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북쪽 기슭 고즈넉한 한옥들이 아담하게 자리한 남산골한옥마을. 수렴한 남산 산세와 어우러져 존재감마저 자연스럽다. 여기 온 이유는 달리 있으니 전통예술 공연장으로 명성이 자자한 서울남산국악당을 찾기 위해서다. 서울 도심 한복판인 필동(筆洞)은 과거 사대문 안에 위치한 곳인데 매년 굿 공연을 대중들에게 선보인다. 전통의 뿌리와 근원을 찾는데 진심을 담은 서울남산국악당의 기획력이 돋보인다. 필자 또한 민속공연을 기획하고 연출하는 입장으로 한민족의 삶이 녹아있는 세시풍속을 매우 중요하게 본다.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문화가 바뀌었다고 해도 생활풍습에 얽힌 이야기는 대중에게 호기심과 친근감을 자아낸다. 객석은 전석 매진이다. 현장에는 당일 발권이라도 하기 위해 찾아온 관객들이 아쉬움을 달래며 발길을 되돌리는데, 내년부터는 예약 전쟁이 될 성싶다.
과거로 보나 현재로 보나 굿을 찾는 여성 관객이 많다. 여성이 주체가 되는 풍습이 고무적이다. 우리 속담에 ‘굿하고 싶어도 맏며느리 춤추는 꼴 보기 싫어 못한다.’라는 말이 있듯이, 평상시 억눌린 생활에서 벗어나 자신의 신명을 마음껏 풀 수 있는 곳이 굿판이다. 설에 지친 몸과 마음을 풀려고 오신 관람객이라고 생각하니 날 한번 잘 잡았다.
공연장 안으로 들어서서 무대 위에 차려진 전안상(신령을 위해 차린 상차림)을 보니 강림하신 신령님들 거하게 놀고 가시겠다. 신의 모습을 하고 있는 환(무신도(巫神圖))이 무대 뒷면을 모두 채웠다. 만신(萬神, 무녀의 높임말)이 모시는 신들이라고 하면 ‘일만 만(萬)’자를 쓰는 이유가 그냥 생기진 않은 듯하다. 오색의 장발(제장(祭場)을 장식하는 기다란 종이장식)이며 개(장군개(將軍蓋)), 지화(紙花)까지 화려함이 극에 달한다. 황해도 무형유산 만구대탁굿을 선보이는 자리는 아니긴 하나 장식이 축소된 것이라고 하니 경관만신(총괄하는 무당)의 위엄이 느껴진다. 프로그램은 총 12개, 굿의 의례로 보면 열두거리로 보고 굿 공연 특성상 축약하여 여러 볼거리(무용, 탈춤, 판굿)를 제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