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가 더딘 서울 도심 한복판 골목골목에 최근 몇 년 사이 재미있는 공간들이 무척 많아졌다. 그 선두에 을지로가 있고, 그 옆 충무로에도 조금씩 변화의 싹이 보인다. 남산골한옥마을에 수년 동안 근무하면서 알게 된, 혼자만 알고 있기 아깝다고 생각했지만 어떻게 보면 한옥마을보다 더 잘 알려졌다고도 할 수 있는 그런 공간들이 있다. 언뜻 보면 상업공간이지만 자연스럽게 형성된 지역의 네트워크를 통해 일종의 커뮤니티 기능을 하고 있는, 그러다 보니 상업공간 이상이 되어버린, 그런 곳들 말이다.
이러한 숨겨진 명소 아닌 명소들이 한옥마을에 오는 발걸음을 훨씬 풍요롭게 만들어주리라 생각하면서,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세 곳을 추려봤다. 다만 아쉽게도 ‘코로나19’의 여파는 이들 소규모 공간에도 밀어닥치고 있어 예전보다 활기는 덜하지만, 온라인상에서의 모색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매일 브리티시와 함께 30분 정도 한옥마을에서 산책한다는 주인은 그럴 때도 가게는 그냥 열어두고 갈 정도라고 한다. 손님들이 봐주기도 하고, 비어 있어도 단골들이 많아 그냥 기다려 주기도 하고, 이쯤 되면 동네 사랑방이나 다름없다. 실용음악을 전공한 음악인인 주인은 이곳에서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하다가 팀장, 매니저, 점장을 거쳐 사장에 이르게 되었다고 하니, 그동안의 축적된 시간을 통해 그렇게 만들어졌을 것이다.
주말에는 아르바이트생을 쓰기도 했지만 코로나로 인해 주말은 아예 쉬고 ‘나 홀로’ 운영이 불가피해졌다. 하지만 더욱 더 손님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가게가 되었다. “그동안 꾸준하게 해 왔던 SNS를 더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메뉴 사진도 더 열심히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가끔 셀프 영상도 찍어 올리고 있어요. 손님들이 브리티시와 함께 찍은 사진도 많이 올려주고 계세요.” (@evins_coffee_story)
부부가 운영하는 작은 책방인 ‘스페인책방’은 한옥마을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데도 최근에서야 발견한 곳이다. 을지로에나 있을 법한 오래된 빌딩건물 5층(이지만 603호)에 위치해 있는데, 창문을 통해 남산 뷰를 한가득 만끽하며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책과 굿즈를 구경하고 고르는 재미가 쏠쏠한 곳이다. 여행 관련 책뿐만 아니라 국내에 번역되어 있는 스페인어권 작가들의 문학 작품, 스페인과 중남미의 예술가, 음식, 역사 등등 생각보다 다양한 책들을 만날 수 있다. 또한 숍인숍 개념의 플라워숍과 출판, 소규모 클래스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책방을 열기 전에 책 만드는 일을 먼저 시작했다는 주인 부부는 지금도 여전히 책을 만들고 있다. 독립출판물에 관심을 갖고 책방을 통해 소개하는 것도 그 이유에서이다. 우연한 계기로 1년 동안 경의선 책거리의 한 부스를 운영해볼 기회가 있었는데, 책방에서 책을 소개하고 사람을 만나는 일이 꽤 즐거웠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책방을 열어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동네에 자리 잡기 전에는 한옥마을의 존재를 알지 못했는데 지금은 책방에 드나드는 이들에게 소개하기도 한다. 가끔 야시장 같은 행사를 보거나 산책을 나가는 정도이지만 도심에 이런 숨통 트이는 공간이 소중하다고 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남산 뷰가 멋지고 책방 특유의 분위기가 있어서, 온라인보다는 오프라인 판매가 더 많은 편이었어요. 그래서 책방에서 이런저런 노는 모임을 열어서 사람들을 책방에 모이도록 만들었는데 지금은 그럴 수가 없게 되었죠.” 코로나 사태로 인해 이제는 온라인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하게 된 것이다. 이 사태가 끝난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또 비슷한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예상하기에, 판매뿐 아니라 모임도 온라인으로 옮겨가려고 준비 중이다.
(@spainbookshop/ www.spainbookshop.com)
“여성 마임이스트로 활동하면서 소수만이 찾는 문화의 외연을 확장하고 보존할 필요를 느꼈고, 필름카메라 문화도 그중 하나죠.” 주인은 오랫동안 사진 찍는 것을 좋아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곳을 운영하고 사진과 공연을 연계한 행사도 꾸려왔다. 창업할 때만 해도 필름 문화가 한물가던 시기여서 헐값에 팔리던 현상기를 구입해 문을 열 수 있었다고 한다. 그 후 뜻하지 않게 레트로 열풍이 불면서 현상소를 찾는 손님들이 많아지게 되었다. 특히 20대 초반 여성들이 주 고객이 되면서 다양한 문화프로그램도 함께 진행할 수 있었다. 극단을 운영하면서 축제를 만들기도 했고 축제의 전체 프로그램을 기획한 경험을 바탕으로 즐겁게 운영하고 있다.
특히 남산 촬영을 위한 걷기 출사, 역사문화체험 등 사진문화 전반의 문화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뿐만 아니라 정기적으로 필름페스티벌, 고래플리마켓 등을 시기별로 열고 있다. 또한 100명의 사진가가 동일한 필름으로 을지로를 기록하는 을지로 사진단, 20대 초반 사진가들이 일상을 기록한 2024 사진단, 패션위크를 기록한 필름클럽 등을 진행하기도 했다. 사진관에 오는 이들에게 출사지로 한옥마을을 소개하기도 한다는 주인은 최근 코로나로 인해, ‘필름랩’ 등 체험활동의 비중 축소는 물론 강좌나 여러 문화프로그램의 운영 중단을 겪어내고 있다. “작년부터 온라인 웹진(www.slowlens.net)을 만들고 있는데 올해는 이를 더욱 활성화하려고 해요. 또 현 상황에 맞춰 클럽도 준비하고 있는데, 우리 집, 우리 동네를 담을 수 있는 클럽이에요. 먼 곳에 출사를 가기보다 자신의 집과 동네를 바라보고 필름으로 새롭게 담아보자는 취지죠.”
(@gorae_studio/ f.slowlens/ www.slowlen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