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겨울   山:門 REVIEW

리뷰 │ 서울남산국악당 [젊은국악 단장]

송현민
발행일2022.12.11

젊은 예술가들의 가능성과 미래를 살피다

 
서울남산국악당의 <젊은국악 단장>은 2018년 시작된 청년 예술가 지원 프로그램이다. 해마다 그 진행 방식이 바뀌었는데, 첫해는 경연대회 방식이었고, 2019년과 2020년에는 다양한 장르와 협업을 시도하는 청년예술가들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올해 <평론가 초이스>를 표방한 <젊은국악 단장>은 4인의 추천단이 공연의 기획 과정부터 참여했다. 이들은 평론적인 시선으로 현장을 살피고, 기획하고 연구하는 이들이다. 10월 19일 공연에는 음악평론가 윤중강이 추천한 3인의 연희 예술가 김성현, 이정동, 정승하가, 22일에는 무용 기획자 장승헌이 추천한 이이슬, 김현선, 최종민의 작품이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음악학자 김희선이 추천한 가야금 연주자 김철진의 무대가 26일에, 음악평론가 송현민이 추천한 그룹 구이임이 29일에 공연을 선보임으로써, 10월의 서울남산국악당 무대를 채웠다.


 

평론가 초이스로 진행된 <젊은국악 단장>

10월 19일은 탈춤꾼 3인의 공연이었다. 김성현이 양반춤과 문둥북춤, 이정동이 취발이춤과 벽사진경 의식무, 정승하가 지전춤과 바라춤을 선보였다. 막판에는 세 사람이 함께 무도풀이를 올렸다. 윤중강은 “이들의 춤사위를 통해 탈출의 홀춤과, 탈춤의 서사화, 탈춤의 그룹화를 접할 수 있고, 젊은 명인의 길로 나아가는 발판이 될 것”이라며 3인의 탈춤 예술가를 추천했다.

연희 분야에서 탈춤에 집중되었다면, 무용 분야의 장승헌은 “다채로운 3인 3색 무용가들의 무대는, 각장의 삶의 고민과 독창적인 움직임을 통해 신선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라며 한국춤의 지형을 넓힐 3명(이이슬, 김현, 최종인)이 춤을 풀어낼 수 있는 시간을 22일에 빚었다.
26일, 가야금 연주자 김철진은 강태홍류 가야금 산조를 비롯하여 전통음악에 기반한 자신의 창작곡을 선보였다. 김희선은 “김철진은 힘과 균형에서, 거의 완벽을 구사하는 젊은 연주자로 그를 추천하기에 주저함이 없었다”라며, “산조를 가장 잘 담아온 가야금에 허튼가락을 담고, 스승에 대한 오마주를 담고, 화음 대신 음색을 담은 가야금 음악”이 관객과 만날 수 있도록 했다.
29일은 앙상블 구이임의 무대였다. 송현민은 “구이임이 지닌 음악적 환기력이 우리가 잊고 있던 풍경을 환기시키는 음악으로 작용한다”면서 “이들의 음악은 지금 여기에 없는 것을 환기시키고, 상상하게 하는 음악적 힘”을 높이 샀다.
이번 <젊은국악 단장>에는 추천한 평론가들의 공연 현장에서 해설을 맡았고, 공연이 끝난 뒤에는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통해 여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도 마련되었다. 그중 구이임의 공연 현장으로 가본다.


 

구이임의 <집은 집이 아니다>

구이임은 구민지(정가), 이채현(건반‧미디어 사운드), 임정완(가야금)으로 구성된 앙상블이다. 2020년, 동인의 성을 따서 결성되었다. 한데 모인 구씨, 이씨, 임씨는 새로운 소재와 감각으로 자신들만의 음악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번에 그들이 선보인 공연 제목은 <집은 집이 아니다>이다. 지금까지 구이임이 행해온 음악들과 이번 무대를 위해 새롭게 지은 음악들을 총합하여 우리가 살고 있는 집과 공간에 대해 사유해보는 시간이었다.
“우리에게 ‘집은’ 무엇인가. ‘house’는 사는 공간을 의미하기도 하며, ‘home’은 가정을 이루고 생활하는 집안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 외에 보편적인 인식 속에 ‘집’에 대한 다양한 이미지와 의미가 부여된다. 그리고 ‘보편적인 집’의 범주에서 벗어나거나 결여되면 우리는 결핍으로 느끼기도 한다. 그 결핍이 각자의 방식으로 표출되기도 하는데 이 공연에서는 음악으로 그러한 점을 표현하고 형태로서의 집이 아닌 서로의 결핍된 부분을 채워줄 집을 찾아본다.”(프로그램 노트 중)
공연은 하나의 결론을 향해 나아가는 방식이었다. 이를 통해 구이임이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집은 집이지만, 마냥 편할 수 없다는 전제. 이와 더불어 그렇다면 우리가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집이란 무엇인가라는 자문을 통해 이들은 구씨, 이씨, 임씨가 한데 모인 음악적 순간이 이들에게는 ‘가장 편안한 집’이라고 결론 내렸다.
이러한 공연을 위해 기존과 다른 연출적 요소도 여럿 녹여 넣었다. 조명이 들어오면서 문을 연 무대에는 변기, 쿠션, 베란다와 강아지 인형이 놓여 있다. 구이임 멤버들이 집에서 애용하는 사물이자 공간이다. 구민지는 가끔 화장실에서 노래를 연습하기에 변기를, 이채현은 어린 시절에 잘 때 사방에 쿠션을 두르고 잤다는 추억을, 강아지 인형과 함께 밤하늘에 기도를 지냈다. 이러한 기억과 집에서의 경험을 구민지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로, 이채현은 <철벽의 요새>로, 임정완은 <하느님 부처님 천지님>으로 풀어냈다. 조금도 남김없이 한껏 끼어있을 때 안정을 느낀다는 느낌도 <구석탱이>로 풀어냈다.
구이임은 현대인의 마음과 일상을 들여다보아 공감의 소리를 빚는다. 이러한 음악 짓기와 음악 하기를 통해 일상의 언어는 설명과 묘사라는 단순한 기능을 넘어, 시적인 것으로, 그리고 ‘노래적인 것’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러면서 구이임의 음악이 더 와닿을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가사와 말을 들려줄 수 있는 구민지라는 가객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말을 사용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이러한 ‘말’의 장치를 장착한 음악가들이 악기로만 구성된 기악 그룹보다 더 많은 공감대와 보편적 정서를 끌어낼 확률은 높다.
하지만 그 ‘말’들을 어떻게 집어삼켜 음악화하는가의 문제도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구이임은 여러 시어와 문장의 사이를 헤집고 다기는가 하면, <나뷔>나 <나의 바다>처럼 음악에 어울리는 가사의 집을 짓기도 한다.
더불어 일상과 생각의 환기 작용을 일으키기도 한다. 환기란 공기를 이동시키는 행위다. 그렇게 이동하는 공기의 운동과 흐름은 육안에 보이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후각과 촉각 등의 감각을 통해 공기가 이동하고 바뀌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공기의 이동처럼 구이임의 음악은 현실과 비현실, 초현실의 공기를 뒤섞이게 한다.
올해 21c한국음악프로젝트에서 선보이며 은상을 수상한 <나븨>는 더욱 그러했다. 곡과 가사를 지은 구이임은 기계로 만들어진 회색 나비 한 마리를 상상의 하늘로 날려 보낸다. 하지만 나비는 시간에 젖어 녹슬어 있다. 임정완의 가야금 소리는 시계 초침 소리로 시공간의 전이를 연출하고, 이채현의 옅은 구음은 환상성을 더하고, 구민지의 노래는 나비의 여정을 묘사했다. 이처럼 음악을 통한 현실과 비현실의 환기. 이는 구이임이 지닌 음악의 특성이라 할 수 있겠다.


 

을 환기시키고 구이임을 기억시키고

이곳에 없는 것을 떠올리게 하는 의미로서의 환기(喚起), 또 현실과 초현실의 공기를 순환시킨다는 점에서 구이임의 음악은 한마디로 ‘환기의 음악’이었다. 그들은 이러한 음악적 특징과 특장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집(House/Home)에 대해 떠올려 보지 못했던 생각들을 만나게 하고, 집에 관한 생각의 공기를 환기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제공했다.
뭔가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이다. 하지만 그들의 음악은 느리다. 생각과 사유의 시간은 느림의 시간 속에서 더욱 맹렬하게 움직일 수 있다. 전통음악이 세속과 접속하면서, 우리는 즐겁고 재밌는 음악들을 찾곤 한다. 그 음악을 통해 우리는 현실의 힘겨움과 고달픔을 망각하고자 한다. 물론 이 역시 음악과 예술이 주는 장점이다. 하지만 망각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잊고 있던 것, 우리의 일상에 없는 것, 혹은 우리의 일상에 겹쳐 있는 또 다른 존재에 대한 사유가 아닐까 싶다. 구이임의 음악은 이것을 환기시켜주고, 생각의 공기를 바꿔주는 환기의 음악이었다.
이들의 향후 계획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꾸준히 음악 ‘만들기’와 ‘엮기’를 통해 이 시대에 새로운 예술을 내놓는 게 아닐까 싶다. 이번 <젊은국악 단장>이 이를 위한 발판이자 지렛대가 되길 바란다.
 
송현민
한국음악과 서양음악이 교차하고 오가는 다양한 현장에서 비평, 저술, 강의, 해설, 자문을 맡고 있다. 음악평론가이자 월간객석 편집장을 맡고 있다.