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남산국악당 공동기획 <춤&판 고(古)·무(舞)·신(新) 춤축제>의 무용수 3인
큰 영광이 있으면 작은 영광은 그 앞에서 희미해지게 마련이다. 한국 전통춤의 영역도 그렇다. 나이 들수록 깊은 맛을 내는 것이 전통춤인지라, 젊은 춤꾼을 위해 마련되는 무대가 드물다. <춤&판 고(古)·무(舞)·신(新) 춤축제>(이하 <춤&판>)는 그래서 반갑다.<춤&판>의 첫날(9월 15일) 선보이는 ‘한영숙류 태평무’는 어떤 춤이라 생각하나?
‘왕비의 춤’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한성준 명인이 무대화할 당시는 왕과 왕비가 함께 추었다는데, 아무래도 여성 무용수들을 통해 전해지면서 ‘왕비의 춤’이라는 인식이 생겨났다고 한다. 왕비가 나라의 태평성대를 바라는 마음으로 추어올린다. 등장할 때부터 먼 산을 바라보며 나오는 등 백성의 안위를 살피는 아우라를 개인적으로 느끼고 있다.
이 춤을 택한 이유가 있다면?
전통춤은 단체무를 주로 해왔고, 솔로로는 ‘구음검무’를 쭉 추어왔다. 이제는 다른 춤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에 ‘한영숙류 태평무’를 공연으로 접하게 되었다. 서울교방에 계신 서정숙 선생님의 춤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나도 저 춤으로 무대에 오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특히 부족한 부분을 메워갈 수 있다는 점이 도전욕과 성취감을 불러일으켰다. 호기롭게 선보이기로 하면서 결과적으론 스스로를 많이 괴롭히고 있다(웃음).
‘태평무’를 공연할 때의 주안점은?
처음엔 화려한 의상과 발동작 등 시각적인 부분에 매료되었다. 그런데 직접 배워보니 박자가 참 또렷하고 명확하더라. 창작춤을 많이 추어왔기에 나는 즉흥적으로 박자를 당겨 쓰는 편이었는데, ‘태평무’는 정확한 박 안에서 호흡을 나누면서도 그것을 자유자재로 맺고 푸는 것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아직도 호흡을 ‘턱-’하고 멈추는 부분이 부족해서, 나름대로 연습량에 기대보는 중이다. 아울러 그보다 솔직한 고민은, ‘왕비’의 성숙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에 대한 것이다. 나이보다 어려보이는 것이 콤플렉스라 꼬마 왕비처럼 보이지 않게 갖은 수를 써보고 있다.(웃음)
관객에게 소개하고 싶은 감상 포인트가 있다면?
과거엔 ‘발춤’이라 불렸을 정도로 ‘태평무’는 발디딤새가 중요하다. 특히 뒤꿈치를 들고 하는 ‘돋움’이 많아서 오금을 자동적으로 조이게 된다. 하체는 매우 분주한데 상체는 여유롭게 왕비의 기품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런 대비되는 표현에 주목하면 ‘태평무’를 더 풍성하게 맛볼 수 있을 것 같다.
서른여덟의 가을을 나고 있는 한소정은 무르익어가는 갸륵함을 보여주는 방편으로 ‘살풀이’를 택했다. 전통춤 한 길을 걸어온 그이기에 ‘갸륵하다’는 표현이 아귀를 맞춘 듯 들어맞는다. 그게 좋아서 국립남도국악원에 입단했고, 이후 무용단을 나온 것도 선대의 유산을 더 깊이 연구해보겠다는 욕구가 커지면서다. 춤의 실연부터 학문적 탐구까지, 그의 화두는 늘 전통춤이었다.
<춤&판>의 첫날(9월 15일) 선보이는 ‘한영숙류 살풀이’는 어떤 춤인가?
어찌 보면 ‘살풀이’는 ‘이매방류’로 더욱 유명하다. 남도 춤인 ‘이매방류’가 먼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한영숙류’가 후에 서울시무형문화재가 되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살풀이’로 인정받았다. 춤 자체는 ‘살을 푼다’, ‘액을 푼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얀 의상에 하얀 수건을 들고 추는 한국의 대표적인 춤이다.
살풀이는 한국춤 중에서도 인기 있는 종목으로 널리 추어지고 있다. 그중 ‘한영숙류’의 특징을 소개하면?
기방의 영향을 받은 버전이나 무속적인 성격이 강한 버전도 있지만, 이번에 선보일 ‘한영숙류’는 한성준 명인에 의해 무대화된 춤이다. 한국춤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한성준 명인은 ‘극장’에서 첫 무용발표회를 열었던 1936년 ‘살푸리’라는 이름으로 무대에 올리셨다. 이것이 손녀인 한영숙 명인을 통해 전해지면서 ‘한영숙류 살풀이’가 되었다. 감정과 표현을 절제하지만, 그래서 깔끔하고 담백한 매력이 있다. 서울·경기 춤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지점이다.
연구를 병행하면서까지 파고들었던 전통춤의 매력은?
교과서적으로 말하면 고요함 속에 움직임이 있는 정중동(靜中動)의 미, 절제의 미, 곡선의 미가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그것이 이미 삶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 어린 나이에 춤을 배울 땐 어떻게 하면 기술적인 면이 잘 드러날까, 어떻게 하면 더 잘하는 것처럼 보일까를 생각했다. 서른 이후에 춤의 근본적인 원리를 알게 되면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정형화된 형태 안에서 깊은 맛을 내기 위해서 노력하고 연습했던 시간 자체가 너무도 소중하다.
마음이 예뻐야 춤이 예쁘다고들 한다. 몸속에 있는 것이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무대에서 하는 생각도 중요할 것 같다.
한영숙 명인의 ‘살풀이’는 돌아가신 할머니를 생각하면서 춘다. 나를 그렇게 예뻐해 주시진 않으셨다.(웃음) 혈육이었지만 가깝지는 않았던 그분을 생각하면 개인적인 감정이 안 나오더라. 마음이 담백해지면서 몸의 기교도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
어떤 포인트에 집중하면 ‘한소정표’ 살풀이를 더 즐겁게 감상할 수 있을까?
다양한 전통춤을 추면서 언제부턴가 나만의 호흡 운용법이 생기기 시작했다. 경험상 ‘한영숙류’의 주된 호흡은 상하 움직임이다. ‘이매방류’는 좌우 움직임이 많고, ‘김숙자류’는 ‘툭-’하고 떨어지는 매력이 있다는 게 개인적인 결론이다. ‘한영숙류 살풀이’를 선보일 것이기에 상하의 호흡이 주가 되겠지만, 내 춤은 해석이 가미되면서 떨궈지는 호흡이 드러나는 편이다. 더불어 굿거리에서 자진모리장단으로 넘어갈 땐 감정을 더 표출하는 부분도 있다. 그런 해석을 주의 깊게 봐주면 좋겠다.
40대에 들어선 이보름은 ‘이동안류’를 사사해왔다. 이동안·박정임춤보존회를 통해 전해진 ‘재인청’ 계열의 춤이다. 현대에 예술협회가 있다면, 조선 후기엔 예능인들이 모여 만든 재인청(才人廳)이 있었다. 곡예사, 춤꾼, 음악가는 물론 무속인까지 한솥밥을 먹던 곳으로, 춤과 기예를 전수하고 민중 오락의 맥을 이어나갔다. 이동안 명인은 화성 재인청이 해체될 무렵에 몸담으면서 그 마지막 유산을 이어받은 재인이다. 그리고 이보름은 그의 춤을 이어받아 지켜나가고 있다.
<춤&판>의 둘째 날(9월 16일)에 선보이는 ‘신칼대신무’는 어떤 종목인가?
엇중모리 장단에 맞추어 신칼을 들고 추는 춤이기에 ‘엇중모리 신칼대신무’라 불리기도 한다. ‘엇중모리’는 반주에 쓰이는 장단명이다. 공연 내내 하나의 장단만 사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드물게 사용되는 장단이라 이 춤의 주요한 특색으로 인식되곤 한다. 더불어 ‘신칼’은 양손에 들고 추는 무구(巫具), 즉 무속인의 도구이다. 칼의 양 끝에 흰 종이를 길게 자른 노잣돈(지전)을 붙인 형태인데, 무당들은 진짜 칼을 쓰지만 춤은 대나무 막대기를 들고 춘다. 먼 옛날에 왕이 죽자 그 딸인 공주가 이 춤을 추며 아버지의 넋을 인도했다고 한다.
박정임(국가무형문화재 발탈 보유자)을 통해 전해진 이동안 춤의 계보를 잇고 있다. 이동안 춤의 매력은?
이동안 명인의 춤은 줄타기와 비교되는 경우가 많다. 신무용이나 기방춤의 기법과는 그만큼 다르다. 발산하는 춤이랄까. 무릎을 써서 지면의 반동을 이용하는 만큼 하체 동작이 역동적이고 상당한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상체 표현 또한 이동안 명인이 광대셨던 만큼 자연스럽고 익살스럽게 드러내는 경우가 대다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