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봄   山:門 REVIEW

리뷰 | 1~3월 전통공연예술

송현민(음악평론가)
발행일2022.03.31

열매를 위한 뿌리다지기

서울돈화문국악당 <일소당음악회> <산조대전> 외 1~3월 공연 돌아보기
 
1월부터 3월까지 국악계를 돌아본다. 잠깐의 휴식 같은 1월은 시작의 시간이자, 동시에 2021년에 기획되었던 공연이나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2월이 되면서 공연장과 예술가들은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서울돈화문국악당에서도 여러 공연이 무대에 올랐다.
 
서울돈화문국악당

<일소당음악회>. 역사를 메우는 명인들의 추억


서울돈화문국악당 인근에는 유‧무형의 문화유산이 존재한다.
국악당과 마주한 창덕궁이 대표적인 유형유산이라면, 국악당이 위치한 종로에 흐르는 국악의 역사는 무형의 유산들이다. 서울돈화문국악당은 2016년 개관 이후 종로에 담긴 국악의 기억을 더듬어 기획공연으로 다듬어오고 있다.
올해 첫 기획공연으로 선보인 <일소당 음악회>(2.8~17)가 대표적인 경우다. 일소당(佾韶堂)은 창덕궁 인근에 위치한 작은 국악공연장으로,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대한민국 국악사(史)에 중요한 물줄기를 이뤄온 ‘종로 국악사(史)’에서 예인들의 베이스캠프 역할을 한 운당여관에 관한 기억을 바탕으로 2019~2021년에 진행한 국악당의 <운당여관> 시리즈는 올해 <일소당 음악회>로 이어졌다.
해방 후 한국전쟁기인 1951년에 피난지 부산에서 개원했던 국립국악원은 1953년 서울로 돌아와 운니동 비원 앞에 자리 잡았다.지금의 서울돈화문국악당 인근이다. 그 안에 위치한 일소당에선 월례국악강습회나 국악감상회가 열렸다. 춤을 뜻하는 일(佾), 풍류를 일컫는 소(韶)처럼, 일소당(佾韶堂)에는 전통춤과 음악이 흘렀다.
<일소당음악회> 중 2월 8~10일에는 최충웅(가야금)‧아쟁(김영길)‧김무길(거문고)이 함께한 ‘현의 출현’이, 15~17일에는 김영기(정가)‧한세현(피리)‧원장현(대금)이 함께 한 ‘숨의 숨결’이 펼쳐졌다. 이 시리즈의 ‘맏형’격인 1941년 태생의 최충웅부터 ‘막내’ 격인 1962년 태생의 김영길까지, 여섯 명의 예인이 일소당이 위치했던 종로에서의 추억을 이야기와 음악으로 풀어냈다. 명인들은 ‘일소당’에 관한 직접적인 기억을 회상하기보다, 일소당이 위치했던 ‘종로’에서의 넓은 기억을 바탕으로 이야기꽃이 피우고, 세월과 시간이 묻은 연주를 곁들였다. 더불어 그들이 직접 수집한 빛바랜 사진도 함께 만날 수 있었다.
 
서울돈화문국악당 <일소당음악회> 가야금 최충웅(좌)과 이지영(우)

그들의 증언을 통해 종로에 국악의 역사가 풍부하게 배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최충웅은 국립국악원 부설 국악사양성소에서 수학한 1950년대 회상으로 중·고교 시절의 종로의 분위기를 복기했다.
김무길의 집에는 종로에서 거주하고 활동하던 국악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부친 김봉현의 영향 때문이었다. 한세현의 부친 한일섭도 그중 한 명이었다. 한세현은 지금처럼 국악 전문 공연장이 없던 당시 국악인들의 힘겨운 삶과 인생을, 아버지의 모습과 추억으로 풀어냈다. 관객들은 명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격세지감을 느꼈다. 김영기는 서울돈화문국악당 인근에 거주한 스승 김월하와의 학습 과정과 추억을 풀어냈다. 서울돈화문국악당 인근에 거주 중인 원장현은 서울돈화문국악당에서의 연주가 처음이었다. 훌륭한 자연음향의 조건을 갖춘 공연장이라며 종로살이의 즐거움을 들려주었고, 김영길은 스승 박종선으로부터 들은 종로 일대 명인들의 삶을 풀어냈다.


 

<산조대전>. 산조의 현주소와 미래를 점친 큰 판

2월 17일 <일소당음악회>가 끝나고 서울돈화문국악당에는 다시 큰 ‘판’이 벌어졌다. 3월 16일부터 4월 3일까지 진행된 <산조대전>이다. <산조대전>은 작년에 서울돈화문국악당이 선보인 초대형 프로젝트로, 물량공세(物量攻勢)를 통해 산조의 현주소를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다.
 
2022 산조대전
19세기 말 즈음에 형성된 산조가 20세기인 1900년대를 거쳐 오늘까지 흘러오는 동안, 1990년대 말에 등장했던 <뿌리깊은나무 산조전집>과 <젊은 산조> 음반은 산조가 ‘걸어온 길’과 ‘걸어갈 길’을 두루 살피는 20세기 역작이었다. 1989년 LP로 출반되고, 1990년대 초반에 CD로 나온 <뿌리깊은나무 산조전집>은 20세기 중반을 지나며 다져진 산조들을 한 자리로 모은 역대급 프로젝트였다. 1993년 CD로 모습을 드러낸 ‘젊은 산조’는 산조 역사의 다음 세대를 이끌어나갈 ‘젊음’의 행진을 보여준 시간이었다. 산조의 뿌리 찾기와 열매 맺기가 1990년대의 몇 년 사이에 진행되된 셈이다. 서울돈화문국악당 <산조대전>이 갖는 의미와 의의는 20세기 후반 <뿌리깊은나무 산조전집>를 통한 ‘뿌리 찾기’와, <젊은 산조>를 통한 ‘미래 찾기’의 명맥을 21세기에 이르러 이어가고 있는 시리즈물이라 점이다.
작년에는 44명의 예인이 30일간 46곡의 산조를 선보였고, 올해는 15일간 30명의 예인이 30곡의 산조를 선보였다. 한 명의 예인이 무대에서 긴 산조를 선보였던 예년과 달리, 올해는 한 무대에 1~4명의 예인이 올랐다. 관객 입장에서는 한 번의 발걸음으로 다양한 산조를 접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3월 30일 공연에서는 젊은 피리 연주자 최광일, 이광호, 이찬우, 김성엽이 박범훈·정재국·한세현(서용석제)·이종대(지영희제)류의 피리산조를 선보였다. 작년이 산조 감상의 ‘깊이’감을 느낀 시간이었다면, 올해 예술감독을 맡은 윤중강(음악평론가·연출가)은 산조 유파의 ‘다양성’과 이를 잇고 있는 예인들의 ‘젊음’에 방점을 찍었다.
‘젊어진’ 출연진과 더불어 미래를 ‘짊어진’ 예인들의 노력도 눈에 띄었다. 대표적인 공연은 한지수류 생황산조의 한지수, 김용성류 해금산조의 선지우, 김동근류 퉁소산조의 김동근, 서용석제 송경근류 훈산조의 송경근이 한 무대에 오른 4월 2일 공연이었다. 30~40대 연주자들이 직접 만든 ‘오늘의 산조’는 물론 특수악기로 취급되는 생황과 훈이 빚어내는 ‘이종(異種)의 산조’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두터운 프로그램북에는 산조와 연주자에 대한 정보를 담았고, 공연 시작 전마다 윤중강 산조대전 예술감독의 해설이 있었다. 특히 올해는 프로그램북이 종이 책자가 아닌 전자책으로 배포되었다. 관객들은 공연 전 티켓 뒷면에 기입된 큐알(QR) 코드로 해당 공연의 정보를 받았다. 환경을 고려한 움직임이 예술가와 공연장 사이로 캠페인처럼 번지고 있는 지금, 서울돈화문국악당도 보폭을 맞추며 선보인 서비스였다(환경을 고려한 국악계의 움직임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본 웹진에 게재된 좌담 으로).
 

 

1~3월의 공연들과 ‘뿌리’ 다지기

2월 <일소당음악회>와 3월 <산조대전> 외 국악계의 1~3월에는 많은 공연이 올랐다. 안해본소리 프로덕션의 <팔도보부상 TV쇼>(22.12.11~12)와 그룹 노마드의 <제노사이드 그리고 증언>(1.7~8)은 젊은 국악인들이 가까운 과거로 떠난 여정이었다. <팔도보부상 TV쇼>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TV쇼와 전통예술의 접점을 모색한 공연이었고, <제노사이드 그리고 증언>은 1948년 제주 4·3사건을 소재로 했다. 작년에 첫선을 보인 문래예술공장(서울문화재단)의 비넥스트(BENXT) 사업에 선정된 작품들이다.
 
<팔도보부상TV쇼>
<제노사이드 그리고 증언>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선보이는 ‘창작산실-올해의 신작’에서도 세 작품이 얼굴을 보였다. 정가악회의 <탈춤은 탈춤>(1.28~29), 연희앙상블 비단의 <TIMER>(2.11~12), 음악동인 고물의 <꼭두각시>(2.11~13)다. <탈춤은 탈춤>은 탈춤이 지나온 과거와 명인들의 시간에 창작적 탐침을 밀어 넣어 오늘의 시간과 대화할 수 있는 요소들을 건져올렸다. <TIMER>는 연희의 요소를 통해 새로운 연극적 장르를 모색한 시간이었다. 많은 관객은 현대무용과 함께 한 <꼭두각시>가 보여준 협업의 정밀함에 놀랐다.
 
<꼭두각시>
13회를 맞이한 ARKO한국창작음악제(2.24)에서는 원일의 지휘와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의 연주로 김영상, 홍민웅, 성찬경의 초연작이 올랐고, 손다혜와 이정호의 재연작을 만날 수 있었다. 작곡가들의 ‘곡 짓기’는 곧 ‘미래 짓기’와 상통하는데, 이들이 이끌어갈 미래의 국악 지도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외에도 전통음악과 창작곡을 선보이는 개인 발표회, 창작정신으로 무장한 작곡발표회 등이 1~3월 무대에 있었다. 신작과 창작의 명패를 단 공연이라 할지라도 그 안에 녹아 있는 ‘전통’이라는 창조의 수분을 무시할 순 없다. 전통예술의 이러한 유산(遺産)은 시간의 흐름 속에 유산(流産)되면서도, 한편으로 창작을 위한 귀중한 재산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2월과 3월에 서울돈화문국악당이 명인과 산조를 내세운 기획공연은 전통음악의 뿌리 ‘찾기’와 ‘다지기’를 위한 중요한 공연이었다.
올해부터 서울돈화문국악당과 서울남산국악당은 ㈜인사이트모션이 공동 운영한다. 국악계의 새 ‘문’을 열고(돈화문), 한눈에 먼 곳까지 파악할 수 있는 ‘산’ 정상(남산)에서의 시선을 제공하는 기획공연들이 4~6월에도 펼쳐지기를 바란다.
 
 
송현민(음악평론가)
음악평론가. 제13회 객석예술평론상 수상했고, 전통예술과 클래식 음악에 대해 비평·강연·저술하고 있다. 월간 <객석> 편집장, 국립국악원 운영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