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은 꾸준히 변화해왔다. 이른바 ‘새-국악’을 만들려는 이들은 전통적인 재료를 각색해 제3의 변주물을 만들어내는 데 주력했다. 새로운 변화의 필요와 같이 ‘전통’을 바라보는 관점도 시대마다 달랐다. 그렇다면 오늘날 ‘전통’이란 무엇일까? 계승해야 할 음악적 이데올로기인가? 아니면 벗어던지고 부수어야 할 무엇인가?
과거 세대는 창작을 위한 ‘전통’을, 대문자 ‘전통’으로 취급하며 절대화했다. 하지만 지금 세대는 ‘전통’ 앞에 상당히 상대적이다. 전통-사용법이나 전통-활용법도 다르기에, 전통에 대한 정의도 제각각이다. 예를 들어, 나는 이희문(민요)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희문의 전통’, 즉 이희문이 정의 내린 전통에 대한 정의를 접한 적이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월간 객석 2020년 4월호 참조).
“전통음악을 하다 보니 ‘전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볼 때가 많아요. 그런데 우리는 지금 현대라는 시대와 도시라는 공간에 살고 있잖아요. 전통이 없는, 없어진 시공간입니다. 역사적으로 남아 있는 게 없어요. 그래서 나는 ‘전통’이란 역사적인 산물이라고, 또 그래서 잘 보존해야 하는 것으로 보기보다는 그냥 어느 예술을 아방가르드화할 수 있는 무기, 혹은 어떤 예술의 컨템퍼러리화를 도모하는 숨은 무기라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이러한 정의가 나오기까지 그(이희문)는 수 없는 시행착오를 겪었을 것이다. 사실 자신에게 전통이란 자신의 개성과 스타일을 재단하는 엄격한 재단사였더란다. 그런 그는 직접 재단사가 되었다. ‘오더 메이드(order made) 레퍼토리’ 시리즈는 그 결과였다.
2017년, 남산국악당이 선보인 ‘남산컨템포러리 전통, 길을 묻다’(이하 남산컨템포러리)가 보여주는 것은 ‘고민하는 전통’이다. 고민하는 자만이 길을 떠나고, 새 길을 물을 수 있다.
시리즈가 박차를 가한 2017년에 여섯 개의 공연이 올랐다. 가야금앙상블 아우라와 최영준(전자음악)의 <아우라텔레콤-12개월의 이야기>, 희비쌍곡선의 <박흥보씨 개탁(開坼)이라>, 손성제와 카입(Kayip)의 <흔적 TRACE>, 창작그룹 노니의 신작 <ㅡㅣㅇ[으:이:이응]>, 원일과 타악듀오 모아티에의 <1:1 이중 나선(二重螺線)>, 이정윤(한국무용)과 에스닉 일렉트로닉 그룹 마주(MAJU)의 <어스무빙 EarthMoving>이었다.
단순히 여섯 개의 무대이지만, 풀어헤치면 국악이 전자음악, 미디어아트, 서양타악기, 연극과 영화 등과 복잡다단하게 만나는 시간이었다. 이러한 복잡성이 남산컨템포러리의 특징이다. 복잡하다는 말에서 부정적인 느낌을 가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는 그 복잡함 속에서 핵심을 찾고 길어 올리고자 하는 욕망과 마주한다. 어쩌면 그 핵심이, 이 시리즈가 찾고자 하는, 묻고 싶은 ‘길’인지도 모른다.
2017년, 국악계 진영을 놓고 볼 때 남산컨템포러리는 다른 극장 기획물들에 비해 상당히 다른 각도로 튼 기획물이었다. 같은 남산에 위치한 국립극장의 여우락 페스티벌(‘여기 우리 음악이 있다’)은 대체적으로 음악의 반경에서만 이접적인 만남을 허용했다. 하지만 남산컨템포러리는 음악 너머 연희, 무용 등의 이종 장르로까지 손을 뻗었다.
우면산에 위치한 국립국악원도 마찬가지였다. ‘금요공감’이라는 협업의 전진 기지를 설치했지만, ‘국악원’이라는 장소성이 주는 어감 때문인지, 아니면 금요공감이라는 다소 차분한(?) 시리즈 명 때문인지 남산컨템포러리만큼 날을 세우진 못 했다.
2018년에는 안무가 김선미와 앙상블 시나위의 <달하>, 음악그룹 나무의 <新 실크로드 굿>, 안무가 김보라와 김재덕의 <무악>, 잠비나이와 최휘선(양금)의 <보러 오세요>가 올랐다. 2019년에는 신박서클과 나승열(사진작가)의 <들어보다>, 이서윤(디자이너‧한국무용)과 신승렬(무대미술)의 <짓다>를 선보였다.
그런 점에서 남산컨템포러리 기획자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다. 작품을 공모하여 선발하는 게 아니라, 스카우트를 통해 무대를 일구는 남산컨템포러리에선 김서령의 ‘안목’이 곧 작품 라인업의 뼈대를 세우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남산컨템포러리는 ‘길’을 묻되, ‘한 길’만 강요하진 않는다. 설령 길이 닦였다 해도 그 길만 걸어갈 것을 강조하지 않는다. 그저 이정표 꽂기 작업이다. 이곳에도 길이 있고, 저곳에도 길이 있다는… 무엇보다 길은 애초부터 있는 게 아니라, ‘네 발끝에서 나온다’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남산컨템포러리는 한 마디로 하면, 예술가들이 쓰는 ‘이종(異種) 장르 체험기’이다. 이 기록을 써나가는 예술가는 ‘=’ 버튼을 눌러 결과물 생산에 치중하기보다는 끊임없이 너와 나 ‘사이’에, 혹은 앙상블과 앙상블 ‘사이’에 ‘+’라는 가교를 설치한다. 따라서 최종 단계에 탄생하는 음악적 산물로부터 음악가들은 적당히 자유롭다. 이를 통해 이 ‘길’이 맞는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게 아니라, 이러한 길도 길이 될 수 있음을 선포하는 시리즈이다. 그러면서, 앞서 말한 각자의 ‘전통-활용법’과 ‘전통-사용법’을 터득한다. 각자만의 전통에 대한 사전(事典)을 만드는 것이다.
관객 역시 이를 통해 국악이란 어떤 단단한 실체가 아니라 운동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배열체이며, 단일체가 아니라 여러 상황의 힘이 역학하는 집합체임을 깨닫는다.
올해 상반기는 코로나로 인해 남산컨템포러리를 아직 만날 수 없었다. 하지만 난항의 시대에도 불구하고 새 길을 묻고자 하는 예술가와 국악의 만남은 예전처럼 어디선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