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는 <흥보가>, <수궁가>, <춘향가>, <심청가>, <적벽가> 다섯 마당이 판소리로 전해지지만, 고종 때 정리된 판소리는 12마당이었다. 판소리 12마당 중에 소리를 잃어버린 7마당은 현재는 전해지지 않는다. <배비장타령>, <변강쇠타령>, <장끼타령>, <옹고집타령>, <무숙이타령>, <강릉매화타령>, <가짜신선타령>은 창과 사설이 모두 전해지지 않거나 창은 사라지고 사설만 남아 실전 7마당으로 불린다. 고종 이전에는 판소리의 종류가 더 다양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판소리는 자꾸 축소되었을까. 단지 우리의 음악 취향이 변해서일까.
“판소리의 정서가 한이라는 것에 반대”한다는 이자람의 의견에 나는 동의한다. 판소리에는 흥도 있고 저항도 있었다. ‘한’을 우리 예술의 기본적 정서로 바라보는 것은 저항을 무력화시키려는 지배계층의 시각이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판소리가 사라진 이유는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겠지만 대체로 연구자들은 판소리 향유층의 이동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판소리가 형식을 갖추었다. 원래 판소리는 평민층의 문화였으나 미적인 형식을 갖출수록 판소리 향유층은 양반으로 변해갔다. 19세기에 판소리를 소비하는 주류는 양반층이 되었다. 다시 말해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미적 취향에 맞지 않거나 그들을 풍자하는 내용이 담긴 판소리는 자연스럽게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12마당 중에서 사라진 7마당은 대부분 당대 지배층의 윤리에 적합하지 않아서였다고 볼 수 있다.
<배비장타령>, <강릉매화타령>, <무숙이타령>은 기존 사회에 대한 비판과 함께 신분제가 붕괴되어 가던 조선 후기 새롭게 성장하는 중간계층의 역할이 담겼다. <변강쇠타령>은 노골적인 성애를 표현한다. 특히 ‘남편 잡아먹는’ 옹녀라는 인물은 도저히 유교 사회의 양반층이 수용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실전 7마당 중에서 그나마 가장 늦게 사라진 <변강쇠타령>은 사설이 남아있으며 꾸준히 재창작되는 편이다.
그렇다면 <장끼타령>은 어떤 내용이었을까. 여성들의 노동요 역할을 하기도 했던 <장끼타령>은 조선 후기 작품으로 조류를 의인화했다. 판본에 따라 세부적인 내용은 조금씩 차이가 있으나 기본 줄기는 비슷하다. 수컷 꿩인 장끼는 암컷 까투리와 함께 어린 새끼들을 데리고 추운 겨울에 먹이 활동을 하러 나갔다. 장끼는 들판에서 콩 하나를 발견했으며 많이 굶주린 탓에 그 콩을 먹으려 했다. 그러나 아내인 까투리는 인간의 흔적이 느껴져 불길하니 그 콩을 먹지 말라 한다. 그러나 장끼는 아내의 말을 듣지 않고 그 콩을 먹고, 까투리의 예감대로 덫에 걸려 죽고 만다. 이때 장끼는 까투리에게 재혼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긴다. 까투리는 남편 장끼의 장례를 치르면서 여러 새들에게 구애를 받는다. 이때 문상 온 다른 장끼와 만나 재혼하여 자식들도 잘 키우고 삶을 잘 마무리 한다. 그런데 판본에 따라 결말이 조금씩 다르다. 까투리가 수절을 한다는 판본도 있고, 장끼가 아니라 두루미와 재혼한다는 판본도 있다. 개가금지라는 당대의 윤리관에 맞추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장끼타령>은 당시 궁핍한 서민층의 실상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여성 억압에 대한 고찰이다. 장끼는 아내 까투리의 말을 듣지 않았다. 여자의 판단력을 신뢰하지 않았고 여자의 말을 무시했다. 죽으면서도 아내를 자신의 소유물로 여겨 재혼하지 말라는 유언까지 남긴다. 조선 후기 여성에게는 개가가 죄악시되었다. 개가금지는 양반 계층만이 아니라 전 계층으로 확대되었고 조선의 유학자들은 이를 ‘아름다운 풍속’이라 여겼다. 그렇게 ‘열녀’가 만들어진다. 그런데 까투리는 장끼가 유언까지 했음에도 장례가 끝나자 곧바로 다른 홀아비 장끼와 혼인한다. 다시 말해 <장끼타령>은 여자의 말을 무시하는 남존여비와 개가금지라는 당시의 유교 도덕을 풍자한 작품이다. 효와 정절 등을 강조하는 전승 5가만이 아니라 실전 7가에 대한 복원과 꾸준한 연구가 가치 있는 이유다.
우리 속담이나 민요의 가사를 보면 여성에게 말을 삼가고 남편의 말을 들을 것을 강조하는 내용이 많다. 대표적으로 ‘여자가 말이 많으면 과부가 된다’, ‘여자가 음성이 크면 과부가 된다’는 말이 있다. 여자가 남편에게 의견을 내는 것을 극히 삼가도록 교육시켜왔다. 그래서 ‘과부’는 대체로 남편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사람으로 여겨지며, ‘과부가 마음 좋으면 동네 시아비가 열둘이다’라는 속담처럼 다른 여성의 남편을 유혹할 위험이 있는 부정적인 유혹자로 그려진다. 과부에 대한 속담들은 하나같이 모욕적이다.
<장끼타령>에서도 눈에 들어오는 부분은 조문객이 까투리에게 청혼을 하는 내용이다. 까투리는 과부에 대한 모욕적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재혼하여 잘 먹고 잘 산다는 점에서 가부장제의 윤리를 확실하게 배반한다고 볼 수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과부에 대한 사회적 시선을 피하기 위해 홀아비 장끼의 청혼을 받아들인다고도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까투리의 개가가 반드시 규범에 대한 용감한 저항이라고만 보긴 어렵다. 그보다는 하층민 여성이 혼자서는 살 수 없는 구조를 드러낸다.
까투리는 무엇을 원했을까. 2015년 국립극장에서 <변강쇠타령>을 재해석하여 <변강쇠 점 찍고 옹녀>가 공연된 적 있다. 이때 인상적인 옹녀의 대사가 있다. “나도 사임당 언니를 존경했노라. 음골이네 색녀네 하지만 다 똑같지 않느냐?”라고 한다. 옹녀의 생각을 뒤늦게라도 들어보듯이, 까투리의 생각도 들어보고 싶다.
이브는 하느님이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뱀의 꼬임에 넘어가 먹고, 남편인 아담에게 먹기를 권하기까지 한다. 아내의 말을 들은 아담은 어리석은 인간이 되며 이들에게 명령 불복종의 대가는 가혹했다. 두 사람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 기독교 세계관에서 이브는 남자를 악의 세계로 유혹하는 악의 근원이다. 이브에 대한 재해석과 패러디가 꾸준히 생산되듯, 전통이나 고전은 지속적인 재해석과 비판을 통해 오히려 유지될 수 있다.
‘한’이 아니라 ‘저항’의 관점에서 우리 음악과 문학을 보면 수많은 아우성이 들리지 않을까. ‘한’은 여성이나 사회적 약자들의 전복적 목소리를 꾸준히 지운다. 그렇게 저항의 역사를 탈각시키고 팔자와 숙명을 받아들이며 한 맺힌 이들의 목소리를 남긴다.
남성 중심의 전통을 그대로 유지할 것이 아니라 성차별 구조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동반할 때 오히려 전통이 시대와 호흡할 수 있다. 전통의 끊임없는 ‘퀴어링’이야 말로 전통을 전위적으로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