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봄

인터뷰 | 무용가 전성재

허윤희
발행일2022.03.31

우리 춤의 역사와 현주소가 궁금할 때

서울남산국악당 시민국악강좌 <우리 춤 이야기>의 무용가 전성재
 

그에게 “당신 춤의 장르는 무엇이냐”고 묻는 건 부질없는 일이다. 한국 전통춤에서 출발해 현대무용으로 범위를 확장한 궤적처럼, 그가 창작한 춤은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몸짓과 호흡, 움직임을 무대 위에서 과감히 펼쳐놓는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이자 알티밋 무용단 예술감독이자 안무가 전성재의 얘기다.
“춤은 가장 원초적 재료인 ‘몸’을 이용해 근원적인 감정과 에너지를 쏟아내는 예술이기 때문에 우리 삶과 기원에 가장 가깝게 접해있는 장르”라는 그를 만났다.

무용 인생은 어떻게 시작됐나.


“어릴 때부터 춤이 좋았다. 중학생 때 잡지에서 우연히 일본무용 ‘부토’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서양의 현대무용에 가부키 등 일본 전통극의 색채를 더한 실험적인 무용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의 침울한 분위기가 반영돼 극도로 느리고 무거운 동작이 특징인데, 사진을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이 아직도 강렬한 이미지로 남아있다. 일본무용이 이렇다면 한국 춤은 무엇일까. 호기심이 생겼다.”

국악고등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졸업 후 유학을 떠났다. 국립 프랑스 고등무용원을 수료했고, 스위스 루체른 주립극장에서 솔리스트로 활동하면서 무용수, 안무가, 교육자로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는데 한국과 유럽의 교육 시스템은 어떻게 달랐나.

“춤을 대하는 자세나 생각하는 방법, 훈련 방식이 모두 달랐다. 한국에선 ‘정답’이 있고, 동작을 지적받으면 여러 번 반복 연습해 반드시 고쳐야 한다. 반면 유럽의 교육은 창의성과 개성을 중시했다. 기본 수업에서 조금 실력이 떨어진다 싶었던 무용수가 작품에 들어가면 뜻밖에 돋보이는 경우를 봤다.”

 

한국무용과 현대무용은 몸 쓰는 방법부터 다르다던데.

“한국 춤은 땅을 기반으로 누르고 자연과 함께하며 호흡이 돌아간다. 반면 서양 춤은 자연을 거스른다. 중력을 거슬러 몸을 세우려고 하고 안 펴지는 걸 펴려고 하는 거니까 에너지를 쓰는 것부터 차이가 있다.”

2017년 인천시립무용단 상임안무가로 부임한 그는 한국춤의 원리적 바탕에 역동적인 움직임의 선을 더하는 작품을 선보이며 무용계의 주목을 받는다. <건너편, Beyond>는 인천시립무용단 부임 후 안무한 첫 작품. 삶과 죽음의 순환, 저 건너편에서 빈손으로 이 세상에 와 다시 빈손으로 건너편으로 넘어가는 삶의 모습을 무대 위에 구현했다. 윤회에 대한 탐구는 이후에도 계속된다. 그가 안무한 알티밋 무용단의 <고요한 순환>은 2020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하는 ‘공연예술창작산실-올해의 신작’으로 선정돼 호평을 받았다. “가까이 들여다보면 치열하고 복잡한 인간사이지만, 멀리서 보면 그저 ‘고요한 순환’처럼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제목이 나왔다”고 했다.

창작의 영감은 주로 어디서 받나.

“책을 읽다가 글귀에서 떠오르기도 하고, 영화나 사진을 볼 때도, 길을 걷다가도 늘 관찰하는 자세를 유지한다. 배우 장국영이 사망한 당시 읽었던 잡지 기사의 한 문장에서 영감을 얻은 적도 있었다. ‘예상치 않은 만남과 예상치 않은 헤어짐은 너무 당혹스럽다’라는 문장이었다. 여기서 출발한 작품 <유감>으로 2004년 ‘젊은 안무자 창작 공연’ 최우수 안무자 상을 받았다.”
 
지난해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로 부임하며 앞으로 교육자로서의 삶에 방점을 찍겠다는 그가 서울남산국악당이 마련한 시민국악강좌 <우리 춤 이야기> 강연자로 나선다. 시민국악강좌는 전통예술의 재미와 감동을 깊이 있게 경험할 수 있게 만든 강의 프로그램으로, 올해는 무용과 탈춤의 이론과 역사를 4월 6일부터 총 5회, 매주 수요일에 진행한다.
전성재는 첫 번째 강좌인 <한국의 전통춤>(4월 6일)에서 한국 춤의 개념과 갈래, 흐름과 역사를 들려줄 예정이다. 그는 “한국무용이라고 하면 굉장히 긴 역사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춤이 20세기에 창작됐다. <태평무>도 조선시대가 아니라 1930년대에 만들어진 춤”이라며 “궁중무용, 민속무용, 의식무에 창작춤까지 한국무용을 아우르고, 이제는 한국무용의 한 분야로 들어온 현대무용까지 소개하고 시연까지 펼칠 예정이니 기대해 달라”고 했다.
<우리 춤 이야기> 시리즈는 중견 무용수 정지은과 이은영이 차례로 <만들어진 전통, 창작춤>(4월 13일), <미래의 전통춤>(4월 20일)을 강연하고, 국가무형문화재 고성오광대 이수자 허창열의 <우리 탈춤 들여다보기>(4월 27일), 하회별신굿탈놀이 이수자 이주원의 <오늘의 탈춤>(4월 28일) 강좌로 이어진다.
 
허윤희
조선일보 기자. 문화부에서 문화재와 국악, 공연, 미술을 두루 담당했고 지금은 주말뉴스부에서 호흡이 긴 인터뷰와 기획 기사를 쓰고 있다. 오래된 이야기를 낡지 않게 쓰려고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