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최초로 달 표면에 발을 디딘 것은 불과 50여 년 전이었지만, 인간은 반만년 전부터 예술적 상상력을 통해 달에 오고 다녔다. 예술적 상상력은 과학적 시도를 선행하게 만드는 원동력인 셈이다. 8세기 중국 당나라 때 낭만 시인인 이백의 ‘술잔 들어 달에게 묻다(파주문월 把酒問月)’에 언급된 중국설화 ‘약을 찧는 흰토끼와 계수나무 한 그루’는, 후에 윤극영의 우리나라 동요 ‘반달’(1924)에도 등장해 대대손손 동시대 어린이들의 상상을 자극한다. 현대인은 달의 표면을 망원경으로 직접 관측하고 무인탐사선으로 정밀 탐사하며 조만간 달 네트워크기지를 건설한다는 과학적 성과를 얻었지만, 인간에게 달은 여전히 정서에 무한한 영향을 미치는 상상적 오브제다.
이렇듯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살아 움직이는 불멸의 달이 현대적 공감각이미지로 2024년 어린이들을 찾아왔다. 서울돈화문국악당에서 광대생각의 가족극 <열매달>의 쇼케이스를 통해서다. 2024년 서울문화재단 공연장상주단체육성지원사업 선정 프로젝트로 진행된 이번 공연은 허구를 통해 진실에 접근한다. 연희중심 낭독극으로 진행되어 진면목을 감상할 수는 없었지만 <열매달>은 지구를 떠나 머나먼 달에서 인물들이 만나는 설정으로, 생소한 환경에서의 관계 맺기에 대한 간접 경험의 장을 펼쳤다(※ 작 김정운, 연출 최여림, 음악감독 옴브레). 극으로 건강한 인성과 인격을 형성에 이바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어린이 관객의 호흡과 눈높이에 맞춘 서사의 다양성과 풍성함을 극에 가미한 좋은 서사가 필요하다.
무대에서는 갈등과 위기가 흔하게 펼쳐지는 일상의 일인 듯 설정된다. <열매달>의 주인공 ‘하양새’도 지구에서 다른 친구들과 높이 날기 시합을 벌이다가 너무 높이 날아가는 바람에 별을 지나 달에까지 도달한다. 하양새는 끝없이 이어진 허허벌판에서 반짝이는 새싹을 발견한다. 그리고 새싹이 열매를 맺으면 그 씨앗으로 숲을 만들 꿈에 부푼다. 무료하기 짝이 없던 일상에 새로운 꿈이 생기자, 세상도 변하기 시작한다. 하양새는 달을 푸르른 숲으로 만들 단꿈에 빠진다.
반면 달의 저편 바다에는 세상만사 걱정 없는 ‘오징어’가 있다. 바다에 몸을 맡기고 바다가 이끄는 대로 이리저리 흘러가던 오징어는 회색 모래뿐인 달에 도달한다. 빈둥빈둥 달을 어슬렁거리던 오징어는 진심으로 새싹을 돌보는 하양새와 맞닥뜨린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호시탐탐 새싹을 노리는 오징어와 사활을 걸고 새싹을 지키려는 하양새의 숨 막히는 승부가 시작된다. 달에서 새와 오징어의 한판이라는 발상이 참신하다.
모든 무대언어가 그러하겠지만 특히 가족극은 말로 하지 않고 환상으로 보여줄 때 큰 감동이 형성된다. <열매달>은 새싹을 매개로 어린이 관객을 주체적 자기성찰로 이끌어내는 상상 유희의 공간을 마련한다. 푸른 새싹들로 뒤덮인 열매달을 보여주는 것이 <열매달>의 궁극적 목적이 아니다. 열매달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놀라움을 찾은 관객이 더 집중해 보고, 듣고, 느끼며 보이지 않는 너머의 것까지 기대하게 만들어야 한다. 어린이 관객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가치를 무대 위에서 보고 듣게 되면서 내면의 자아와 소통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형성된 공감을 통해 어린이 관객은 타인을 이해하고 세상을 향해 진일보하는 변화를 겪게 된다.
어린이 관객을 위한 섬세한 장르 개발이 필요하다
특별히, 전통 악기를 활용한 국악 가족극 개발의 경우 앞으로 음향에 대한 섬세한 고려가 필요하다. 꽹과리‧징‧장구‧북 네 가지 전통 타악기 중심으로 이루어진 악기편성은 야외처럼 열린 공간에서는 강렬한 리듬과 박자감으로 활력을 보여주지만, 인공적인 확성장치보다 자연음향을 염두에 두고 건축된 서울돈화문국악당에서는 각별한 주의해야 한다. 선율악기의 울림은 타악에 파묻혀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음향적 앙상블의 불균형은 물론, 어린이 관객의 청력 손상이 매우 우려된다. 악기의 재질이나 연주자의 타법·강도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꽹과리 중에서 가장 소리가 작은 금합금 꽹과리의 음역대 주파수는 대략 250Hz에서 2,200Hz정도다(논문 손정호·배명진, 「사물놀이 악기소리와 인간의 목소리 주파수 대역」/문현숙, 「사물놀이의 사운드 분석을 통한 시공간적 표현에 관한 연구」 참조). 성인 남녀의 목소리가 각각 100~150Hz, 200~250Hz의 주파수를 가진 것을 감안한다면 상당한 고음이다.
또한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시청각적 재미는 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킬 수는 있지만 애매하게 엉겨 붙은 이질적 장르 간의 절충적 융합은 오히려 전통예술에 대한 난해한 선입견만을 전해 줄 수 있다. 국악 가족극은 성인극이나 국악 공연의 주변부적 영역도 아니고, 계몽적 교육 학습은 더더욱 아니다. 국악 가족극은 타 공연들과 평행되는 독자적인 하나의 공연예술 장르이지만 성인극이나 국악 공연과 동일한 평가기준을 적용하기에 어렵기 때문에 상이하게 논의되고 개발되어야 한다.
글 황승경
연극 평론가. 공연칼럼니스트로 예술을 통한 성찰이 세상을 시나브로 변화시킨다고 굳게 믿고 있다. <카툰K-공감> PM, 계간 <지금, 만화> 편집장으로 재직하며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사무국장으로 있다. 평론집 <무한한 상상과 놀이의 변주>와 <3S 보컬트레이닝>, <문화와 사회(공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