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봄   山:門 REVIEW

리뷰 | 사대문 안, 신명나는 굿판서울남산국악당 2025 민혜경 만신 <새해 대운맞이 굿>

강경원
발행일2025.03.31

남산 북쪽 기슭 고즈넉한 한옥들이 아담하게 자리한 남산골한옥마을. 수렴한 남산 산세와 어우러져 존재감마저 자연스럽다. 여기 온 이유는 달리 있으니 전통예술 공연장으로 명성이 자자한 서울남산국악당을 찾기 위해서다. 서울 도심 한복판인 필동(筆洞)은 과거 사대문 안에 위치한 곳인데 매년 굿 공연을 대중들에게 선보인다. 전통의 뿌리와 근원을 찾는데 진심을 담은 서울남산국악당의 기획력이 돋보인다. 필자 또한 민속공연을 기획하고 연출하는 입장으로 한민족의 삶이 녹아있는 세시풍속을 매우 중요하게 본다.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문화가 바뀌었다고 해도 생활풍습에 얽힌 이야기는 대중에게 호기심과 친근감을 자아낸다. 객석은 전석 매진이다. 현장에는 당일 발권이라도 하기 위해 찾아온 관객들이 아쉬움을 달래며 발길을 되돌리는데, 내년부터는 예약 전쟁이 될 성싶다.

과거로 보나 현재로 보나 굿을 찾는 여성 관객이 많다. 여성이 주체가 되는 풍습이 고무적이다. 우리 속담에 ‘굿하고 싶어도 맏며느리 춤추는 꼴 보기 싫어 못한다.’라는 말이 있듯이, 평상시 억눌린 생활에서 벗어나 자신의 신명을 마음껏 풀 수 있는 곳이 굿판이다. 설에 지친 몸과 마음을 풀려고 오신 관람객이라고 생각하니 날 한번 잘 잡았다.


함축적인 반응

공연장 안으로 들어서서 무대 위에 차려진 전안상(신령을 위해 차린 상차림)을 보니 강림하신 신령님들 거하게 놀고 가시겠다. 신의 모습을 하고 있는 환(무신도(巫神圖))이 무대 뒷면을 모두 채웠다. 만신(萬神, 무녀의 높임말)이 모시는 신들이라고 하면 ‘일만 만(萬)’자를 쓰는 이유가 그냥 생기진 않은 듯하다. 오색의 장발(제장(祭場)을 장식하는 기다란 종이장식)이며 개(장군개(將軍蓋)), 지화(紙花)까지 화려함이 극에 달한다. 황해도 무형유산 만구대탁굿을 선보이는 자리는 아니긴 하나 장식이 축소된 것이라고 하니 경관만신(총괄하는 무당)의 위엄이 느껴진다. 프로그램은 총 12개, 굿의 의례로 보면 열두거리로 보고 굿 공연 특성상 축약하여 여러 볼거리(무용, 탈춤, 판굿)를 제공했다.

2025 민혜경 만신 <새해 대운맞이 굿> _ⓒ 이현석
2025 민혜경 만신 <새해 대운맞이 굿> _ⓒ 이현석
2025 민혜경 만신 <새해 대운맞이 굿> _ⓒ 이현석
첫 프로그램은 ‘신청울림’으로 관객이 입장하기 전 하늘과 땅에 알림과 동시에 주당(악독한 살기나 악귀) 잡귀를 쫓아내 굿청을 깨끗이 하고 관객을 맞이한다. ‘제례의식(대풍류)’에서는 굿청에 오신 모든 분에게 복을 기원한다. ‘상산맞이’는 산천거리 또는 산거리로 본격적인 굿이 시작되며, 맑은 정기를 가진 산천의 신들 즉 산신들을 모시고 기원한다. ‘초감흥거리’는 굿청에 모실 모든 신령님을 좌정시키고 여러 가지 무구(巫具)나 무복(巫服)을 가지고 놀려드린다. ‘경기검무’는 삼현육각의 반주에 맞춰 맨손 춤사위와 칼 춤사위로 구성된 전통무용으로, 역동적인 움직임 속에 강인한 기상과 여성의 아름다움이 동시에 느껴지는 춤이다. ‘칠성제석거리’는 북두칠성을 신격화한 성신(星神)으로 수명장수와 소원 성취를 관장하고, 제석신은 자손의 점지나 출산을 도와주는 신으로 명과 복을 바라는 굿이다.
 
‘강령탈춤(말뚝이)’은 도약하는 남성의 기상과 젊음을 상징하는 두 명의 말뚝이가 용감성과 우월성을 표현하는 탈춤이다. ‘타살감흥거리’는 원한이 맺혀 죽은 신들을 고기로 달래고 도당(都堂, 마을신, 마을신의 제단)의 안녕을 발원한다. ‘대감거리’는 진사대감, 판서대감, 벼슬대감, 홍패대감 등 여러 대감을 불러 노래와 춤으로 흥을 북돋아 주고 풍요와 부귀를 기원한다. ‘장군거리(작두거리)’는 장군복을 입고 작두를 타며 영험을 극대화해 관객들에게 공수(무당을 통해 인간에게 내리는 신탁 중 말로 이루어진 부분)를 주면서 굿의 클라이맥스에 오른다. ‘사물판굿’에 이어 마지막으로 굿을 관람하는 모든 사람과 축제로 향하는 ‘대동춤판’은 관객들과 함께 흥과 신명을 나누며 굿을 마무리한다.
 
굿이 끝남과 동시에 관객들이 모두 일어나 격렬한 환호와 우레와 같은 박수가 이어졌다. 굿이 이렇게 마니아층이 많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반응이었다. 이날 오신 관객의 절반 이상이 굿을 처음 접한 사람이었고, 주최 측 역시 지인을 동원하지 않았음을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 같은 반응을 이끌게 한 것은 함축적이다. 관객과 무대가 상호작용을 하며 교감하고 소통한 모두의 결과물인 것이다. 필자도 굿을 제법 접해본 사람으로 그날 민혜경 만신 <새해 대운맞이 굿>은 과거 마을 사람들이 춤을 추고 노래하며 무감서기(청중이 무복을 입고 굿장단에 맞춰 춤을 추는 행위)로 모두 하나가 되었던 대동굿을 연상케 했다.
 
관객이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만신도 그들의 이야기를 받아 공수로 전했다. 서로 소통하며 모두가 함께 굿판을 만들어간 것이다. 이런 무대를 가능하게 한 것은 민혜경 만신의 카리스마 있는 의례성과 신명으로 즐기는 연희성이 돋보이며, 무당이 지닌 신기(神氣)를 통해 우리 마음속의 응어리지고 억압된 감정을 해소하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다.
2025 민혜경 만신 <새해 대운맞이 굿> _ⓒ 이현석
2025 민혜경 만신 <새해 대운맞이 굿> _ⓒ 이현석

민혜경 경관만신

“천지신명께 천우신조를 아룁니다. 삶의 혼란을 물려내고 삶의 풍요로움을 춤으로 신명께 바라고 소리로 전하오니 남산에 깃을 두고(깃들고) 국악당에 닿는 걸음 명복(命福) 나려 도우소서.”
 
그날 공연장에 오신 모든 분에게 대운이 들어오는 새해 신령의 기운으로 악운을 막고, 좋은 운을 내려 달라고 올리는 민혜경 경관만신의 정성이 담긴 사설이다.
 
민혜경 만신(황해도 무형유산 만구대탁굿 전승교육사)은 어린 나이부터 신병을 앓다가 22살 나이에 이옥희(쌀집 만신)를 통해 내림굿을 받았다. 어렵고 힘들기로 소문난 황해도 강신무를 배웠다. 하루아침에 삶의 방향이 바뀌고 신을 모시는 무당으로 산다는 것은 그리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역동의 시간 속에서도 순탄한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고 한다. 과거 11년간 감악산 대응암 굿당에서 여러 큰 만신들을 만나 울기도 많았던 힘든 나날이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본인에게 큰 축복이며 원동력이라고 했다. 현재 황해도 만구대탁굿 전승교육사로 전승과 보존에 힘쓰고 있으며 강박수(1대), 김기백(2대), 우옥주(3대), 정학복(4대), 김계순(5대), 민혜경(6대) 및 이동균(상장구) 대대로 이어지는 무형유산의 가치를 켜켜이 쌓아 올리길 소망했다.
 
앞으로 민혜경 만신은 더 험한 길을 선택하고 달리려 한다. 많은 이의 시선과 생각을 돌려놓기를 원한다. 2022년 슈테파니 티어쉬(Stephanie Thiersch) 예술감독과 협업한 작품 <공허와의 만남>은 프랑스 님(Nimes)에 있는 극장에서도 공연되어 한국의 굿을 세계에 알렸다. 그는 전통과 현대를 이끄는 예술적 기량과 만신으로서의 역량을 보여주었다. 그밖에 ‘대운맞이 굿’, ‘희망 놀이굿’, ‘꽃맞이 굿’, ‘비나이다’ 등을 통해 한국 굿의 예술화, 공연화, 대중화에 관한 남다른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모든 문화는 대중 속에서 시작된 경우가 많다는 것을 상기하며 순수예술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고 대중과 소통하고자 한다. 한국 무속에 내재한 예술적 아름다움과 함께 실제 굿판에서 펼쳐지는 즉흥적이고 감각적인 흐름을 유지해 섬세하고도 카리스마 넘치는 긴장감을 유지한다. 그녀가 행하는 굿판은 구경꾼의 시선을 강하게 붙든다. 한 발짝도 떨어지기는 어렵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그 어떤 벽을 어떻게든 허물어버린다. 자발적으로 마음을 열고 참가하지 않은 굿판은 민혜경 만신에게는 어렵고 힘든 굿이다. 종교, 문화, 사상을 넘어 굿을 통한 상생과 공존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공허와의 만남 _ ⓒ 이한구

공존하고 공생하는 종교문화로

한국만큼 종교에 관대한 나라는 드물다. 부처님 오신 날, 개천절, 성탄절이 공휴일로 지정된 나라이다. 오래전 여러 외래 종교가 수용되는 시점만큼 동병상련의 아픈 마음으로 함께했던 것이 무속이다. 수천 년의 역사 속에 다양한 문화, 사상, 철학이 있었고, 한민족 문화 정체성을 말살하려는 일제 강점기를 겪어왔지만 타 종교에 대한 배타적 성격보다 다원주의로 승화시켜 공존해왔다. 같은 처지, 비슷한 경험으로 서로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대립각을 세우기보다는 화합을 추구했다. 자기 것만 옳다고 여기지 않는 종교문화가 한국에 자리 잡혀있는 것이다. 불교, 천주교, 개신교 그리고 스스로 종교가 없다고 하는 무교까지. 모두 한반도의 토착문화와 조화롭게 융합되어 상생이라는 우리 문화 가치의 근간을 형성하였던 것이다. 특히 신라 말 고려시대에 불교는 무불습합(巫佛習合)이라 해서 무속과 융합되어 사상, 신앙, 의례, 풍속 등이 수용되는 양상이 보이기도 했다. 그 예로 산신각, 칠성각, 용왕각 등이 생겨났고 무당도 여러 불상을 모셨으며, 법사(法師)라는 불교적 호칭을 사용한다. 그리고 고려 말에서 조선시대 유교에서는 관아에 부군당(府君堂)을 설치하고 마을의 수호신을 모시기도 하였다. 이처럼 한반도의 무속은 조화와 상생을 통해 종교문화의 뿌리를 지켜왔다. 퇴락한 저급 종교의 양상이라고 비판하는 주류 종교의 넓은 시선이 필요할 때라고 본다.
강경원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원, 민속공연 기획·연출가. 객관적인 시선으로 특별함을 찾고, 민족문화의 가치를 찾아 공연예술에 몰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