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 5호   山:門 FOCUS

탈춤, 세계문화유산으로 나아가는 길

허용호_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
그림정수지_일러스트레이터
발행일2021.03.09

한국의 탈춤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의 등재를 내다보고 있다. 이미 목록에 올라 있어야 했을 것 같은데 아직 아니라고? 그간 어떤 난점과 곡절이 있었던 것인지, 그 등재 신청 과정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오히려 탈춤의 매력과 가치가 새삼 느껴져 온다. 신명 나는 탈춤의 흥과 멋이 전 인류적으로 공유되어 지구를 출렁거리게 할 날이 머지않았다.

탈춤의 등재 신청, 왜 늦어졌나

2020년 12월 연등회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다. 이로써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된 우리나라의 무형유산은 총 21개 종목이 되었다. 등재 종목의 숫자를 가지고 다른 나라와 비교하는 것은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 정신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특정 종목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등재 결정은 우열을 따져 1등의 무형유산을 뽑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등재의 기쁨과 자랑스러움은 경쟁에서 승리한 자의 우쭐댐이 아니다. 물론 우리나라가 21개의 등재 종목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자랑스러워할 만하다. 우리의 특정 공동체가 전승하는 무형유산의 가치를 유네스코 인정하고 세계 인류와 공유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자랑스러운 것이다.

그런데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된 21개의 종목을 살피다 보면, 마땅히 있어야 할 종목이 보이지 않는다. 전 세계 사람들과 함께 그 가치를 공유할 만한 무형유산 가운데 한국의 탈춤은 없는 것이다. 판소리, 줄타기, 농악, 아리랑, 줄다리기, 씨름 등이 등재되었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이상하기까지 하다. 한국의 무형유산에서 탈춤이 갖는 위상과 상징성을 고려할 때, 의외의 사실이다. 이미 탈춤이 등재된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한국의 탈춤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지 않았다.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탈춤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과 어울리지 않는 어떤 결격 사유라도 있는 것인가?

일러스트레이션 ⓒ 정수지
사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등재 제도가 시작된 2000년대 초반부터 탈춤의 등재 신청 논의는 있었다. 탈춤 전승 공동체는 언제라도 신청하면 등재될 것이라는 자신감도 컸다. 하지만 탈춤 전승 공동체 사이에서 등재 신청 방식에 대한 견해가 갈리면서 지체되었다.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탈춤 종목이 13개나 되고, 시도 지정 무형문화재 역시 5종목이 되어 다양한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정 탈춤 공동체의 단독 등재 신청, 북한 지역 전승 탈춤과의 공동 등재 신청, 다른 나라와의 공동 등재 신청 등 다양한 등재 신청 방식이 제시되었다. 어쩌면 탈춤이 가지고 있는 세계적 보편성과 활발하고도 다양한 전승 양상이 등재 신청을 늦어지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탈춤 전승 공동체 아우르기의 과정

자신들이 전승하고 있는 무형유산의 가치를 세계인과 공유하고자 하는 국내 공동체는 적지 않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유네스코의 규정상 2년에 1종목만 신청할 수 있기에, 2019년에 국내 예비 심사 과정을 거쳤다. 이 과정에 탈춤 전승 공동체를 포함한 32개 종목의 전승 공동체가 참여했다. 그리고 2019년 12월 탈춤이 등재 신청 대상으로 선정되었다. 탈춤이 선정된 이유는 무엇보다도 다양한 탈춤 전승 공동체가 하나의 대오를 갖추어 참여했다는 점에 있었다.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13개 탈춤 전승 공동체가 한 목소리를 냈다. 시도 지정 탈춤 종목까지 함께 참여했으면 좋겠다는 문화재청의 권고 사항이 덧붙여지기는 했지만, 탈춤 전승 공동체의 정리된 의견은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의 정신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탈춤의 가시성 증대와 전승 활성화를 위한 미래 전망에 대한 정리된 의견 역시 좋은 평가를 받았음은 물론이다.

<가장무도 - 일상을 위한 일탈>, 2021, 이효녕, 국가무형문화재 제49호 송파산대놀이 중 옴중춤 ⓒ BAKi
국내 예비 심사를 거친 한국의 탈춤 전승 공동체는 2020년 3월 ‘한국의 탈춤’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에 등재 신청서를 제출했다. 신청서 제출을 위해 여러 탈춤 전승 공동체와 세계탈문화예술연맹, 그리고 탈춤 연구자 등이 다시 한 번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나누었다. 그리고 국가 지정 탈춤 13종목 전승 공동체에 더해서 시도 지정 탈춤 5종목 전승 공동체가 ‘한국의 탈춤’이라는 이름으로 신청서를 제출했다. 문화재청의 권고 사항을 받아들인 것이다. 탈춤 전승 공동체 대부분이 등재 신청에 참여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물론 북한 지역의 탈춤 전승 공동체가 빠진 것은 아쉬운 일이기는 하다. 남한 지역에서 전승하는 탈춤이 등재된 이후, 북한 지역까지 아우른 명실상부한 한반도의 탈춤으로 확대 등재 신청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보편적이면서도 드문 전승의 사례

탈을 쓰고 춤을 추거나 말하고 노래하는 방식의 연행은 세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인류 보편의 문화라 할 수 있는 것이 탈을 이용한 연행이다. 한국에서 탈을 이용한 대표적인 연행이 탈춤이다. 한국의 탈춤은 전 세계적 보편성을 공유하면서도 나름의 주목할 만한 점을 가지고 있다. 먼저 한국의 탈춤은 춤, 재담, 노래가 함께 어우러지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춤과 재담 및 노래를 통하여 전달하는 탈춤의 내용이 중세 한국 사회의 부조리한 대상과 주제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종교인의 관념적 허위와 이중성, 양반의 오만함과 무지, 남성 우위 사회의 모순과 서민 생활의 애환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탈춤은 유쾌하고 신명 나게 공론화한다.
일러스트레이션 ⓒ 정수지

이러한 참여예술로서의 탈춤은 관중의 적극적인 참여가 이루어질 때, 그 공연이 완성된다. 때로는 야유하고, 때로는 동조하는 관중과 함께 출렁거리는 공연이 탈춤이다. 우리의 탈춤 전승 과정에서 나타난 젊은이들, 특히 대학생들의 자발적이고도 적극적인 참여는 세계 무형유산의 전승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흥미로운 사례이다. 마당극, 대동제, 그리고 창작연희로 전개되는 창조적 계승의 양상 역시 창의성의 원천으로서 작용하는 무형유산의 역할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된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서 탈춤이 세계인과 공유하려는 것이 바로 이 주목점들이다. 우리가 경험한 탈춤 전승의 경험을 세계인과 공유해보려는 것이다.

사실 탈춤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된다고 해서 생기는 물질적 이익은 거의 없다. 유네스코에서 인정한 무형유산이라 명예만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명예가 함축하는 의미는 적지 않다. 한국의 탈춤이 전 인류 차원에서 공유하고 함께 전승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인정받는 것이다. 또한 우리의 전승 활동이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우리의 경험이 다른 무형유산 전승에 참고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탈춤을 통한 우리 식의 자유와 보편적 평등 지향의 노력을 인정받은 것이고, 전 인류가 그 노력에 연대하고 함께 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충분히 기뻐하고 자랑할 만한 일이다. 눈에 보이는 물질적 이익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뿌듯함을 느끼게 해준다. 

‘한국의 탈춤’ 등재 가능성을 내다보며

유네스코의 일정에 의하면 ‘한국의 탈춤’ 등재 신청은 2022년 12월에 가부가 결정될 예정이다. 2020년 3월에 신청서 제출을 했으니, 등재 심사 과정은 대략 2년이 소요되는 셈이다. 탈춤 전승 공동체가 제출한 신청서를 유네스코 사무국에서 검토하고 평가기구에서 심사를 한 후, 제17차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에서 등재 여부가 최종 결정된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한국의 탈춤’의 등재 여부를 전혀 가늠할 수 없다.
첫째줄 좌로부터, 국가무형문화재 제7호 고성오광대 중 문둥북춤, 제17호 봉산탈춤 먹중춤, 제18호 동래야류 양반춤, 제15호 북청사자놀음 꼽추춤, 둘째줄 좌로부터, 제73호 가산오광대 할미춤, 제2호 양주별산대 연잎춤, 제6호 통영오광대 말뚝이춤, 제13호 강릉단오제 관노가면극 장자마리, 세째줄 좌로부터, 제61호 은율탈춤 목중춤, 국가무형문화재 제15호 북청사자놀음 북청사자, 제34호 강령탈춤 말뚝이춤, 제69호 하회별신굿탈놀이 이매마당 ⓒ BAKi
하지만 그동안의 탈춤 전승 양상과 이를 잘 정리한 등재 신청서의 수준을 고려할 때, 등재 가능성은 크다. 한국의 탈춤 자체가 가진 참여예술로서의 성격, 관중과 함께하며 완성하는 역동적인 공연 방식, 다양한 전승 공동체의 활발한 전승 양상이 그 이유이다. 전 세계 무형유산 전승의 역사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든 젊은이들의 적극적인 전승 활동 참여 또한 탈춤이 등재 가능성을 높여준다. 마당극과 대동제, 그리고 창작연희로 이어지는 다양한 창조적 계승 양상 역시 탈춤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으로 등재될 가능성을 높여준다. 이러한 필자의 전망이 맞아 떨어지길 기원한다.
허용호_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
전통연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전통연희 전반에 걸쳐 연구하며 다수의 논저를 발표했다. 현재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세계유산분과 전문위원이며,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객원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림 정수지_일러스트레이터
색연필, 수채화가 주는 따뜻한 느낌을 좋아한다. 단행본 삽화 및 파크 하얏트, 아웃백, 벤츠 코리아 등 다양한 기업과 작업했으며, 지금은 창작 그림책을 위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 본문에 삽입된 그림은 다양한 탈춤 속 등장인물들이 어우러진 모습과 관객의 참여로 완성되는 탈춤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