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골한옥마을은 관광지와 공연장을 동시에 품은 곳이다. 이러한 두 자원을 품은 곳이 도심 속 랜드마크가 되는 일이 흔한 지금. 하지만 ‘공간’과 ‘공연’을 동시에 운영하기란 운영진에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하지만 방문하는 이들은 흔히 누릴 수 없는 두 콘텐츠의 만남과 결합으로 문화생활의 즐거움을 배가시키곤 한다.
남산골한옥마을에 들어서는 방문객과 관광객을 제일 먼저 맞이하는 것은 전통적 색채의 공간이다. 이것이 언제든지 존재하는 ‘항존의 콘텐츠’라면, 그곳에는 때와 시간, 절기에 따라 선보이는 ‘순간의 콘텐츠’가 있다. 이 공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장소특정형, 아니 더 쉬운 말로 남산골한옥마을의 브랜드 콘텐츠들이다.
2017년부터 남산골 야시장, 남산골 밤마실, 남산골 바캉스 등이 선보여졌다. 말 그대로 밤에 열리는 시장(야시장), 밤의 산책(마실), 휴양(바캉스) 프로그램이다. 워라밸이 일상에 강력하게 등장한 지금, 휴식에 대한 가치 기준이 달라졌고, 그 휴식마저 남과 다른 스타일을 즐기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곳의 자연과 전통문화공간이 주는 정서는 휴식 스타일의 차별화를 선언한 그들에게 색다르게 다가간다.
남산골한옥마을이 여타의 관광공간과 다른 점은 ‘공연’이 있다는 점이다. 한옥마을 내에 자리한 남산국악당(크라운해태홀)이 그 중심 역할을 한다. 한옥마을을 방문하는 이들은 이 공간이 어떤 건지 잘 모르고 스쳐가곤 한다. 하지만 국악 마니아들 사이에선 여러 공연과 기획 프로그램을 선보이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
남산국악당은 2007년에 개관했다. 개관 10주년을 맞이한 2017년부터 크라운해태의 지원을 통해 2018년까지 노후화된 무대 시스템(음향·조명·영상)을 개선했고, 명칭도 크라운해태홀로 변경됐다. 운영 주체는 다르지만 서울에는 국립국악원, 국립극장, 서울돈화문국악당, 세종문화회관 등 다양한 공연장에서 여러 공연이 오르고, 이를 책임지는 여러 국악 전문단체가 있다.
남산국악당을 비롯해 이러한 공연장과 단체들은 자신들만의 스타일을 담은 콘텐츠를 시민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고민 중이다. 남산국악당만의 콘텐츠라면 공연장(남산국악당)을 둘러싼 전통 공간과 어우러진 공간 맞춤형 공연, 여러 세대의 예술가를 기획 프로그램으로 묶어 그 세대만의 특징을 반영한 공연 시리즈라 할 수 있겠다.
그중 2018년 첫 선을 보인 ‘젊은국악 단장’ 시리즈는 튼튼히 자리 잡은 브랜드 공연이다. 2016~17년부터 예술계에는 ‘청년예술’ 붐이 불었다. 그전에는 ‘젊은’ ‘신진’ ‘청년’이라는 타이틀로 해당 예술가들에게 공연 기회를 제공하는 시스템이 다분했다. 하지만 위와 같은 붐과 함께 청년예술가들에게 어떤 형태의 지원을 하느냐에 따라 공연장의 성격과 정체성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좀 더 남다른 스타일로 ‘자기만의 휴식’을, ‘자신만의 음악’을 즐기기 원하는 관객의 소비 욕구와 심리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다. 남산골한옥마을과 남산국악당은 이러한 이들의 보편적 욕구와 심리에, 조금은 남다른 문화공간과 시간을 제공하고 있다. 그 만족감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방문객들이 추억을 묻혀 올리는 SNS에서 만날 수 있다.
‘젊은국악 단장’이 신진 예술가들의 등용문이라면, ‘남산컨템포러리-전통 길을 묻다’와 ‘다시곰도다샤’ 시리즈는 예술가들의 성숙을 도모하는 공연 프로그램이다. 2018년 시작한 ‘남산컨템포러리’는 국악이 무용·패션·디자인 등 다양한 장르와 어디까지 만날 수 있는지를 실험하고 있는 장이다. 국악당 관객이 국악 마니아와 전공자들로만 가득 찼던 과거와 달리 무용·패션·디자인 등을 즐기는 문화 마니아들이 궁금증을 갖고 국악당을 찾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2019년 처음 선보인 ‘다시곰도다샤’는 일종의 역사 털기 프로그램이다. 한번 무대에 오르면 그 작품(공연)을 다시 만나기 어려운 게 모든 공연이 지닌 운명이다. 남산국악당은 다시 만나고 싶은 작품을 ‘다시곰’ 무대로 불러왔다.
2017년부터 남산골한옥마을과 남산국악당이 행해온 시간을 한마디로 하자면, ‘문화소비자 일상으로의 과감한 침투 작전’이라 할 수 있겠다. 위와 같은 프로그램들만이 남산골한옥마을과 남산국악당의 대표작들은 아니다. 소소하면서도 국악과 전통문화를 둘러싼 작고도 강력한 프로그램도 행해왔다. 2018년 서울국제음식영화제의 중요 장소가 되는가 하면, 청년 지원사업의 참신한 인재 육성을 위한 청년국악기획자 양성과정, 깊이 있는 감상법을 알려주는 귀명창 아카데미, 전통예술 생태계의 변화를 도모하는 담론장인 남산골 국악방담 등을 통해 전통예술계의 기둥을 양성하고 현주소를 짚어보고 있다. 변화하는 현장과 관객 트렌드를 꼼꼼히 반영하기 위해 기존 예술감독이라는 1인 체제에서 다수의 의견을 수합하여 장을 일구는 예술전문위원회도 새롭게 출범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