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 9호

이 많은 국악영상, ‘어떻게’ 쓸 것인가

송현민_음악평론가
그림신혜미_일러스트레이터, 그래피티 아티스트
발행일2021.11.09

백신의 접종과 함께 일상의 회복을 내다보는 지금, 포스트 코로나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특히 코로나 시기를 거쳐오면서 맞닥뜨린 비대면의 국면을 통과하며 생산된 수많은 국악영상물은 어떻게 다시 다뤄져야 할까. 현장을 영상으로 기록하는 것의 문제만큼이나 그 기록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의 질문은 이제 더 던져져야 할 것이다.

코로나 이후, 국면 전환에의 기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국악이 처한 새로운 국면은 어떠할까’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작년 봄부터 시작된 국악 공연의 취소와 연기는 정체기를 가져왔지만, 한편으로 비대면 콘텐츠 공간으로서의 인터넷 세상에서의 다양한 움직임은 새로운 국면과 미래를 예고했기 때문이다. 

아직 코로나가 끝난 것은 아니지만, 최근 생각해보고 있는 것은 ‘기록’과 ‘기획’이다. 여기서 ‘기록’이라 하는 것은 코로나와 함께 우리가 인터넷 세상에 남긴 콘텐츠로, 한마디로 비대면 공연 영상물들이다. 인터넷 세상이 멸망하지 않는 이상 이것들은 영구적으로 존재할 것이다. 더불어 ‘기획’이라 하는 것은 앞으로 이것들을 어떻게 활용할지를 뜻한다. 결론적으로 그간 인터넷 세상에 쌓인 비대면 콘텐츠(영상물)가 기록물로만 국한되지 않고, 공연과 같은 기획물로 어떻게 하면 될 수 있는가를 고민해보곤 한다.

코로나 시대에 불러온 국악 영상물 제작 붐

‘비대면 공연’은 코로나 시대에 그 존재가 뚜렷하게 부각된 공연 미디어다. 그전까지 공연은 공연장에서 보고 접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공연’이라는 말 앞에 ‘온라인(공연)’과 ‘오프라인(공연)’이라는 말을 무의식적으로 떠올려보곤 한다.
온라인 속 국악 공연을 편안하게 관람하는 관객, 일러스트레이션 ⓒ 신혜미

이러한 영상물들은 ‘공연장 관객’을 넘어 ‘영상물 관객’도 만들어냈다. 코로나 이전에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실황 영상물들을 보면서, 공연만큼이나 남다른 실재감을 불어넣는 그들의 영상기법을 보면서 “언젠가 오페라극장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오페라 마니아가 생길지도 모른다”라는 내용의 칼럼을 쓴 적이 있다. 특히 공연장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이들이 인터넷과 접속하여 한 번도 본 적 없는 국악 공연을 접할 수 있게 된 것도 코로나 시대가 준 특권(?)이다. 

이 과정에서 생산된 영상물들은 공연장이나 음악가가 조용히 운영하던 온라인 채널에 쌓여 일종의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이를 통해 코로나 이전까지 조용히 운영해온 온라인 채널에는 활력이 생기고, 온라인 곡간도 풍성하게 채워졌다. 2020년 1월 20일, 국내 첫 코로나19 감염자 발생 후 공연장과 예술단체들은 취소나 잠정적 연기를 내걸며 휴지기에 들어갔지만, 3월경부터 온라인으로 대부분의 공연 활동을 옮겨지고 예술가들이 망명하며 제작하고 비축한 국악 영상물은 2021년의 말인 지금, 계산해보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음을 체감하게 된다.

기록물이 기획물로 전환되는 순간

서울남산국악당은 2020년 8월부터 11월까지 국악당 내 야외마당에서 국악영상 상영회를 선보였다. 상영회가 시작된 8월은 국악계는 물론 전반적인 공연예술계에서 제작한 비대면 콘텐츠가 차고 넘칠 때였다.
10:00 ~18:00까지 야외마당에서 상설상영하는 2021년 국악영상상영회 ⓒ 서울남산국악당

이 상영회는 코로나 시대에 제작한 영상물을 선보인 자리는 아니었다. 서울남산국악당이 기획한 화제의 공연들을 기록용으로 촬영한 영상물들이었는데, 이러한 영상물이 일종의 콘텐츠로 기획되어 상영된 것이다. 이것들을 제작할 때 훗날 이런 용도로 사용될 줄은 서울남산국악당 측도 몰랐을 것이다. 코로나 시대에 접어들면서 ‘공연을 영상으로 본다는 것’에 대한 거리낌 없는 관객들의 공연 관람 방식과 유행도 이 상영회의 기획에 한몫했을 것이다. 한편 ‘아픔의 기획’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것은 공연장 본연의 기능인 공연이 마비된 상태임을 고백하는 시간이었고, 기존 기록을 통해서라도 공연장의 공연 기능을 이어나가겠다는 의지였으니 말이다. 이제 이러한 ‘기록’들을 어떻게 ‘기획’해야 하는가에 대한 시점인 것 같다. 

‘기록’과 ‘기획’의 관계는 ‘보관’과 ‘개방’이라는 묘한 상호작용성을 갖는다. 미술에서 수장고 전시는 기록과 보관, 기획과 개방이 묘한 관계를 유지하는 기획이다. 수장고 전시를 행하는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은 이러한 형태를 대표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근·현대 시기의 한국영화를 다루는 한국영상자료원도 그러하다. 굴곡 많은 근현대사 속에서 분실되었던 한국영화의 필름을 찾고 복원하며 ‘기록’에 힘 쏟던 한국영상자료원은 이렇게 쌓인 아카이브를 시민들에게 어떻게 공개하고 선보일지 늘 고민한다. 그 결과 기록물로 자리 잡은 것들을 새롭게 엮어 새로운 기획물을 선보인다. 이러한 상황에 비추어볼 때, 지금 인터넷에 수많은 국악 공연의 기록들은 널브러져 있을 뿐, 기획의 옷을 입고 있지 않다.

코로나 속의 기록,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기획

인터넷 속 국악 공연 기록물에 대한 새로운 기획이 필요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게 된 것은 올해 3월에 있었던 서울돈화문국악당의 ‘산조대전’ 때문이었다. 3월 17일부터 4월 25일까지 약 한 달에 걸쳐 44명의 연주자가 46개의 산조를 선보였다. 

핸드폰으로 쉽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국악 공연, 일러스트레이션 ⓒ 신혜미

1990년대 말에 나온 ‘뿌리깊은나무 산조전집’과 ‘젊은 산조’ 음반 시리즈가 20세기를 대표하는 산조 모음이었다면, 서울돈화문국악당의 ‘산조대전’은 21세기를 대표하는 산조의 축제였다. 코로나로 인해 오프라인 공연은 좌석 간 거리두기를 전제로 진행되었고, 공연 실황은 1주일도 되지 않아 고화질과 고음질의 영상물로 돈화문국악당 온라인 채널에 업로드되었다. 이를 통해 돈화문국악당은 오늘날의 산조 기록을 역사에 남긴 것이었다.

2021 산조대전 ⓒ 서울돈화문국악당 유튜브 채널
이후 가진 내부적인 좌담회에서 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공연장에서의 산조대전은 막을 내렸지만, 온라인에서의 산조 대전은 이제 시작인 것 같다. 오늘을 대표하는 연주자들의 훌륭한 연주의 순간은 좋은 화질과 음질의 영상물로 남았다. 훗날 2020년대를 대표한 산조가 궁금하다면 이곳으로 오면 된다. 공연에서의 아쉬움은 없지만, 온라인에서 개막(?)한 산조대전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떤 영상을 보아야 할지, 어떻게 보아야 할지 안내하는 온라인 속에서의 ‘산조대전’ 안내자가 필요하다.”
2021 산조대전, 박다울류 거문고산조 공연중 유튜브 영상 ⓒ 서울돈화문국악당 유튜브 채널

이러한 영상물들을 기록으로만 놓아두기에는 너무 아깝다. 만약 이러한 기록에도 기획의 옷이 입혀져, 산재한 영상물들을 새롭게 엮어 온라인 축제 같은 것을 해본다면 어떠할까? 기획력을 입힌 온라인 상영회를 통해 이 기록물들을 다시 활용해보면 어떠할까? 

한때 기록에만 치중했던 아카이브 문화의 유행도 기획을 통해 공개와 공유로 나아가고 있다. 수집과 수집가도 중요하지만, 재배열과 기획자도 필요해지고 있다. 따라서 ‘코로나 시대의 기록’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기획’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료이자 연료와도 같다.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혹은 갖게 된 것은 무엇인지 살펴보는 자세가 필요한 시간이다. 

송현민_음악평론가
제13회 객석예술평론상 수상했고, 전통예술과 클래식 음악에 대해 비평·강연·저술하고 있다. 남산국악당 예술전문위원, 국립국악관현악단 프로그램 디렉터, 국립국악원 운영자문위원, 월간 ‘객석’ 편집장으로 활동 중이다.
그림 신혜미_일러스트레이터, 그래피티 아티스트
일상 공간 속에 숨어있는 사랑스럽고 코믹한 캐릭터와 상황들, 보는 이로 하여금 유쾌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일러스트레이션, 스트리트아트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동두천 보산동 공공미술 프로젝트, 부산 아트페어 벽화 작업, HKwall 스트리트아트 페스티벌, 을지아트거리 조성 프로젝트에 참여하였다. 또한 클래시로얄, SK와이번스, 배틀그라운드, 키플링, 삼성병원 등 다양한 브랜드들과 콜라보 작업을 진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