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가을

서울돈화문국악당 하반기 성악 공연들

발행일2024.10.29



여러 노래, 삶이 된다

서울돈화문국악당 전경
노래가 삶이 되는 순간이 있고, 삶이 노래가 되는 순간이 있다. 서울돈화문국악당 하반기 공동기획프로젝트에서는 우리 전통성악 각 장르의 매력을 이 시대의 소리꾼들을 통해 발견할 수 있다. 세대에서 세대로 전승되어온 판소리, 민요, 가곡 등 우리 전통성악을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전승되어온 우리 전통 성악 속에 각각의 삶의 이야기가 노래가 되어 담겨 있다.
오늘날 그 소리를 이어가는 소리꾼들은 어떤 소리를 자신의 삶에 담아 무대에 서고 싶을까? 공연에 참여한 소리꾼들의 이야기를 미리 들어보았다.
 

정가에 담긴 뿌리, 정가가 만든 오늘의 음악을 만나다

구이임 [노래의 자세; 한아하고 흐드러진] 10월 16일
구이임 [노래의 자세; 한아하고 흐드러진] 10월 16일
구이임이 구이임한다.”

구이임은 구민지(정가), 이채현(경기소리‧타악), 임정완(가야금)으로 결성된 앙상블이다. 각자의 성을 따와 만든 팀으로, 하나의 단체이지만 하나의 색만 내세우지 않고, 각자의 개성과 스타일로 다채로운 음악을 선보이겠다는 의지를 음악적 모토로 삼은 앙상블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서로 다르면서도 맞닿아있는 정가와 경기소리, 두 풍류음악이 추구하는 미학적 가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재조명했습니다. 정가와 경기소리의 대조되는 점과 맞물리는 접점을 절묘하게 활용하고, 두 장르의 반주법을 대치시키는 등 전통적인 창작방안을 연구하는 데에 중점을 두었죠. 한국 전통음악의 미학과 작곡법의 발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공연이 될 겁니다. 절제미를 추구하는 정가, 자유로운 즉흥성이 돋보이는 경기소리와 가야금 선율이 함께 어우러져 구이임만의 색깔로 무대를 채웁니다. 장르, 단어, 음악적 방향성의 고정된 이미지에 구애받지 않고, 생각의 장애물 없이 오롯이 무대에서만 저희 음악을 느껴주시길 바래요. ‘구이임’이 구이임하겠습니다!”

구이임 [노래의 자세]

 
김윤서 [받은 노래 전한 노래 Ⅱ] 11월 12일
김윤서 [받은 노래 전한 노래 ] 1112
이어지는 소리, 흐르는 삶

정가는 과거에 선비들이 부르는 풍류 음악으로, 정가를 일삼은 이들을 ‘가객’이 부른다. 정가는 여러 가객에 의해 전승되었는데, 특히 김월하 명인(1918~1996)에 의해 전승 계보와 예술성이 더욱 발전했다. 오늘날 많은 가객은 김월하 문하에서 노래를 배웠고, 그의 노래 세계를 기리는 무대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이번 무대는 선가 故 김월하의 정가를 복원하는 자체에 큰 의미가 있습니다. 김월하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왕성하게 활동하셨고 거주하고 계셨던 곳이 종로 낙원동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낙원동에서 자라고 선생님과 같이 살았기 때문에 이번 무대가 더욱 살갑습니다. 김월하 선생님의 수양손녀인 저는 아주 어려서부터 정가의 노래를 듣고 자라 정가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소리를 갖고 있습니다. 이번 공연에서는 아정한 노래 속에서 독특한 성음과 시김새가 깃든 김월하 정가의 아름다움을 그림과 함께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김월하의 이수자와 그 제자들이 한국의 정가를 어떻게 이어가고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 잘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김윤서 [받은 노래 전한 노래]

 

판소리, ‘완창으로 소리꾼과 작품의 묘미를 만나다

유태평양 [미산제 수궁가 완창] 11월 24일
유태평양 [미산제 수궁가 완창] 1124
처럼, 소리는 태평양이 되고.

용왕의 병을 낫게 하고자 물속 밖 세상으로 나온 별주부. 그리고 그가 만난 토끼. 수궁가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야기를 판소리로 부른다. 판소리에서 인기 많은 대목은 개별적으로 무대에 올려지는데, 때로 소리꾼은 이러한 ‘토막 소리’ 말고 4~5시간에 이르는 ‘완창’을 통해 작품과 소리꾼으로서의 예술성과 실력을 보여준다.

“이번에 제가 부를 소리는 미산 박초월 명창이 발전시킨 미산제 수궁가입니다. 동편제, 서편제 특성이 모두 담겨있는 독특한 소리로 알려져 있는데요, 이번 무대에서 저만의 힘차고 직설적이면서도 섬세한 감정 위에 해학, 풍자가 얹힌 미산제 소리를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판소리는 어떤 장르보다도 소리꾼 개인의 역량이 중요한 장르이죠. 관객들을 웃기고 울리는 입담과 연기, 높은음과 낮은음을 자유자재로 넘나들 수 있는 좋은 성대가 충분조건이지만, 무엇보다 제가 생각하는 필수조건은 관객들에게 ‘좋은 기억’을 선물하는 것입니다. 우리 소리가 관객들에게 ‘물’처럼 자연스럽게 흘러 ‘강’, ‘바다’를 이루어 ‘태평양’이 되는 그 날을 기대하면서 말이죠.”

유태평양 [미산제 수궁가 완창]

 

남도음악을 이루는 중요한 소리 재료, 민요를 만나다

김나영 [남도소리: 향연] 11월 27일
김나영 [남도소리: 향연] 1127
정통으로 시작해 독창성의 소리로

민요는 전통사회의 대중가요와도 같았다. 선조들은 이 노래와 함께 웃고 울었다. 특히 전라도에는 판소리와 함께 민요도 발전했고, 이러한 민요는 그 지역에서 전승되는 판소리나 굿음악에 영향을 주기도 했고, 영향받기도 했다. 따라서 민요는 한국 전통음악의 근간을 이루는 소리의 DNA와도 같다.
 
“제가 부를 남도 소리의 특징은 정통성입니다. 이번 무대에서 초연되는 남도잡가의 육자배기, 흥타령은 음악적 정서는 그대로지만 새로운 가사와 음으로 작곡된 곡입니다. 동시에 저의 음악적 방향을 확장하는 무대이기도 합니다. 남도소리의 근원, 인간의 삶을 위한 양식 ‘진도씻김굿’, 인생의 희로애락을 담았던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노래 ‘남도잡가’, 남도 깊은 곳에서 흘러나온 정수와 문학이 만들어낸 ‘판소리’까지 이 세 장르의 소리를 소화할 수 있었던 것은 긴 시간 동안의 순도 높은 학습이었던 것 같습니다. 판소리로 시작해 남도잡가, 굿에 대한 음악적 확장은 어려운 과제였지만, 과정이기도 합니다. ‘Origin(기원)’으로 출발해 ‘Originality(독창성)’로 가는 길목에 함께해주시죠.”

김나영 [남도소리: 향연]

 

글 하윤아
국립무형유산원 공연 PD로 ‘21세기 무형유산 너나들이’ ‘K-무형유산페스티벌’ ‘21세기 무형유산 너나들이’ ‘K-무형유산페스티벌’ 등 무형유산 공연을 기획하고 있다. 방송작가로도 활약했으며 월간 <인물과 사상>에 ‘재미있는 국악이야기’ 등을 연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