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봄

리뷰 | 서울돈화문국악당 [최혜림의 아쟁 ‘WITH 양승환’]

김상욱
발행일2023.02.21

아쟁에서 만난 연주자의 기교,
작곡가의 기술

서울돈화문국악당 공동기획 프로젝트 2월 14일 공연
 
아쟁은 창작국악 초기에 저음역을 담당하는 제한된 역할을 맡았으나, 아쟁 연주자들의 열정과 노력으로 다양한 방면으로 음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그 가운데 최혜림(국립국악원 창작악단 단원)은 아쟁이 보여줄 수 있는 감성과 재미, 그리고 전통음악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며 자신만의 음악 색깔을 만들어가고 있는 연주자이다. 작곡가 양승환의 작품으로만 구성된 이번 공연에서 양승환은 또 다른 주인공이자 든든한 조력자로서 최혜림과 함께했다.(본 공연은 서울돈화문국악당 공동기획 프로젝트로 2월 14일에 진행되었다)

동서양과 민속악과
오늘의 음악이 만나다

첫 곡 ‘별빛명상 II’는 부산 수영농청놀이에서 불리는 가락을 기반으로 한밤중의 감성과 별빛의 형상을 음악적으로 표현한 일종의 소야곡(小夜曲)이다. 산조아쟁(최혜림)과 대아쟁(이신애)이 주선율과 부선율 역할을 바꿔가며 대화하고, 글로켄슈필·심벌·장구 등 타악기(이준형)가 음색과 리듬을 추가하여 음악을 다채롭게 전개한다. 이 음악에서 운궁법(bowing)과 피치카토 주법(pizzicato)의 강한 대비가 나타났는데, 이를 막힘없이 유연하게 운용하는 최혜림과 이신애의 안정적인 연주력이 돋보였다.
 
이어진 ‘Intertwined II’(인터트와인드)는 대아쟁, 25현 가야금(이지혜), 바이올린(윤종수), 비올라(박용은), 키보드(양승환)가 함께 연주하는 곡으로 작곡가 양승환이 동·서양 혼합편성의 대비와 조화에 주안점을 두고 만들었다고 한다. 컨트리풍과 리드미컬한 2·3박자의 혼합 박자 안에서 각기 다른 현악기의 음역, 음색, 연주법이 서로 주고받으며 음악적인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최혜림의 대아쟁은 재즈의 베이스처럼 저음부에서 전체적인 흐름을 조율하는 것이 주된 역할이었는데, 빠르고 복잡한 리듬 속에서 최혜림의 안정적인 연주를 중심으로 앙상블이 호흡을 맞춰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緣(연)’은 남도민요 육자배기와 자진육자배기를 모티프로 한 곡이다. 양승환은 원곡이 가진 애절함과 풍부한 감수성을 산조아쟁의 짙은 음색을 가진 선율과 현악 4중주의 다채로운 화성을 통해 기악곡으로 승화시켰다. 각 악기의 전통적인 스타일이 잘 매칭된 음악 안에서, 최혜림과 현악 주자(바이올린 윤종수 이진성·비올라 박용은·첼로 안지은)들이 자신이 가진 기량과 내공을 잘 보여주었다.
 
아쟁과 비올라의 2중주 ‘Play for Fun’은 친숙한 클래식과 영화 OST를 인용하고 조합하여 만들어진 곡으로 양승환의 재치가 잘 드러났다. 뮤지컬 코미디처럼 연주자들은 연주와 코믹한 무언극으로 이야기를 전개하였는데, 두 사람이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춘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또한 관객이 손뼉을 치며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부분도 안배되어 있어 흥과 재미를 더했다.
마지막 곡 ‘윤서경 아쟁산조 주제에 의한 협주곡’은 그동안 출연했던 모든 연주자가 함께 한 대단원이었다.(산조아쟁 최혜림, 대아쟁 이신애, 가야금 이지혜, 타악 이준형, 바이올린 윤종수 이진성, 비올라 박용은, 첼로 안지은) 곡의 모태가 되는 윤서경의 아쟁산조는 이번 공연을 통해 초연되었는데, 독주로 다시금 들어보고 싶은 선율이었다. 이 선율이 양승환의 손에 의해 협주곡으로 확대되면서 선법과 연주 주법의 다양한 층위를 만들어냈다. 최혜림의 짙은 성음과 기교, 그리고 연주자들의 기량과 호흡이 출중하게 드러난 연주는 공연의 대미를 장식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작곡가의 사연은 빛났고,
조명과 전환은 아쉬움으로

악기 편성의 변화 때문에 곡과 곡 사이의 전환은 길었다. 하지만 송현민 음악평론가 해설과 양승환 작곡가의 대담에 의해 그 사이는 의미 있고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 특히 양승환이 직접 곡의 배경과 숨겨진 이야기들을 소개하여 공연에 더 몰입할 수 있었고,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이렇게 좋은 공연에도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는데 첫째로 조명 전환이다. 연주자의 첫 입장과 마지막 커튼콜에서 연주자가 충분히 박수 받을 수 있도록 했다면 어땠을까. 조명이 연주 전과 후에 암전이 되면서 빠르게 바뀌어 여유가 없게 느껴졌다.
 
또 다른 아쉬움은 확성기기의 사용이었다. 악기 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사용했겠다는 짐작은 되지만 정말 필요했는지 의문이다. 특히 대편성 작품에서는 부족한 공간감과 억센 음량들이 음악에 몰입하는데 어려움을 주었다. 열거한 아쉬움은 연주나 작품과는 관련이 없지만, 음악이 어떻게 관객에게 전달되는지 살펴볼 때 고민해봐야 할 지점들이다.
 
‘최혜림의 아쟁 <WITH 양승환>’은 연주자와 작곡가가 장기간에 걸쳐 함께 만든 결과물을 보여주었다는 데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서로 간의 이해와 신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과 연주에서 음악적인 다양성과 원숙함을 느낄 수 있었기에, 앞으로 이들이 함께 만들어갈 또 다른 음악을 기대해본다.
김상욱
오늘날의 새로운 한국 음악을 만들어가는데 관심 갖고 활동하는 작곡가, 지휘자, 교육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