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여름   山:門 PEOPLE

인터뷰│서울남산국악당 [2023 젊은국악 단장]

송현민
발행일2023.06.19

젊은 국악인들이
진화하는 시간

 
2018년 첫선을 보인 ‘젊은국악 단장’은 이제 서울남산국악당에 든든히 자리 잡은 브랜드 콘텐츠이다. 2016년경부터 예술계에는 이른바 ‘청년예술’ 붐이 불었다. 이전에는 ‘젊은’ ‘신진’ ‘청년’이라는 타이틀로 젊은 예술가들에게 공연 기회를 제공하는 시스템이 다분했다. 하지만 위와 같은 붐과 함께 젊은 예술가들에게 ‘어떤 형태의 지원을 하느냐’에 따라 지원사업의 정체성과 결과물들이 달리 나오기 시작했다.
 

다양성을 존중해온 지원사업

초창기 단장은 오디션 방식으로 젊은 예술가들의 이목을 끌었다. 크라운해태의 10년 지원을 약속받은 서울남산국악당은 단장을 통해 헤이스트링을 첫해에 정식 등단시켰다. 그리고 ‘단장’ 사업은 그 과정의 보모 역할을 자처했다. 서울시도 2017년부터 서울청년예술단 지원을 통해 청년 예술가들에게 매달 활동비를 지급하며 그들의 활동과 안정을 도모하던 때였다.
단장은 꾸준히 진화했다. 2019년에는 경쟁보다 제작 과정에 초점을 맞췄다. 이에 따라 지원 방향은 선발된 이들의 인큐베이팅과 성장을 돕는 식으로 나아갔다. 참가자들의 종목도 ‘국악’으로 한정 짓기보다 ‘다양화’를 꾀하는 협업의 노선을 격려했다. 박선주(가야금 퍼포먼스), 송다민(창작 환술사), 이동빈(탈 액터), 남우찬(연극연출가), 나무령(해금), 조의선(정가 보컬리스트) 등이 주인공이 되어 그해 12월 쇼케이스를 가졌다. 이들이 선정되는 동안, ‘단장 1기’라 할 수 있는 헤이스트링은 영국 런던 사우스뱅크센터(퍼셀룸)에서 데뷔 공연을 가졌다.
2018 단장_헤이스트링(가야금 앙상블)
2019 단장_이동빈(탈 액터)

시대적 변화에 맞춰 변화해온
지원 방식

2020년, 코로나가 시작되었다. 해를 거르지 않고 진행되어온 단장의 과정도 온라인과 랜선을 통해 진행되었다. 탈춤을 응용한 이동빈의 ‘언박싱’, 판소리를 기반으로 한 ‘부동산’, 가야금 연주자 박선주의 ‘NEW MUSIC’을 네이버TV와 서울남산국악당 채널에서 접할 수밖에 없었다.
2020 단장_박현지, 백다솜, 박현미
2021 단장 제작공연_김남령(해금)
2022 단장_구이임(음악)
2022 단장_김성현, 이정동, 정승하(연희)
2022 단장_김철진(가야금)
2022 단장_김현선, 이이슬, 최종인(무용)
2022년, 단장은 살짝 물꼬를 틀었다. 그간의 공모 방식이 아닌 현장 전문가 추천제로 진행되었다. 4인의 현장 전문가가 선정부터 기획 과정에 합류했다. 음악평론가 윤중강이 추천한 3인의 연희 예술가 김성현·이정동·정승하가, 무용 기획자 장승헌이 추천한 이이슬·김현선·최종민이, 음악학자 김희선이 추천한 가야금 연주자 김철진이, 음악평론가 송현민이 추천한 그룹 구이임이 단장의 네 무대를 빛냈다.
2023년, 단장은 공모제를 통해 문을 열었고 지원 규모도 확대했다. 참가자들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방향은 여전하다. 그 결과 음악에 노은실, 연희에 농악천하지대본, 무용에 김기범이 선정되었다.
 

노은실, 판소리 실험실을 차리다

2023 단장_노은실(음악)
2023 단장_노은실(음악)
노은실은 판소리를 전공한 뒤 체코 국립예술학교에서 유학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체코브루노국제공연예술제, 에든버러 프린지페스티벌, 오클랜드 아츠페스티벌 등 해외 공연 경력도 다수. 외부의 시선으로 판소리 내부를 살펴보는 그는 “스스로의 보이스 스펙트럼을 넓혀 나가고 있다”고 한다. “앰비언트 판소리(ambient pansori)는 기성 판소리의 기능적 표현에 대해 새로운 접근 방식을 모색한 작품으로 목-소리를 통한 감각 확장과 명상을 주제로 창작한 것입니다. 작품에서 선보일 소리의 단편은 리서치를 통해 얻게 된 예술적 감각들을 연결한 것이며, 이는 물과 흙, 바람의 자연을 구성하는 상징들로 큰 틀이 구성되어 만물을 노래하는, 관음(觀音)의 순간을 구성해보고자 합니다.” 단장에 올릴 작품은 음반과 뮤직비디오로도 제작할 계획이며, 2024년 상반기에 체코에서도 선보일 계획을 세우고 있다.
 

농악천하지대본, 
연희의 미지수를 즐기다

2023 단장_농악천하지대본(연희)
2023 단장_농악천하지대본(연희)
농악천하지대본은 6명의 연희자로 구성되었다. 넓은 의미의 연희 세계를 체험한 이들은 “다가오는 시대에 맞춰 농악은 어떻게 발전해야 하는가”라는 첨예한 문제 의식도 품고 있다. 이 고민 앞에 이들은 ‘보존의 울타리’를 쳐가면서 동시에 ‘실험의 탈주선’도 만들어볼 예정이다. “다양한 레퍼토리 개발을 위해 ‘홑/겹’을 콘셉트로 한 공연을 준비 중입니다. ‘홑’은 하나입니다. 그 하나가 ‘둘’ 이상의 겹이 되면 다양한 조화를 추구하게 됩니다. 이렇듯 예술은 ‘1+1=2’가 아닌 ‘1+1=α’라는, 즉 알 수 없는 미지수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한 시공간에 함께 있는 홑(하나)이 겹(공연자-관객-연주자)이 되며 예술의 미지수를 만들어내고, 다시 홑(하나)이 되면 자신만의 선명한 색을 띠는 등 다양한 시도를 보여줄 예정입니다.”
 

김기범, 
널뛰기와 춤의 언어를 접목시키다

2023 단장_김기범(무용)
2023 단장_김기범(무용)
노은실과 농악천하지대본처럼 청년 예술가들의 핵심은 시선의 전이와 전환에 있다. 평범한 소재라 할지라도 새로운 시선과의 교접과 이접을 통해 소재는 기존의 고리를 끊고 새롭게 태어난다. 그런 점에서 안무가 김기범의 소재도 흥미롭게 다가온다. ‘널뛰기’이다. 무엇보다 그는 운동으로 예술을 빚는 안무가답게 널뛰기에 내재된 운동성을 주목했다. “널판 가운데 둥근 짚단을 놓고, 상대방의 무게를 이용해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널뛰기의 풍경은 물리적인 힘의 전달 과정을 정확히 보여줍니다. 이 작품을 통해 널뛰기에 담긴 힘의 관계와 운동성은 물론 이를 확장하여 현대인들의 관계와 사회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단장은 그가 구상 중인 시리즈의 첫 출발점이기도 하다. “이후 공기놀이, 딱지치기, 연날리기, 투호, 고싸움, 놋다리 밝기 등 전통놀이에 담긴 원리와 비밀들을 무용으로 선보일 계획입니다.”
 

단장, 젊은 국악을 위해
더욱더 진화했다

단장은 4월에 공모를 시작하고 노은실, 농악천하지대본, 김기범을 선정했다. 10월, 이들의 무대가 펼쳐진다. 작품으로 향하는 지도는 제각각이지만, 길목마다의 이정표와 표지석은 단장이 설치한다. 리서치 창작 워크숍을 비롯하여 전문가 멘토링, 홍보 사진과 영상 촬영, 내부 시연회 및 중간 점검, 그리고 쇼케이스가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청년 예술가들의 진화만큼이나 지원 정책들도 진화하며 발을 맞추고 있다. 넓어진 글로벌 시대이자,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제트 플라잉 아티스트들의 활약이 활발해지고 있는 지금. 이러한 변화 속에서 단장은 10월에 열리는 서울아트마켓(PAMS)과 연계·협력하여 쇼케이스를 선보인다. 서울아트마켓은 한국 예술가와 단체의 해외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해외 진출이 가능한 작품을 발굴해 그들을 지원하는 장이다. 즉, 단장의 선정자들을 만나는 관객과 관계자들이 국내를 넘어 국제화되었고, 이들의 작품도 국내 유통만으로 그치지 않고 국제적으로 확장되는 가능성의 시간이 10월 쇼케이스에서 펼쳐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간을 통해 단장의 지원 시스템은 물론 선정자들과 작품도 진화할 예정이다.
송현민
음악평론가. ‘한반도의 르네상스’를 주장했던 음악평론가 박용구론으로 제13회 객석예술평론상을 수상했고, 충실한 ‘기록’이 미래를 ‘기획’하는 자료가 된다는 믿음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