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봄

리뷰 | 서울남산국악당 [2024 한국즉흥음악축제 메인 콘서트]

박종현
사진제공서울남산국악당
발행일2024.03.19

즉흥의 콘셉트로 무장한 축제,
묵직한 과제를 남기다

서울남산국악당 [한국즉흥음악축제 메인콘서트] 2월 29일
 
서울남산국악당과 서울돈화문국악당이 함께 만든 한국즉흥음악축제가 2회째를 맞아 2024년 2월 24일부터 29일까지 닷새에 걸쳐 열렸다. 한국의 주류 미디어 및 좁은 의미의 대중(성)과 거리가 있는 장르적, 테마적 시도의 다발인 이러한 축제가 어려운 첫걸음을 딛고 두 번째 걸음을 옮긴다는 것 자체가 아름답고 용기 있는 일이라 이야기하고 싶다.
 

얽매이지 않음에 관한’ 소리들
-
박창수민영석

2월 29일, 축제 마지막 날 <메인 콘서트II>에는 여덟 악기와 그것을 품은 연행자의 몸, 그리고 그것들에 심긴 물성에 있어서의 한계와 가능성, 나아가 역사 속에서 관례화된 각 악기 주법의 경계 안팎을 넘나들며 서로에게 던져내고 받아내는 대화가 세 세션에 걸쳐 이루어졌다.
세션1. 박창수(피아노), 민영석(기타)
민영석
박창수
첫 순서에서는 두 베테랑 연주자, 피아니스트 박창수와 기타리스트 민영석이 각각 그랜드 피아노와 일렉트릭 기타 앞에 앉은 채 만났다. 피아니스트는 종종 의자에서 일어나, 한 손으로는 피아노 몸체 안의 현을 여러 방식으로 제어하고 다른 한 손으로 건반을 누르거나 주먹으로 침으로써, 전형적 건반 주법으로는 낼 수 없는 종류의 어택(attack)과 릴리즈(release)를 만들어 상대에 내미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 손으로 소리를 내고 다른 한 손으로 그 소리의 방식을 조절하는 것은 마치 가야금의 주법을 연상시키는 일이며, 건반악기 속에 본디 내재한 현악기로서의 속성을 꺼내고 강조하는 일이다. 전자기타 역시 부가적 변조 장치(이펙터)를 외부에 달지 않은 채 악기 자체의 조건과 가능성 안에서 나오는 소리 즉 (연주자들의 표현으로) ‘생톤(生-tone)’을 갖고 대화에 임하였다. 그 결과 두 몸, 두 현악기 사이의 단출하고 나지막한 대화로 읽히는, 그러면서도 전형‧관습‧역사에 ‘얽매이지 않음에 관한’ 감상과 사유의 순간을 낳았다.
 

즉흥과 정형성 사이에서
-서정민심은용이선재

두 번째 순서는 색소포니스트 이선재와 가야금 연주자 서정민, 거문고 연주자 심은용의 무대였다.
세션2. 서정민(가야금), 심은용(거문고), 이선재(색소폰)
서정민, 심은용, 이선재
이선재, 서정민
매력적인 세 악기 및 연주자 간의 부딪음은 전 무대보다 화려했지만, 첫 무대에 비한다면, 또한 서로 다른 지역에서 온 악기들 간의 만남에 관련된 역사 속에서 생각한다면 이 무대는 아쉽게도, 지극히 전형적으로 혹은 예상대로 진행되었다. 색소폰의 ‘재즈적’ 임프로비제이션에 맞닥뜨리거나 그를 받치면서, 가야금과 거문고가 손가락과 술대 대신 활을 써 찰현악기나 타악기적 효과를 내는 일, 또 상황에 따라 각기 타악기(거문고)와 화성 혹은 선율악기(25현 가야금)적 요소로 역할이 자연스레 ‘배분’되는 일 등은 호의적인 평자들에게는 능숙한 대화와 어우러짐의 전술로 평가될 수도 있을 것이다.
세션3. 민영치(타악), 윤은화(양금), 이상민(드럼)
민영치, 이상민
윤은화
하지만 그러한 주법과 대화법들이 이미 꽤 오래 관습적으로 통용되고 있음을 인식하는 입장에서, 평자에게 그 능숙함은 음악적 발화와 대화(법)에 있어서의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는 즉흥음악적 고민과 사유의 결과물이라기보다 정형화된 대화 형태의 재현(re-presentation)이기에 가능한 것으로 읽혔다.
 

예상된 어법의 안팎을 넘나들며
-민영치윤은화이상민

마지막 순서는 드러머 이상민과 장구와 꽹과리를 번갈아 든 타악 연주자 민영치, 그리고 양금 연주자 윤은화의 무대였다.
 
다른 무대와는 달리 “Peace, Love, Respect, and Unity”라는 (레이브 문화에서 온) 공연의 주제를 언어로 선제시하고 그에 맞추어 혹은 그를 의식하며 흐름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발화와 이해의 코드가 공유되지 않은 채 언어를 더듬어가며 듣고 알아가는 종류의 자유즉흥에 비한다면 어떤 의미로 ‘자유’가 제약된 무대였던 셈이다. 드럼 세트가 내는 리듬 패턴과 전통 타악기의 장단이 번갈아가며 주도권을 쥐고 또 서로를 능숙히 듣고 받치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양금 연주자는 양금이 지닌 유율(선율을 지닌) 타악기적 요소와 현악기적 요소를 상황에 따라 꺼내 들며, 딜레이(delay) 등 음향효과의 순간적인 삽입과 철수, 술대의 비전형적인 사용(술대 뒷부분으로 현을 튕겨내는 등) 등을 통해 예상된 어법 안팎을 넘나드는 고민의 모습들을 보여주었다.
다만 이미 처음부터 어느 정도 예상된 ‘지극히 (어떤) 재즈스러운’ 고조 속에서 이루어진 스펙터클로의 마무리는, ‘자유즉흥’과 ‘자유즉흥축제’의 현재와 다음에 대한 아래와 같은 여러 비평적 질문들을 낳게 하였다.
 

질문: 이것은 어떤 축제인가?

즉흥음악은 문자 그대로 음악(가)의 즉흥(성)과 연관된 태도를 반영한 모든 시도와 가능성들을 넓게 이르는 말일 수도, 세계 각 지역 음악사 혹은 글로벌 “즉흥음악계” 안에서 다소간 형태화 된 소통-실험의 역사를 통해 고유명사화된 장르(들)로 이해할 수도 있다.
한국즉흥음악축제는, 적어도 아직까지는, 후자의 정의 안에서 이해되는 축제라 하겠다. 작년 첫 축제를 여는 프린지 공연에서, 유홍 예술감독이 직접적으로 이 축제를 “자유즉흥음악을 추구하는” 장이라 정의한 바 있다. 두 해 동안의 연행자 및 프린지 워크숍 강사의 라인업, 또 실제 연행된 형태들을 보더라도, 주로 재즈사(史) 안에서 자리매김한 영역/장르로서의 서구적 자유즉흥(free-improvisation) 개념과 그 어법에 기대어 혹은 적어도 그 어법을 주로 의식하면서 기획되었음을 부정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마지막 날의 무대들도 모두, 개별 무대들의 편차와 관계없이, 이 글의 앞부분에 여러 번 나온 단어인 ‘(서구 혹은 서구 기반의 글로벌) 재즈’ 축제라는 자장 ‘안’에서 읽혔다. 비-서구 악기들이 여럿 등장하였지만, 그 등장 자체가 글로벌 컨템퍼러리 재즈 씬(scene) 안에서 새롭지 않으며, 무대 위 비-서구 악기들도 이러한 기반으로부터 멀리 가지 못하거나 그 어법에 수긍 혹은 흡수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한 수긍 혹은 흡수 자체가 문제는 아니지만, 질문은 남는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서구적) 재즈-축제’인가?
 

바람:
자유와 즉흥의 개념이 모이는 장으로

축제가 확실한 콘셉트적 기반을 딛고 있다는 것은 장점일 수도 한다. 하지만 그 기반을 넘어서거나 그 지평 밖에서 이미 존재하여온(혹은 존재할 수 있는) 다른 즉흥/자유 개념 및 관련 장르의 부재 혹은 소외에 대한 아쉬움 섞인 의문을 낳게 되기도 한다. 한국즉흥음악축제가 아름답고 용기 있는 세 번째 걸음을 뗄 수 있기를 바란다.
넥스트 페이지 콘서트(2월27일)
한옥 콘서트(2월28~29일)
나이트 콘서트(2월28~29일)
다만 세 번째 걸음에서는, 특히나 두 ‘국악당’이 야심차게 내민 행사라는 점에서 더더욱, 한반도를 포함한 비(非)서구-비 재즈 컨템퍼러리의 자장 밖에 있는 음악적 ‘즉흥(성)’들이 함께 등장하여 서구 자유즉흥 장르(들)와 보다 본격적으로, 때로 갈등하면서, 마주한다면 더 풍성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비-서구 악기와 장르 연주자들이 재즈사 속의 ‘(자유)즉흥음악’으로 ‘들어오는’ 게 아니라, 각 개인, 각 지역이 지닌 자유와 즉흥, 자유즉흥의 개념을 들고 생산적 긴장 속에서 ‘맞닥뜨리는’ 콘셉트로의 변화가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박종현
인류학 연구자이자 팝 음악가이다. 제11회 국립국악원 학술상 우수평론상을 수상하였다.
사진제공 서울남산국악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