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돈화문국악당에서 지난 11월 2일부터 10일까지, 4회에 걸쳐 <서울소리:잡가>를 선보였다. 첫날인 2일에는 ‘19세기 서울소리의 재현’(소리꾼 권정희‧고금성‧김보연 외)이, 3일에는 ‘선율에 얹어진 서울소리’(소리꾼 안재현‧김주현‧이채현 외)를 제목으로 무대가 펼쳐졌다. 9일에는 ‘도심 속 서울소리의 울림’(소리꾼 하지아‧전영랑‧왕희림 외), 마지막 날인 10일에는 ‘어울져 흐르는 서울소리’(소리꾼 이은혜‧이현채‧정유정 외)로,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잡가를 선보였다.
최근 몇 년간 서울돈화문국악당은 공연장이 위치한 시공간성으로부터 테마를 길어 올려 의미 있는 기획을 빚어내고 있다. 20세기 한국음악의 거점이었던 인근의 역사적 공간을 주제로 하여 그에 얽힌 음악과 음악가를 조명한 <운당여관 음악회> 및 <일소당 음악회> 시리즈가 그러하였고, 관객과 예술가가 함께 동네를 걸으면서 전통음악의 근현대사가 배인 곳들에 엮인 이야기들을 공유한 <돈화문 나들이> 시리즈 역시 그러하였다. 11월 2일부터 10일까지 나흘에 걸쳐 이루어진 <서울소리: 잡가> 역시 이러한 지향의 연장선에서 볼 수 있는 기획이었다.
지난했던 현대사 속에서 잡가를 비롯한 이 지역의 소리가 유지, 전승될 수 있게 기여한 청구고전성악학원 등의 장소들이 공연장 근처에 있다. 이 사실을 관객과 함께 상기하면서 장르의 과거와 현재를 나누는 시간을 마련하는 일을, 바로 그 ‘로컬’의 후배들인 기획자와 연행자들이 꾸려낸다는 점은 즐겁게 지지할 만한 일이다.
이러한 공간과 장르의 역사 및 위상에 대한 사유가 이번 시리즈에서는 적어도 두 가지 기획 요소들로 화하였다고 하겠다. 한 가지는 남성 소리꾼에 초점을 맞춘 꼭지를 마련한 것이다. 이 공연의 예술감독을 맡은 강효주가 직접 무대 위에서도 거듭 강조한 바 있듯, 조선 말기 이후 잡가는 남성 소리꾼을 중심으로 연행·전승되었으나 해방 후 문화사적 맥락 속에서 여성 소리꾼들이 주도하는 방향으로 흘러갔으며 남성 소리꾼이 상대적으로 귀해졌다. 그러한 인식 속에서 상대적으로 수가 적은 남성 가객 셋이 함께 한 무대를 꾸린 두 번째 날(11월 3일)의 기획이 이루어졌다고 하겠는데, 그 자체로 드문 공연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또 기존의 애호가들에게도 장르의 근현대사를 그리고 여창과 남창이 가진 각자의 매력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다른 한 가지는 가창 및 반주 포맷의 변화 시도를 끌어안은 것이다. 음악 내적인 측면에서는, 독창 대신 합창 형식이 종종 선택된 점, 장구 반주 전형을 벗어나 정악가야금과 법금, 거문고, 소리북, 양금, 싱잉볼, 메탈로폰과 같은 전통 및 비전통 악기들이 레퍼토리의 곳곳에 활용된 점 등을 이야기할 수 있겠다. 음악 외적 혹은 준음악적인 측면에서는, 이야기의 이해를 돕기 위한 내레이션의 부분적 삽입 혹은 연극적 요소의 첨가 등이 곳곳에 엿보였다. 장르의 속을 아는 예술가들이 새로운 미학적 즐거움을 향하여 여러 구성을 시도하고 관객에게 건네어보며 대화를 시도하는 일은 소중하며, 새로운 방향으로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사건들로서 지지받아야 할 것이다.
그중 셋째 날(11월 9일) ‘도심 속 서울소리의 울림’이라는 표제 하에 이루어진 공연의 감상을 기술하면서 보다 구체적인 논의를 풀어내어 볼 수 있을 듯하다.
하지아‧전영랑‧왕희림이라는, 장점과 개성이 서로 다른 소리꾼들이 무대를 채운 이 공연은 명시적이지는 않지만 두 부분으로 나뉘어졌다. 1부는 독창 곁으로 여러 악기를 개입시킨 시도의 구현이고, 2부는 전통적인 반주 형태 위에서 때로는 같이, 때로는 번갈아 부르는 합창의 공연이었다. ‘풍등가’에서부터 민요 앙코르까지 이어진 2부는, 가끔 서로 다른 가창 스타일을 의식하며 합창 중에 머뭇거리기도 했지만, 기량의 아낌없는 표출 속에서 소리꾼들과 연주자들이 빛났고 관객들의 반응도 놀랄 정도로 폭발적이었다.
공연의 초두, “통절형식의 긴 사설을 지녔다는 점 때문에 잡가가 대중으로부터 (유절형식 장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멀어진 부분이 있었다”는 예술감독의 장르사적 설명이 있었다. 그러나 이날 관객석의 크나큰 호응은 (그러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애호가들 속에서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더 넓고 깊게 즐기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하게 하였다.
한편, 포맷의 실험을 통한 탐구에 집중한 1부는 음향의 실험에 대한 여러 비평적 생각거리를 남겼다. 국립국악원 민속악단과 앙상블 ‘4인놀이’에서 활약하는 이재하 편곡으로 <소춘향가>와 <방물가>, <적벽가>가 무대에 올랐는데, 세 곡 모두에서 장구가 사라지고 여러 유율악기가 들어와 새로운 풍경을 이루었다. 개인적으로 소리북이 들어온 경우(<적벽가>)가 흥미로웠는데, (최근 산조 무대들에서도 종종 볼 수 있듯) 장구 대신 소리북이 사용됨으로써 유사한 듯 다른 장단의 그림을 그리는 이러한 시도가 어떤 미묘함을 만들어내고 또 앞으로 무엇을 만들어낼지에 대한 호기심을 새삼 되새기게 하는 지점이었다.
금(琴)류의 현악기들과 메탈로폰의 활용은 다른 방향으로 다가왔다. 메탈로폰, 양금과 같이 서스테인이 길고 강하게 남는 악기들, 그리고 찰현을 통해 시간을 소리로 채우는 철현금(및 거문고 활질) 등의 사용은 잡가라는 소리풍경, 이야기 풍경을 그려내려는 의도로서는 수긍되었다. 하지만 그 음향적 특질 때문에 잡가 소리의 핵심 매력인 소릿길, 소리목의 다이내믹 그리고 시김새들의 정교한 뉘앙스를 덜 들리게 하였다(자연음향을 사용하는 국악당 공연이었기에 소리 간 음량 차가 더 두드러졌을 것이다). 메탈로폰이 근음과 3도 위로 이루어진 화성을 친다거나, 거문고가 근음을 (베이스 기타를 치듯) 리프 형식으로 강조하며 장단 안쪽을 채우는 경우 역시 소릿길을 ‘막는다’는 느낌을 주는 순간들이 있었다. 잡가의 매력을 새로이 배가시키기 위하여 좀 더 효과적인 다른 방식의 구상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방식의 창작론적 논의가 연행자들과 비평가들, 학자들 사이에서 활발히 일어난다면 더 많은, 재미있는 시도들이 생산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을까.
공연의 말미, 소리꾼 하지아는 같이 무대에 선 소리꾼들이 모두 다른 선생님 밑에서 배워왔기에, 이렇게 함께 노래하는 일이 새로웠으며 또 그로부터 많이 배우기도 하였다고 이야기하였다. 물론 각자의 유파와 스타일을 잘 전수받아 벼리는 것이 기본이요 가장 중요한 일이겠지만, 이처럼 장르 안에서 연행자끼리 교유하며 각자의 세계를 나누는 일이 앞으로 덜 드물어지고 덜 신기한 상황이 되었으면 한다. 애호가 관객의 입장에서도 개별 소리꾼들의 개성과 더불어 여러 스타일마다의 미덕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그럼으로써 장르 자체의 매력을 크게 느낄 기회가 될 테다. 이러한 부분이 <서울소리, 잡가>가 보여준 또 하나의 기획적 즐거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