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에 기반을 두고 하나의 춤과 음악이 만나 이뤄내는 새로운 창작 춤은 어떤 모습일까? 춤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공연이라면? 이와 같은 궁금증을 해소해 준 공연이 서울돈화문국악당에서 7월 17일과 19일에 <일무일악(一舞一樂)>이라는 제목으로 펼쳐졌다.
서울돈화문국악당의 기획으로 선보인 이 공연은 말 그대로 하나의 춤과 하나의 음악이 만나 상생하는 무대였고, 춤의 향기와 음악의 선율이 조화를 이뤄 공간을 그 열기로 채우기 충분했다. 또한 그동안 춤과 음악이 만나는 자리가 부재했던 것은 아니나, 짜임새 있게 무용수와 악사가 어우러지고 그 결과물이 우수한 형태로 보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컸다. 예술감독으로 참여한 윤중강(음악평론가)과 최해리(무용평론가)는 2인 체제를 통해 음악과 춤에 있어서 각자의 전문성을 살리며 예술성과 대중성을 두루 갖춘 예인들을 선보였다.
첫째날|
춤과 음악이 하나의 흐름에 제 몸을 섞다(7월 17일)
<맘궤다림> 김미애(무용수) & 방지원(타악 연주자)
윤중강의 해설을 통해 이뤄진 공연의 첫 무대는 김미애와 방지원의 <맘궤다림>이었다. ‘맘궤다림’은 마음의 궤를 열어 푼다는 의미로, 제주도에서 영등신에게 풍요를 비는 마을굿인 ‘영등굿’에 근간을 두었다.
국립무용단 수석단원인 김미애가 자신의 고향인 제주도의 분위기와 움직임을 살리며 제의적인 측면을 제대로 드러냈다. 징과 북, 소리에 몸을 실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절제된 춤사위와 응축된 에너지를 발산하는 김미애는 영락없는 영등할망의 현신(現身)이었다. 뛰어난 기량을 갖추었기에 방지원(국가무형유산 동해안별신굿 이수자)과의 호흡이 일치하는 순간 접신의 광경을 그려내기도 했다. 김미애는 제주도 역사와 더불어 자신의 서사를 담아냈고, 방지원은 굿음악의 폭을 확대해 제주굿 신방으로 변신시키는 작업을 시도했다.
<무동춘몽> 정민근(무용수) & 김준영(거문고 연주자)
정민근과 김준영의 <무동춘몽(舞童春夢)>은 ‘춤추는 아이가 봄꿈을 꾼다’라는 의미에 맞게 정민근이 청년에서 노년까지를 압축해서 다양한 춤사위로 그려냈다.
국가무형유산 종묘제례악(일무) 전수자인 정민근은 조선의 마지막 무동이었던 김천흥과 자신을 동시에 작품 속에 투영했다. 정민근은 노인의 탈을 쓰고 무동의 복장으로 등장했다. 노인과 무동의 이중 역할을 하며 의상과 다양한 오브제를 사용해 스토리텔링을 강조했다. 그는 김준영(국립국악원 창작악단)의 훌륭한 거문고 연주와 합을 이루며 자신의 춤집을 드러냈는데, 거문고로 이미지를 만들어가면서 신무용적인 특성을 가미해 자신만의 순수하면서도 성장해 가는 모습을 극적으로 완성해 갔다.
<군웅신무> 윤종현(무용수) & 이민형(타악 연주자)
윤종현과 이민형이 조합을 이룬 <군웅신무(軍雄神舞)>는 국립국악원 무용단 단원이자 서울경기춤연구회 회장이기도 한 윤종현의 기량이 돋보인 무대였다.
공연은 경기도당굿 중 군웅거리를 모티브로 재해석했다. 국가무형유산 판소리(고법)이수자이며 전통음악집단 ‘샛’ 대표인 이민형은 장구장단에서 시작해 소리에 이르기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섬세한 춤사위와 조화를 이뤄 신명과 예술성이 조화를 이룬 무대를 보여주었다. 경기남부장단이 전개되면서 이에 발맞춰 윤종현(국립국악원 무용단)은 발뒤꿈치와 앞꿈치를 골고루 사용했다. 잘게 쪼개지는 발놀음과 섬세한 발디딤이 흔히 볼 수 없었던 장면을 연출했기에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냈다. 때로는 활이라는 오브제도 사용하면서 담백하지만, 열정적이고 경쾌하면서도 산뜻한 이미지가 인상적이었다.
<춤, 만파식적> 박기량(무용수) & 김동근(대금‧퉁소 연주자)
<춤, 만파식적>은 밴드 고래야 멤버이며 직접 ‘김동근류 퉁소산조’를 발표한 김동근의 대금과 퉁소 연주에 맞춰 박기량의 아름답고도 자연 친화적인 춤의 장면들이 스며들 듯 조용히 다가왔다.
국립무용단 단원이었고 현재는 국립남도국악원 안무자로 활약하고 있는 박기량은 세상의 온갖 파란(萬波)을 없애고 평안하게(息) 하는 피리(笛)라는 만파식적 역할의 퉁소 가락에 맞춰 녹색의 한복에 부채를 들고 등장해 진도의 숲으로 안내하는 숲의 정령(精靈)인 듯 춤췄다. 남도 무속의 제의성을 기반으로 했다지만, 그보다는 자연을 춤으로 은유하며 삶의 희로애락을 짚어 구조화하고자 했던 부분이 강조되면서 자연스럽게 펼쳐졌다.
둘째날|
음악의 울림에 춤의 호흡이 스며들다(7월 19일)
<정재 타령춤> 김현우(무용수) & 김보미(해금 연주자)
19일 공연은 예정된 프로그램 순서와는 다르게 김현우와 김보미의 <정재 타령춤>으로 시작을 알렸다. 온나라 전통춤 경연대회 일반부 대통령상을 받고, 국립국악원 무용단에서 정단원으로 활동하는 김현우는 ‘효명세자가 다시 태어났다’는 극찬을 받을 만큼 뛰어난 인재이다.
느리면서도 정제된 몸짓으로 사방을 향해 돌며 한발을 들어올리는 동작으로 춤을 시작한 김현우는 직접 만든 창사를 하기도 했다. 밴드 잠비나이 멤버인 김보미의 해금에 기반을 두고 차분한 표정과 춤사위가 정갈하게 이어지면서 정재에 특화된 자신의 장점을 잘 살려냈다.
<첫먹승춤> 박인수(무용수) & 김소라(타악 연주자)
<첫먹승춤>은 국가무형유산 봉산탈춤 이수자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연희과 교수인 박인수가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토속적이며 친근한 춤사위로 관객을 집중시켰다.
박인수는 먹중탈을 쓰고 크고 역동적인 선과 절도 있고 흥겨운 탈춤사위를 더해 새로운 먹중춤을 완성하고자 했다. 전라북도 무형유산 정읍농악 이수자이자 한국장단음악축제 총감독인 김소라는 장구연주로 시작해 이후 새로운 장단을 만들어냈고 이에 따라 기존에 없던 장단과 사위를 만들어내는 창작의 과정을 충분히 구현했다.
<나르디> 배민지(무용수) & 정선겸(아쟁 연주자)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배민지와 정선겸의 <나르디>는 나비의 날갯짓 같은 가벼움과 요염함을 갖춘 배민지가 부산 지역에 전해지는 아쟁산조에 맞춰 자신의 춤을 소개하는 무대이기도 했다.
국가무형유산 처용무 이수자이자 국립부산국악원 무용단 단원인 배민지는 기방춤과 마당춤의 중간이라는 윤중강의 소개처럼 정갈함과 농염함이 공존했다. 정선겸의 아쟁산조가 심금을 울리는 가운데 그녀는 긴 팔을 사용해 시원한 춤을 보이는가 하면 직접 장구를 메고 장단을 치면서 흥을 고조시키는 연출의 효과도 더했다.
<범피창파> 김진아(무용수) & 민은경(소리)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 김진아와 민은경의 <범피창파>는 국가무형유산 판소리(춘향가) 이수자이자 국립창극단 수석 단원인 민은경의 소리가 주도적이었다. 동시에 천안시립무용단 상인 단원이자 보훈예술협회 올해의 예술상 ‘안무가상’을 수상한 김진아의 춤이 무게감 있게 다가온 공연이었다.
길고 흰 천에 몸이 묶인 두 여인은 분리가 아니라 일체임을 은유적으로 나타냈고, 김진아의 강하고 짙은 감성이 담긴 춤은 진도 출신인 두 예술가의 결합을 통해 더욱 빛을 발했다.
흔히 말하듯 하나와 하나가 더해지면 둘이 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창작에 있어서는 그러한 공식이 적용되지 않는다. 예술가의 독창성과 연륜이 더해져 하나와 하나는 무한대의 영역으로 펼쳐질 수 있기에 관객은 오늘도 공연장을 찾는다.
특히 <일무일악(一舞一樂)>의 무대는 소극장(138석)을 적절하게 활용하면서 전통성과 지역성을 담아 나름의 해석과 색깔을 더해 재창작되었다. 해체와 변용이 중심을 이루는 현시점에 전통적인 춤사위와 호흡을 간직하면서도 컨템퍼러리 한국춤으로서의 면모를 잘 드러내며 우리에게 여러 생각을 남겼다.
글 장지원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무용학 박사학위 취득 후 15년 동안 무용평론가로 활동하며 <춤과 사람들> <댄스포스트코리아>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무용의 역사를 살피고, 컨템퍼러리 댄스에 주목해 춤에 대한 시각을 확장하는데 기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