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전후 대중적 인기를 모은 공연양식인 ‘여성국극(女性國劇)’은 전통국악 연희의 서구화된 양상이자 판소리를 분창화(分唱化)・장면화(場面化)하여 연극적으로 무대화한 ‘창극(唱劇)’의 한 종류다. 오직 여성배우들만 무대에 서는 여성국극은 1950년대 한국 공연예술의 어떤 장르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인 주목을 받으며 독자적인 무대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 인기는 1960년대 말부터 서서히 사그라든다. 흥행가가 등을 돌렸고, 평단의 혹평이 쏟아졌다. 여성국극은 ‘진정한’ 창극/국극을 파괴함으로써 “창극 부재”를 초래한 요인이라고 공격받았다.1) 여성국극의 예술적 성장과 그 가치는 폄훼되었으며, 이는 장르 자체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현재 여성국극의 명맥은 아주 간신히 이어지고 있는데, 후속세대에 대한 교육과 투자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탓에 사실상 이 장르는 사장되었다고 볼 수 있다. 1980년대 이후 여성국극을 재조명하려는 몇 차례의 노력이 있었으나, ‘여성국극’이라는 공연장르의 부활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춘앵전>(2010)으로 대표되던 만화시장에서의 관심이 긴 소강상태에 머무는 듯했으나, 근래 혜성처럼 등장한 웹툰 <정년이>(2019~)는 10~20대 독자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며 여성국극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촉발했다. ‘기입되지 않은 역사’로 남겨질 뻔한 여성국극에 대해 다양한 현재적 분석과 의미화의 시도가 이어지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그러나 이런 접근들이 여성국극의 짧지만 강렬한 역사를 본격적으로 문제화한 적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여성국극의 ‘기구한’ 역사는 무엇보다도 ‘전통’이라는 일견 자명해 보이는 관념을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당대에 형성된 ‘근대적’ 감각과 취향을 적극적으로 쫓아 발현된 예술양식인 여성국극은 처음부터 ‘전통문화 존립’이라는 목표를 지닌 채 태동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여성국극은 공연예술에 대한 ‘근대적 혁신’을 내세우기보다는 기존 전통예술의 의미망에 스스로를 위치시킴으로써 그 권위에 편승하기를 열망했다. 그다지 유구한 역사를 가지지 못했을 뿐 아니라 ‘여성(기생)들의 단체’라는 점에서 비롯된 세간의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여성국극은 스스로를 ‘전통적이고 민족적인 근거를 가진’ 양식이자, 단지 대중공연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국악’, 즉 국가의 기획에 준거하는 예술활동임을 강조하고 정식화할 필요가 있었다. 이를테면, 당대 여성국극 공연의 일부 홍보문구들은 “민족 오페라” 같은 수식어에 기댔고, 가장 유명했던 여성국극단인 ‘여성국악단 임춘앵’의 단가(團歌)는 자신들의 활동이 ‘민족’과 ‘국가’의 기획에 동참하는 것이며, 자신들이 ‘전통문화 존립’을 위해 존재한다는 점을 편집증적으로 강조했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