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 8호

충무로에 잔존하는 영화의 내음

정지욱_영화평론가, 문화콘텐츠비평가
발행일2021.09.07

사람들은 지금 대한극장을 걱정하고 있다. 코로나를 지나왔을 때 사라져 있을까봐.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한 서울극장의 폐관 소식의 여파일 것이다. 남산골한옥마을이 위치한 충무로, 영화의 대명사와 같았던 그곳에서 사라져간 극장들을 이참에 다시 떠올려보게 된다. 비단 극장뿐이랴. 그곳에서 영화와 영화인들을 키워낸 다방이며 여관, 식당 등 아는 사람은 알지만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영화산업의 흔적들을 새삼 되짚게 된다. 팬데믹 시대에 영화 보기는 물론, 영화를 새롭게 환기하고 추억할 계기를 만나보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극장들

얼마 전, 서울극장이 오는 8월 31일을 마지막으로 모든 영업을 마친다는 소식이 전해왔다. 내 젊은 시절 친구들과 즐기기 위해, 이성과 핑크빛 꿈을 꾸며, 또 가족들과 함께 찾았던 추억의 장소 한 곳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사실 서울극장의 상실은 비단 나 개인의 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내 어릴 적 이따금 찾았던 ‘세기극장’에서 1978년 ‘서울극장’으로 바뀌어 43년간 종로의 문화 거점으로 서울 시민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영상산업을 대표했던 한 곳이기 때문이다.
좌로부터, 서울극장 ‘고맙습니다’ 상영회 포스터 ⓒ 정지욱, 서울극장 전경, 출처: 서울극장 홈페이지
지하철 3호선과 4호선이 만나는 충무로역 1번 출구를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오면 큰 위용을 자랑하는 ‘대한극장’이 우리를 맞아준다. 이곳을 시작으로 종로3가역 인근까지 스카라극장, 명보극장, 중앙극장, 국도극장, 아세아극장, 서울극장, 단성사, 피카디리극장, 허리우드극장, 뉴코아 등 10여 개의 극장들이 각각 내 추억 속에 자리 잡고 나를 영화에게로 이끌어 영화평론가의 길을 걷게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한극장 전경 ⓒ 정지욱
이들 극장 중 1989년 우리나라 최초의 멀티플렉스로 재개관한 곳이 서울극장이고, 1958년 세워져 2001년 멀티플렉스로 재개관한 곳이 대한극장이다. 또 1960년 ‘서울키네마’로 개관해 ‘반도극장’을 거쳐 1962년 ‘피카디리극장’으로 개관한 곳이 피카디리극장이다. 하지만 이곳은 2004년 멀티플렉스로 재개관하며 우여곡절을 겪다 지금은 대형 멀티체인인 CGV로 운영되고 있다. 따라서 아주 오래 전은 아니더라도 최근까지 20여 년 전후의 모양새를 그대로 지키고 있는 곳은 ‘대한극장’과 ‘서울극장’ 두 곳뿐이었고, 그 중 ‘서울극장’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예정이다.
영화 <마부>(1961)에서 볼 수 있는 대한극장의 옛 모습, 영화 장면 캡처

충무로, 영화의 메카가 된 배경

4호선 충무로역에서 기다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 1층으로 올라오면 ‘충무로 영화의 길’이란 글씨와 함께 여러 영화인들의 그림과 사진, 포스터 그리고 대종상에 대한 조형물과 사진들이 장식되어 있다. ‘영화=충무로, 충무로=영화’라는 등식이 자연스레 떠오르는 것을 증명하듯 다양한 영화적 상징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영화를 대표하는 상인 ‘대종상’을 상징하는 각종 조형물들이 충무로역에 꾸며진 까닭은 무엇이며, 또한 그 의미는 뭘까? 그것을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일 것이다.

충무로 영화의 길 ⓒ 정지욱

6.25전쟁이 휴전되고 한국의 영화산업은 명동을 중심으로 일어나게 된다. 사실 명동은 영화뿐 아니라 문학, 미술 등 우리나라 문화의 중심으로 예술가들이 모여 자신의 예술 세계를 뽐내고 토론하고 뜨거운 예술혼을 불사르는 곳이었다. 지금은 흔적을 찾아보기 힘든 다방에 모여 예술을 논하고, 때론 의견이 상충하며 불같이 대립하기도 했고, 어울려 술잔을 기울이며 어깨를 함께 했던 곳이다. 갈채, 엠블레스, 청동, 나일구, 연, 코지코너 등 지금은 흔적을 찾을 수 없는 다방들이 즐비했고, 20여 개의 영화제작사 사무실이 명동에 자리했다. 현재 로얄호텔 부근과 내무부가 있었던 외환은행 본점 자리, 국립극장이 있었던 명도예술극장 인근이 그곳이다. 한국영화사에 빛나는 흥행을 기록했던 1955년의 영화 <춘향전>(감독 이규환)이 명동에서 탄생했고, 수많은 연기자와 영화인들이 명동에 모여 각자의 몫을 해내며 영화산업을 이끌었다. 하지만 이들과 함께 젊은이들의 최신 유행을 선도하고 서울의 멋쟁이들이 명동에 모이며 보다 차분하게 영화제작에 몰두할 수 있는 분위기는 찾기 힘들게 된다. 최근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까지만 해도 많은 서울 시민과 서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로 거리가 그득한 서울의 최고 번화가인 명동이 그 당시 만들어진 것이다. 이에 번잡해진 거리를 피해 조금씩 영화 제작사들이 인근의 충무로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춘향전>(1955)의 한 장면 ⓒ 다음영화

영화를 키워낸 또 다른 산실들

1961년에서 1963년 사이 많은 영화사들이 충무로로 옮겨간다. 또한 충무로 3가에는 스타다방이 생겨 여러 배우들이 이곳에 모이기 시작했고, 촬영 일정을 조정하거나 촬영이 없는 연기자들은 청맥다방에 모여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명동의 다방’과 ‘충무로의 다방’에는 차이가 있었다. 명동은 예술을 논쟁하고 자신의 작품을 얘기하며 문화의 꽃을 피운 것과 달리 당시 충무로의 그곳은 인력을 공급하고 수요를 충족시키는 이른바 ‘(영화산업)인력시장’의 몫을 했고 다방들이 사라지기 전까지 영화인들이 모여 추억하는 사랑방 역할을 했다. 많은 영화인들은 충무로에 모여 자신의 영화세계를 꿈꿨고 여럿이 함께 그들의 영화작품들을 만들었다. 필자도 90년대 후반까지 이곳에서 여러 원로 영화인들에게 귀동냥을 할 수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크고 작은 다양한 작품의 산실이었던 다방이 다 사라지고 지금은 흔적을 찾기 어렵다.

대한극장과 맞은편의 대림정 ⓒ 정지욱

다방과 함께 영화인들의 먹거리와 숙박을 책임지던 곳도 있다. ‘동신여관에 투숙하지 않은 사람은 영화인이 아니다’라는 얘기가 있을 만큼 여러 일화를 남긴 곳이 ‘동신여관’이다. 이곳에서 밤새 시나리오를 쓰고, 다음 날 아침 ‘청맥다방’에서 커피를 마시며 시나리오를 검토했다고 한다. 특히 밥이 맛있었다는 이곳은 충무로 119안전센터 뒷골목으로 현재 해봉빌딩이 들어서 있다. 지금 충무로2길의 ‘황소집’과 ‘보은집’은 촬영을 떠나는 영화인들에게 새벽에 맛난 식사를 제공해주는 식당으로 유명했다. 영화인들이 찾던 조금 고급스러운 한정식집이나 고깃집으로 ‘진고개’와 ‘대림정’을 이야기할 수 있다. 옛날 ‘스카라극장’이 있었던 아시아미디어타워 인근의 진고개는 지금도 여전히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사랑 받고 있으며, 대한극장 맞은편의 50년 전통의 ‘대림정’은 ‘오발탄’으로 바뀌고 2,3층의 임대표지가 붙어 있어 보고 있자니 안타까움이 인다. 이곳 이외에도 영화인들이 이용하던 백반집으로 부산복집, 서울뚝배기, 뚱보식당(돼지갈비) 등이 남아있다.

좌로부터, 스카라극장 자리에 들어선 아시아미디어타워, 진고개 ⓒ 정지욱

영화사로 빼곡했던, 이젠 쓸쓸함만 남은

1960년대부터 영화제작의 중심을 이뤘던 충무로는 1986년 영화사법이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뀌며 큰 변화를 일으킨다. 당시 20여 개였던 제작사가 130여 개로 늘었고, 그 중 100여 개가 충무로에 집중해 설립된다. 이들은 제작과 흥행에 성공하며 강남 등지로 이사하기도 하거나 흥행해 실패해 야반도주하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2000년을 전후에 많은 영화사들이 충무로를 떠나게 되지만 그래도 굵직한 영화사들이 2000년대에 충무로에 의젓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이춘연 대표의 씨네 2000, 강우석 감독이 이끌던 시네마서비스, 실미도를 제작한 김형준 대표의 한맥영화사를 비롯해 좋은 영화사, 감독의 집, 필름 매니아 등이 흥국빌딩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곳은 지하에 ‘코끼리볼링장’이 있어 영화인들에겐 ‘코끼리빌딩’이라 불리며 젊은 영화인들이 제작사로 입주하는 꿈을 꾸기도 했다.

‘리얼라이즈픽처스’ 직원들과 함께한 필동에서의 마지막 기념 촬영 사진, 출처: 원동연 대표 페이스북

영화 <왕의 남자>를 연출해 천만 관객을 동원했던 이준익 감독의 영화사 ‘씨네월드’는 중부경찰서 맞은편 영한빌딩에 있었다. 이곳에는 영화홍보사 ‘영화인’ 등 영화 관련 업체가 다수 입주해 있었다. 충무로뿐 아니라 필동으로 남산 인근에 여러 영화 관련 사무실이 입주하기도 했는데, 영화 <신과 함께>를 제작한 ‘리얼라이즈픽쳐스’가 얼마 전 11년간의 필동 생활을 마치고 강남으로 이주한다며 원동연 대표가 직원들과 함께 마지막 기념 촬영한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려 보는 이의 마음을 아리게 했다. 영화사가 많았던 만큼 충무로 인근에는 필름대리점과 현상소, 인쇄소, 장비 대여점 등 영화 관련 사무실들이 많이 있었고. 요즘은 카메라나 영상장비 가게들이 또다시 들어서고 있다.

좌로부터, 명보극장, 영화인협회 조형물 ⓒ 정지욱

극동빌딩 옆길은 김지미, 문희, 남정임, 윤정희, 전계현 등 스크린을 화려하게 수놓았던 여배우를 기념해 ‘은막길’로 명명해 은막의 여왕을 기리고 있으나 그 흔적을 찾기 어려워 찾는 이에게 쓸쓸함을 전한다. 하지만 명보극장 오거리에는 “전통에 빛나는 그 얼이 이 거리에 영원하리...”라고 새겨진 2004년 제41회 대종상을 개최하며 한국영화인협회에서 제작한 조형물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높이 4.5미터, 무게 4.4톤의 황동으로 만들어진 이 조형물은 대종상과 더불어 충무로 영화의 거리를 홍보하기 위해 제작됐다.

영화의 꿈과 추억은 여전히 새로워져야 한다

충무로에 대한 많은 흔적들이 사라졌지만 지금도 영화의 내음을 느낄 수 있는 곳은 충무로역이다. 지하 1층에 꾸며진 대종상 관련 시설과 독립영화인과 영화에 관심 많은 관객들을 위한 아카이브를 겸한 시설인 충무로영상센터 ‘오! 재미동’이 있다. 이곳을 찾아 영화에 대한 다양한 경험을 해볼 수 있다. 또한 중앙대학교 부속병원이 있었던 곳은 현재 동국대학교에서 ‘충무로영상센터’로 활용하고 있어 영화에 대한 꿈을 꾸는 많은 영화학도들에게 꿈을 향해 한 걸음 더 다가가게 해주고 있다.

좌로부터, 충무로역 오재미동, 동국대학교 영상센터 ⓒ 정지욱

지난해부터 온 세상이 코로나19로 인해 크게 위축돼 있다. 특히 영화산업에 미친 영향은 상상을 불허할 만큼 크고 다양하다. 코로나 공포로 극장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OTT의 출현은 더욱 관객들을 스크린으로부터 거리 두게 했고, 흥행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개봉 연기 또는 OTT로의 매각 등으로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일은 점점 멀어지게 하고 있다. 하지만 철저한 방역수칙 이행과 함께 <모가디슈> 등의 흥행작이 개봉하며 관객들은 조금씩 영화관을 찾게 됐고 영화산업계도 활기를 되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 사라져 얼마 남지 않은 영화산업의 흔적이지만 충무로의 곳곳을 누비고, 인근의 극장에서 안전하게 영화 한 편을 감상해보면 어떨까? 이렇게 코로나 펜데믹 시대의 새로운 추억을 하나씩 쌓아가는 것이 21세기를 즐기는 우리들의 알찬 순간들은 아닐까?

정지욱_영화평론가, 문화콘텐츠비평가
북한산자락 정릉골 청수장계곡의 나나천문대에서 일본인 아내와 두 고양이를 모시고 산다. 문화예술경영학과 문화콘텐츠학 등을 공부했고 문화콘텐츠 전반에 대한 비평 활동을 한다. 동아일보, 한국경제신문 신춘문예와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 등에서 심사위원을 역임했고 서경대학교 한일문화예술연구소 연구원, 일본 Re:WORKS 서울사무소 편집장으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