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 2호   山:門 REVIEW

‘온라인 망명지’에서 예술가들을 만나다서울남산국악당 온라인 생중계: ‘적벽가’, ‘남창가곡’, ‘단장’ 시리즈

음악평론가송현민
발행일2020.08.11
 

   지금의 공연장이 조심스럽게 개방되는 분위기이지만, 코로나19 이후 공연계의 화두는 여전히 온라인 공연 혹은 중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장 코로나가 종식될 수 없다면 '위드(with)'코로나가 거론되고 있는 가운데, 온라인으로 공연을 접하는 방식은 불가피하게 점점 더 고려의 대상이 될 것이다. 서울남산국악당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어서, 그동안 시도한 온라인 공연 상황에의 적응과 반응에 대해 되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무관중 생중계의 고육지책

코로나19 소식이 뉴스를 장식하던 올해 1월은 답답한 날들이 연일 이어진 시간이었다. 1월 중순부터 공연장과 예술단체들은 본격적으로 공연 여부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특히 내한하는 해외 예술단체의 갑작스런 취소 소식은 코로나가 비단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 문제라는 것을 실감하게 했다. 한해가 열리는 1월, 언론은 올해 주목해야 할 공연 소식보다 취소 소식을 앞다투어 전했다. 

공연장과 예술단체들은 진행될 공연 대부분을 ‘취소’와 ‘연기’로 내걸었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전으로 지속되리라는 전망과 함께 공연계는 얼어붙기 시작했고, 공연장과 예술단체들이 이 사태를 헤쳐나가기 위한 쇄빙선으로 내건 것이 ‘무관중 생중계’였다. 다수의 인원이 밀폐된 공간 안에 일정한 시간 동안 머물 수 없다는 분위기와 이를 금하는 정부 지침과 함께, 공연장은 최소 인원으로 ‘무관중 생중계’라는 전례 없는 공연 방식을 감행하기로 한 것이었다. 

공영방송이나 국악방송(FM99.1)을 통해 중계되던 국악은 무관중 생중계를 통해 관객과 만나기 시작했다. 서울돈화문국악당은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시리즈의 2월 29일 공연을 온라인으로 생중계하며 국악계에서 첫 선을 끊었다. 이후 무대를 잃은 예술가들은 난민이 되어 온라인 속 세상을 망명지로 택했다. 
 

관람 방식에 차이를 주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로

서울남산국악당도 이러한 흐름에 보폭을 맞추며, <적벽가: 불과 바람의 노래>와 <남창가곡>을 각각 4월 25일과 26일에 ‘NAVER 공연 live’로 내놓았다. 공연 소식에 목말라하던 언론은 이 소식을 4월 초부터 부지런히 전했다.

<남창가곡>의 온라인 생중계를 준비하는 장면 ⓒ 서울남산국악당

25일 방송된 <적벽가: 불과 바람의 노래>는 그동안 남성 판소리꾼들의 주요 레퍼토리로 여겨지던 적벽가를 여성소리꾼 박자희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고, 26일 방송된 <남창가곡>은 과거에 남성들에게만 허용한 종묘제례악의 노래(악장)를 여성 가객 박민희의 목소리로 만나본 시간이었다. 이 공연은 작년 서울남산국악당이 선보였던 ‘여자들의 국악’의 연장물로, 오늘날 대두되고 있는 ‘여성의 시선’으로 읽어낸 공연이라 할 수 있겠다. 

<적벽가: 불과 바람의 노래>에서 박자희는 북을 치는 고수 대신 첼리스트 최정욱과 함께했다. 실제 공연장이 아닌 스마트폰을 통해 보는 공연에서 유독 눈에 들어오는 것은 자막이었다. 삼국지의 하이라이트 적벽대전을 그린 적벽가에는 한문 투 어조가 많다. 예를 들어 “주유 받아본 즉 욕파조병이면 의용화공허고 만사구비허나 츙동남풍이라”라는 식이다. 판소리가 한국의 전통음악을 대표하고 있지만, 오늘날 판소리 공연은 ‘듣는 것’과 함께 자막을 ‘읽어가며’ 감상해야 하는 음악이다. 물론 공연장에도 자막은 준비되어 있다.
 

<적벽가: 불과 바람의 노래>의 첼리스트 최정욱 ⓒ 서울남산국악당
 

하지만 자막은 무대 밖 왼편이나 오른편의 스크린을 통해 전달될 뿐이다. 따라서 관객은 ‘무대 밖의 자막’과 ‘무대 안의 소리꾼’을 시선으로 부지런히 엮어야 하고, 들려오는 노래와 자막의 사설을 부지런히 꿰어가야 한다. 하지만 스마트폰 화면의 박자희와 자막은 화면 안에 공존하게 되어, 이러한 수고를 덜어 주었다. 여기에 조명디자인(김영빈)과 무대디자인(박은혜)이 펼쳐내는 색채와 공간 구도도 화면과 잘 어우러졌다. 

26일 방송된 <남창가곡>은 가객 박민희 특유의 묘한 분위기와 여기에 더해진 최혜원의 전자음향이 잘 어우러진 생중계였다. 두 음악가의 쇼트커트 헤어, 국악이라는 음악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베네통식의 원색 의상과 조명, 작은 장식조차 허용치 않은 미니멀한 디자인의 무대 공간이 시각적 미장센을 장식했다. 여기에 전통가곡 창법을 이용하되 고음에서 활공하는 박민희 특유의 유려한 흐름과 최혜원이 전자기기로 뽑아내는 묘한 울림은 이 공연이 전송되는 영상을 한 편의 ‘뮤직비디오’로 만드는 것 같았다. 

비록 코로나로 인해 영상을 통해 만나게 된 ‘박민희 미장센’이었지만, 앞으로도 이러한 영상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전송-전파하는 것은, 그녀가 현재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곡의 모던화에 있어 아이디어를 드러내는 또 하나의 방식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관객들의 의견이 고이는 샘

코로나 사태가 끝나지 않은 지금, 서울남산국악당은 무관중 생중계로 관객과 만나고 있다. 이 사태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서울남산국악당뿐만 아니라 여러 공연장들은 자체 온라인 플랫폼을 재정비하고, 품질 높은 영상 설비를 준비하고, 기존 작품들도 인터넷 생중계 관람 환경에 맞춰 다시 디자인하고 있다.
이동빈의 <언박싱> ⓒ 서울남산국악당

해마다 청년 예술가들을 선발하여 공연예술콘텐츠를 개발해온 서울남산국악당 ‘단장’ 시리즈도 올해는 온라인을 통해 접할 수밖에 없었다. 탈춤을 응용한 이동빈의 <언박싱>은 7월 11일, 판소리를 기반으로 한 남우찬의 <부동산>은 18일, 가야금 연주자 박선주의 <NEW MUSIC>은 8월 1일에 네이버TV 서울남산국악당 채널에서 실황으로 생중계되었다.

남우찬의 <부동산> ⓒ 서울남산국악당

새로운 예술가와 작품을 새로운 매체로 만나는 지금, 이러한 선택과 흐름이 자의 반 타의 반의 대안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새로운 풍경과 마주하게 된다. 바로 관객들의 댓글이다. 

기존 공연에서 관객들의 표현은 박수와 환호성으로 대변된다. 관객이 보내는 박수는 추상언어지만, 실제로 그 안에는 좋다/나쁘다의 의견이 담겨 있다. 이에 비해 생중계 창에 실시간으로 뜨는 댓글은 보다 구체적이다. 무엇이 좋고, 인상적이고, 지금 무엇 때문에 감동을 받는지 ‘즉각 반응화’된다. 스마트폰으로 관람할 적에는 댓글창이 바로 뜨기에 댓글들이 무대와 예술가의 얼굴을 훑으며 올라가기도 한다. 작품이 끝나고 난 뒤, 사후적으로 진행되는 비평/평론 행위가 공연과 동시에 진행되는 것이다.   

공연의 막이 오르면 무대를 밝히기 위해 암전되는 곳이 관객석이다. 그 어둠 속에 가려졌던 관객이 생중계되는 창을 통해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우리가 잊고 있던 관객이라는 ‘인류’를 발견하는 ‘댓글의 인류학’도 지금 온라인 생중계가 점점 강세를 보이는 지금의 공연생태계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봐야 할 화두가 아닐까.

박선주의 <NEW MUSIC> ⓒ 서울남산국악당
음악평론가 송현민
제13회 객석예술평론상 수상했고, 전통예술과 클래식 음악에 대해 비평·강연·저술하고 있다. 남산국악당 예술전문위원, 국립국악관현악단 프로그램 디렉터, 국립국악원 운영자문위원, 월간 ‘객석’ 편집장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