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여름   山:門 REVIEW

리뷰 | 4~7월 전통공연예술

윤대성
발행일2022.07.01

전통연희가 입을 수 있는 ‘새로움’이란?

서울남산국악당·리퀴드사운드 공동기획 <긴>

 

다른 시대엔 다른 영감이 있다. 그래서 ‘길놀이’, ‘지신밟기’, ‘사자춤’, ‘농악’ 등 어느 해엔가 조상들이 흐드러지게 놀았을 정월대보름의 연희를, 누군가는 쪼개고 파헤쳐서 구성요소 단위로 열거하는 분석의 대상으로 삼았다. 전통연희의 해학이나 익살, 즉흥성 등을 제거하여 일종의 미니멀리즘으로 나아간다. 리퀴드사운드를 이끄는 이인보, 그의 첫 번째 연희해체프로젝트 <긴>(5.13~14/서울남산국악당)이다.

춤의 방식으로 연희자의 몸 바라보기

리퀴드사운드는 대금 전공자로 파리8대학에서 연출을 배우고 돌아온 이인보가 결성한 프로젝트 그룹이다. 음악을 바탕으로 다양한 장르와의 만남을 추구하는 실험 집단. 고정 멤버 없이 프로젝트나 공연 단위로 구성원을 바꾼다. 예컨대, 전작인 <촉각콘서트-다섯 가지 기억>은 같은 기획임에도 공연에 따라 연주자가 달라졌고, 이들이 공동 창작을 하면서 제목만 같은 여러 버전의 결과물이 나오기도 했다.

전작이 음악의 질감에 집중했다면 이번 연희해체프로젝트 <긴>은 무용과 협업하여 연희자의 몸과 움직임을 바라보는 시각에 방점을 두었다. 의식이나 놀이를 따라가는 부수적 요소로서가 아니라 시각적 형상 자체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장면마다 악기, 의상, 감정을 다이어트하고 동작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예컨대, 열두발 상모를 돌리면 화려한 기교에 신이 나야 정상인데, 어둑한 조명과 긴장된 공기가 연희자의 모습을 진지하게 뜯어보게 한다. 연희자의 발짓과 고갯짓, 몸의 달라지는 높이, 끈이 원형을 그리는 시간의 궤적 등 무빙(moving)의 반복과 변주가 핵심이다. 때로는 동작을 슬로모션으로 바꾸어 일각이 삼추(三秋)마냥 더디게 흐르도록 한다.

두드러지는 특징은 ‘컨템포러리 댄스(contemporary dance)’적 방식의 접근이다. 직역하면 ‘현대무용’이지만 이 용어는 ‘동시대의 창작성이 강한 춤’을 포괄적으로 일컫는다. 예컨대, 한국무용을 다루더라도 그것을 재해석해 선단으로 나아가면 컨템포러리 댄스라는 분류가 가능하다. 해석의 방식은 넓게 열려있다. 전통춤의 정신이나 의미를 받아들일 수도 있고, 외관상의 동작 그 자체만을 차용하여 분해, 재조립하거나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확장해나갈 수도 있다.

낯선 조합, ‘길놀이’와 패션쇼

‘길놀이’는 쉽게 말해, 길 위에서 노는 것이다. 지금은 무대복을 갖춰 입고 출근하는 연희자가 없지만, 공터에서 판을 벌이던 시절엔 가는 길에서부터 연희가 이루어졌다. 마을 행사 전에 풍물패나 걸립패가 동네를 한 바퀴 도는 것도 ‘길놀이’에 해당한다.

이번 공연의 모티브는 그중에서도 ‘지신밟기’로 보인다. ‘지신밟기’는 말 그대로 풀이하면 지신(땅의 신)을 밟는다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풍물을 쳐서 집 안의 신을 달래는 의식으로 한 해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마을의 가가호호를 돌면서 행한다. 연희해체프로젝트 ‘긴’에서 객석을 통해 입장한 사물패가 읊은 것이 이 ‘지신밟기’ 사설이다. 관객이 입장하는 문으로 행렬을 이루며 들어와 전형적인 ‘길놀이’의 이미지를 제기하며 공연을 시작한다.

그러나 이후로는 그 구성요소가 하나하나 해체된다. 출연자들은 필부필녀로 입장해 돌연 웃옷을 벗는다. 마치 100년 전 조립된 레고를 블록으로 분해하듯 의상조차 안에 입는 민복, 그 위에 입는 검은 더거리, 밖에 두르는 삼색띠로 분리하는 모습이다. 매우 익숙한 사물놀이 의상이지만 흰색 민복만을 입으니 어딘가 낯설다. 상모, 부포, 버나 등 연희의 도구도 하나씩 떼어서 전시하듯 쇼케이스한다. 연희자들은 각각의 레고 블록을 소개하는 모델이 되어 그것을 들고 쓰고 런웨이에서 교행한다.

즉, 제목의 ‘긴’은 길놀이의 행렬과 패션쇼의 런웨이를 연결 짓는 공통분모이다. 정겨운 놀이판과 도회적인 쇼케이스. 둘의 전혀 다른 외관에도 불구하고, 리퀴드사운드는 그 기본 형태를 지성으로 바라본다.

색상과 감성의 미니멀한 재배치

사물놀이 의상의 오방색은 장면별로 쪼갰다. 차례로 ‘흰 백(白)’, ‘푸를 청(靑)’, ‘붉을 적(赤)’, ‘검을 흑(黑)’, ‘누를 황(黃)’으로의 진행이다. 지배적인 색상은 흰색이지만 조명 혹은 의상으로 각각의 색상을 표현한다. 이러한 시각 요소와 함께 분위기나 감성도 전통의 그것과는 달라지는데, 민속적 신명이라든지 흐드러지는 맛을 거세하고 정제되고 톤 다운된 이미지를 추구한다. 전통연희로는 ‘지신밟기’와, 같은 계통의 놀이인 ‘사자춤’, ‘판굿’까지를 수용해 장면별로 배치했다.

연희의 해체라는 실험성을 표방하지만, 무용의 관점에서는-패션쇼와의 접목을 제외하면-다소 상식적인 면이 있다. 한국춤을 현대화하는 시도 속에 동류의 해체 작업은 오랫동안 있어왔다. 오방색, 오방간색을 해부하는 작업은 물론이요, 민속에 푸근한 정감 대신 냉기를 이식하고, 미니멀한 의상과 무대미술의 수준을 높였더랬다. 부포를 입에 물고 그로테스크함을 유발하는 것도 무용에선 꽤 비근한 예이다. 그러니 기존의 음악성 있는 무용 공연에 비해 어떤 실험성과 차별성을 담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이들의 협업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긴’의 음악은 절제와 현대성이 포인트다. 첫 사운드는 아주 낮고 먹먹한 소리 위에 이물감을 더하여 공간을 누른다. 연희자들이 런웨이를 걸으며 버나를 던지는 등 기교의 요소를 더하기도 하지만, 상대적으로 무거운 음악은 감흥을 일으킬 법한 그것을 오히려 중화한다. 이러한 무대 요소의 밸런스를 중시하는 터라, 무릎을 굽혔다 펴는 굴신이 무미건조하게 반복될 때면 경쾌한 장단을 사용해 적정선을 맞추고, 연주가 절정을 향해 달려가면 조명을 어둡게 하는 방식으로 시각적 자극을 최소화한다.

더불어 기본형인 원형(圓形)에 천작한다. 무대가 사각일 뿐 동선, 몸의 사용에서도 곡선의 이미지가 주류로 나타나는 등 심벌이 명확하다. 이들이 추구하는 미니멀리즘의 일환이다. 한국적 호흡의 움직임이 주로 곡선을 이루긴 하지만, 기원하듯 원을 그려내리는 동작이라든지 무한 회전, 도넛 모양의 조명을 반복 사용한다. 채를 든 손으로 치성을 올리듯 할 때에는 음악 역시 웅웅거리는 유사한 질감으로 동행한다.

‘긴’은 공간 활용이 독특하다. 런웨이 양쪽에 관객이 마주보고 앉는 배치를 위해 객석을 크라운해태홀의 무대 위로 올려놓는다. 제목 그대로 연희 공간의 긴 형태와 그것을 가까이 둘러싼 관객과의 거리가 핵심이다. 다만, 이로 인해 출연자들의 가용 범위가 상당히 좁아진다. 호리존트가 깊지 않은 극장일수록 이에 맞는 무대 형태가 구현되기 어렵다.

전통춤이나 전통연희는 역사 속에서 근대 서구식 극장으로 편입되는 과정을 거쳐왔다면, 이번 연희해체프로젝트는 핵심 주제 자체가 그것을 다시 벗어나려는 시도이다. 그러니 블랙박스 극장이나 갤러리, 야외 공간 등이 또 다른 가능성이 될 것이다. 장소의 특정성과 핵심 테마를 어떻게 접목해 나가느냐가 매번 변화하는 리퀴드사운드의 또 다른 유동성일 수 있다. 극장을 중심으로 보면 서울남산국악당의 돌출무대를 새롭게 활용하는 공연을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실험과 다양성을 수용한 사례였다.

윤대성
심리학과에서 뇌를 들여다보다가 운명의 장난인지 무용씬 한가운데 착지했다. 외부자로, 때론 내부자의 시선으로 공연예술계를 바라본다. 한국춤평론가회 최연소 회원이자 월간 <댄스포럼> 편집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