┃올해는 공연 시기도 여름(8.17~19)이라 음력 7월에 있는 망혼일(망자의 혼을 위로하는 날)을 콘셉트로 국악당 내부를 투어 하는 이야기로 만들었습니다. 특히 김동환 대표가 이끄는 단체 ‘연희점추리’의 협업 덕분에 관객이 더 가깝게 즐길 수 있는 공연 콘텐츠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김동환┃전통예술의 연희에는 귀신이나 도깨비 같은 캐릭터들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제안받았을 적에 이런 캐릭터들을 공간과 자연스레 연결 지을 수 있을 거라는 재미난 생각이 들었고, 실제로 이 캐릭터들을 활용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다만 기존 공연과 달리 공연 콘텐츠가 관객들의 참여와 체험의 일부로 완성되다 보니 완성도를 높이고 싶은 예술가 입장에선 아쉬움으로 남은 점들도 있었습니다.            

전통 ‘공간’을
전통 ‘공연’이 품을 때

한옥 같은 전통 건축물이 어느새 새로운 형태의 공연을 생산하고 관객을 불러들이는 공간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밤마실 외 서울 곳곳에서도 전통 건축물을 이용하고 응용한 공간 콘텐츠가 성행하고 있습니다잠시 밤마실 외 다른 공간의 이야기로 마실 가보겠습니다.
이재원┃궁중문화축전(2023‧봄)에서도 창덕궁 낙선재에서 관객참여형 공연 ‘낭만궁궐 기담극장’(4.30~5.3)을 선보였습니다. 고(古) 소설 ‘현씨양웅쌍린기’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들었는데, 재미뿐 아니라 고증과 검증도 거쳐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낙선재는 국가 보물이기에 공연이 끝나면 장비도 철수하고 다음 날 새로 설치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관객들의 반응은 너무 좋아 50명에서 70명으로 확대 모집했고, 마지막 공연은 1백여 명과 함께했습니다. ‘시간여행, 영조, 홍화문을 열다’(5.2/창경궁 일원)도 있었습니다. 창경원의 창경궁 환궁 40주년을 맞아 영조의 오순 어연례(50세 생일잔치)를 재연했는데요. 어연례 결정 과정을 연극으로 연출한 관객참여형 공연이었습니다. ‘나라가 이렇게 힘드니 생일잔치를 하지 않겠다’라는 영조와 입장이 다른 신하들 사이의 이야기를 창경궁 일대를 무대 삼아 2백여 명의 배우가 함께했습니다. 
김지욱┃2013년에 운현궁 내에서 ‘이동형 창극’을 표방한 ‘란(蘭)’을 선보인 적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대원군과 조선의 여류 명창 진채선의 이야기로, 궁 내 여러 건물을 이동하며 극이 진행되었습니다. 이처럼 공연 콘텐츠에 영향을 주는 한옥은 남산골한옥마을 내에도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공간에 깃든 이야기와 역사를 바탕으로 해도 좋지만, 한편으로 공간을 이용하되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공연자의 시선으로
전통 건축물을 바라볼 때

전통예술은 전통 공간을 새롭게 변화시키고공간은 공연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는 것 같은데요그렇다면 이러한 공간을 바라보는 오늘날의 시선은 어떠해야 할까요?
이재원┃다양한 시각이 필요합니다. 많은 사람이 한옥과 관련해 ‘휴식’이나 ‘자연의 미(美)’를 떠올리지만, 이 조용한 공간에서 록 페스티벌도 상상해 볼 수 있거든요. 무엇보다 한옥은 사람과 공존하는 건축물이기에 사람과 함께 하며 호흡할 때 건축의 건강성이 유지됩니다. 그래서 공연을 통해 사람들이 머무르게 할 필요도 있어요. 
김지욱┃한옥에는 사람의 온기가 있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합니다. 일례로 한옥의 온돌을 계속 사용해야 건축물의 건강이 오래간다고도 하고요. 이러한 맥락에서 남산골한옥마을과 서울남산국악당은 예술-사람-공간이 공존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습니다. 일례로 작년(2022)에는 ‘남산골아트랩 非틀다’ 시리즈로 한옥마을 내 이승업가옥에서 조원 작가의 ‘공간비틀기’전(10.25~11.20)를 갖기도 했습니다. 한옥을 전시장으로 삼은 것이었죠. 이처럼 전통과 현재, 사람과 공간을 맞붙일 기획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공간은 공연에 새로운 아이디어의 제공처이기도 하지만한편 공연을 위해 전문화된 공간이 아니기에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아쉬운 점도 있을 것 같은데요밤마실의 경우는 무엇이 있었나요?
김동환생각해보면 어느 순간부터 전통예술이 ‘공간’으로부터 외지인 취급을 받는 느낌이 들 때가 있었어요. 그게 마당이었을 때도, 혹은 실내일 때도 전통예술이 이제는 ‘고향’을 오랫동안 떠나 버린 어색함이 느껴집니다. 그래서인지 밤마실을 준비하면서 남산골한옥마을‧서울남산국악당과 어울리는 캐릭터를 찾는 게 어려웠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민속촌’이라고 하면 우리는 방송미디어를 통해 접한 처녀 귀신, 욕심 많은 양반 등을 쉽게 떠올리는데, 남산은 좀 달랐어요. 특정 공간이 공연 공간으로 자리 잡으려면 이러한 점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연희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계기도 있었어요. 공간을 이동하며 관객을 이끄는 배우의 역할도 중요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사실 굿이나 탈춤에서 관객과의 상호 호흡을 조절하고 연출하는 꾼의 역할이 중요한데, 이번 밤마실을 통해 오늘날 필요한 연희의 기술이 무엇인지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공간과 연결되는 캐릭터까진 생각하지 못했는데요생각해 보니 이러한 특정 캐릭터가 어떤 공간에 몰입하게 하는 좋은 안내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김동환┃외국의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가본 적이 있는데요. 하나의 거대한 세계이자, 공간을 대변하는 세계관과 그것에 몰입하게 하는 캐릭터가 있더군요. 이에 비해 한국의 놀이공원은 그런 것이 부족합니다. 그런 점에서 국악당과 한옥마을에도 공간을 대표하는 세계관과 캐릭터가 있으면 좋겠더군요. 예를 들어 국악당을 품은 마을이니 소리와 관련된 캐릭터면 어떨까 싶습니다.
김진이┃올해(2023)의 밤마실은 국악당 내 출입 금지 구역, 그러니까 관객이 공연장 외 평소 접근할 수 없는 공간을 활용했습니다. 국악당 내 여러 공간마다 다른 캐릭터를 만들어 설정했고, 이를 스토리텔링화했습니다. 저 역시 여러 캐릭터가 연희나 국악과 잘 맞아떨어지려면 아직은 충분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주 예술가(단체제도를 통해 전통적인 공간에 공연과 인간과 예술을 공존하게 하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요?
이재원┃공연장에서 빛난 예술단체라 할지라도 중요한 것은 공간과의 성격이 잘 맞아야 하고, 공간과 그들의 콘텐츠가 잘 맞물리고 기능할 수 있는 여러 보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준비가 잘되지 않으면 오히려 공간의 특성이 예술가(단체)에게 상상의 자극제가 아닌 굴레가 되기도 할 테니까요. 물론 이러한 것이 잘 될 때 공간과 공연의 협업은 새로운 소비와 경제 형태를 만들 겁니다. 에든버러에 갔을 적에 영국식 펍(Pub)에서 공연을 하는 것을 보았는데요. 그런 장소가 300곳이 넘었고, 이를 통해 새로운 공연 수익 구조를 창출해 나간다는 점에서 부러웠습니다. 

공연에 상상력을 제공할 공간과 특성

전통예술을 통해 전통 공간의 새로움을 발견해야 할 때한옥 내에 어떤 공간에 주목하고 싶은가요
이재원┃한옥 내 ‘마당’이란 참 매력적인 공간입니다. 한옥을 찾는 관객은 다양한데요. 살펴보면 공간이 주는 힐링의 감성에 집중하고, 한옥 내 축제를 찾아오는가 하면, 오히려 축제가 공간의 분위기에 방해가 된다면 오지 않는 이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각각이 즐길 공간은 그냥 두고 마당만 활용하여 판굿 축제를 해보고 싶어요. 매일 다른 테마를 두고 판굿의 다양함과 의미를 관객이 느끼도록 하는 것이죠. 
김진이┃한옥의 ‘방’ 문화가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서울남산국악당은 다른 공연장과 달리 분장실도 온돌방으로 되어 있고, 연습장에서 방석 위에 좌식으로 앉아 작은 소반에 대본 놓고 연습하는 것도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김지욱┃국악당의 모든 방에는 (전기식)‘온돌’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밤마실은 주로 여름에만 했는데요. 이러한 이점을 살려 겨울에도 새로운 공간 체험프로그램을 시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더불어 얼음 위에서 하는 팽이치기 같은 전통놀이도 해볼 수 있겠고요.
김진이┃한옥마을 내 ‘민씨가옥’도 인상적입니다. 한옥은 특별한 무대가 설치되지 않아도 건축물 자체가 이미 ‘특별’하기에 그 공간에 흐를 독특한 이야기극을 만들고 싶습니다. 
김지욱┃저도 ‘민씨가옥’을 배경으로 음악과 연극, 연주자와 배우가 함께 하는 작품을 올려보고 싶습니다. 그들이 방과 방 사이를 이동하며 이야기와 음악을 풀어가고, 관람객들도 그 동선도 따라 마당과 방을 옮겨 다니는 것이죠. 만약 상주예술단이 가능하다면 약 1개월 동안 매일 오전과 오후에 각각 1번씩 공연하면 좋겠습니다. 공연 시간 외에는 민씨가옥에서 그들이 연습하는 모습을 관람객에게 공개도 하고요. 
김동환┃남산골한옥마을과 서울남산국악당에서 밤마실에 계속될 거라면 ‘기술적인 발전’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배우뿐 아니라 첨단 기술을 활용한 독특한 불빛이나 소리가 관객을 이끄는 등등 말이죠. 이렇게 공간과 기술이 접목된다면 관객은 더 큰 재미를 느낄 것 같습니다. 또한 기술적 융합을 통해 공간이 관객에게 반응하는 등 ‘게임적인 요소’가 더해져도 재밌을 것 같고, 참여자의 몰입도도 높아질 것 같습니다. 단, 너무 기술 위주의 콘텐츠가 되어선 안 되겠고요. 그리고 한옥마을에는 반려견과 산책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우리 미술에는 ‘동물’을 소재로 한 회화가 많은데요. 반려견과 같이 할 수 있는 밤마실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진행·책임편집 송현민 (음악평론가) 정리 이지혜
좌담 김지욱, 김동환, 김진이, 이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