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여름   山:門 PEOPLE

인터뷰 | 대금 연주자 유홍・소리꾼 서정민

김태희
발행일2022.07.02

우리 음악의 고급 지식맛깔난 연주를 한 상에 담아

서울돈화문국악당 시민국악강좌 <우리악기 우리음악> 6월・7월의 두 주인공
 
해외에서의 연주 활동만 아니라 국내에서의 공연도 자주 열며 대금의 동시대적 가능성과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는 유홍이 최근 서울돈화문국악당에서 진행된 국악 입문 강좌 <우리악기 우리음악>(6.9~7.14) 중 6월 23일 <단순함 속의 정교함: 대금과 현대음악>의 강사로 시민과 만났다.
소리꾼 서정민은 <우리악기 우리음악>의 마지막 수업을 맡아 7월 14일 <슬픔의 정화: 아쟁과 판소리>를 통해 아쟁 연주자 이화연과 함께 시민들을 만난다. 독특하게도 판소리만 아니라 슬픔과 한의 대명사로 불리는 아쟁과 소리를 하나의 수업으로 묶었다.
무대에 오르내리며 느낀 바를 토대로 이야기와 생생한 연주를 통해 우리 전통음악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보여준 그들을 만나 음악 인생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유홍, 경계를 넘는 개척자 같은 대금 연주자

대금연주자 유홍

그의 연주를 듣고 있자면 고요한 강가에 앉아 악기를 연주하던 신선의 모습이 저랬을까 싶다가도, ‘명인’보다는 ‘비르투오소’라는 이름이 잘 어울리는 오늘날의 연주자라는 생각이 든다.
정악과 산조 명인을 모두 사사하고 으레 ‘엘리트 코스’로 불리는 길을 탄탄히 밟아온 유홍의 음악 인생은 아이러니하게도 반듯하게 난 길을 벗어나면서 ‘다이내믹스’를 펼치기 시작했다. 서울대학교 국악과를 졸업하고 2001년, 정가악회를 창단해 전통 가곡을 중심으로 한 실내악 활동으로 연주 경험을 쌓은 그는 바다 건너로 눈을 돌렸다. 음악가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도 많고 열정도 넘치던 때, 그는 일단 영국으로 행선지를 정했다.
“외국에서 전통 음악가로 살아가는 게 가능할까 싶었어요. 일단은 한번 시도해보자는 마음으로 떠났죠. 영국에서 여러 사람을 만났고, 그중에는 런던대학교(SOAS University of London) 한국학 연구소에 있는 키스 하워드 교수님도 있었어요. 이곳 민족음악학과에 연주자를 위한 과정이 개설되는데, 석사 과정에 진학해보는 건 어떻겠냐고 추천하시더군요. 아프리카·중동 등 여러 나라에서 온 전통음악가들과 만나게 되니 연주자로서의 활동에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는 제안이었어요. 그렇게 2009년 런던대에서 석사를 마치게 됐죠.”
그러나 연주자로서의 정착은 영국이 아닌, 독일 베를린에서 이뤄졌다. 아시안아트 앙상블에 함께하게 된 것이다. 동서양을 아우르는 다양한 연주자들이 모여 2009년 결성한 아시안아트 앙상블은 음악가 개인이 자신의 전통음악을 가지고 모여 범아시아적 새로운 음악 시도를 선보이는 단체다.
“친구와 베를린에 다녀올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재독 작곡가 정일련 선생님을 만나게 됐어요. 연주자로 함께하자고 제안하셔서 영국에서의 학업을 마무리하는 대로 독일로 거처를 옮기게 됐죠. 영국은 전통음악으로 활동하기에 그리 흥미로운 곳은 아니었기도 하고요. 반면 독일은 전통악기를 가지고 음악 작업을 하는 이들에게 무척 매력적인 곳이었어요. 2010년 아시안아트 앙상블에 합류해 가장 먼저 주력한 건, 외국 작곡가들이 대금을 위한 작품을 쓰도록 하는 일이었어요. 제가 이곳에 처음 들어왔을 땐 대금을 위한 악보는 물론, 대금으로 연주할 수 있는 곡이 한 편도 없었죠. 작품이라는 게 곧바로 나오는 게 아니라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보니 처음 몇 년간은 대금을 위한 음악에 집중했던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는 대금을 위한 현대음악 작품이 여럿 나오게 됐죠.”
‘새로운 악기란 곧 새로운 음악의 가능성’이라는 작곡가 정일련의 말처럼 아시안아트 앙상블은 기존 음악에 아시아의 전통악기를 더하는 식의 협업이 아니라 전통악기를 위한 음악을 만들어 나갔다. 그러기 위해서는 작곡가가 필요했고, 앙상블의 모든 연주자는 본연의 역할을 넘어서 한 사람의 창작자로 존재해야 했다.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굉장히 새로운 시도였죠. 새로운 소리의 조합으로 만든 새로운 현대음악 사운드. 대금이 특수한 몇몇 사람들만 다루는 악기가 아니라 좀 더 보편적인 악기가 될 수 있도록 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어요. 현지 음악가들과 함께 생각하고, 고민하고, 만들고, 연주했죠. 유럽에서 활동하면서 가장 경계한 지점은 연주 악기로서 서양 플루트와 한국 대금의 차이가 없어지면 안 된다는 것이었어요. 플루트처럼 유려하게 잘 부는 것이 대금 연주자로서 현대음악을 잘하는 것일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대금의 본질적 특성을 연주에 어떻게 잘 녹여내는지가 가장 중요하죠. 그리고 그 토대에는 전통음악이 있어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기회가 될 때마다 전통음악을 꾸준히 연주하고자 노력하고 있고요.”
그렇다면 그는 대금, 나아가 전통악기의 가능성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한국음악에서의 대금이 아니라 컨템퍼러리 음악에서의 대금을 생각하는 그에게 악기는 어떤 존재일까.
“대학을 다닐 때도, 정가악회 활동을 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내가 국악의 다양성 확보에 일조할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그래서 지금은 현대음악에 있어서 전통악기나 연주자들이 활동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죠. 대금이라는 악기의 확장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봐요. 중국·일본 같은 동아시아만 봐도 악기의 재료가 자연 소재에서 화학 물질로 바뀐다거나, 쇠로 된 키 같은 부가 장치를 달아서 규격화시키곤 하는데, 국악기는 개량됐지만 원형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죠. 굉장한 강점이라고 생각해요. 자연 재료에서 비롯하는 소리와 에너지가 정말 중요하니까요. 저는 오히려 그런 점에서 국악기의 음악적 확장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연주자 역시 그러한 부분을 잘 이해하고 강점으로 살려 연주해야 한다고 봅니다.”
인터뷰를 정리하면서 그에게 대금 연주곡 추천을 부탁했다. 자신의 음반(EP)에 수록된 곡이기도 한 세바스티안 클라렌 작곡의 민속악 대금을 위한 <오늘, 나는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Vol.1)>를 이야기하며 자신에게 특히 “의미 깊은 곡”이라고 소개했다. 작곡가는 그에게 3년여간 대금을 배우고 비로소 이 곡을 완성했다고 한다. 첫 소절부터 ‘대금 독주’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쨍그랑 깨며 등장하는 이 곡, 독자에게도 필청을 권한다.


 

서정민, 귀한 재주를 귀히 여기는 소리꾼

소리꾼 서정민

‘소리의 고장’ 전주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때까지 그곳에서 자란 서정민은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아이였다. 네 자매 중 셋째 딸이었던 정민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마음은 애가 탔다. 커서 무엇을 하게 될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던 아이는 일곱 살 무렵, 판소리가 하고 싶다고 했다. 명절날 텔레비전에 비친 국악 공연을 보곤 흥이 돋은 것일까. 걱정 많던 어머니는 “하고 싶다”는 한마디에 스승을 수소문했고, 이일주 선생에게 데려갔다.
유독 엄하게 느껴졌던 이일주 선생은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무엇이든 완성이 돼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었다. 8살 때부터 선생에게서 귀한 소리를 배운 그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안숙선 선생을 만나게 된다. 만사에 엄격했던 이일주 선생과 달리 제자들에게 하염없이 다정다감했던 안숙선 선생에게서 다양한 소리를 배우며 학사와 석사 과정까지 마쳤다. 그렇게 소리꾼으로 성장한 그가 벌써 40대에 접어들었다.
대학을 졸업하던 때 여성 전통소리그룹 ‘절대가인’을 만들어 판소리와 민요, 창작음악을 아우르는 당찬 활동을 보여줬던 그가 얼마 전 여류명창 ‘가음’을 창단하고 지난 5월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에서 공연을 열었다. ‘공을 쌓는다’는 의미를 담은 공연 제목 <적공>에서 여성 명창들의 단단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여류명창 ‘가음’에 함께하는 다섯 사람이 모두 40대예요. 저희끼리는 ‘낀세대’라고 부르죠. 젊은 세대는 아니고, 그렇다고 선생님들처럼 공력을 쌓은 세대도 아닌, 좀 어중간하다고 할까요? 그런 저희가 정통 소리로 울고 웃을 수 있는 무대가 없더라고요. 그렇지만 이렇게 소리를 하고 있는 훌륭한 분들이 너무나 많잖아요. 이들에 한자리에 모여서 소리를 들려주고, 또 서로의 들어볼 수 있는 무대를 만들자고 생각했어요. 5월 31일 서울 공연이 끝난 뒤에는 전주·부산 등 전국을 돌면서 공연할 예정이고요. 이런 무대를 통해 우리의 정통 소리를 잘 전해드리고 싶은 마음이에요.”
공연만이 아니다. 서정민은 좋은 소리를 들려주고 싶다는 그 마음으로 우리 소리를 기록한 악보집도 꾸준히 발간하고 있다. 직접 음악을 채보하고 오선지에 옮겨 엮은 것이 벌써 여섯 번째 책으로 이어졌다. 근간인 <오선악보로 보는 남도민요①>(지식과감성)에는 남도 지역에서 구전되는 민요 30곡을 담았다.
“이제는 고인이 되신 작곡가 백대웅 선생님께 많은 가르침을 받았어요. 소리도 곧잘 하는데 악보 해석도 잘한다며 저를 아껴주셨죠.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전문사(석사 과정)를 마치고 한양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하면서 안숙선 선생님께 박봉술제 적벽가를 배웠어요. 제가 동초제 소리를 하는데, 보아하니 동초제 적벽가는 연구가 안 되어 있더라고요. 그래서 공부해봐야겠다고 결심하고 한바탕 채보했죠. 비록 논문에 전부 쓰이지는 않았지만 뜻깊은 시간이었어요. 그걸 보고 이진원 교수님이 채보 능력을 썩히지 말고 책을 내보라고 추천해주셨죠. 그래서 ‘적벽가’를 시작으로 동초제 판소리 다섯 바탕을 목표로 악보집을 만들기 시작한 거예요. 제 능력을 토대로 한 사명감이라고 할까요? 국악계에 이바지하고 싶은 욕심이라고 할까요? 굉장히 힘든 작업이지만 열심히 하고 있어요. 누군가 기록을 남겨야 다음 사람이 또 다른 작업을 해 볼 수 있을 테니까요.”
더 많은 이들에게 판소리가, 우리의 음악이 가닿을 수 있도록 열의를 다하고 있는 그에게 젊은 소리꾼들이 선보이는 새로운 국악과, 트로트가 인기를 얻고 덩달아 판소리에도 관심이 쏠리는 요즘의 현상을 체감하느냐 물었다.
“실감하지요. 물론 그러한 관심과 변화가 저에게까지 오진 않았지만요.(웃음) 과도한 관심으로 인한 부작용이 있을 수 있지만, 일단은 대중의 관심 밖에 있던 판소리가 나름의 계기로 다시 주목받고 또 방송을 통해 종종 소리 한 자락씩 들을 수 있으니 참 좋다고 생각합니다.”
서정민은 오는 7월 14일, 서울돈화문국악당에서 열리는 국악 입문 강좌 <우리악기 우리음악>의 마지막 수업을 맡아 <슬픔의 정화: 아쟁과 판소리>를 주제로 아쟁 연주자 이화연과 함께 시민들을 만난다. 독특하게도 판소리만 아니라 슬픔과 한의 대명사로 불리는 아쟁과 소리를 하나의 수업으로 묶었다.
“아쟁과 남도민요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죠. 아쟁과 소리를 엮어서 풍성하게 프로그램을 짜고, 따로 또 같이 연주를 들려주고자 해요. 소아쟁, 즉 산조아쟁이 처음 만들어진 계기가 여성국극 민요 반주를 위해서라고 하더라고요. 그런 역사적 이야기를 기반으로 해서 이론과 실기를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재밌는 수업을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김태희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무용이론을 공부했다. 월간 <객석>과 서울문화재단·국립극장에서 잡지를 만들었으며,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제12회 ‘젊은 비평가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