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여름

리뷰 | 서울돈화문국악당 [돈화문음악극축제] ①

구수정
사진제공서울돈화문국악당
발행일2024.06.19

국악담은 가족형 음악극 축제를 돌아보며

돈화문음악극축제(2개 작품) 518~26


온통 푸른 5월이다. 하늘은 시리도록 파랗고 이팝나무 꽃송이가 날리는 이 아름다운 계절에 집 안에 웅크리고 있는 것은 계절에 빚을 지는 일이다. 창덕궁이 담장 너머 보이는 서울돈화문국악당(이하 돈화문국악당)에서 2024년 5월 18일부터 26일 돈화문음악극축제를 벌여 손님을 맞았다.
돈화문음악극축제 포스터
광대생각의 <줄타는 아이와 아프리카도마뱀>, 국립민속국악원의 <강강숲에 떨어진 달님>이 에 선정되었고, 앞서 이와 연계된 줄타기와 강강술래 체험활동이 준비되었다. 가족 단위의 관람객들은 공연 시작 전부터 다양한 체험활동으로 시끌벅적했다. 고즈넉한 처마 아래 아이들이 웃고 뛰노는 모습에 잠시 대한민국 출산율은 잊어도 될 만큼 소란한 잔치였다.
돈화문음악극축제는 팬데믹이 사그라든 2022년 시작이 되었다. 그 해에 <나무의 아이> <제비씨의 크리스마스> <만보와 별별머리> <말하는 원숭이>가 올랐고, 2023년에  <오냐나무와 야나벌레> <향기장수 이야기>를 선보였다. 국악을 기반으로 하는 음악극을 한자리에 모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로 벌써 3회째 맞았다. 이제는 하나의 축제로서 자리 잡은 듯 객석은 가득 찼다. 아기 띠에 안겨서 온 한 살배기 아이부터 손녀 따라 나들이 온 할머니까지 다양한 연령의 가족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축제, 독특한 소재의
가족형 공연이 펼쳐지다

종로 한복판 북촌한옥마을이 가까이 있고, 종묘와 창덕궁의 담을 나눠 기댄 돈화문국악당은 소박한 마당을 품은 국악 전문 공연장이다. 가족들과 나들이를 오기에도 좋은 입지를 가지고 있다. 필자가 공연을 관람하러 오는 길에도 아이들이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창덕궁에서 돈화문국악당까지 늦을까 종종걸음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옆에는 서울우리소리박물관이 있어 이른 공연이 끝나고 들를 수 있다는 맘카페 입소문까지 났다. 여기에 가족끼리 맛난 저녁 외식을 하면 그야말로 환상적인 주말 나들이가 완성되는 코스이다.
올해(2024) 돈화문음악극축제에 선정된 두 단체는 사뭇 결이 다르다. 민간단체와 국립단체가 나란히 음악극을 선보였다. 2024/25년 돈화문국악당 상주단체(서울문화재단)로 선정된 ‘광대생각’은 전통연희를 기반으로 창작연희극과 놀이 중심의 예술교육을 하고 있다.
광대생각
국립민속국악원
<줄 타는 아이와 아프리카도마뱀>이 축제의 첫 공연으로 5월18일~19일 양일간 올려졌다. 제목에서 보여지듯 줄타기를 모티프로 하여 칠삭둥이 아이가 아프리카도마뱀과 엄마를 찾으러 가는 모험극이다. 전통연희와는 전혀 접점이 없을 것 같은 아프리카도마뱀은 공연을 보다보면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아주 절묘한 캐릭터였다. 덕분에 이색적인 음악 장르를 집어넣었어도 자연스레 녹아들었다. 라이브로 들려주는 가야금, 해금, 콘트라베이스는 모두 줄을 타는 악기들이 아닌가. 여기에 아프리칸 타악기가 신나게 어우러진다. 배우들은 덩실덩실 자반뒤집기나 부포놀이를 선보이며 극 속에 부지런히 숨겨둔 연희를 보여주거나 여러 인물을 연기하기도 한다. 

축제의 또 다른 작품 <강강숲에 떨어진 달님>은 5월 25일~26일에 선보였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선정된 강강술래를 주제로 달님을 비롯해 토끼, 반달곰, 호랑이, 다람쥐같이 친숙한 동물들과, 강강술래 노랫말에 나오는 남생이, 꿩 등이 등장한다. 남원에 위치한 국립민속국악원 단원들이 연기를 펼친다. 한국무용을 바탕으로 한 배우들의 동작이 굉장히 섬세하여 앞서 선보인 작품과는 확연히 다른 색깔을 가지고 있었다. 기획 과정에서 다채로운 작품 선정이 축제의 본질을 잘 드러내고 있었다.

공연 속 교감’, 공연 밖 체험

<강강숲에 떨어진 달님>은 굉장히 직관적이고 반짝이는 오브제를 사용하며 배우들의 섬세한 동작에 어린아이들이 극에 금방 빠져들었다. 사방에서 등장하는 배우들이 실제 해금, 피리 같은 악기들을 연주하는 것 같은 장면은 연출적으로도 아름다웠다.
특히 어린이 관객이 몰입하여 고개를 쭉 빼고 무대를 들여다보던 모습은 극 속 남생이보다 더 남생이 같은 자태였다. 이들을 더욱 열광하게 했던 것은 극 속에서 자연스럽게 어린이들을 불러냈다는 것이다. 선택된 일곱 명의 아이들은 관객이자 무대 속 주인공이 되어 고사리 꺾기, 문지기 놀이를 배우들과 함께했다. 강강숲에 떨어진 달님을 다시 하늘로 올려보내기 위해 아이들은 제 몫을 한 것이다.
<강강숲에 떨어진 달님>
<강강숲에 떨어진 달님>
<강강숲에 떨어진 달님>
그 과정에서 노련하게 무대를 이끄는 배우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양육자가 무대 위 아이의 모습을 사진 찍을 시간을 충분히 주고, 주저하는 아이들에게 용기를 주며 손을 이끄는 모습은 아주 따스했다. 이러한 관객과의 조우는 공연문화가 지녀야 할 하나의 역할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화려하고 재미있는 것들은 모두 화면 안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공연장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교감’이자 ‘체험’이다. 굳이 교육적 메시지를 주입하지 않아도 우리는 문화 활동을 통해 미적 감수성을 키우고 함께 비비고 살아야 할 공동체임을 어렴풋이 깨달아가는 것이다.
공연 전 줄타기 체험이나 강강술래 체험은 아마도 극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체험에 독려하기 위해 설계된 여러 가지 기획들은 꽤 성공적이었다. SNS 팔로우 미션까지 최종 수행하면 지하 1층에 마련된 스튜디오에서 네 컷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공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예비 관객까지 연결하고 있다.
강강술래 체험
강강술래 체험
줄타기 체험
여기에 워크북이 한몫했다. 악기 소개, 강강술래 퀴즈, 색칠하기, 미로찾기, 낱말 퍼즐 등 알차게 구성된 워크북은 소장해도 좋을 만큼 알찼다. 마지막에 오늘의 일기까지 하루를 마무리하며 돈화문국악당이 마련한 국악콘텐츠를 정리할 수 있도록 교육적 가치까지 알차게 담아냈다.
국악의 전통적 소재에서 착안하여 창작작품을 올리고 거기에 파생되는 체험활동까지 제작하는 여정을 떠올리기만 해도 숨 가쁘다. 그 과정에서 누구를 손님으로 맞이하고, 무슨 이야기를 건넬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시작부터 끝까지 지속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음악극은 무대에서부터 노래, 극, 연기, 음악 구성까지 다양한 요소들의 총합체이기 때문에 표현에 집중하다 보면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 흩어지기도 한다. 강강술래를 하는 장면은 아름다웠으나 등장 동물의 고유한 성격은 사라지고 갑자기 무용수의 맵시 있는 몸짓으로 바뀌어버렸다. 어떤 동물들의 대사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한 끗 차이지만 극의 몰입을 방해한다.
 

국악이라는 좋은 소재에
설득력을 더할 때

한편, <줄 타는 아이와 아프리카도마뱀>의 ‘칠삭둥이’와 ‘아프리칸도마뱀’이라는 설정은 신선했으나 인물들이 관객들에게 얼마큼 설득력이 있었는지는 고민할 필요가 있다. 왜 아이들은 칠삭둥이를 무서워할까?
<줄 타는 아이와 아프리카도마뱀>
주요 관객층 특성을 파악하고 관객들이 감정선을 따라갈 수 있을 만큼 좀 더 친절할 필요가 있다. 가족극이야말로 다양한 각도에서 치밀한 극적 구성이 필요하다. 어린이 관객이 기댈만한 인물도 필요하고, 어른 관객이 공감할만한 장면도 필요하다. 이런 세심함이 합쳐져야 연령 스펙트럼이 넓은 가족극을 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좋은 소재이니만큼 설득력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제 3회를 맞이하는 돈화문음악극축제는 체험과 공연은 물론이고 돈화문이라는 입지적인 요소까지 한껏 활용하고 있었다. 선정 작품들도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시대의 이야기를 건네고 있다. 이제 국악이 고루하거나 낡은 거라고는 말하는 게 쑥스러워졌다. 아이들은 국악을 일상과 다른 재미로 즐기고 있고, 어른들에겐 꽤나 힙(hip)한 것이 되어버렸으니까. 이제 한복을 입고 궁에 가는 것이 자연스러워지고, 빨간 병에 든 막걸리를 찾는 젊은이들처럼 말이다. 잔치를 준비하는 사람도 잔치에 오는 사람도 이제 “전통을 지키자”라는 구호 대신 어깨에 힘을 빼고 차려진 상을 마음껏 먹고 나눌 때가 아닐까.
구수정
음악치료사, 음악연구자 그리고 한 아이의 엄마. 음악을 매개로 다양한 글쓰기를 한다. 에세이 <가끔은 혼자이고 싶은 너에게>, <마음을 듣고 위로를 연주합니다>를 썼다. 봉장취, 봉산탈춤, 당악 장단 등을 비롯해 현재 함경도 망묵굿을 연구 중이다.
사진제공 서울돈화문국악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