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여름   山:門 PEOPLE

인터뷰│서울남산국악당 시민국악강좌 [남산율방] 예술감독 윤중강

구수정
발행일2023.05.12

부모는 율(음악)을 향유하고,
아이는 율과 함께 놀고

 
<남산 율방>의 예술감독 윤중강
“잠시 조선시대 남산골 ‘서생 윤(중강)씨’의 율방(律房)에 들러 거문고 한 자락 듣고 가시지요.” 보슬보슬 봄비가 처마 아래로 도르르 떨어지고 서울 남산의 나무들이 초록 물기를 잔뜩 머금은 4월 26일. 서울남산국악당이 시민국악강좌로 선보일 <남산 율방>의 윤중강 예술감독을 만났다. <남산 율방>의 기획 의도를 묻자 윤 감독은 순식간에 시간을 넘어 남산골의 ‘서생 윤씨’가 되어 있었다. “평론가는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라면서 “이렇게 비가 오는 날 나막신은 살 돈이 없어 짚신을 신고 다니면서도, 사랑방에는 가장 좋은 오동나무로 만든 거문고가 걸려 있는 선비가 되어 이 여정을 안내하는 게 내 역할”이라고 이야기한다.
 
<남산 율방>은 부모와 아이가 참여하는 전통공연 및 놀이체험 프로그램이다. 추천대상은 부모와 어린이(5~7세 내외). 부모는 조선시대 사랑방 문화였던 풍류의 가(노래)·무(춤)·악(음악)을 감상하고, 아이는 전래동요와 놀이를 체험한다. 기획 과정에서 윤 예술감독은 “어른들은 음율(音律)을 느끼고, 아이들은 율희(律戱)를 즐겼으면 한다”는 바람을 내비쳤다고 한다. 강좌의 제목으로 ‘율방’을 제안한 것도 그 맥락에 있다. “음악(音樂)은 실은 일제강점기 국민학교 음악 교과서에서 나온 말”이라며 1930년대의 유성기 음반에서도 전통음악 <영산회상>을 ‘음율’이라는 명칭으로 소개했다고 한다. 따라서 음악이라는 용어보다는 ‘음율’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길 바라는 마음에 <남산 율방>이라 지었다.
 

음율에 심취하는 부모,
음율과 노는 아이

<남산 율방>에는 세 명의 율객(律客)이 함께 한다. 거문고 연주자 김준영(6월 3일), 정가와 민요를 부르는 김보라(6월 17일), 궁중무용을 선보일 송영인(7월 1일)이다. 악기 하나로 들을 수 있는 여운, 숨소리까지 느낄 수 있는 노래, 홀로 추는 정재(궁중무용). 단출하면서도 가장 전통적인 음율을 느낄 수 있는 구성이다.
거문고 연주자 김준영
가객 김보라
무용수 송영인
거문고는 사랑방 풍류에서 으뜸인 악기이다. 낮은음으로 돌아드는 <하현도드리>와 여백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태평가>를 묵직한 현의 소리로 들을 수 있다. 또 풍류방에서 가곡(歌曲)을 빼놓을 수 없다. “청산(靑山)도 절로 녹수(綠水)라도 절로, 산도 절로 물(水)도 절로, 산과 물 사이에 나도 절로, 우리도 절로 자라난 몸이니 늙기도 절로 늙으리라”는 노랫말을 가진 여창가곡 <계락(界樂)>이 불려진다. 기대되는 것은 무반주로 듣는 정가라는 점이다. 악기(반주)를 덜어내고 오직 가객의 목소리와 그가 직접 연주하는 장구의 울림만 담긴 율방이라니, 운치 있다.
 
1828년 효명세자가 모친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춘앵전(春鶯囀)>은 화문석 위에 무용수는 꾀꼬리와 같은 노랑 앵삼(鶯衫)을 입고, 머리에는 화관을, 손에는 오색 한삼을 끼고 춤을 춘다. <춘앵전>에 쓰이는 반주음악은 바로 <영산회상>의 여러 악곡이다.
 
보통 공연장에서는 캄캄한 무대에 조명이 켜지면 공연자가 등장해 있고, 연주가 끝나면 암전이 되기 마련이다. 관객은 무대의 의도대로 연주의 완성된 장면만 뇌리에 남긴다. 그러나 <남산 율방>에서는 완성된 모습뿐 아니라 무대가 이루어지는 과정도 지켜볼 수 있다. 여기에 서생 윤씨는 “자네, 대점(거문고를 세게 내려치는 주법)이 시원한데 한번 보여주게나”, “오늘은 마음이 시름허니 편안하게 불러주오”라며 자연스레 풍류에 합류한다. 때론 평상복을 입은 무용수를 도와 앵삼을 들어 주기도 하고, 화관을 씌워주기도 하며 공연과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기여하기도 한다.
고누놀이
비석치기
그렇다면 아이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큰아버지 댁에 놀러 온 조카들처럼 아이들은 건넌방에서 <잠자리 꽁꽁>, <달팽이 집을 지읍시다>, <남생아 놀아라> 등의 전래동요를 익힌다. 딱지놀이, 비석치기, 사방치기, 고누놀이, 제기차기 등의 전통놀이를 체험하기도 한다. 강인숙 전통놀이지도사가 아이들을 우리 놀이의 세계로 안내한다.
 
도시의 아이들은 참 놀거리가 없다.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놀잇감은 재미뿐 아니라 우리 기층문화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일주일에 하루쯤은 컴퓨터게임에서 벗어나 꼼지락거리며 딱지도 접어보고, 돌을 던져 공간을 인지하고, 함께 협동하여 논다면 몸뿐 아니라 마음도 건강해질 것이다. 아마도 주어진 120분이 부족할지 모르겠다.
서울남산국악당
서울남산국악당

힐링은 자연과
소리를 느끼는
필링으로부터

<남산 율방>만의 큰 특징은 서울남산국악당이라는 공간에서 부모와 아이가 따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다. 아이는 아이들끼리 전통놀이를, 부모는 율방(체험실)에서 풍류를 감상한다. 여기에서 <남산 율방>이 처음 기획된 배경이 필자를 사로잡는다. 서울남산국악당에서는 전통예술 체험과 공연을 함께하는 <우리가족 국악캠프> 등의 가족형 프로그램을 기획해왔다. 그런데 대부분 아이들의 체험이 중심이 되기에, 정작 부모는 아이를 돌보느라 충분히 즐기지 못하고 있었다. <남산 율방>은 이렇게 ‘육아에 지친 어른들을 위한 체험은 없을까’ 하는 고민에서 탄생되었다.
 
그리고 러닝타임에서도 신경 쓴 노하우가 돋보인다. 아이를 위한 전통놀이는 120분, 양육자를 위한 율방은 90분으로 소요 시간이 다르다. 어른들은 율방에서의 풍류 강좌가 끝나고 나면 아이의 놀이가 끝날 때까지 달콤한 다과를 즐길 수 있는 ‘쉼’의 시간이 주어진다. 이 시간에는 마루 끝에 앉아 남산에 걸린 하늘을 바라보아도 좋고, 방금 전 감상한 ‘음율’을 음미해도 좋다.
 
윤 예술감독은 ‘힐링(Healing)’이란 곧 “자연과 소리를 느끼게 하는 필링(Feeling)”이라 말한다. 율방에서는 부모의 의무, 직업인의 무게는 잠시 내려놓길 바란다고. 그에게 또 다른 계획을 묻자 “율(律)은 조화와 질서를 말하는데, 세상의 조화와 질서에 기여하고 싶다”라고 말한다. 참으로 남산골 ‘서생 윤씨’다운 답변이었다.
 
짧지만 강렬한 인터뷰를 마치고 남산을 내려오는 길에 기이한 기분이 들었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 안에 이러한 숲과 옛 한옥에 서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생기 가득 찬 봄비 속에서 아이처럼 잡은 우산이 정겹게 여겨진다. 돌아가 아이에게 말해볼까 한다. “이제, 우리 조선 시대로 시간여행이나 가볼까?”

온 가족이 함께하는 서울남산국악당 추천 공연
(아래 제목을 클릭하여 공연페이지로 이동)
 
2023 남산소리극축제 <말하는 원숭이> 5월 20일
* 국악연희극 <연희도깨비> 8월 3일~5일
 
 
구수정
음악치료사. 소외되고 외로운 것에 마음이 가고, 평범함 속에서 특별함을 찾아낸다. 에세이 <가끔은 혼자이고 싶은 너에게>(2017), <마음을 듣고 위로를 연주합니다>(2023)를 썼다. 음악교육자로, 음악연구자로 음악 안에서 인생을 자유롭게 변주하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