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 1호   山:門 REVIEW

전통예술이 선사한 즐거움의 누적 지수남산골한옥마을·남산국악당 3년(2017~20)

음악평론가송현민
발행일2020.06.02

남산골한옥마을과 서울 남산국악당의 변곡점이라 할 수 있는 지난 3년(2017~20)을 돌아보며, 그간의 변화와 의미를 짚어보았다. 문화공간으로서 또한 공연장으로서 어떻게 즐거움을 배가시키며 존재감을 획득해왔을까. 이렇게 구부러진 길모퉁이에 가까이 다가간다는 건 또 다른 기대감을 잉태하는 일이기도 하다.

콘텐츠 결합의 시너지

남산골한옥마을은 관광지와 공연장을 동시에 품은 곳이다. 이러한 두 자원을 품은 곳이 도심 속 랜드마크가 되는 일이 흔한 지금. 하지만 ‘공간’과 ‘공연’을 동시에 운영하기란 운영진에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하지만 방문하는 이들은 흔히 누릴 수 없는 두 콘텐츠의 만남과 결합으로 문화생활의 즐거움을 배가시키곤 한다.

남산골한옥마을에 들어서는 방문객과 관광객을 제일 먼저 맞이하는 것은 전통적 색채의 공간이다. 이것이 언제든지 존재하는 ‘항존의 콘텐츠’라면, 그곳에는 때와 시간, 절기에 따라 선보이는 ‘순간의 콘텐츠’가 있다. 이 공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장소특정형, 아니 더 쉬운 말로 남산골한옥마을의 브랜드 콘텐츠들이다.

2017년부터 남산골 야시장, 남산골 밤마실, 남산골 바캉스 등이 선보여졌다. 말 그대로 밤에 열리는 시장(야시장), 밤의 산책(마실), 휴양(바캉스) 프로그램이다. 워라밸이 일상에 강력하게 등장한 지금, 휴식에 대한 가치 기준이 달라졌고, 그 휴식마저 남과 다른 스타일을 즐기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곳의 자연과 전통문화공간이 주는 정서는 휴식 스타일의 차별화를 선언한 그들에게 색다르게 다가간다.

‘남산골 밤마실’, 2019 ⓒ 남산골한옥마을

남산국악당을 찾아가보자

남산골한옥마을이 여타의 관광공간과 다른 점은 ‘공연’이 있다는 점이다. 한옥마을 내에 자리한 남산국악당(크라운해태홀)이 그 중심 역할을 한다. 한옥마을을 방문하는 이들은 이 공간이 어떤 건지 잘 모르고 스쳐가곤 한다. 하지만 국악 마니아들 사이에선 여러 공연과 기획 프로그램을 선보이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

남산국악당은 2007년에 개관했다. 개관 10주년을 맞이한 2017년부터 크라운해태의 지원을 통해 2018년까지 노후화된 무대 시스템(음향·조명·영상)을 개선했고, 명칭도 크라운해태홀로 변경됐다. 운영 주체는 다르지만 서울에는 국립국악원, 국립극장, 서울돈화문국악당, 세종문화회관 등 다양한 공연장에서 여러 공연이 오르고, 이를 책임지는 여러 국악 전문단체가 있다.

서울남산국악당 크라운해태홀 ⓒ남산골한옥마을

남산국악당을 비롯해 이러한 공연장과 단체들은 자신들만의 스타일을 담은 콘텐츠를 시민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고민 중이다. 남산국악당만의 콘텐츠라면 공연장(남산국악당)을 둘러싼 전통 공간과 어우러진 공간 맞춤형 공연, 여러 세대의 예술가를 기획 프로그램으로 묶어 그 세대만의 특징을 반영한 공연 시리즈라 할 수 있겠다.

 

그곳엔 젊어진 국악이 있다 

그중 2018년 첫 선을 보인 ‘젊은국악 단장’ 시리즈는 튼튼히 자리 잡은 브랜드 공연이다. 2016~17년부터 예술계에는 ‘청년예술’ 붐이 불었다. 그전에는 ‘젊은’ ‘신진’ ‘청년’이라는 타이틀로 해당 예술가들에게 공연 기회를 제공하는 시스템이 다분했다. 하지만 위와 같은 붐과 함께 청년예술가들에게 어떤 형태의 지원을 하느냐에 따라 공연장의 성격과 정체성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2019 젊은국악 단장’ 헤이스트링 <Sensation-감각의 발견: SPACE IN SPACE> ⓒ 남산골한옥마을_서울 남산국악당
2018년 젊은국악 단장’은 오디션 방식으로 당대 청년예술가들의 이목을 끌었다. 청년 국악인 양성을 위한 크라운해태의 10년 지원을 약속 받은 남산국악당은 ‘단장’을 통해 헤이스트링을 정식 등단시켰다. 세 명의 가야금 연주자로 구성된 팀이다. 무엇보다 남산국악당이라는 무대 공간은 우승자인 그들에게 보모 역할을 자처했다. 공연장의 홍보 체계도 오디션부터 진행과정, 이후 우승자의 무대를 꼼꼼히 세상에 알렸다. 2019년에는 경쟁보다는 제작 과정에 초점을 맞췄다. 지원 방향도 선발된 이들의 인큐베이팅과 성장을 돕는 방식이다. 참가자들의 종목도 ‘국악’으로 한정짓기보다 국악의 ‘다양화’를 꾀하는 여러 협업 작품과 작업들을 택했다. 박선주(가야금 퍼포먼스), 송다민(창작 환술사), 이동빈(탈 액터), 남우찬(연극연출가), 나무령(우주해금), 조의선(정가 보컬리스트) 등이 주인공이 되어 그해 12월 쇼케이스를 가졌다. 이들이 선정되는 동안, ‘단장 1기’라 할 수 있는 헤이스트링은 영국 런던 사우스뱅크센터(퍼셀룸)에서 데뷔 공연을 갖기도 했다.
‘2019 젊은국악 단장’, 나무령 <제1행, 물:수> ⓒ 남산골한옥마을_서울 남산국악당

한국적 스타일을 달아드립니다 

좀 더 남다른 스타일로 ‘자기만의 휴식’을, ‘자신만의 음악’을 즐기기 원하는 관객의 소비 욕구와 심리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다. 남산골한옥마을과 남산국악당은 이러한 이들의 보편적 욕구와 심리에, 조금은 남다른 문화공간과 시간을 제공하고 있다. 그 만족감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방문객들이 추억을 묻혀 올리는 SNS에서 만날 수 있다.

변신술 2019 ⓒ 남산골한옥마을
남산골한옥마을은 홍대 라이브클럽에서 접할 수 있는 음악들을, 완전히 반대의 정서인 한옥으로 불러와 그 낯섦과 생소함을 제공하는 ‘변신술‘을 선보이는가 하면, 남산골한옥마을 내에 위치한 숨은 명소 ‘민씨 가옥’에서 ’한옥콘서트 산조‘(2018)와 ‘여자들의 국악’(2019)이라는 제목으로 전통음악을 선보여 한옥에서 국악 듣기의 특권을 제공하기도 했다. 특히 민씨 가옥에서 진행된 공연들은 마루에 앉아 한옥 내부의 나뭇결을 스쳐 울리는 악기와 목소리를 만날 수 있는 값진 시간이다.
‘한옥콘서트 2019 - 여자들의 국악’, 안은경 <정재국류 피리산조> ⓒ 남산골한옥마을

‘젊은국악 단장’이 신진 예술가들의 등용문이라면, ‘남산컨템포러리-전통 길을 묻다’와 ‘다시곰도다샤’ 시리즈는 예술가들의 성숙을 도모하는 공연 프로그램이다. 2018년 시작한 ‘남산컨템포러리’는 국악이 무용·패션·디자인 등 다양한 장르와 어디까지 만날 수 있는지를 실험하고 있는 장이다. 국악당 관객이 국악 마니아와 전공자들로만 가득 찼던 과거와 달리 무용·패션·디자인 등을 즐기는 문화 마니아들이 궁금증을 갖고 국악당을 찾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2019년 처음 선보인 ‘다시곰도다샤’는 일종의 역사 털기 프로그램이다. 한번 무대에 오르면 그 작품(공연)을 다시 만나기 어려운 게 모든 공연이 지닌 운명이다. 남산국악당은 다시 만나고 싶은 작품을 ‘다시곰’ 무대로 불러왔다.

‘남산컨템포러리 2019’, 신박서클×나승열 <들어-보다> 서울남산국악당 ⓒ 남산골한옥마을

변치않는 ‘공간’, 변화하는 ‘공연’

2017년부터 남산골한옥마을과 남산국악당이 행해온 시간을 한마디로 하자면, ‘문화소비자 일상으로의 과감한 침투 작전’이라 할 수 있겠다. 위와 같은 프로그램들만이 남산골한옥마을과 남산국악당의 대표작들은 아니다. 소소하면서도 국악과 전통문화를 둘러싼 작고도 강력한 프로그램도 행해왔다. 2018년 서울국제음식영화제의 중요 장소가 되는가 하면, 청년 지원사업의 참신한 인재 육성을 위한 청년국악기획자 양성과정, 깊이 있는 감상법을 알려주는 귀명창 아카데미, 전통예술 생태계의 변화를 도모하는 담론장인 남산골 국악방담 등을 통해 전통예술계의 기둥을 양성하고 현주소를 짚어보고 있다. 변화하는 현장과 관객 트렌드를 꼼꼼히 반영하기 위해 기존 예술감독이라는 1인 체제에서 다수의 의견을 수합하여 장을 일구는 예술전문위원회도 새롭게 출범시켰다.

귀명창 아카데미 2019 ⓒ 남산골한옥마을
남산골한옥마을은 전통의 색채를 품은 공간이다. 공간은 물리적으로 변화하기 쉽지 않다. 이러한 하드웨어에 앞서 말한 남산골 브랜드의 콘텐츠와 남산국악당의 기획 공연들이 소프트웨어로서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곤 있다. 따라서 ‘늘 그곳에 있는 한옥’과 ‘늘 변화하는 공연’들이 만나는 것이다.
음악평론가 송현민
제13회 객석예술평론상 수상했고, 전통예술과 클래식 음악에 대해 비평·강연·저술하고 있다. 남산국악당 예술전문위원, 국립국악관현악단 프로그램 디렉터, 국립국악원 운영자문위원, 월간 ‘객석’ 편집장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