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네 번째 <실내악축제>를 맞아 서울돈화문국악당 1층 처마 밑에 ‘Chamber Music Festival’이라는 글씨가 휘날렸다. 체임버 뮤직 즉 ‘방 안의 음악’은 고전 음악사 속에서 확립된 소규모 앙상블 형식의 다발을 지칭하며, 대규모 관현악 ‘오케스트라’ 음악과 대별된다. 관립 악단이라는 기반 위 (양악)관현악의 형태와 관습이 이식을 전제로 세워지고 발달한 ‘국악관현악’과 달리, ‘국악실내악’은 장르적 구심성을 공유한 창작·연행의 리그라기보다 다양한 배경, 지향, 목적을 지닌 이들의 작품을 느슨히 묶어온 개념적 우산이자, 그것들이 행해지고 즐기어지고 지원받는 실험-놀이의 터로 이해하는 것이 더욱 적절할 듯하다.
이번 축제에서는 가야금앙상블 사계, 여성국악실내악단 다스름, 이화국악앙상블 등 전통과 역사를 지닌 악단들의 공연과 더불어, 피아노-전통악기 이중주 및 젊은 세대 작곡가·연주자라는 두 가지 테마에 기반한 ‘기획특집’으로서의 페스티벌 앙상블 무대가 꾸려져 국악실내악의 지금을 관객들에게 건네었다. 특히, 축제 마지막 날의 <페스티벌 앙상블 II> 공연(9월 1일)은 앞으로 국악 실내악계를 이끌어나갈 이들의 창작적 지향을 엿볼 기회를 제공하였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이날 펼쳐진 다섯 연행은 두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음악 내적 구조에 대한 관심의 측면이 부각된 작품들, 그리고 ‘이야기’의 묘사 및 서사를 표방한 작품들이 그것이다. 공연 초두에 연행된 두 작품이 전자에 해당하였다고 볼 수 있다. 첫 무대인 <Opposites Attract>(안지수 작곡)은, 창작 가야금 중주에서 흔히 행하는 ‘서구식’ 역할 배분(즉 베이스/리듬과 선율/화성이라는 노동분업)의 전형을 답습하지 않았다. 동등한 위상의 상이한 주체로서 두 금이 서로 당기고 밀고 섞이며 역동하는 모습을 그려내는 데 집중하며 이러한 상호작용의 형식 자체를 주제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메나리, 음의 분산>(김상진 작곡)은, 메나리 선율이 지닌 특징적 제요소들이 마치 언어의 형태소처럼 분리된 뒤 산조아쟁과 산조가야 금간 협주 속에서 재조합되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 듯하였다. 인상적인 순간들이 있었으나, 곡의 관건이 선율 구조적 요소의 제고 및 재구라는 주제의 관철에 있었다면 선율이라는 지평 바깥의 시도들, 예컨대 비전통적 주법의 간헐적 전시라든가 호흡 뺏기 같은 장치의 삽입 등은 자제되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도 하였다.
이어진 무대는 문학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음악적 내러티브를 구성한 두 작품이었다. 수필의 제목에서 표제를 가져온 <음예 예찬>(이아로 작곡)은 타악, 거문고, 해금이 어우러지고 얼크러지며 미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듯한 작품이었다. 추상화되기 쉬울 법한 주제이지만 각 악기가 가진 전통적 미감과 주법들이 버려지지 않은 채 번갈아 드러나게끔 했다. 그것들이 그려내는 그림이 구상화 중에서도 한국화 혹은 동양화의 형태로 느껴지도록 했던 점이 즐거웠고, 개인적으로는 거문고를 활용하는 방식이 인상 깊었다.
소설 <걸리버 여행기>에 등장하는 장소를 제목으로 끌고 온 <후이늠을 만나다>(김신애 작곡)는 이날 무대에 오른 작품들 중 가장 서사적인 접근을 의도한 경우로 볼 수 있겠다. 대금과 거문고, 타악이라는 세 악기 그리고 세 연주자의 다름이 상호 수용과 어우러짐으로 화하는 ‘극적’ 과정을 표현코자 하였다고 한다. 그러한 목적이라면, 초반부를 보다 간결하게 꾸리면서 캐릭터들을 규정·소개하였다면 청중이 좀 더 빠르게 극에 몰입하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그 밝은 지향과 무드는 관객에게 충분히 전달되었을 듯하다.
마지막 순서인 <Heterophonium II: Hermit>(정혁 작곡)은 세 명의 가창자가 정가 소리목과 제례악적 선율 요소를 바탕으로 하여 <보태평>과 옛 시들의 텍스트를 따로, 또는 겹치어가며, 때로는 함께 부르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중간에 두 번 정도, 독백조의 대사들이 다른 부분과는 달리 음악적으로 계산되지 않은 느낌으로 삽입되면서 음악적으로 쌓아 올린 긴장을 무너뜨리는 것이 크게 아쉬운 부분이었다. 하지만 전통적 성악 요소들을 적극 활용하여 극성을 지닌 장면(들)과 정서를 실내악적 조건 안에서 이루어내려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다섯 작품만 가지고 ‘젊은 실내악의 흐름이 어떠하다’라고 말하는 것은 경솔한 일일 것이다. 다만 <페스티벌 앙상블 II>, 그리고 <페스티벌 앙상블 Ⅰ>(8월 28일) 공연을 보면서, 전통음악의 형식 요소를 잘게 분절시키거나 음색‧창법‧주법‧조와 시김새 등의 특정한 한두 측면으로 환원한 뒤 주로 서구에서 확립된 장르 통사(syntax)적 관습 안에서 활용하는 것이 역의 경우보다 훨씬 지배적인 상황이라는 인상이 한층 더 강화되었다고 말할 수는 있을 것 같다. 또, 젊은 작곡가들의 <페스티벌 앙상블 II>를 보면서, <페스티벌 앙상블 I>을 비롯한 이전 세대들의 작업에 비해 개념 예술적 성격이 확연히 짙어진 점을 새삼 곱씹게도 되었다. 제목을 음악으로 설명하고 음악을 제목으로 설명하기보다는 팸플릿 속 작가의 설명된 의도가 제목과 음악 그리고 그 둘 간의 관계를 설명하는 선행, 아니 충분조건으로 여겨지는 듯하다는 뜻이다. 무엇이 옳고 그르다기보다는 이러한 경향성에 대한 다양한 입장으로부터의 활발한 논의가 있으면 좋겠다고 여겨진다.
<실내악축제>뿐 아니라 서울돈화문국악당의 축제들은 ‘산조’, ‘음악극’, ‘한국즉흥음악’ 등 한반도에서 꽃피어온 장르 개념들을 파고들면서 그것들의 과거와 현재를 관객에게 건넨다. 그럼으로써 개별 작품을 넘어 덩어리진 음악과 사람 흐름의 매력을 드러내는 한편 그에 대한 비평적 흥미와 논의 거리를 낳게끔 하여 왔다. 다양한 실험이 높은 자유도 속에서 이루어지는 ‘창작 놀이터’로서의 현 국악실내악계가 가진 가능성을 응원하고, 그 놀이의 판을 네 해째 펼치고 있는 <실내악축제>를 응원한다.
글 박종현
전통음악 평론가, 인류학 연구자, 팝 작곡가이다. 제11회 국립국악원 학술상 평론부문에서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