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조라는 게 결국 인생 같다”
허윤정 감독은 “산조가 고등 교육 안으로 들어오면서 악보화가 되고, 그러면서 산조의 음정이 마치 서양의 평균율 음정과 비슷한 것으로 점차 인식되어지는 것 같다. 아마 아래 세대로 내려갈수록 더 그렇게 될 것”이라며 “산조의 본청 음이 C라면, 그건 피아노의 C음이다라고 인식이 고정화되는 거다. 성음이라는 건 악기가 내는 음정만을 듣고 음으로 인식해서 구현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굉장히 복합적인 것”이라고 했다.
“조의 이면도 알아야 하고, 음색, 강약, 장단의 호흡... 이런 모든 것이 맞을 때 성음이 좋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의 근대 교육 안에서는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굉장히 종합적이고 총체적인 교육이 가능해야 한다. 그렇다고 지금 현실이 이렇다고 해서 그 부분을 포기할 수는 없다. 산조야말로 아주 높은 차원의 예술이고, 전 세계 어디 내놓아도 부족할 것 없는 우리 음악 유산이니 더더욱 놓치고 싶지 않다.”
-다양한 활동을 많이 하시는데, 단 한 곡을 뽑자면 산조라고 말한 적이 있다. 산조의 매력이 뭘까.
“일단 명인들의 산조를 들었을 때 내 마음의 울림이 어떤 음악보다 강하고 감동을 준다. 아주 원초적이다. 나를 끊임없이 겸손하게 만들고, 간절한 목표를 갖게 만드는 음악이라 끊을 수가 없다. ‘이 정도 됐으면 괜찮아’라고 할 수 있는 음악이라면 만족을 할 텐데, 산조는 정말 천변만화하니까. 나이에 따라 다르고 내 정신 상태에 따라 다르고, 연주하는 공간에 따라서도 다르다. 이렇게 생물처럼 살아 움직이는 게 산조의 매력 아닐까.”
-서울돈화문국악당은 산조를 연주하기에 어떤가.
“관객석의 경사로 인해 연주자가 비교적 아래에 있고 위쪽에서 관객이 내려다보고 있는 구조라서 연주와 주법의 모든 것을 다 보여줄 수 있지만, 한편으로 연주자의 모든 면이 다 드러나는 공연장이다. 그러면서도 무대와 객석이 가까워 산조의 깊이를 어느 공연장보다도 더 잘 느낄 수 있다. 서울돈화문국악당은 국악전용극장 중에서도 규모로 보나 위치로 보나 전용 극장의 역할을 가장 충실하게 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산조와 잘 어울리는 기획이라고 본다.”
-어릴 때 연주하는 산조와 나이가 들수록 정말 다른가.
“갈수록 어렵다. 아는 만큼 들리기도 하고, 테크닉은 조금 더 나아졌을지 몰라도 더 많이 들리니까 오히려 내가 원하는 부분과 갭(차이)이 커진다. 산조라는 게 결국 인생 같다. 나이대별로 그때그때마다의 산조가 다르게 나타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내게는 구도자와 같은 길을 걷게 하는 음악이랄까. 그 음악을 알아갈수록 점점 더 성장하게 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