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치명적인 미생물들에게 공격받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대략 1만 년 전, 가축을 기르면서부터였다. 현생인류가 20만 년 전에 출현했으니, 인류 역사 전체로 보자면 아주 가까운 과거에 해당한다. 인류가 소, 말, 개, 돼지 등과 동거함에 따라 이들 동물에 기생하던 미생물들이 인간의 몸을 공격하는 사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른바 ‘인수공통(人獸共通) 감염병’들이 생겨난 것이다. 가축을 죽음으로 몰아가지 않는 병원체도 인간에게는 치명적이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일본식 용어 천연두(天然痘)로 알려진 두창(痘瘡, smallpox)이다. 두창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인간을 살해한 ‘살인마’였다. 소는 두창균에 감염되어도 가볍게 앓고 말았지만, 인간은 20%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병을 이기고 살아남은 사람 반 정도의 얼굴에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 남았다. 치사율 20% 이상은 그나마 수천 년 간 소와 사람이 동거했던 지역에만 해당했다. 소가 살지 않았던 아메리카 대륙의 경우, 유럽에서 소가 들어간 지 수십 년 사이에 원주민 인구의 90% 가까이가 두창으로 사망했다.
대항해시대 이후 지구 전역에서 인간의 이동이 늘어남에 따라 감염병도 세계 도처로 확산했다. 매독 이후 세계인을 공포에 떨게 했던 질병은 콜레라였다. 인도 북부 펀자브 일대의 풍토병이었던 콜레라는 18세기부터 동인도회사의 영국인 직원들을 통해 전 세계로 확산했다. 이 감염병은 1820년 경 우리나라에도 도달했다. 중국인들은 이 질병을 ‘호열자(虎列刺)’로 번역했는데, 중국어 발음이 콜레라와 비슷했던 데다가 증상도 ‘호랑이 발톱에 찢기는 것’처럼 아팠기 때문이다. 콜레라는 1820년대 초 처음 발병한 이래 대체로 10년마다 한 차례씩 한반도 전역을 휩쓸었다. 콜레라가 한 번 창궐할 때마다 전국적으로 1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1911년 콜레라 대유행 때에는 서울에서만 1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당시 서울 인구는 25만 명이었다. 서울 인구의 4%가 콜레라에 희생된 셈이다. ‘호환 마마보다 무섭다’는 우리 속담이 생긴 것도 19세기로 추정된다. 마마와 함께 거론되는 호환은 ‘호랑이에게 물린다’는 본래 뜻이 아니라 ‘호열자’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기 때문이다.
1886년 5월 20일, 조선정부는 ‘불허온역진항장정(不許瘟疫進港章程)’을 제정, 공포했다. ‘역병 환자가 승선한 선박은 항구에 진입할 수 없다’는 내용으로서 우리나라 최초의 항만 검역 법규였다. 2013년 한국 정부는 이를 기념해 5월 20일을 ‘검역의 날’로 정했다. 조선 정부는 중국과 일본에서 먼저 시행한 검역 제도를 본떠 온역장정을 제정했지만, 뜻대로 시행하지는 못했다. 우선 외국인들이 인정할 정도의 근대 의학 지식을 갖춘 의사가 없었다. 게다가 불평등조약 체제하에서 외국 국적 선박 승선원들은 조선의 법규를 의도적으로 무시했다. 하지만 역병이 ‘세계화’하는 이상, 역병 대처도 ‘세계화’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인들은 1948년 정식 정부 수립 후 검역 주권을 되찾았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바이러스와 세균이 바닷길로만 전파되는 시대가 아니었다. 게다가 1950년의 한국전쟁은 한반도 전역을 전염병의 전시장으로 만들었다. 콜레라, 장티푸스, 파라티푸스, 디프테리아, 말라리아, 이질, 유행성 출혈열 등이 번갈아 또는 동시에 병영과 피난민 수용소를 덮쳤다. 전쟁 중에 한탄강 변에서 한탄바이러스가, 서울에서 서울바이러스가 처음 발견되기도 했다. 정부와 군 의무당국은 이들 감염병을 예방하기 위해 군인들과 피난민들에게 예방 주사를 놓았는데, 주사기를 소독하지 않고 여러 차례씩 사용했기 때문에 오히려 한국인들 사이에 감염을 확산시켰다. 전쟁 중에는 ‘세균전’에 관한 소문도 무성했다.
전쟁 중 한반도에 들어온 감염병들은 대개 토착화하여 이후에도 꽤 오랫동안 한국인들을 괴롭혔다. 한국인들이 콜레라, 장티푸스, 뇌염 등의 전염병에 대한 공포에서 그럭저럭 해방된 것은 1970년대 중반 이후였다. 그 이전에는 매년 감염병으로 인한 사망자가 100명을 넘었다. 그런데 그 얼마 후 본격적인 ‘세계화’ 시대가 열리면서 감염병에 대한 공포는 새로운 단계로 이행했다. 조류독감, 신종플루, 사스, 메르스, 에볼라 등 특정 지역에만 존재했던 바이러스 또는 변종 바이러스들이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